손에 든 화살을 흘끗 본다. 꽁지에서 붉은 빛이 계속해서 새어나오며, 어떻게든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하는 이 화살을, 아이든 헌터는 알고 있었다.


"이거, 야카 화살이었던가."


척, 화살을 들어 욘두를 향해 흔들며 헌터가 말했다.


"당신 욘두 우돈타 맞지. 유튜브에서 봤어."

"허, 유튜브? 그게 뭔데? 지구안전방위대 이름인가? 거기에도 내 현상금이 걸려있어?"


욘두가 고개를 까닥하며 물었다. 반쯤 도발이나 다름없는 말투였으나 지구인은 평온했다. 툭- 작은 지구인이 제 동료, 크래글린의 멱살을 놓았다. 커, 커흐흑! 크래글린이 컥컥대며 숨을 쉬었다.


"2018년이었나, 2019년이었나.."


작은 지구인이 혼자 중얼거렸다. 몇년에 봤지. 무기 모아놓은 영상에서 봤는데.


욘두는 긴장하며 총을 쥐었다. 가장 자신있는 무기를 뺏겼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은 복도, 총을 피하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구인들의 피부는 연약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욘두 우돈타.."


작은 지구인이 중얼거렸다. 뒤쪽에서 피터가 기어나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욘두는 손가락을 방아쇠에 올려놓았다.


"..그 머리통에 달린 센서를 없애면 이거 못쓰지?"


욘두의 붉은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지구의 기술력은 이걸 알 정도가 안될텐데..?! 그러나 고민할 새도 없었다.


쾅!


작은 지구인이 욘두에게 달려들었다. 재빨리 방아쇠를 당겼지만, 오히려 자기 화살로 총알을 튕겨내버리는 작은 지구인을 보며 욘두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쿵- 우당탕!


작은 지구인이 그대로 욘두 위에 올라탔다. 오른 무릎이 그의 갈비뼈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욘두는 순간, 그 작은 아이의 눈에서 시커먼 어둠을 본다. 살기, 순수한 살의. 필요하면 죽인다는 사실에 어떠한 망설임도 없는 눈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 작은 지구인은 망설임 없이 욘두의 머리에 달린 센서를 부숴버렸다.

우지직- 기계가 망가지는 동시에 욘두의 머리가 핑 돈다. 센서는 뇌파와 연결된 것, 무사한 것이 오히려 말이 안되는 것이다. 가물거리는 시야와 찡한 통증과 함께 욘두는 기절해버렸다.




*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욘두 우돈타는 제 모가지에 잭 나이프를 겨누고 있는 수상한 지구인과 눈을 마주쳤다. 욘두는 자신의 머리통의 센서가 복구된 것을 깨닫고 의아함을 느꼈다.


"깼군."


지구인이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치밀어오는 분노에 욘두가 소리쳤다.


"..너!"

"허튼 짓 할 생각 마. 인질 보이지?"


척, 지구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를 가르킨다. 자신의 부하들이 밧줄로 묶여있는 광경에, 욘두는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자신 역시 묶여있었다. 욘두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자, 지구인이 잭 나이프를 욘두의 목 근처에서 흔들었다.


"지금부터 너한테 질문을 할건데, 거짓말 하나 당 손가락 하나야."

"..."

"네놈 센서를 복구시킨 건 네 부하들이 지랄을 해서야. 그 부하들 손가락이 잘리는 꼴을 보고 싶진 않을 거 아니야.


부하들 손가락이었어? 욘두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지구인은 상도덕도 없는게 분명했다.


"피터 퀼, 이 애를 왜 납치했지?"


지구인이 물었다. 그 물음에 욘두는 얼마 전 의뢰를 받고 납치했던 한 소년을 떠올린다. 피터 퀼, 그 작은 어린애를 의뢰인에게 데려갈 수 없어 좀도둑으로 쓰겠다며 우주선에 묶어두었다. 욘두가 대답은 안하고 물었다.


"그 애랑 아는 사이인가?"


지구인 중에 이곳까지 올 기술력을 가진 나라가 있나? 하지만 지구인은 만만치 않았다.


"대답을 안 하네."


미간을 찡그린 지구인이 제 옆에서 덜덜 떨고 있는 부하 한놈의 목덜미를 잡아다가 그의 손을 잡아챘다.


"자, 손가락 커팅 시간이다."


작은 지구인이 잭 나이프의 날을 부하의 손가락에 살짝 그었다. 어두운 녹색의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에 부하가 발광을 했다.


"흐어어어! 살려주세요! 대장!"


아니 진짜 해? 당황한 욘두가 소리쳤다.


"잠깐! 대답할게! 그 꼬맹이 애비가 우리한테 의뢰를 했어!"

"뭐야?!!"


그리고 갑작스럽게 지구인이 분노했다.


"그 시발새끼가 지 자식새끼 납치하라고 의뢰를 했다고!!"

"???"

"염병할! 피터 퀼! 당장 이리와, 너도 들어야 할 얘기야!"

"???, 아는 사이냐?"

"이런 썅! 베라먹을 새끼라고, 그 새끼!!"


피터가 어리둥절하게 다가왔다. 손에 제 워크맨과 공룡을 꼭 쥐고 있는 어린애가 입에 초콜릿 바를 하나 물고 있다. 다른 부하가 중얼거렸다. 내껀데..


"아이든, 무슨 일이야?"

"들어보렴, 피터. 너네 아빠 이야기를 메레디스랑 퀼씨가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난 네가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거든."

"우리 아빠?"

"그래, 염- 젠장."


피터가 초콜릿 바를 삼키고 욘두를 바라보았다.


"이 애송이! 배신이냐!"

"날 납치했잖아!"

"그건!"


그리고 욘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든, 이라고 불린 지구인이 욘두를 개쓰레기처럼 바라보았다.


"개쓰레기 새끼."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욘두는 이 모든 상황이 어떠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졌다.


"좋아, 아이든-이랬나? 네가 우리한테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대충 알겠는데. 오해가 좀 있거든. 내가 설명할 수 있어."


욘두가 진정하고 아이든을 달랬다. 저 작은 지구인을 이기기엔 역부족(자존심 상하지만!)인 데다가 자신의 화살마저 빼앗긴 상태였다. 그렇다면 일단 회유나 협상을 하는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이거 좀 풀어줄래?"

"그러지 마!!"


피터가 꽥 소리를 질렀다.


"날 잡아먹을 거라고!!"

"뭐야?!!"


피터 퀼의 고자질에 아이든의 눈에 불이 튀었다. 욘두는 저와 제 부하들의 업보를 상기하며 턱에 호두를 만들었다. 그런 농담을 하는게 아니었는데.







그건 농담이었어! 농담이었다고! 욘두가 필사적으로 소리친 덕에, 욘두 우돈타는 침대에서 풀려나 똑바로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든이 제 머리통을 두드리며 말했다.


"허튼 수작하는 순간 바로 뚫어버릴 거야."


내가 널 풀어준 건 제압할 자신이 있어서다. 아이든의 눈빛이 흉흉했다. 그 뒤에서 피터가 혀를 내미는 모습을 보며 욘두는 눈을 흘겼다. 일단 저 지구인이 자신의 의뢰인-개자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만은 알겠다. 그걸로 오해를 풀어봐야지.


"좋아, 그럼, 아이든?"

"아이든 헌터."


지구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 좋다고. 욘두는 양 손바닥을 들어 자신이 무해함을 증명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에고 더 리빙 플래닛(Ego The living planet)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헌터?"

"...그게 그 자식 본명인가?"


욘두의 물음에, 아이든 헌터가 싸늘하게 말하며 피터의 어깨를 감싸쥐였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헌터가 먼저 밝혔다.


"내가 아는 정보는, 그 놈이 외계인이고 지구에서 '제이슨' 이라는 가명을 써서 메레디스, 그러니까 얘 엄마한테 접근해서 임신시키고.. 튀었다는거."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피터가 눈을 땡그랗게 떴다. 엄마는 언제나 아빠에 대한 좋은 소리만 했으니까, 그런 과거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것보다 아빠가 외계인이야?


"우리 아빠가 외계인이야?"

"..쟤네가 말 안 해줬어? 메레디스도?"


아이든이 욘두를 가르키며 물었다. 피터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욘두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이거 애들 정서에 안좋은 것 같은데."

"납치범이 말이 많네."


아이든이 날카롭게 일갈했다. 그 말에 다른 라바저스 멤버들도 시무룩해졌다. 아까 아이든에게 눈알로 협박당하며 목이 졸렸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우리 라바저스는 애들 안 건들이거든?"

"지랄하네."


아이든이 받아쳤다. 피터를 쳐다보는 아이든은 잠깐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이걸 피터에게 말 해야 하는지, 아니면 숨겨야 하는지. 아이든의 미간이 좁아졌다.


"메레디스 퀼, 그러니까 이 애 어머니의 죽음에 아는 게 있나?"

"...."


욘두가 침묵하다 말했다.


"어느정도, 아는 건 있지."


피터가 놀라 욘두를 바라보았다. 엄마를 죽인 건 어떤 외계인 집단이었다. 그들은 피터만 쏙 빼놓고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고 사라졌다.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라바저스와 다른 집단인 것만은 똑똑히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었다고?


"안다고? 나한텐, 나한텐 모른다고 했잖아! 그냥 의뢰를 받아서 날 납치했고, 쓸만해 보이니 도둑으로 쓴다고만 했으면서!!"


피터가 눈시울이 붉어져 소리쳤다. 아이든의 인상이 다시 험악해졌다.


"이 개새끼들이 애한테 자기 엄마 죽음에 대해서도 구라를 깠어..?"


헌터의 인상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헌터의 주변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욘두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예상가는게 있다는 뜻이지, 관련이 있다는 뜻은 아니야. 맹세컨데, 저 애송이 엄마의 죽음에 우리는 관련이 없어."

"어쩌라고, 미친놈아. 애한테 얘기는 해줘야 할거 아니야, 얘가 당사잔데."


아이든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눈썹끝이 위로 치솟았다. 휙, 아이든이 제 손에 들린 잭 나이프를 역수로 잡았다. 화살만 있었으면.. 욘두가 재차 양손을 들었다.


"우리 좀 진정하고, 앉아서 뭐 마시면서 대화하지?"

"...."


아이든은 아무 말 않고 고개만 기울였다. 손가락이 잭 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글쎄."

"...."


아까 한번씩 쳐맞고 뻗은 라바저스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쩔까."


그제야 욘두는 제 부하들이 무기를 하나도 들고 있지 않은것을 깨닫고 소곤거렸다.


'야, 무기 어딨어.'


크래글린이 침통한 얼굴로 창문을 가르켰다.


"..."


욘두는 입을 벌렸다. 우주선에 달린 쇠사슬에 묶인 무기들이 우주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못 나가요. 저 지구인은 안보이는 곳도 보는 능력이 있다고요.'

'오, 세상에.'


욘두가 중얼거렸다. 크래글린이 침통하게 덧붙였다.


'저도 나가려다가 맞았어요..'







아이든 헌터의 자비 하에, 그들은 결국 한 테이블에 앉았다. 욘두와 크래글린, 아이든과 피터. 나머지 라바저스들은 밖으로 무기를 회수하러 같다. 즉슨 크래글린과 욘두는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든 헌터가 피터 퀼에게 물었다.


"난 네 애비랑, 메레디스의 죽음이나 그런 것에 대해 낱낱히 물을 거다. 꼬맹이."

"응."

"듣고 마구 화내거나 슬퍼하거나 너 자신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지?"

"응!"


피터가 손에 워크맨을 꼭 쥔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착하다 작은 스타로드. 아이든이 피터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욘두 우돈타. 아는 거 다 불어."

"....그래."


욘두 우돈타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제 파란 피부를 긁었다. 크래글린이 긴장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주기적으로, 에고 더 리빙 플래닛에게 의뢰를 받아서 그의 사생아를 그에게 데려오는 일을 해왔어."

"..아이는 안 건드린다며?"

..애 아빠한테 데려가는 거니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무엇보다 아이들을 해치지(hurt/해치다, 상처 입히다, 아프게 하다) 않겠다고 약속까지 받았었고.. 욘두가 말을 흐렸다. 

크래글린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든은 그가 참 지구인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피터가 옆에서 아이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왜, 꼬맹이."

"...사생아가 무슨 뜻이야..?"


크래글린이 말했다. 쟤 그냥 내보내죠? 아이든이 말했다. 그럴까? 너도 우주선에서 내보내고, 응? 크래글린이 닥쳤다.


"사생아는, 결혼하지 않고 낳은 아이를 뜻해."

"..나도 그래?"

"넌 사생아가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넌 메레디스의 아들이야. 법적으로 신고까지 다 되어있으니까."


아이든이 정리해주었다.


"그치만, 방금 내가 사생아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에고 더 리빙 플래닛의."

"그건 그 샊-똥같은 놈이 나쁜거니까 네가 고민할 필요 없어."


시무룩한 피터에게 아이든이 쉽고 간단하게 말했다.


"자, 들어보렴. 메레디스는 널 사랑하고, 너는 메레디스를 사랑해. 그럼 된 거야. 어차피 너네 애비란 작자는 너랑 메레디스를 도와준 적이 한번도 없고 너랑 만난 적도 없잖아. 그러니까 인생에서 꺼져버리라고 해."

"..그래?"

"그래, 그런 놈 신경쓰지 마. 괜히 인생 귀찮아져."


아이든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혹시 만나면 다리 사이를 차주고."

"..알았어."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할게."

"그래, 꼭 그렇게 해. 그게 바로 위-대한 스타로드가 되는 지름길 중 하나니까."


피터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욘두와 크래글린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계속 해 봐."


아이든이 말했다. 욘두는 떨더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일을 몇 번 해왔는데 내가 데려다 준 아이들을 단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지. 그가 사는 행성에 갈 때마다 내가 본 건 에고 뿐이었어."

"그래서?"

"그래서, 생각을 틀었지. 혹시 그 개자식이 지 자식들을.. 비윤리적으로 대하는 게 아닌가."


도적치고는 점잖은 말투를 사용하는 그를 보며 아이든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 애들을 구할 생각은 안 해봤어?"

"-그건 힘들어. 에고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행성이나 다름없다고. 그의 행성에 들어가는 순간 우린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크래글린이 말을 얹었다.


"그래? 아주 그냥 좆같은 새끼네."


아이든이 중얼거렸다. 욘두는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래서, 슬슬 의심이 드는 와중에 이 꼬맹이를 납치해 데려오라는 의뢰를 받았지."


척, 욘두의 손가락이 피터를 가르킨다. 피터는 욘두를 째려보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공룡을 품에 안았다.


"그래서 얘를 잡아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 근래에- 자기 엄마가 외계인들한테 죽었대는 거야."

"..그런데?"

"그런데, 그 외계인 집단이 그 치타우리라는 종족의 추방자들인데.. 그 놈들이 최근에 에고에 만난 적이 있어. 우리 쪽에서도 정보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 놈들은, 돈 되는 거라면 뭐든 하는 집단이야. 미친 놈들이지. 우리처럼 나름의 룰도 없고. 그래서- 생각했지."


욘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피터는 아이든에게 좀 더 붙었다. 본능적으로 기댈 수 있는 상대에게 붙은 것이다.


"에고 그 개자식(Jackass)이 치타우리 루저놈들에게 의뢰해서 이 애송이, 피터의 가족을 죽이게 시키고 나한테 납치를 의뢰했다고."

"!!!"


피터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우리 아빠가, 우리 엄마를 죽이라고 강도들한테 시켰다고? 피터가 아이든의 팔을 꼭 붙잡았다. 반면 아이든은 의구심이 든 표정으로 물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럼 왜 메레디스의 죽음을 너희한테 의뢰하지 않았지? 꾸준히 거래를 해왔다면서?"

"..우린 애랑 애 있는 가족은 안건드려. 나름대로 선이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한테 의뢰를 안한거지."

"..."


아이든은 피터를 안고 쓰다듬어주며 머리를 굴렸다. 믿어, 말아? 하지만 보통 이런 놈들은 자기 집단에 대해 자부심이 있고 거짓말도 안한다. 의심을 한 구석에 남겨두기로 하며 아이든이 말했다.


"일단은 믿겠어. 그럼 왜 피터를 그 새끼, 하아. 에고한테 데려가지 않은 건데? 데려가는 중이었나?"

"..."


욘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가 눈알을 굴리는 모양새가 아무리 봐도 크래글린의 눈치를 보는 표정이었다. 아이든은 그가 고민하게 놔두고 피터를 한 손으로 안고 일어섰다. 그리고 척척척 걸어가 문을 열었다.


""으아아악-!""

"어엌!"


엿듣고 있던 라바저스 멤버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욘두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든 헌터가 잭 나이프를 집어들고 소리쳤다.


"안 꺼져?!"

""으아아악!!"


다시 튀어버린 라바저스들의 뒷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본 아이든은 다시 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그래, 고민 끝났어?"

"...."

"아씨, 저 놈들 쫓아내줬음 좀 말해. 한 명쯤 속마음 들켜도 상관없잖아."


아이든이 짜증을 냈다. 욘두는 한숨을 쉬고 피터를 보며 말했다.


"저 어린 애를 그런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보낼 순 없었으니까."

"..."


피터는 아이든을 꼭 안고만 있었다.


"이전에 보냈던 아이들을 두번 다시 볼 수 없었어. 에고가 무슨 짓을 했는 지는 몰라. 하지만, 하지만 얘를 보낼 순 없었어."


욘두가 피터 퀼을 바라보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쟨 너무 어렸다고.."

"..욘두..."


크래글린이 옆에서 감동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이든은 여전히 침묵한채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피터의 등을 도닥여 주며 말했다.


"그래서? 보호하기 위해서 얠 빼돌린 거야?"

"..그래."


아이든 헌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구에 보내면, 그 에고란 놈이 다른 도적단을 보낼 테니까?"

"..그래. 지구에 보내면 다른 놈들에 의해 납치될 테니까, 차라리 내가 데리고 있는게 낫다고 판단했어."


아이든은 하고 싶은 말들을 전부 삼켜버리고 피터에게 물었다.


"무슨 기분이야?"

"..."


피터는 아이든을 꼭 안고 말했다.


"잘 모르겠어."

"..."


아이든이 조용히 피터를 도닥였다. 그러다 한 가지를 고백했다.


"너한테 하지 않은 말이 있어. 메레디스랑 퀼이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고, 그들은 네 보호자였으니까.. 꼬맹이."


아이든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알려줘야지.


"피터, 작은 스타로드. 네 엄마 뇌에 종양을 심었던 건 네 아버지였어."

"...."


피터가 눈을 크게 떴다. 욘두와 크래글린 역시 경악했다. 아이든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에고는 이미 네 엄마를 한 번 죽이려고 했어. 메레디스가 말 하지 말라고 해서 너에게 진실을 알 기회를 뺏은 거나 다름 없지. 미안해."


아이든이 피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에고 더 리빙 플래닛이, 메레디스의 생사를 우주에서도 알 수 있는지는 몰랐어. 그러니까 외계인을 보내 살인을 청부한거겠지."


아이든 헌터는 덤덤하게 모든 진실들을 쏟아냈다. 피터는 아이든의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헌터는 어린 아이가 제 품에서 떨고 있는 것을 알고 소년의 등을 깍지 껴 안아주었다.


"이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진실이야. 내가 알고 있던, 네 아빠에 대한 이야기. 피터 퀼, 이제 모든 걸 알았는데 어떻게 하고 싶어?"


아이든 헌터가 드물게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이대로 지구에 돌아간다면, 넌 정말 죽을지도 몰라."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수 없고, 에고는 다시 널 납치하려고 도적단을 보낼테니까.


아이든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피터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기분이 안좋아? 좀 쉴까? 나중에 말할 수도 있는데."


피터 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마가 그래서 죽은 거란다. 엄마가 처음 병원을 가고, 입원하고, 그래서 엄마가 많이 울었던 것을 떠올린 피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뒤늦게 서러움이 밀려왔다.


"..엄마 보고싶어."


피터가 중얼거렸다. 아이든 헌터는 말 없이 피터 퀼을 안아주었다.


"아이든, 난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해? 나 이대로, 이대로 집에 가면 나도 죽어? 아빠가 날 죽이려고 하는 거야?"

"..아마 그렇겠지."


아이든 헌터가 중얼거렸다. 소년을 품에 안은 헌터가 욘두와 크래글린에게 말했다.


"잠깐 쉬자. 얘가 진정도 좀 해야하고 하니까."

"...그래."


둘의 대화를 그대로 듣고 있던 욘두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래글린은 피터를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피터 퀼의 뺨에 굵직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흐윽.."

"피터, 우리 방에 가서 좀 쉴까? 내가 지내던 곳이 어디었지?"


헌터가 물었다. 피터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년이 서럽게 소리쳤다.


"거기 내 방 아냐..! 내 방은 우리 집에, 미주리에 있단 말이야.."

"..."

"내 방 우리 집에 있는데. 엄마 옆 방인데.."

"..."


아이든 헌터는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피터를 꽈악 안아주었다. 마음껏 울어, 언젠가 울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테니. 헌터는 두 라바저스에게 눈짓을 하고 문을 열었다.


"일단은 쉬자, 피터. 물도 좀 마시고.."


그리 말하며, 아이든 헌터가 경고했다.


"라바저스, 얘랑 나한테 허튼 짓 했다간 죽여버릴 줄 알아."

"..어어.. 그래.."


그 말을 끝으로 헌터는 피터의 짐을 챙겨 방으로 가버렸다. 뒤늦게 욘두가 물었다.


"잠깐! 우리 무기는!!"

"맘대로 해!!"


저 멀리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협상인지 회유인지 오해를 푸는 것에 성공한 욘두가 나지막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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