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오의 눈 너머에는 다른 세계가 있는 것 같다. 그건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도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공허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지금 둘 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건가?

신의 사자는 여느 동화나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신실하지도 강건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아서 리오그난이 아는 대리인은 그랬다. 신이 직접 빚은 듯한 하얗고 섬세한 외모와 다르게 게으르고, 연약하고 돈과 술을 좋아했다. 그가 아는 단어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문장을 만들어내고, 신의 형벌과 같은 창을 허공에서 만들어내고, 단죄자처럼 불덩어리를 비처럼 내리게 한다. 술을 마시고 흐릿한 눈을 내리깔고 대충 끄적끄적 고전 작문 과제를 작성하는 모습조차 신의 뜻을 옮기고 인세를 기록하는 관조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레이, 레이. 하고 부르면 이쪽을 돌아보고 눈이 마주친다. 클레이오는 때때로 사람의 눈을 비켜 나간 허공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습관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이 혀 끝까지 나온다. 혹시 신의 말씀이 내려온 거야? 그 존재가 너로 하여금 내 곁에 있는 걸 원하고 있는 것처럼. 신이 나를 버린다면 너도 나를 떠날거야? 그 묻고픈 욕구를 꾹 참고 그의 눈을 바라볼 때면 오직 클레이오 아세르의 눈만이 보인다. 다갈색에 올리브 빛이 섞인 홍채. 놀랍게도 그 눈엔 아서 리오그난이 없다. 이 세상 어느 것도 그 눈에 비치지 않는다. 얼마나 대단한 예언이고 말씀이라 한낱 되비침조차 엿볼 수 없고, 얼마나 거룩한 순간이라 현세조차 비치지 않는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레이의 눈동자에는 외척도 왕위계승권도 없는 왕자가, 신이 선택한 왕자가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실없는 말밖에 내뱉을 수 없는 것이다. "너 지금 엄청 피곤해 보여." 마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알면 나 대신 과제 좀 해줘." "그럴까?" 아서는 소리 내서 웃는다. 클레이오는 비웃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투덜거리며 고개를 다시 종이로 옮긴다. 아서는 그 모습을 대수롭지도 않게 바라보았다. 일인용 소파에 앉아서 계속 눈에 담았다. 노란 책상등 빛이 에테르처럼 클레이오에게 비쳤다. 그렇게 아서는 어둠 속에 앉아 노란 빛을 의지해 글을 짓는 클레이오 옆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날이 밝아도 신의 뜻이 변치 않기를 빌며. 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당신의 사자이자 도구인 제 친구가 제 곁에 있게 해 달라고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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