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극복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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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요쿠르트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만으로 31살 된 양요섭이라고 합니다.



Q. 무슨 일로 여기를 찾아오셨나요?

A. 아, 저는 제 애인...이 한 번 가보자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사실 그렇게 내키지는 않았는데...



Q. 왜 내키지 않으셨어요?

A. ...그렇잖아요. 권태기는 연인끼리의 문제인데, 제삼자를 통해서 극복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심하지도 않았고, 그냥 평소보다 좀 자주 싸울 뿐인데... 아, 여기 오는 걸로도 싸우긴 했네요.



Q. 원래 자주 싸우는 편이었나요?

A. 뭐... 그냥 남들 싸우는 만큼 싸웠죠. 아닌가? 제가 한 사람이랑만 너무 오래 만나서 잘 모르겠네요. 근데 다른 커플보다 격하게 싸우긴 하겠죠? 아무래도 둘 다 남자니까.



Q. 최근엔 어떤 이유로 싸우셨나요?

A. 최근에... 아, 사소하긴 한데... 실은 여기 오기 직전에도 싸웠어요.



"조용히 좀 가면 안 돼? 노래 좀 꺼."

"이 노래 네가 좋아하는 노래잖아. 듣기 싫어?"

"어. 듣기 싫어. 머리 아프니까 조용히 좀 가자고."

"...거기 가는 게 그렇게 싫어?"

"너 같으면 좋겠어?"



사실 제가 여기 오는 거 때문에 계속 화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짜증 내고... 싸우게 된 거기도 하고.

제가 먼저 짜증 내긴 했는데... 그냥 바로 노래 껐으면 더 실랑이 안 했어도 됐잖아요. 아니, 애초에 여기를 안 왔으면... 이렇게 말하면 정말 끝도 없겠죠?

아무튼 제가 먼저 짜증 내고 예민하게 굴어서 싸운 건 맞아요.



"그래도 이왕 가는 거 좀 말은 좋게 해주라, 섭아."

"..."



그거 아세요? 분명 나만 잘못한 건 아닌데 내가 더 나쁜 놈이 되는 거 같은 기분. 그거, 진짜 짜증 나잖아요. 요즈음 두준이랑 싸우면 꼭 그래요. 나만 나쁜 놈이야.



Q. 애인 분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A. ...첫인상이요? 어... 엄청 좋진 않았던 거 같아요. 딱히 아주 나쁘지도 않았고. 처음 딱 보면 좀 사납게 생겼잖아요. 지금도 눈 부리부리해서 좀 사나운데, 지금 나이도 먹고 그래서 엄청 순해진 거거든요.

근데 그런 얼굴이 또 인기 많은 거 알죠. 성격도 좋긴 했어요. 약간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 자체는 내성적인데 주변 사람들 때문에 외향적인 것처럼 보이고. 좀 또라이 같긴 했는데, 뭐. 그게 인기가 많은 포인트이긴 했죠.


아, 그리고 아마 두준이랑 저랑 처음 본 순간이 다를 걸요? 장담하는데, 제가 윤두준 먼저 봤어요.



"ㅇㅇ대 경영학과 08학번 윤두준입니다! 노는 거 좋아하고 술 마시는 거 좋아하고, 아! 귀여운 것도 좋아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그런 거 하나?

저희 때... 아,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지만 저 꼰대는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 때는 신입생들이랑 선배들이랑 다 모여서 자기소개를 했었어요. 제가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막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그러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고, 두준이는 자기 의지랑 상관 없이 사람들이 알아서 붙는 스타일이었어요.


딱 개강한 첫날부터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우르르 몰고 다니고... 윤두준 부근만 왁자지껄 하면서 엄청 시끄럽고. 저는 그냥 맨 뒤에 앉아서 지켜봤거든요. 선배들도 딱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고... 처음엔 시끄러워서 쳐다보다가 나중엔 좀 부러웠던 거 같기도 해요.



"08학번 양요섭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자기소개 할 때 윤두준은 다른 놈들이랑 노느라 절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괜히 자기소개 하고 눈길이 가더라고요. 제가 약간 부러워하던 얼굴 스타일이라서 그런가... 솔직히 전 좀 만만하게 생겼거든요. 키도 작고 동글동글 해서... 좀 귀염상이라고 하죠.

예? 아니, 제 자랑은 아니고요.


그러다가 윤두준은 절 처음 본 게... 뒤풀이 때 보긴 봤는데 그땐 애가 취해서 절 기억을 못했고, 2번째로 들어간 전공 수업 때 처음 봤을 거예요. 수업 듣다가 친해진 놈이 한 명 있었는데, 알고 보니 걔가 첫날부터 윤두준이랑 붙어 다녔던 놈이었더라고요. 사실 첫날 이후로 윤두준한테 관심도 끊고 살았는데...

그리고 윤두준이 절 보자마자 제일 듣기 싫은 말을 한 거죠. 저한테.



"야, 요섭아. 인사해. 얘는 윤두준. 알지? 1학년 과대."

"아... 결국 과대 얘가 됐냐? 존나 안 됐,"

"...헐."

"왜."

"야, 너 존나 귀엽다..."

"나한테 하는 소리냐?"



그땐 귀엽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었어요. 옛날엔 만만하게 보이는 게 싫어서 일부러 더 사납게 군 것도 있거든요. 

아... 첫인상 말한 거 다시 정정해도 돼요? 첫인상 되게 안 좋았던 거 같아요. 다시 생각하니까 화나네.



Q. 이제 본인이 귀엽다는 걸 인정하시는 건가요?

A. 아니, 뭐... 인정을 한다기 보단... 윤두준이 하도 귀엽다, 귀엽다, 난리를 치니까... 적응을 한 거죠. 저 진짜로 귀엽다는 말 싫어해요.



Q. ...

A. ...진짜라니까요? 사람 말을 못 믿으시네.



Q. 첫인상이 안 좋았는데,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건가요?

A. 윤두준이 귀여운 거 진짜 좋아하거든요. ...아, 자꾸 제가 인정하는 거 같은데 전 제가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튼 저 날 이후로 윤두준이 일방적으로 쫓아다녔어요. 뭐, 걔가 처음부터 절 연애 감정으로 좋아해서 쫓아다녔겠어요? 그냥 제 화 돋구고, 그런 제 반응이 재밌어서 쫓아다닌 거겠죠.



"...수업 없냐?"

"있는데?"

"그럼 좀 꺼져, 미친놈아!!"

"요섭아, 나랑 둘이 술 마시러 갈래?"

"싫으니까 제-발 꺼져."



과에 어떤 소문까지 돌았냐면, 윤두준의 양요섭 짝사랑설까지 돌았어요. 뭐, 결국은 맞는 소문이긴 했는데...

윤두준 좋아하던 여자 동기들이 몇 번이나 절 찾아와서 윤두준이랑 진짜 사귀냐고 물어봤다니까요. 오죽하면 제가 학교 와서 사람들 안 마주치려고 피해 다녔어요.



Q. 애인 분이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럼 애인 분이 좋아지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나요?

A. 어쩌다가 좋아하게 됐더라... 아, 제가 성격이 막... 살갑진 않았어요. 지금이야 뭐 사회생활 하다 보니까 참기도 하고 그러는데...


저희 때는... 아, 왜 자꾸 꼰대 같이 말하지. 저 진짜 꼰대 아닙니다.

아무튼 저희 때는 대학교 과마다 똥군기가 엄청 심했어요. 근데 그게... 참 웃기잖아요. 고작 대학교에서 몇 살 더 많은 거고 사회 나가면 다 똑같을 사람들이... 똥군기 잡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인사를 안 하고... 뭐 그러진 않았어요. 딱 최소한의 예의만 지켰거든요.


근데 어느 날은 저 때문에 저희 학번이 집합을 했어요. 이유가... 뭐였더라. 제가 누구랑 전화 중이었는데... 선배가 지나가는데 고개만 숙여서 인사하고 전화 계속했다고? 그래서 집합했었어요.



"존나 싸가지 없네, 씨발. 야, 양요섭. 너 때문에 이게 뭐냐? 어? 얘네 다- 너 때문에 집도 못 가고 불려온 거야."

"...왜 그랬는데요? 저만 불렀으면 됐잖아요."

"야, 뭐? 다시 말해봐."

"아니, 저만 불렀어도 솔직히 이해 안 가는데요. 전화하고 있는데 전화까지 끊고 선배한테 인사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요?"



그때도 지금도 솔직히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에요. 지금은 좀 참을 때도 있긴 하지만... 어이없잖아요. 저 때문에 저희 학번은 왜 다 집합 시키고 고작 그 인사 한번 안 했다고 지ㄹ, 아니... 난리 치는 게.


그래서 존나 개겼어요. 그냥 꾹 참고 죄송하다, 한 마디만 했으면 빨리 끝날 수도 있었는데... 아마 동기들이 그때 제 원망 엄청 했을 거예요. 거기에 두준이는 과대여서 당연히 있었거든요.

근데 그땐 저도 너무 빡쳐서 윤두준이고 뭐고, 생각 안 하고 있었어요.



"좆만 한 게 말 개좆같이 하네. 야, 씨발. 너 엎드려."

"싫은데요."

"이런, 씹..."



결국 주먹을 올리더라고요.

맞고 나도 때리던지, 고소를 하던지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윤두준이 튀어나와서 저를 막다가 살짝 빗겨 맞은 거예요.


와, 그때 제가 뭘 보고 있는 건가 했어요. 심장이 철렁 하더라고요.


빗겨 맞았는데 뭐에 긁혔는지 볼 살짝 긁히고 빨갛게 붓고... 그 새끼도 당황했을 걸요? 그 새끼가 윤두준 존나 예뻐했거든요.



"야, 뭐... 윤두준, 너 뭐냐?"

"...형, 말로 하세요."

"너 지금 저 새끼 편드냐? 씨발, 이게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그냥 요섭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괜히 트집 잡는 거잖아요. 적당히 좀 하세요. 요섭이랑 친한 거 뻔히 알면서 저한테 요섭이 욕 좀 그만하고요."



아, 솔직히 지금 말하니까 오글거리긴 하네요.


근데 매일 제 앞에선 병신 같이 웃기만 하던 애가 정색하고 말하는데 좀... 다른 사람 같았어요. 워낙 부리부리하게 생겨서 표정 없으면 원래 무섭긴 하지만...

이때 반하진 않았어요. 제가 뭐 소녀도 아니고... 저땐 저도 빡쳐서 '얘 왜 이래?' 정도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 놈은 윤두준한테 뭐 쫀 건지, 빡쳐서 간 건진 몰라도 아무튼 그 자리를 벗어났어요. 그제야 두준이도 모여있던 동기들 다 보내고...


무슨 일로 다른 놈들이 술 먹자는 것도 마다하더라고요. 동기들 다 보내고 나서 저랑 둘이 남았는데, 그제야 윤두준 볼 부어오르고 살짝 피 맺힌 게 제대로 보이는 거예요.

근데 바보 멍청이 같은 게 전 다치지도 않았는데 제 안부를 묻는 거 있죠.



"요섭아, 괜찮아?"

"...맞은 건 넌데 내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냐. 그러게 끼어들길 왜 끼어들어."

"아, 이거. 괜찮아. 별로 안 아파. 빗겨 맞아서... 저 새끼가 또 너한테 해코지하면 어떡하냐..."

"..."



등신이 따로 없어요, 진짜.

얼굴은 점점 붓는데... 그래서 그냥 윤두준 팔 잡고 제 자취방으로 끌고 갔어요. 어쨌든 저 안 맞게 해주려고 그런 거잖아요. 너무 신경 쓰이더라고요.

침대에 앉혀놓고 피 난 곳 소독 해주고, 얼음 대충 수건으로 싸서 찜질해주고... 걔 옆에 앉아서 얼음팩 대주는데 또 뭐가 좋다고 실실 웃는 거예요.



"뭘 쪼개, 등신아."

"그냥. 대신 맞길 잘한 거 같아서."

"좋냐?"

"너한테 치료 받으니까 기분 좋다. 이참에 의대로 전과해."

"다시 태어나도 그 짓은 못해."



금방 다시 윤두준으로 돌아왔어요.

얼음찜질 해주고 약까지 발라주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어요.



"얼굴에 네 숨 닿는다, 아가."

"변태 새끼."

"흐흐."



전 누가 제 집에 들어오는 거 싫어하거든요. 차라리 내가 남의 집을 가지... 약간 저의 공간에 누가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데...

친구 중에서도 두준이가 제일 처음 들어왔을 거예요. 근데 별로 싫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묘하고 이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괜히 얼른 밴드 붙여주고 손에 얼음팩 쥐여주고 내쫓았어요. 아마 그때부터 아닐까요. 바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한 거 같긴 해요.



Q. 표정이 엄청 슬퍼 보여요.

A. 그런가요? 그냥 옛날 얘기하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그런가 봐요.



Q. 옛날이 그리우세요?

A. 옛날... 그립긴 하죠. 좋았으니까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그리운 건지, 뭔지. 복잡미묘해요.

다시 돌아가면... 전 똑같이 윤두준을 좋아하겠죠? 사귀기도 할 거예요. 다시 돌아가도 좋아하고, 불 같이 연애하고... 또 똑같은 걱정을 하겠죠, 저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제 모든 감정을 쏟아부은 사람이니까요. 아마 돌아가도 다시 반복될 거예요. 그럼 이 복잡미묘한 감정도 여전하겠죠.

아, 그거 하나는 확실히 그립네요. 걱정 없이 살면서 걱정 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거?



Q. 지금은 두 분 사이에 걱정이 많으신 건가요?

A. 걱정... 예전엔 걱정이었는데, 요즘은... 모르겠어요. 허튼 걱정을 하는 거 같아요. 걱정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스무살엔 이렇게 오래 사귈 줄 몰라서 걱정을 안 했던 건가... 사실 참 웃겨요. 서로 사랑하지만 그냥, 성별이 같은 것 뿐인데. 그 이유 때문에 걱정하는 제가 멍청한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한테 짜증이 나요. 그 짜증의 화살이 두준이한테 가면 안 되는 건데, 모르겠어요. 자꾸 짜증 내게 되네요. 더 예민하게 굴고.

이건 제 잘못이죠.



Q. 아직 애인 분을 좋아하세요?

A. 좋아하기만 하겠어요. 저 사실 권태기 아니에요.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권태기 온 적도 없어요.

사실 그냥 두준이가 먼저 저한테 정을 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거 같기도 해요. 나쁜 놈은 윤두준이 아니라 저였어요.

저나 걔나... 참, 서로에 대한 마음 안 식은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해요.



"야, 윤두준."

"응."

"너 원래 남자 좋아해?"

"나는 널 좋아하는데?"

"그럼 여자 좋아해?"

"나는 널 좋아한다니까?"

"왜 자꾸 동문서답이야?!"

"질문 자체가 이상하거든요."



그냥 지 좋다는 여자 많았으니까... 괜찮은 애 만나서 결혼까지 하면... 음, 그건 싫긴 한데 그래도... 남자랑 사귀어서 생기는 미래 걱정은 없을 거 아니에요. 지가 뭐가 모자라서 저 같은 남자를 만날까요.

사실 걔도 저 같은 걱정을 하지 않을까요? 저를 본인 앞길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죠? 이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Q. 요섭 씨는 어떻게 생각했나요? 오랜 연애 동안 애인 분을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나요?

A. 아니요... 아니요. 두준이 없는 저를, 저는 아직 상상을 못하겠어요. 저도 참 대책 없네요. 윤두준 없는 삶을 상상하지도 못하면서, 걔가 먼저 정 떼고 떠나길 바라는 게.


아, 저희 떨어져서 지낸 적 있긴 있어요.

저랑 두준이가 의경을 같이 지원했거든요. 근데 윤두준은 떨어지고 저만 붙었어요. 그게 그때...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튼 저보다 먼저 군대를 가게 됐어요.

사실 군대 가기 전엔 맨날 붙어있었으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 어차피 당연히 가야 하는 군대고, 나도 가야 하는 곳이고. 같이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못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휴가나 맞춰서 만나면 되지, 뭐 떨어져 있는 걸 걱정해? 라고 생각했거든요.

윤두준이 군대를 가도 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요섭아."

"...어."

"나 갈게. 형아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응?"

"뭘 울어, 내가. 얼른 가."

"편지 할게. 휴가 받자마자 너한테 올게."

"알겠어. 어머님 기다리시겠다."



아, 근데 좀 힘들더라고요.

하루는 괜찮았어요.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근데 점점 힘든 거예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는데 아무것도 없고. 우리가 헤어진 것도 아닌데... 그 애의 공백을 느끼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습관적으로 두준이 자취방을 갔어요. 주인 없는 방에 가서  걔가 좋아하던 축구 경기 찾아보고. 못하는 게임도 한 번 켜보고. 그러다 그 애 냄새가 한가득 배어 있는 침대에 누우면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눈물이 왜 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어, 그냥. 너무 힘들었어요. 허하고... 아, 그때 생각하니까 또 눈물 날 거 같아서 그만 말할래요.



Q. 연애한 걸 후회하시나요?

A. 아뇨.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에요.

두준이 만나기 전에 연애를 안 해본 건 아니었는데... 그래봤자 고등학생 때 남들 다 하는 일반적인 연애를 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감정을 느끼지 못했어요.

물론 걔네도 좋아서 사귀긴 했죠. 근데 딱 그 뿐이었어요.


두준이는... 사귀기 전에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그 후로는 애정의 대상이었어요.



"섭아. 우리 이민 갈까?"

"갑자기 무슨 또 이민이야."

"대만이나... 저 어디냐. 노르웨이, 캐나다... 이런 곳으로."

"대만은 좀 별론데? 캐나다 좋다. 나 가보고 싶었어."

"그렇단 말이지..."

"...또 무슨 개수작이야, 너."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paradise?"

"파라다이스 같은 소리 하네."

"캐나다의 중심에서 결혼해달라고 소리 쳐야지."

"..."

"섭아! 나랑 결혼해ㅈ, 악!! 아파!!"



두준이도 같았겠죠?

매번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서 면박을 주긴 했지만... 말만으로도 참 좋았어요.

왜 하필 둘 다 남자여서... 라는 걱정을 할 때마다 어떻게 저런 말을 잘도 해주는지. 말만으로도 너여서 좋다고 해주는 거 같아서 참, 좋았어요.


말하고 보니까 저 진짜 나쁜 놈이네요.



Q. 지금 기분은 어떠세요?

A. 후회... 되는 거 같아요. 윤두준을 만난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제가 상처 줬던 거 생각하니까... 슬프네요.

제가 권태기라고 생각해서... 어디 말할 곳도 없고,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찾아온 게.


두준이가 좀 그런 면이 있어요. 보이는 거랑 달리 좀 여리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는 엄청 세 보이고 우직할 거 같고 든든할 거 같고... 물론 든든하긴 해요. 잘 챙겨주고, 엄청 다정하고.

근데 애 자체가 엄청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고, 깊고. 은근 어른스러운 면도 많아요. 어쩌면 저보다 더 어른스러울 수도 있죠. 여기에 절 데리고 오자고 결심하고, 저한테 말하기 까지 얼마나 고민 했을까요. 입 밖으로 뱉는 것도... 너무 슬펐겠죠.



Q. 아직도 여기에 온 걸 후회하세요?

A. ...후회해요. 여기 들어왔을 때 했던 후회랑은 달라요. 제 멍청한 생각들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게 후회되네요.



Q. 저희의 상담은 여기까지 입니다.

A. 감사해요. 아마 여기에 안 왔으면 전 여전히 멍청하게 생각하고, 두준이가 지쳐서 떨어져 나가게 했겠죠. 그래서 헤어지고... 삽질하고.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Q. 세상에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직은 세상이 동성 간의 사랑을 완벽하게 이해 못하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우선인 거 항상 잊지 마세요. 그 누구도 두 분의 사랑을 뭐라고 할 자격은 없습니다.

부디 평생 행복하고 다시는 이 곳에선 안 만났으면 좋겠네요.






"...윤두준. 너 진짜 계속 이럴래?"

"..."

"하... 이럴 거면 따로 살자."

"야옹. 야옹."

"...너 진짜 죽을래?! 양말 좀 빨래통에 집어 넣으라고!!"

"멍멍. 멍."

"너 진, 으악...!! 야, 너 뭐해!!"

"주인님, 봐주세요. 멍멍."



요섭의 손에 들려있던 흰 양말 한 짝이 강제로 떨궈지고 요섭의 몸도 침대로 던져졌다.

어쭙잖은 동물 소리를 내며 요섭을 침대로 밀치고 그대로 그를 꽉 껴안은 두준이 까치집 머리를 하고선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어제 야근해서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봐주라, 아가. 어?"

"...야근해서 힘들었다던 놈이 오자마자 달려들어?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야 네가 너무 귀여운 탓이지. 그럼 귀엽질 말던가, 네가. 아, 갑자기 확 열받네."

"뭐?"

"누가 서른 넘어서 그렇게 귀여우래? 네가 아직까지 귀여우니까 내가 야근해서 힘든데도 쉴 수가 없잖아."

"지랄 좀 하지, 으! 뽀뽀, 좀, 그만해!!"



살짝 부은 볼부터 쪽쪽 거리기 시작한 두준이 본격적으로 입술에 뽀뽀 폭격을 시작했다. 두준의 한 손이 요섭의 뒤통수를 꽉 받치고 있어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요섭은 애써 바둥거리며 저항할 뿐이었다.



"아, 너무 좋아."

"좋긴 뭐가 좋아? 양말도 제대로 안 집어넣는 게 좋다는 말이 나와?"

"응. 근데 어쩌지? 얘도 좋나 봐, 자기야."

"..."



요섭의 입술에 도장을 찍듯 꾹- 뽀뽀한 두준이 씨익 웃으며 허리를 슬금슬금 움직였다. 아침부터 바지 위로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슬슬 움직이는 허리에 잔뜩 화난 두준의 것이 요섭의 것에 닿자 요섭이 작게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풀어줘야 할 거 같지, 자기야."

"...너 나 몰래 뭐 먹어?"

"몰래는 아니고 대놓고 요섭이를 먹긴 하는데."

"..."

"할래?"

"...싫어."



거절의 대답에 충격 받은 얼굴로 굳어 있는 두준을 밀어내 그의 품을 빠져나온 요섭이었다. 절망하며 밀쳐진 채로 침대에 누워있던 두준에 요섭이 새침하게 뒤돌아보며 말했다.



"양말, 빨래통에 넣어두고 오면 같이 씻어주고."

"...헐."



그 말을 끝으로 욕실로 쏙- 들어간 요섭에 잠시 멍 때리던 두준이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양말부터 주웠다. 빛의 속도로 빨래통에 양말을 골인 시키고 요섭이 있는 화장실로 옷을 벗으며 들어간 두준에 요섭의 비명이 잠깐 들리는 듯했지만...

그 뒤로 샤워기의 물줄기 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살갗 부딪히는 소리와 달뜬 숨소리들은 끊이지 않았다.






글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duyo_g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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