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차 국민전력 ‘밤마다 오지 좀 마라’로 참여합니다.

 

 

 

 

 

 


 

 

 

 

 

 

 

 

 

 

 

 

 

 

 

어떤 사람과 근 4-5년을 함께 살다보면, 게다가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있다 보면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사람을 좀 오래 봤다고 해서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파악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파악된 채로 가만히 있지도 않는다. 반드시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혹은 보고 있는데도 변한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나는 정국이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정국이는 오색찬란한 감정을 가진 아이였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서 정국이에게서 표현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 일이 즐거웠다. 자주 말을 걸고, 장난을 걸고, 그때 그때의 소감을 묻곤 했다. 때로는 눈을 길게 봤다. 그러면 저절로 무슨 말인가 하곤 했다.

 

 

‘그만 봐요.’ 라는 말 대신에.

 

 

가끔은 형들이 신기해했다. 내가 정국이를 향한 질문을 가로채서 대신 대답하곤 했고, 그 답들에 정국이가 토를 달지 않았으니까. 때때로 진형은 ‘지금 JK 귀찮아서 그냥 맞다고 하는 거야.’ 라고 비웃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면 내 말이 맞으니까. 정국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면 난 바로 알았을 거다. 애초에 전정국이 틀린 소리를 얌전히 듣고 있을 성격도 아니고. 하지만 정국이가 나를 신기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감동한 것 같지도 않았고.

 

 

‘형이 내 마음을 잘 알아주니까 편해요. 입도 안 아프고.’ 늘 그저 그런 반응이었다.

 

 

 

 

 

 

 

 

 

 

 

악몽 연대기 

 

-부제 : 하루라도 편히 자고 싶었다-

 

 

 

 

 

 

w. 비터문

 

 

 

 

 

 

 

 

 

 

 

 

 

눈을 떴다. 사방이 깜깜한 가운데 침대가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정국.”

 

 

제법 힘을 주어 말했다. 낮게 출렁이던 침대가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물론 가까이서 들려오는 미약한 숨소리가 섞인 가짜 정적에. 순간, 호석이 형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둘 다 숨을 삼켰고 긴장해서 목줄기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소리는 잠잠해졌다.

 

 

“나와.”

 

 

조심스럽게 이불을 밀고 나오는데 아직 어둠에 익지 않은 눈 때문에 정국이와 부딪치고 만다. 내가 먼저 거실로 나오고 녀석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느린 움직임으로 따라 나온다. 우리는 거실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는다. 정국이는 엉덩이를 쭉 빼고 등을 뒤로 기대앉았다. 시선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옆에 서있던 목이 긴 스탠드의 불을 켰다. 꽤 넓게 거실을 비추는 불빛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니 목적 달성할 때까지? 아님 내가 미치는 거 볼 때까지?”

“…….”

 

녀석은 자기 허벅지를 주먹으로 퍽퍽 치고 있었다.

 

“진짜 나 만지려고 했어?”

“…….”

“지금 저 방에 나만 있어? 태형이도 있고 호석이형도 있는데. 생각 없어?”

 

 

내가 조금 언성을 높이자, 전정국은 시선을 형들이 자고 있는 방들 쪽으로 뺐다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많이 억울한 눈을 하고 있었다. 조금은 상처받은.

 

 

“이미 알아버렸잖아요…….”

 

얼마나 좋은지. 기가 막혔다. 저건 마치 나를 탓하는 듯한 말투라서. 내가 잘 안다고 믿었던 정국이라는 이름의 어떤 놈이 과거로부터 날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땐 솔직히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나 형 꺼 한 번만 만져보면 안 돼요?’

 

 

뭘? 이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시선이 정확하게 내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은 멍해진 머리로 생각했다. 이게 날 놀려 먹으려고 이제 별 소리를 다하네. 그리고 웃어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다가오는 걸음걸이며 표정이 너무 평소와 달라서 나는 순간적으로 뭔가 잘 못 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다음 순간 숙소에 둘만 남아 있다는 것이 퍼뜩 떠올랐다.

하지만 내 직감보다 전정국의 손이 더 빨라서. 그날 나는, 전정국에게 다짜고짜 내 아래를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녀석은 ‘우와’하고 의미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고, 나는 그 손을 쳐냈다.

 

 

‘뭐하는 거야?!’

 

 

너무 당황해서 뭐라 따지지도 못하고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너무 얼굴이 화끈거려서 숙소 앞에서 근 한 시간 정도를 왔다 갔다 하며 열을 식혔다. 그러다 현관으로 들어오던 윤기형과 마주쳤다.

 

 

‘뭐하냐? 왜 남에 집 앞을 왔다 갔다 해, 수상하게.‘

 

 

형을 기다렸다고 능청을 떨며 함께 들어가니 전정국은 제 방에 있는지 안보였고, 그날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그날 밤 조금 고민을 하긴 했지만, 별일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냥, 잠깐 지나간 해프닝? 아니면 좀 과한 장난? 그래 내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 했던 거야. ……하여튼 나쁜 새끼.

다음날 조금 뻣뻣하던 거 같던 정국이도 삼, 사일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서 나도 잊기로 했다. 물론 그 일에 대해서 입도 뻥끗 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그때 제대로 화를 냈어야 하는 건가, 라고 후회하기도 늦어버렸지만. 한 달인가 됐을까. 영 안 풀리는 곡 작업 때문에 랩라인 형들이 며칠을 작업실에서 꼼작도 안하고 있을 시기였다.

 

 

“정국아! 자냐? 피자 시킬 건데,”

 

 

비스듬하게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제대로 두 눈에 꽂히는 그곳을 드러내놓고 있는 막내와 마주친 것이, 그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 것이 내 인생의 두 번째 실수였다. 그 순간이 내 것을 잡혔을 때 보다 더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안으로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시선을 피하지도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굳어버린 나를 다그치는 마음의 아우성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문 좀 닫죠.”

 

 

뚜껑열린 맨홀 같이 꺼지는 목소리에 어깨를 파르르 떨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근데 그다음 느껴지는 감정이 이상하게도 머리가 부글부글 끓는 화였다. 이 자식이 나를 만만하게 봐도 한참을 만만하게 봤어. 정신 바짝 차리고 혼을 내야하는 타이밍은 바로 이런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호기롭게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꽤 크게 났는데도 제 방에서 게임 중인 김태형은 반응도 없었다. 이미 피자 따윈 머릿속에서 지웠을 정도로 몰입했겠지.

 

 

“뭐예요?”

“형으로써 말 좀 하자.”

“이따 해요.”

 

 

명백히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줘야할 뒷수습의 시간을 생략하고 다짜고짜 달려든 내 패기도 참 암담했다. 하지만 그땐 그냥 무시당하는 게 죽도록 싫었다. 아마 한차례 자존심이 밟힌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녀석에게 다가가 내가 들어올 때 급히 아래를 가린 이불을 치워내고 그곳을 확 잡아챘다.

 

 

“윽.”

 

 

아픈지 눈을 꼭 감아버리고 몸은 뒤로 젖혀진다.

 

 

“여기 너 혼자 쓰는 공간도 아닌데 왜,”

“하아.”

“왜 커지냐……?”

 

 

분명이 위협이랍시고 잡은 건데, 이 망할 미성년자는 내 손에 대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뭐지? 너무 약하게 잡았나? 하고 더 꽉 잡자 숨소리만 커진다.

 

 

“야야, 뭐해……! 나 지금 화내는 거거든?”

“가까이 좀 와 봐요.”

 

 

억센 손에 이끌려 마주 앉혀지고, 녀석의 이마가 다가와 내 이마에 닿았다. 이젠 아예 자기 손을 내 손 위에 겹쳐 쥐고 움직이고 있었다. 뜨거운 호흡이 팔위로 뿌려졌다. 손등 위로 겹쳐진 손바닥이 축축하다. 아까 충격 받았던 이유를 알겠다. 솔직히 너무 컸다. 별 걸로 다 자존심을 건드는구나, 하고 고개를 꺾으며 인상을 쓰는 건 사실 현실도피 비슷한 거였다. 내 빡친 몸짓을 느꼈는지 정국이 수그렸던 몸을 펴 내 눈을 봤다.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야하다고 이거. 그렇게 좋냐……?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표정이었다. 티 안 나게 때리는 방법을 궁리하는 현실도피는 멈추지 않은 채로, 나는 조금 울 것 같았다.

 

 

“진짜, 흐, 진짤까 했는데, 진짜 좋네요.”

“……뭐?”

“남이 해주는 거. 진짜 좋다 그랬거든요.”

“너, 어디서 그런 거……!”

“형, 형도 섰죠?”

“뽑아버린다.”

“으, 무셔. 근데 형 얼굴 빨게요.”

 

 

나도 알아. 안 봐도. 귀 끝까지 화끈거리는 대화에 눈을 질끈 감는다. 나 왜 이러고 있지? 전정국은 왜 야할 때도 잘 생겨서는. 그런데 다음 순간 녀석이 내 이름을 살짝 부르며 내 아래에 턱하니 손을 댄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이건 아니야. 나는 닿아오는 손을 쳐내고 녀석의 것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준다. 빨리 끝내라 좀. 잠시 후 전정국은 아쉬운 한숨 같은 걸 날리며 사정했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팍 밀쳤다. 가쁜 호흡과 함께 몸이 다시 뒤로 젖혀진다. 불쾌한 감각이 뒤덮인 손으로 엉성한 주먹을 쥔 채 벌떡 일어났다. 남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빙빙 도는 거 같다. 심지어 방금 일이 벌어진 곳은 남준이 형 침대였다. 하. 죽자, 그냥.

 

 

“형,”

 

 

애써 냉정을 찾는 듯 소리를 고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뒤에 들릴 말이 무엇이든, 듣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나한테 말 걸지 마.”

 

 

정국이 쪽은 쳐다도 안보고 휙 돌아서 나왔다. 닫히는 문틈으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일주일 갖고 되겠어요?”

 

 

 

 

 

 

 

 

 

이후로도 몇 번을 전정국은 나에게 달려들었다. 첨엔 숙소에 사람이 없을 때를 노리더니 나중엔 연습실이며 화장실이며, 둘만 있게 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붙어왔다.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니었지만 한 번 온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았다. 하도 밀어붙이는 통에. 아니, 솔직히 그 표정이나 나한테 매달려오는 느낌이 좋아서 받아주었다. 그래, 사실 나도 점점 더 흥분됐다. 시작도 전부터 끈적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데, 그것만으로도 오감이 곤두섰다. 서로의 이마를 맞대는 것이 신호였다. 나든 전정국이든 둘 중 하나는 급하게 녀석의 벨트를 풀었다.

 

 

“아……. 형 좋아요.”

“입 좀 다물어.”

“부끄러워요? 당하는 건 난데.”

 

 

때때로 내 것도 만져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꾹 참았다. 숨을 헐떡이는 건 자기면서 여유로운 듯한 말투가 거슬렸다. 거절 못할 나를 안다는 듯이. 그렇다고 쳐도, 전정국은 세상에 그게 달린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듯 본인 욕구만 쏙 채우는데, 얄미우면서도……귀여웠다. 내 손길에 몰입하는 것 같은 순간들이. 나도 참 미쳤지.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라는 거냐.

덩달아 자위 횟수가 늘었다. 내가 이렇게 욕구가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가기 직전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 사이로 그 얼굴이 떠오를 때면 수치심에 더 뜨거워졌다. 절대로 내걸 만져달라고 하는 일은 없을 거다. 하염없이 그런 다짐을 한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서, 뭔지 모르겠어서 꽤 우왕좌왕하던 사이 완전히 말려들었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들킬까 급하게 해치우던 행위가,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흥분으로 일상을 집어삼켜갔다. 연습실 보컬룸에서 하다가 브이앱을 찍으러 왔던 호석이 형에게 걸릴 뻔하기 전까지 말이다. 한마디로 팬들 앞에서 생중계 될 뻔 했다는 소리지. 오, 신이시여.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다 망칠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든.

 

 

“호석이 형 일 때문에 그래요?”

“그것도 그렇고. 정상적이지 않잖아.”

“우리가 언제부터 정상적인 거 누리고 살았다고. 내가 아무 여자나 만나고 다니면 그건 정상적인 거예요?”

“삐딱하게 말하지 말고. 니가 욕구불만인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거 다 해소하고 살 수 없는 게 우리인거 알잖아.”

“왜요? 나 형이랑 그러고 나면 충분히 해소 되고, 우리 둘만 조심하면 되는 건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네?”

“내가 왜 네 해소를 위해 희생하고 죄책감 느껴야 하는데?”

“지금 나만 좋았다고 말하는 거예요?”

“어. 당연하지. 너 지금까지 내가 실오라기 하나 벗는 거 봤어?”

“싸기 직전 같은 얼굴은 많이 봤는데.”

“…….”

“아. 그게 감춰진다고 생각했구나. 유감이네요. 난 비밀인지 몰랐어서.”

“전정국.”

“알겠어요. 형이 싫다는데 뭐.”

 

 

알아들었다기보다는 삐졌다고 해야 맞을 거다. 이후에도 난 노력했다. 우선 단 둘이 있지 않기 위해 꽤 애를 썼다. 어쩌다 둘이 있는 순간이 와도 절대 전정국 쪽을 보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면 그 바보 같은 불꽃이랄 게 튈까봐, 무서웠다. 좀 치사한가 싶게 무언의 거절을 거듭했다. 어쩐지 스스로를 단속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얼마 안가 그런 기싸움마저 끝나고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대가 돌아왔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조용해져서 문제였지만.

 

 

“태형이 뭐 먹을 거야.”

“저 참치요!”

“아 이제 하나씩 남았는데. 지민아, 정국이 뭐 먹을 거 같냐?”

“글쎄요. 애한테 물어봐요.”

“왜. 너 전정국에 대해 모르는 거 없잖아.”

“박지민 독심술 하는 거 아니었어?”

“이제 좀 모르려고요.”

“정국이 사춘기 와서 안 놀아준다고 지민이 삐졌어요.”

“뭐래는 거야.”

“야, 잘 생각했어. 너무 오냐오냐 컸지. 안 그러냐 전정국?”

 

 

괜히 움찔해서 돌아보니 정국이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대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어서 남준이 형과 진형도 보였다. 타이밍 뭐냐.

 

 

“이거 이젠 형이 말을 해도 대꾸도 안 해. 멋있어. 응.”

 

 

정국이는 그냥 장난스럽게 씩 한번 웃어 보였다. 점점 말수가 줄고 웃음으로 때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형들은 그러다 말겠거니 했지만 나로썬 신경이 쓰일 밖에. 그렇게 또 얼마간이 흘러 최근의 일이었다.

쎄한 느낌에 눈을 떴다. 몸 위로 드리워진 검은 형상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뻗어온 손이 겨우 막아냈다.

 

 

“형.”

“뭐야. 정국이?”

“잠결에……방을 잘 못 찾았어요.”

 

 

깊어진 밤이면 잠결에 길을 잃은 전정국이 내 침대에 들어왔다. 어떤 날은 그냥 뭉개져 자기도 했고 어떤 날은 좁다며 쫓아 버렸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던 것도 슬슬 짜증이 차던 참이었다.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어주기엔 우리의 전사가 너무 길잖아. 신경이 나날이 곤두서던 나날 중, 여지없이 피곤에 절어 잠을 청했던 날이었다. 나를 살살 흔들어 깨우더니 여섯 살짜리 애기가 서툴게 그러듯, 간지럽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형, 생각해보니까 내가 제대로 만져준 적 없네요. 기분 좋게 해줘도 돼요?“

 

 

나는 진심으로 악몽이라도 꾸는 줄 알고 멍하니 있다가 허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에 두 손으로 코앞에 있는 얼굴을 밀치며 동시에 두 발로 복부를 가격해버렸다.

그날이 내가 진심으로 화를 낸 첫 번째 날이었고, 두 시간 넘게 설교를 한 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내 침대로 기어들어온 게 오늘로써 여덟 번째였다.

 

 

“처음부터 받아주지 말았어야 하는데. 다 내 잘못이네.”

“난 형이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뭐?”

“내가 만지는 거 싫어하는 줄 알고 억지로 참았다구요. 그래도 형 표정, 예뻤으니까. 숨소리나 닿아오는 곳이 뜨거웠으니까.”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그거 믿은 거예요. 형도 나랑 그러는 게 좋은 거라고. 믿게 했다구요, 형이.”

“우기지마.”

“한 번 해봐요. 해봐도 아니면, 진짜 기분 더러우면 내가 그만 둘게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하다니까, 니가 하는 말은? 해보고 아님 말고 넌 그게 돼?”

“기회를 달라는 거예요.”

“우리 지금도 충분히 엉망진창이야. 각자의 욕구는 각자 해결하는 게 맞아.”

“좀 솔직해 집시다.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요? 싫었으면 같은 거 달린 남자가 만지는 데 그런 표정 지을 수 없어요. 계속 받아줄 수 없는 거야. 우리가 하루 이틀 그런 거 아니잖아.”

“정국아,”

“그러니까 싫었다는 말은 취소해요.”

 

 

침대라는 곳은 생각보다 더 밀착이 되는 공간이라서 우리의 마음이 밀착되지 않을 리 없다. 전해지지 않을 리 없다. 니가 나에게 이토록 바보 같이 매달리는 이유가 단지 욕구라면, 그런 거라면 난 한 없이 단호해 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나에게 요구하는 게 그 이상일 거라는 상상을 하면 나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단호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취소……안 해.”

“하.”

“…….”

“잔인하다고 생각 안 해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건 피곤함이 너무 심해서 뇌가 작동을 멈춘 탓이다. 전정국은 그대로 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퍼진 주황색 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조금은 언성이 높아진 우리의 대화를 멤버들 중 누군가 듣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으나 독한 두통에 밀려 이내 사라졌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 저 건방진 자식 말이 맞다. 업어 키운 전정국에 성욕 비슷한 걸 느낀 순간부터가 내 죄다. 나는 당해도 싸다, 싸.

 

 

 

 

 

 

 

 

 

 

 

전정국의 말수가 더욱 줄었다. 우리의 냉전은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폭풍전야 같았다. 일에는 지장이 없도록 서로 조심했지만, 둘 사이에 전 같은 대화는 없었다. 맥주 한두 캔으로 화해의 실마리를 풀어보려던 형들의 시도는 물론 성과가 없었다. 별개로 착착 진행되는 일들이 야속할 정도였다. 솔직한 말로 나는 형들이나 회사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이 나더라도 어떻게 좀, 이 어려운 상황을 누가 해결해줬으면.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다들 우리를 기다려주는 분위기였다.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딱 형들다웠다.

한동안 일본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 전정국의 상태가 예상치 못한 쪽으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잘 먹고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점점 말라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대에 있는 시간 외에는 늘 지치고 피곤해보였다. 연신 괜찮다고만 하는 정국에 매니저 형들이나 멤버들도 걱정은 되지만 이렇다 할 조취를 취하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힘겹게 일본 활동을 마무리 지을 때쯤, 정국이는 기다렸다는 듯 감기 몸살로 앓아눕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계절은 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부실 것 같아서 커튼을 치는 소리에 정국이가 스륵 눈을 떴다. 다시 잠들려나 싶었는데 붉은 눈가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다. 깨운 것이 미안해서 괜히 말을 걸었다.

 

 

“오늘은 좀 어때?”

“아파요.”

“그렇게 바로 답하니까 꾀병 같네.”

“설마요.”

“더 자.”

“형들은요?”

“사무실. 미팅 갔어.”

“형은요.”

“일일 간호담당. 너랑 나는 내일 오래. 내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일어나야해.”

“하하.”

 

 

사실은 내가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귀국 후 정국이가 자리보전하고 누운 지 4일 째였다. 영 열이 내리지 않았다. 근 몇 달 동안의 냉전으로 이렇게 얘길 나누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조금 약해진 정국이는 전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힘없는 웃음소리 때문에 그런가. 이마에 손을 대보니 둔한 나도 알만큼 후끈거렸다.

 

 

“어쩌려고 이러냐, 진짜. 사람들 다 걱정시키고. 이렇게 앓아누울 때까지 몸 상태 몰랐어?”

 

 

걱정에서 솟아나는 괜한 시비에 정국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게 하도 느리고 힘겨워 보여 숨이 찰 지경이었다. 다시 뜨인 눈꺼풀 속 눈동자는 정확히 날 향해 있었다.

 

 

“형. 잠깐만…….”

“어?”

 

 

끝을 흐리는 목소리에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몸을 숙이는데 그대로 뻗어온 손이 내 뒷머리를 만진다.

 

 

“눈 뜨자마자 왔죠? 머리 다 떴네…….”

 

 

슥슥 매만지는 손길에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급히 머리를 만지자, 피식 새는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는다. 눈이 퉁퉁 부어 뜨고 있기 힘들어보였다. 침대에 앉아 잠시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른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잠든 건가 싶을 때쯤 한숨과 함께 속마음을 뱉어본다.

 

 

“나 땜에 많아 속상했어?”

“…….”

“너랑 멀어지는 거 싫어, 나도. 재미도 없고.”

“…….”

“근데 어떡해. 너무 가까워지는 것도 무서운데.”

“…….”

“나 때문에,”

“형 때문에 아픈 거냐고 묻는 거예요?”

“……아니.”

“자의식과잉 아닌가, 그거?”

“그게 아니라.”

 

 

정국이가 무겁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조금 뒤로 뺐다. 약간 땀에 젖은 앞머리를 몇 번 쓸어 넘기더니 진지한 눈썹을 하고 말한다.

 

 

“이 타이밍에 미친 소리 같겠지만, 나 지금 형 되게 만지고 싶다.”

 

 

슬로모션처럼 느릿하게, 그러나 민첩하게 정국이의 이마가 다가와 내 이마에 닿았다. 뜨거웠다.

 

 

“형이 딱 나만큼 뜨거워질 정도로만.”

 

 

그냥 그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날 나는 아픈 애를 붙잡고 징하게도 매달려댔다.

미안하다고 울며 목을 끌어안는 나를 정국이 달래듯 안고 키스했다. 키스라니, 하면서도 너무 간지러워 눈물만 더 났다. 동시에 내 몸을 이곳저곳을 쓸어내리는 축축한 손바닥이 좋았다. 하지만 내 것에 그 손바닥이 닿았을 때는 정말이지 충격 같은 걸 느꼈다. 타인에 의해 만져진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전정국이 내게 매달리던 게 이해가 갔다. 이걸 하다가 안하면, 진짜 앓아누울 수도 있겠는데. 실없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몸을 더욱 밀착했다.

 

 

‘너무 붙으면 움직이기 불편해요.’

 

 

내가 들을 정신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코웃음을 흘린 정국이가 자신의 것을 꺼내 내 것과 맞댔다. 큰 손으로 두 개를 한 번에 잡고 흔들며 손가락 마디를 이용해 어루만지는 데, 완전히 납득했다. 그래, 진작 네 말대로 할 걸. 사실 난 이게 무서웠던 거다. 완전히 빠져버릴 까봐. 더 원하다가, 망쳐버릴 까봐. 그게 뭐든.

아……이 좋은 걸 그동안 혼자 했다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이 들었다. 머리가 온통 흔들리는 흥분감 속에서 그 생각만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게 내 생각에도 우습다. 그건 맞닿은 이 환자의 이마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만큼이나 내게 강하게 각인된 그날의 감상이었다.

 

 

 

 

 

 

 

 

 

 

 

 

 

전정국은 여전히 남에 침대를 파고들고, 그건 여전히 나에게 골치이다. 원래부터 자제력이라곤 없는 청소년이다 생각했었지만 성인의 문턱을 애저녁에 넘은 지금도 그런 건 안 키울 생각인가보다. 자제력. 절제력. 인간의 삶에 정말 중요한 단어이다. 특히 내 정신 건강에 너무 중요한 단어.

 

 

“정국아. 불 끄고 잠 좀 자자.”

“불 끄고 게임하면 눈 나빠져요.”

“그럼 게임도 꺼.”

“그럴 순 없쥐.”

“네 방 가서 하던가. 독방 뒀다 뭐해.”

“외로웡.”

“개뿔. 밤마다 오지 좀 마라. 최소 이틀에 한 번은 거르는 게 예의 아니냐?”

“우리 사이에 예의는 무슨. 오글거려요.”

“우리 예의 되게 필요한 사이야, 지긋지긋한 직장동료인간아. 거기 우리 홉이형 침대거든. 너 네 방 가.”

“아, 그런가. 형 침대를 함부로 쓰는 건 예의가 아닌가.”

 

 

그러더니 쏙 내 침대로 넘어오는 저 날쌘 몸짓을 어쩌면 좋을까. 크게 앓고 나서는 건강의 소중함이라도 느낀 건지 미친 듯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얻어낸 몸은 팬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동시에 나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몸과 함께 역변한 표현력도 문제다. 좋은 몸과 좋은 표현력, 그것이 합쳐지니 생각보다 위력이 컸다.

 

 

“오늘도 달려들면 죽일 거다.”

“우리 홉이형 벌써 내 방에서 자요.”

“내가 어제 얘기했지. 숙소에서 하자 그러면 죽일 거라고.”

“그제도 그 얘기했지만 살아 있잖아요.”

“방에서 양심 좀 챙겨오지. 그럼 적어도 부드럽게 죽여줬을 텐데.”

“그놈에 죽인다는 소리는. 방송 할 때처럼 예쁜 말만 써요.”

“예쁜 말 좋지. 우리 내일 5시 기상.”

“으아아. 잔인해. 그러면 끌어안고만 잘게요. 얼굴 보여줘요.”

 

 

이럴 땐 못 이기는 척 돌아눕는 게 상책이다. 힘으로 들려지다간 어딘가 부러지고 말거다. 꿈지럭거리며 돌아누우니 늘 그렇듯 모공 들여다보기 타임이다. 말도 않고 10초 이상. 숨 막힌다.

그러다 땡그란 눈동자가 놀란 듯 커지더니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손을 짚고는 손등에 자기 이마를 댄다.

 

 

“그거 알아요? 형 이마 되게 뜨거워요.”

“그래? 나 열 있나?”

“아니, 항상 좀 그래요. 체온이 높나 봐요, 나보다.”

“아……그런가?”

“야한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머리가 뜨거울 정도면, 어휴.”

 

 

박치기를 부르는 전정국.

 

 

“아!”

 

 

인간은 변한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혹은 보고 있는데도 변한다. 조금은 수줍고, 어딘가 서툴러서 이 예쁜 아이 좀 봐주세요, 대신 외치고 싶던 어린 정국이는 이제 없다. 이제는 제 목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가진 생각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따듯한지, 제가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저 뻔뻔하고 능글맞은 웃음. 그 자신감이 점점 녀석을 더 근사하게 만든다. 아플 만큼 올곧게 뻗어오는 진심은 내 가슴을 쓰리다 못해 설레게 한다. 사실 내가 너에게 반한 건 좀 더 후의 일이라고, 나는 우겨본다.

이마를 문지르며 불쌍한 얼굴을 한 전정국이 반대편 손으로 내 이마를 살살 만져준다.

 

 

“지금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하는데.”

“거짓말. 또 쓸데없는 생각했죠? 하여간 인생 피곤하게 살아.”

“네가 너무 태평한 거야아.”

“형.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요. 나 요즘에 좋은 꿈만 꾸니까.”

 

 

 불현듯 이마를 맞대더니 입술에 쪽하고 입을 맞췄다 뗀다. 큰일 났다. 전투력이 자꾸만 떨어진다. 하라그럴 땐 죽어도 안하더니. 




밤이다. 여전히 자기 밖에 모르는 전정국이, 오늘도 길을 잃은 전정국이, 내 침대에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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