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할머니는 희주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그러나 주미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은듯한 표정으로 희주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아주 태연한 척 희주와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비서실장인 동성애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러면서 둘이 악수를 하는데 희주가 백합할머니의 손을 부드럽게 잡더니 손에 힘을 꾸욱 준다.

마치 '왜 날 못알아보죠?'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애써 외면했다.

그 사실을 주미가 알 리 없었다.

그리고 업무 시작시간이 되어 백합 할머니가 희주의 자리로 가면서 낮은 소리로 말을 건다.


"너 무슨 생각이냐?"

"쉿, 지금 할머니는 저의 사수예요. 일에 집중하도록 해요."

"알겠는데... 행여나 너 이상한짓 하면 가만 안둔다."


할머니가 엄포를 놓자, 희주가 싱긋 웃으며 할머니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대답한다.


"이렇게 말인가요?"

"너, 어른 놀리면 죽는다."

"쉿, 회장님이 보실라."


희주가 귓속말로 속삭이는데 이거 진짜 못할 노릇이었다.

정말이지 심장이 쫄깃해질 일이었다.

업무시간 내내 희주에게 일을 가르쳐 주는데, 희주가 내내 백합할머니를 도발하는 행동을 가끔가다 하는 것이었다.

가끔가다 할머니에게 다리 보여주기, 화장실에서 둘이 마주치면 할머니 손잡기, 심지어는 지나가다가 할머니에게 속삭이기 등등...

이거 진짜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그래도 업무 습득은 잘하는 편이라 주미가 시키는 일은 놀라우리 만치 잘 해나갔다. 그러면서 희주에 대한 칭찬을 하는 주미였다.


"희주씨 일 잘하네요. 대부분 직원들이 버티지 못하는데..."

"실장님이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회장님."

"그래요? 성애씨 덕분이라니 저로선 기쁘네요."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주미가 희주와 백합할머니에게 물어본다.


"그러고 보니 성애씨랑 희주씨가 같은 지역에 사는것 같은데..."

"주소가 비슷한것 같더라고요."

"뭐 그런 직원들 몇몇은 본적 있으니까..."


그럴때 어째서인지 백합할머니 심장이 들었다 놨다 하듯 철렁하니 내려앉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놀랬다.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어.'


그럴즈음, 희주가 백합할머니 손을 잡으며 속삭이길.


"티내지 말아요."


라고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릴 하고 있었으니...

그래서 백합할머니는 일단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어 둘이 퇴근하게 되었는데, 이때 본격적으로 둘이 얘기하게 되었다.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

"할머니만 가만있으면 돼요. 저는 괜찮으니까."


그러면서 할머니 손을 꼬옥 잡으며 말한다.


"뭐, 이렇게 노는 재미는 있으니까."

"어른 놀리면 못써!"

"난 할머니 좋은데..."

"내가 못산다."


그럴때 문득 생각났는지, 할머니가 희주에게 묻는다.


"너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냐?"

"할머니 퇴사할때까지요."

"내가 언제 퇴사할줄 알고?"


할머니의 대답에 희주가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를 한다.


"한주미 회장님이 조만간 정년퇴직 한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거든요. 그때 우리 할머니도 퇴사 하겠죠?"

"너..."

"그정도도 모르고 있으면서 큰 일을 꾸밀순 없는거죠. 안그래요?"


희주의 한마디에 할머니는 이 녀석 굉장히 무서운 애구나 란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행동을 더욱 조심해야 되겠단걸 깨달았다.

.

.

.

한편, 그 무렵 제이는 이라 못본지 꽤 오래 되었다고 여겼다.

저번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단 이야기를 듣고 거기 다녀온단 이야기까진 들었다. 그런데 백합할머니가 문전박대 당하고 난 뒤, 이라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들을수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물어보려고 했으나, 할머니도 일이 바빠서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이거, 연락이 너무 없잖아. 내가 한번 이라한테 연락 해봐야 하나?'


2월이 거의 지나가고 종업식이 시작되려고 하는데, 학교에 까지 나오지 않자 제이는 정말로 이라가 학교를 그만둘 생각인가 싶었다. 그것만은 정말로 싫었으니까.

그래서 이라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라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어라? 왜 이라 전화기가 꺼져있지?'


그것이 이틀정도 계속되자 이건 큰일났다 싶어 할머니에게 이라에 대해 얘기했다.


"할머니, 이라가 전화를 안받아요."

"그게 무슨 소리냐?"

"그게, 저번에 할머니 이모분이 돌아가셨다고 했었죠?"

"그랬었지?"

"그때 이후부터 이라가 전화도 안받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실은 2월 시작될 무렵에... 이라가 저보고 학교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전 그걸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인가봐요."


할머니는 제이의 말에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제이를 생각하면 이라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라는 대체 누구인가?]하는 것 때문이었다.


'영재의 자식도 아니라면 이라는 정말로 죽은 이라의 복제인간이란 걸까? 아니면 아예 별개의 존재인걸까?'


차마 [네가 아는 라이라는 실은 가짜다]라는걸 제이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제이에겐 지금의 라이라도 라이라 그 자체였으니까.

왜냐면 둘은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안으면서 같이 자란 둘도없는 소중한 존재였으니까.

거기에 할머니 자신이 초를 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이라의 행방이었다. 적어도 죽었나 살았나 정도는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영재에게 전화를 걸게 된 백합할머니였다.


"여보세요, 영재냐?"


그런데 갑자기 영재가 다급한 목소리로 백합할머니에게 말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누님, 뭐하다 이제 전화하는 거예요! 지금 이라한테 큰일이 벌어졌는데!]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이라가 없어진지 일주일이 지났어요. 그래서 혹시나 누님이 데리고 있나 싶어서 전화 해봤는데도 안받고, 그래서 제이양에게도 연락해 봤더니 못봤대요!]


영재의 말에 할머니는 뭔가가 무너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이라가 납치라도 당한건가 싶었다.


[저 이라 잘못되면 저도 죽고 혜은이도 죽여버릴거예요! 실은 저번 고모님 장례식때 혜은이가 이라를 집에 못가게 하려고 붙잡아 두더라고요!]

"그 무슨 소리야. 응? 자세히 말해봐."


영재가 말한건 다음과 같았다.

[혜은이가 이라를 붙잡아두고서 결혼 날짜까지 돌려보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할머니는 혜은이가 정말로 정신이 나갔는거 싶었다.


'큰일이군, 정말로 큰일이야.'


그래서 할머니는 우선 이라의 행방을 찾아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시간에...




※: 다음시간은 12월 17일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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