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게 드리운 커튼 너머로 잔뜩 들이치는 아침 햇살에, 소파에 누워 자던 신재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 방이 자리한 위층을 우두커니 보았다. 저 방 침대 위에는 도혁이 누워 있을 터다.

 

지난밤, 신재는 보다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자는 핑계를 대고 도혁을 데리고 바에 갔다. 술에 약한 도혁은 위스키를 몇 모금 마시더니 그대로 뻗고 말았다.

 

누군가와 함께 밤을 보내더라도 집에까지 끌어들인 경우는 없었는데. 게다가 살이 아닌 말을 섞다 이렇게 되었다니.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잠시 상념에 빠졌던 신재는 테이블에 놓인 안경을 착용했다. 여기서 몇 걸음만 더 걸어 밖으로 나가면, 현관문 앞에 일간지가 배달되어 와 있을 것이다. 그걸 읽으려면 안경을 쓰는 것 외에 커피 한 잔이 더 필요하다.

 

신재는 안경을 도로 벗고는 커피 심부름을 해줄 이가 잠든 방으로 갔다. 잠에서 갓 깨어난 도혁이 침대 한가운데에 앉아 낯선 장소를 파악하려 이리저리 눈을 굴려대고 있었다. 문지방에 발을 디디고 선 신재는 벽에 몸을 기댄 채 도혁이 부스럭대는 양을 관찰했다.

 

공연히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추고, 사이드 테이블 위 탁상시계를 만져보기도 하고, 이리 두리번, 또 저리 두리번……. 도혁이 하는 짓은 꼭 호기심 많은 동물 같았다.

 

“아, 이사님.”

 

주변을 두리번대던 도혁은 신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간밤엔 잘 주무셨느냐고 물어보았다. 어차피 바지 이사인데, 신재는 도혁이 자신을 직함으로 부르니 귀가 가려웠다.

 

“김신재 씨라고 불러.”

“예. 그럼. 김신재 씨는, 보통 조찬은 거르시는 편입니까?”

 

도혁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면, 신재는 그를 미련 없이 내쫓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아침은 안 먹냐고?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가는 편이야. 그쪽이 차려 주겠다면 안 말릴 거고. 모쪼록 커피 한 잔만 부탁해도 되나?”

“예, 되고말고요.”

 

도혁은 싹싹하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침실 창문을 활짝 연 뒤, 큰 손을 구물구물 움직여 이부자리를 깔끔히 정리했다. 신재는 여전히 문지방에 선 채 도혁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느낌이, 어쩐지 나쁘지 않다.

 

신재가 도혁을 보며 슬며시 웃자, 시선을 느낀 도혁이 그를 보며 잔잔한 눈길을 보냈다.

 

 

 

*

 

도혁이 신재를 위해 준비한 아침 메뉴는 시나몬 가루를 뿌린 프렌치토스트에 향긋한 커피, 사과 마멀레이드 따위였다. 아기자기한 메뉴부터 그것들을 담은 그릇까지, 신재는 도혁의 안목이 퍽 마음에 들었다. 식사 메뉴가 가정식 백반이었으면 추가 점수도 있었겠지만, 도혁이 신재의 사적인 취향까진 알아낼 수 없었을 테니까.

 

“본의 아니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식탁 세팅을 완료한 도혁이 신재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막 자다 깨어난 재색 머리칼이 부스스하니 요란하게 흩어져 있는데, 그런 꾀죄죄한 꼴을 한 주제에 표정이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신재가 말을 아낀 채 자신을 보고만 있자, 도혁은 선뜻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신재의 눈치만 살폈다.

 

“이도혁 씨 첫인상이랑 지금이랑, 엄청 달라서 신기해 하고 있어.”

 

침묵의 어색함에 발 묶인 도혁을 구제키 위해, 신재가 말을 건넸다. 도혁이 자신을 보며 저질 어쩌고 찾을 때만 해도, 이렇게 얌전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 어젯밤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신재가 알아낸바 도혁은 말이 없는 편이 아니지만 무턱대고 시끄러운 편 역시 아니다. 말이 많거나 지나치게 과묵한 사람은 질색이니, 신재는 도혁의 이런 부분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처음 뵈었을 땐 제가 이사님, 아니, 김신재 씨에 대해 오해해서 말입니다.”

“그때 이도혁 씨가 나한테 저질이라고 했잖아. 다시 그렇게 말해봐, 딱 그때 그 톤으로.”

 

신재로서는 어이없었지만 꽤 짜릿한 경험이기도 했다. 알파한테 그런 웃기는 말과 투로 거절당한 건.

 

“그렇게 말씀해드리는 게 어렵지는 않은데, 취향 독특하시네요?”

“나 저질 맞아. 그러니까 얘기해보라고.”

 

신재가 미소 띤 얼굴로 재촉하자 당돌하게 나오던 도혁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혁은 부엌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신재의 첫인상은 빈말로도 저질이 아니라 할 수 없지만 지금은 그가 대단히 고상해 보인다고 했다.

 

“내가 쿨러-사이클 이사라?”

“그것도 있고, 이렇게 크고 좋은 집에 사시니까 더 그래 보이네요.”

 

결국 도혁이 신재를 고상하게 보는 까닭은 그가 가진 것 때문이다. 하기야 가진 게 적었던 시절의 신재는 지금보다도 더 고상함과 거리가 멀었다.

 

“이도혁 씨는 진짜 솔직하네, 사람이.”

“안 그렇게 굴 이유가 없는 분 같아서 말입니다. 김신재 씨가. 외려 제가 거짓말하고 가식 떨면 싫어하실 것 같은 느낌이라.”

“……눈썰미가 참 좋아.”

 

신재는 도혁이 만든 토스트에 사과 마멀레이드를 곁들여 먹어보았다. 바삭하게 구워진 크러스트가 이와 만나며 부서지는 느낌이 경쾌했다. 토스트 달걀옷을 만들 때 우유를 넣었는지, 빵의 식감은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음식 잘하나 봐?”

“입에 맞으시니 다행이네요. 요리하는 게 취미입니다.”

“그래?”

 

시원시원하고 청량한 인상에, 말 받아치는 것도 곧잘 하고 취미는 요리란다. 신재는 도혁이 마음에 들 것 같았다.

 

“있잖아. 이도혁 씨, 괜찮으면 나랑 친구할래?”

 

신재가 오묘한 얼굴로 물었다. 도혁은 신재가 끌어가는 대화의 맥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요리를 잘하냐고 묻더니, 갑자기 친구하자고? 요리 잘하는 친구가 필요한가? 아니, 신재 정도라면 오성급 호텔의 주방장도 우습지 않게 사귈 텐데?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대화의 맥이 어쨌건 거물이 먼저 친구하자며 다가왔다. 도혁은 토스트를 크게 베어 물며 감사를 표했다.

 

“영감 죽은 지 1년, 아니, 6개월이라도 찼으면 아예 연애를 하자고 했을 건데 말이야.”

 

신재가 아쉬운 듯한 얼굴로 말했다. 느른한 목소리에서는 그 몸에서 나는 것과 동일한 튜베로즈 향이 한껏 배어나왔다. 어젯밤, 도혁은 이 남자와 함께하며 똑똑히 경험했다. 페로몬 억제제를 놓고도 그 음험한 아우라가 조금도 가시지 않던 것을.

 

‘이 사람이 A? 잘못 봤어. 외모라든가 부라든가…… 페로몬까지 S랭크에 넣어도 남아도는 수준 아닌가?’

 

도혁은 신재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다시 견적을 냈다. 그 시선을 인식한 신재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미소하자, 도혁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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