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드라이브 

                                                                          W.rain









그대로 진짜로 잠에 들었는지 깨어보니 여전히 쉬는 시간이었던 교실 안은 어느새 조용한 기운 사이에서 혼자 요란한 분필 소리로 가득했다. 깨긴 했는데 눈을 뜨기 너무 귀찮았다. 그리고 분명 내가 잡은 상태로 잤던 것 같은데 잡혀 있던 손은 어디 갔는지 손이 허전했다. 정국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자세만 고쳐 잡고는 그대로 일어날 생각은 없는 사람처럼 입만 다셨다. 그리고 왼 팔을 대충 옆으로 휘적거리더니 세 번 만에 잡힌 손을 다시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끌어당긴 손이 수아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라는 건 모른 채 말이다. 






불과 몇 분 전.






4교시가 막 시작됐을 때 도착한 지민은 역시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아를 발견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지민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엎드려 있는 정국과 수아 앞에 섰다. 정국은 정말 자고 있는 건지 아주 지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고 자고 있었다. 뭐 그까짓 거 키스하는 것도 본 마당에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사실 모르겠다. 속이 벌써 뒤틀리긴 하는데. 




“어? 지민아 너 어떻게 왔어?”

“왜? 오면 안 돼?”

“ㅇ.. 아니 너 아프다고 들어서 중간에 온다는 말씀은 안 하시길래”

“그냥 괜찮아져서”

“오늘 밥도 제일 맛없는 날인데 그냥 쉬지”

“.........”



하필 말을 해도 괜히 찔리게 밥 얘기를 할 건 뭐람



수아는 그럼에도 비키기 싫은 건지 대놓고 잡힌 손을 빼낼 생각도 없이 자리 주인인 지민이 서 있는데도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지민도 그에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걸기 위해 옆으로 향하는데 뭐야. 아주 그냥 가방까지 걸고 앉아 있었구나. 

수아는 지민이 걸려 있는 가방과 자신을 번갈아 보는 모습에 그제서야 일어나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정국에게서 손을 빼내고 가방을 고리에서 뺐다. 지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고리에 걸고 자리에 앉아 태연하게 다음 교시를 확인하고 서랍에서 책을 뒤져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너 그 자리 되게 좋아한다”

“응 좋아해”

“그래 뭐 내가 안 되면 전정국이 바꿔도 되니까”




수아는 많이 아쉬운 듯 가방을 들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그러기 무섭게 수업 종이 쳤다.



그리고 지금 이런 상황인 거다. 얜 내가 최수아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손을 잡은 것 같긴 한데 좋으면서도 신경 쓰였다. 나인 거 모르는데 잡혀 있는 게 더 자존심이 상하는 거니까. 그런데 잡혀 있는 건 좋아서 뭐 어떻게 해야 할지 사고가 정지됐다. 처음에는 뒤척이길래 깬 줄 알았지. 손을 휘적거려가면서 손을 다시 잡을 줄은 몰랐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그렇게 좋을까. 근데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친구 손도 구분 못하고 바보 아니야?




정국은 그대로 손을 잡고 숨을 쉬는데 아까와는 다른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분명 복숭아 향 핸드크림을 발랐다고 했는데 그새 냄새가 날아간 건가. 그런데 날아가더라도 복숭아 향이 옅게 남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완전히 다른 향인데. 

지민은 손이 잡힌 순간부터 수업에 집중하기를 포기했다. 안경도 그냥 벗어버렸다. 오른손이 잡혀 버려서 뭘 필기할 수도 없고 그냥 왼손에 턱을 기대고 힐끔힐끔 정국을 쳐다보니 잠에서 완전히 깬 건 아닌데 완전 잠에 듣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아 안 되겠다. 지민은 가만히 있는 게 나중에 정국이 깼을 때 더 민망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마치고 손에 힘을 주되 조심스럽게 빼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는데 움직일 때마다 손을 더욱 꽉 잡아 오는 정국에 순간 당황했다. 이러다가 깨도 웃기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웃기다. 어떡하지 

그래 그냥 한 번에 확 빼는 거야. 지민은 고이지도 않은 침을 두 어번 삼키고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는데




"히익”

“.........”




아니 어떻게 눈만 한 번 감았다 떴는데 언제 눈을 뜬 거지. 정국은 지민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눈을 떴는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지민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여전히 잡고 있긴 했는데 눈치를 못 챈 건가. 그렇다고 정신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다.



“저.....”




그제서야 손에 힘을 주어 비틀어 보니 언제 잡았냐는 듯이 잡고 있던 손을 시원하게 놔주는 정국이다.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게 눈을 비비며 작게 기지개를 펴 보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민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없이 바라만 봤다. 지민은 그 시선에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 그 수아인 줄 아는 것 같아서 내가 빼려고 했는데 그.. 네가 안 놓ㄱ,,,”

“핸드크림 뭐 써?”



이건 뭐 갑자기 무슨 말이지. 정국은 지민의 왜 하고 있는지 모를 어수선한 말은 상관도 없는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핸드크림 안 쓰는데. 




“그런 거 안 바르는데...”




뭐야 남자애 살냄새가 이렇게 곱다고.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잡고 있는 손이 지민이라는 사실을 지민이 몰래 빼내려고 했을 때부터 알았다. 선잠에 든 거라 조금만 움직여도 깨는 상태였는데 계속 어떻게든 빼보려고 하는 지민을 실눈으로 먼저 확인을 했다. 은근 놀리고 싶기도 했고 지민도 엄청 싫은 얼굴은 아니었던 것도 같아서.

















역시 맛없다. 그리고 맛없는 점심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맛이 없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먹고 있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거든. 왜 하필 자리를 앉아도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있는 건지. 내가 아무리 보고 싶어서 아픈 몸 이끌고 이 맛없는 밥까지 먹을 생각으로 중간에 등교했다지만 이렇게 종합선물 세트처럼 얼굴을 내내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저렇게 대놓고 있으면 오히려 몰래 훔쳐볼 수가 없어서 평소보다 얼굴을 더 못 봤다. 그래서 어차피 맛없는 거 거의 반을 남기고 잔반처리를 한 다음 교실로 빠르게 돌아왔다. 

돌아오니 나를 반기는 건 하나둘씩 밥을 먹고 온 반 아이들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잠만 오늘 체육 있는 날이잖아. 하필 또 전정국은 체육부장이어서 열외를 밥 먹듯이 하는 나로서는 정국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늘 느껴야만 했다. 아까 밥을 느리게 먹어서라도 얼굴을 봐뒀어야 했어. 

그래. 피구쯤이야. 지민은 어느새 거의 새 거 같은 체육복을 입은 채 운동장에 서서 팀을 나누는 한 가운데 서있었다. 




“음 나는 이지운”




역시 각 팀 대표를 맡은 두 명은 가위바위보로 한 명씩 고르는 방식은 늘 지민이 마지막에 남는 게 거의 국룰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또 마지막이 남은 지민은 자연스럽게 마지막에 자신을 고르지 않은 팀이 아닌 가위바위보에 진 팀에 들어가게 됐다. 이러나저러나 전정국과는 또 다른 팀이다. 근데 사실 다른 팀인 게 좋다. 대놓고 볼 수는 있지 않은가. 같은 팀인데 전정국을 보는 건 좀 이상하니까. 

그나저나 피구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최근에 무리하지 말라는 윤기 쌤의 경고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충고 따위 생각도 안 나는 지민이다.



“지민아 힘들면 언제든지 빠져도 돼”




그나마 우리 반에서 날 꽤나 귀여워해주는 현우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마 전정국 같은 넘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우를 짝사랑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친절한 아이였다. 윤기 선생님의 친척 동생이라는 걸 알고 난 뒤 바로 일말의 불씨조차 꺼버렸지만. 

지민은 현우의 말에 싱긋 웃어 보이고 다시 표정을 굳혔다. 아씨. 상대 팀에 체육 부장 전정국이 있는 것도 불리한데 저기에 최수아까지 있으니 생전 없던 승부욕 생기는 것 같다. 

순식간에 게임 초반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벌써 각각 팀에 한 명씩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상대 팀은 최수아고 우리 팀은 나인 건데. 지민은 다른 건 몰라도 유연한 거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래 자신만 있었다. 이렇게 혼자 남을 생각은 없었다고.



“지민이 피구 잘하는 거 처음 알았네”

“그니까 맨날 열외 해서 몰랐어”




의외의 실력자에 반 아이들은 놀란 눈치였고 정국도 그중 한 명이었다. 딱 봐도 초반 나가떨어지겠지 생각했다. 체육 시간 내내 열외로 스탠드에 앉아서 혼자 멍 때리거나 보건실을 갔었으니까. 그래서 어쩐 일인지 분명 아파서 중간에 학교를 왔던 것 같은데 오히려 체육 시간을 참여하고 있는 지민이 신기했다. 이상하게 신경 쓰이기도 했고. 

그리고 수아는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 피구부 주장으로 활동했다고 했다. 전학 가기 하루 전까지도 피구대회를 나가 우승했을 정도라 반 아이들 중 피구 부인 애들은 수아를 처음 보자마자 알아보기도 했었다. 지금은 피구부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았지만 여전히 수아는 실력을 뽐냈다. 그리고 하필 공은 상대 팀 수아에게로 넘겨졌고 자세를 잡는 수아에 집중하던 지민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기분과 함께 속이 울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모르는 수아를 비롯한 아이들은 지민과 수아에 더욱더 집중했고 수아는 있는 힘껏 볼을 던졌다 동시에 지민은 그대로 피하지 못한 채 머리에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파악..!!

-삐삑~!



머리에 맞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선생님의 호루라기가 울렸고 정국의 팀의 승리였다. 수아는 지민이 맞는 걸 확인하자마자 기뻐하며 달려오는 아이들 사이에서 정국을 찾으려는데 어디로 간 건지 바로 보여야 하는 정국이 보이지 않았다. 




“헐 수아야 저기...”



갑자기 소린스러운 소리와 함께 옆에서 기뻐하고 있던 예진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렇게 찾던 정국이 보였고 문제가 있는지 일어나지 못하는 지민을 부축해 업고 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짜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나 지금 전정국 뒤에 업혀서 가고 있는 거 맞지. 당장이라도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고 싶으면서도 여자한테 맞고 못 일어난 게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다. 억지로 욱여넣은 점심이 체한 게 분명했다. 머리 핑 돈 건 다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기를 쓰고 왔던 탓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얼떨결에 이러고 있긴 한데 그것보다 전정국한테 업혀있고 뭐고 지금 이대로라면 전정국 등에 그대로 오바이트를 해버릴 것 같다. 지민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정국의 목을 감싸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고 입을 막았다. 




“떨어져 제대로 잡아”

“으음,,, -것 같아”

“.... 어? 뭐라는 거야”



정국은 계단을 오르면서도 잠깐 씩 뒤를 힐끔 돌아 지민의 뒤통수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입을 막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게 말하는 지민에 당황스러웠다. 사실 순식간에 거의 반사 신경 수준으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지민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지민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자꾸만 어째서인지 등 위에서 내려오려는 지민의 움직임에 우뚝 멈췄다. 




“토할 것 같다고...!”

“아”




정국은 지민의 말에 바로 내려놓았고 지민은 내려오자마자 한 계단을 거의 세 번 만에 올라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정국은 업고 올라오느라 찼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면서도 어이없다가도 웃긴 이 상황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민은 점심을 다 게워내니 민망함이 다시 올라와 입을 헹구면서 차가운 물로 세수까지 했다. 아 근데 또 괜히 한 것 같다. 머리가 그대로 깨지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띵한 게 가시질 않았다. 지민은 거울로 대충 얼굴을 확인하고 젖은 앞머리를 손으로 한두 번 털고 화장실을 나왔다. 




“깜짝이야...”




뭐야 얘 왜 안 가고 서 있는 건데. 지민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그대로 밖에 서 있는 정국과 부딪힐 뻔했다. 정국은 아무렇지 않게 지민을 내려다보더니 세수한 거냐며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정국이 이렇게 잘 웃는 애인 건 짝사랑하는 내내 몰랐다. 뻘쭘하긴 한데 고마운 것도 있어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복에 겨운 고민이겠지 이것도



“고마워.... 난 괜찮으니까 수아도 많이 놀랐을 텐데 얼른 가 봐”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어 보건실 가서 누워 있으면 돼”

“거기까지만 데려다줄게”

“안 그래도 되는ㄷ...”

“가자”




정국은 지민의 의견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먼저 앞서 걸어갔다. 지민이 근데 민망함을 떨칠 수 없는 건 화장실 앞에 서서 봐도 보이는 게 보건실이었거든.


둘은 보건실을 들어가 마침 나가려던 참이었는지 보건실에서 나오는 윤기와 마주쳤다. 윤기는 먼저 정국을 쓰윽 훑고는 뒤에 오는 지민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지민만 알 수 있는 제스처로 눈짓을 줬다. 그에 지민은 멋쩍은 웃음만 보일 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정국은 윤기에게 짧은 목례와 함께 인사를 했고 뒤를 돌아 지민을 확인한 뒤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선생님께는 내가 말씀드릴게”

“어.. 고마워..”




정국의 인영이 사라질 때까지 윤기는 눈을 떼지 않다가 얼른 지민에게 눈길을 옮겼다. 지민은 윤기의 눈을 피한 채 바로 보건실 안으로 들어가 명단 작성이고 뭐고 소리를 지르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야 너만 있는 거 아니야 왜 이래?”

“.... 죄송해요..”

“쟤가 너 데려다 준거야?”




윤기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지민에게 물었다. 




“.........”




지민은 대충 다른 아이들도 있다는 윤기의 말에 상황 설명을 핸드폰을 꺼내 텍스트로 열심히 설명을 했고 옆에서 쭉 읽어보던 윤기는 그만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면서 선생님이 그렇게 웃으면 어떡해요...”

“없어 구라야”

"아 쌤!!"



윤기는 지민이 귀엽다는 듯이 웃다가 갑자기 이리저리 살피더고는 일어나 책장을 열더니 대놓고 보기 민망한 여러 종류의 생리대를 거쳐 돌돌 말아져 있는 수건을 꺼내왔다. 어디서 뭘 했길래 젖어있는 앞머리며 촉촉한 홍조를 띤얼굴을 좀 정리를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윤기는 수건을 가져와 자연스럽지만 조심스럽게 지민의 앞머리를 털어주었다. 그에 지민은 움찔했다가 얌전히 눈을 감고 윤기의 손길을 받아냈다. 




-툭. 




갑자기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윤기와 지민은 동시에 그곳을 바라봤고 어째서인지 정국이 지민의 상의 체육복을 들고 온 건지 떨어져 있는 게 지민의 이름표가 박힌 체육복이었다. 정국의 표정이 안 좋다.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쳐다보고 있는 거지. 지민은 영문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나 정국에게로 다가갔다. 일단 떨어져 있는 체육복을 주워 정국을 올려다보려는데 다짜고짜 손목이 잡힌 채 말없이 보건실 밖으로 끌려가다시피 나왔다.



“ㅈ,, 정국아 왜 그래?”




정국은 보건실로 나오자 마 확 뒤를 돌더니 잡은 손목을 놔줬다. 정국은 지민을 데려다주고 교실을 가는 길에 이미 체육 시간은 끝났는지 지민의 것으로 보이는 상의 체육복을 확인하고 피구를 하기 위해 잠시 벗던 지민을 스치도록 본 게 기억이 나 바로 체육복을 받아 들고 온 거였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이 그냥 되게 불편했다. 이유는 사실 모르겠지만 불편한 감정은 맞는 것 같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윤기의 손길을 편한 듯 눈을 감은 채 받고 있는 지민과 그런 지민을 바라보는 윤기의 눈빛이 거슬렸다. 학생을 보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뭔지 지민을 끌고 나와서야 판단이 서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냥 교실 가자”

“왜?”

“말하기 싫어”

“.......”



너무 단호한 정국에 할 말을 잃은 지민은 오히려 화가 났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입장이라고 해도 그 애가 하는 행동마다 무조건적으로 다 좋게 보이는 건 아니다. 지금 이 행동은 엄연히 기분이 나쁘기에 충분하니까. 




“체육복은 고마워. 근데 교실은 너 혼자 가”

“싫어 같이 가”

“너 나 없으면 더 좋을 거 아니야. 내가 빠져줄 테니까 수아랑 같이 앉아서 수업이나 들어”

“.........”




지민은 그대로 대충 체육복을 걸치고 다시 보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국은 지민의 말에 차마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진짜 이상하잖아. 지민의 말이 다 맞는 건데 이상하게 아니라고 말할 뻔했다. 그리고 짜증 나고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2020.


기어코 여길 다시 왔다. 속이 뒤집어지는 줄도 모르고 옆에서는 뭐가 좋은지 해맑게 학교 정문을 걸어들어가는 태형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갑자기 같이 안 가겠다고 하면 한 달은 삐져 있을 게 뻔한 애라 일단 와주긴 한 건데. 무조건이다. 전정국이랑 마주칠 확률. 

9년 전이나 지금이나 솔직히 달라진 건 체육관이 생기고 급식실이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아, 저건 뭐지. 




“티... 처.. 온리..?”

“뭐가 뭐가?”




지민이 겨우 실눈을 떠서 확인한 투명 컨테이너 흡사 금연실같이 생긴 것 같으면서도 제목은 또 정반대의 장소를 대변하는 것처럼 쓰여 있었다. 저렇게 훤히 다 보이는데 뭘 하라는 건지. 지민은 관심 없다는 듯 익숙하게 교무실부터 찾았다. 태형은 익숙해 보이는 지민에 어깨를 툭 쳐 보인다.



“왜 여기 아니야?”




태형은 갑자기 우뚝 서서 문이 버젓이 있음에도 들어가지 않는 지민에 물었다. 그래 나도 들어가고 싶지 근데,




“김태형?”

“어 전정국!”




아 그냥 들어갈 걸 그랬다. 지민은 바로 뒤를 돈 태형과 달리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분명 너무도 듣기 싫었다가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거든.











비온 뒤 맑음은 반드시 있어. 그 끝엔 무지개가 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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