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_여행길

지금까지 쓴 글에서 여행과 관광지에 관해 묘사했던 부분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 

여기저기 떠나는 이야기, 여정 중의 묘사를 좋아해서 즐겁게 발췌했어요! 




기차


오후 4시, 도쿄 역 도호쿠 신칸센. 승강장으로 불어 들어오는 열차의 바람에 뜨끈한 더위의 머리카락이 날린다. 

여름이 식지 않은 철로는 공기를 위로 부풀려 올려보내고, 전신주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감에 따라 열차의 속도가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희미하게 비치는 차창의 옆얼굴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치는 듯했다.


여정은 주오 선으로 갈아탔다. 와타루는 6량에 타서 왼쪽을 보고 섰다. 열차가 미끄러지며 나아가는 동안 맞은편에 정차한 차량의 불빛들이 가속하며 스쳐지나가 마치 단편의 영사기처럼 보였다. 그 최초의 영화 필름은 둥글게 말이 달리는 모습을 이어붙여 움직임을 재현했다지. 자리가 나 창가에 앉으면서 어두워지는 해거름을 바라보았다. 기상이 악화되어 노을마저 잡아먹었는지 하늘은 잿빛이기만 했다. 얼룩처럼 눈이 계속 내렸고 플랫폼과 건물마다 그림자가 그득 고였다.


생글 웃던 여자가 손가방을 놓칠 듯 한 손을 뿌리치고 커다랗게 뜬 눈으로 들어오는 열차를 가리켰다. 해결사님, 열차가요. 열차가 오고 있어요! 

주홍색 가로등 불빛 아래 눈이 깊이 쌓였다. 도카이도 본선에서 니가타로 올라오는 신에츠(信越) 선으로 갈아타 여자의 친정이 있다는 나가오카까지 오면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다섯 역 쯤을 지나쳐서 도착한 그곳은 지상 승강장이었고, 실내 승강장이었는데 단독 노선만이 지나가는 조용한 역이었는지 아침 시간임에도 사람이 몇 지나가지 않고 아직까지 강하게 쬐지 않는 아침 햇볕이 드문드문 바닥을 비추고 있어 아직 다 물러나지 않은 지난밤의 그림자들이 기둥의 모서리들과 의자 밑들에 많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맞은편에 노선도가 붙어 있었다.


노출 승강장에 밝은 해가 쏟아내리는 만큼 실내 역사는 어두웠다. 유리로 된 벽 너머로 파란 하늘과 지나다니는 자동차, 육교 아래의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닦지 않아서 유리 위에 진 얼룩과 뿌연 먼지 무늬들을 볼 수 있었다. 허리보다 높은 높이에는 도영 지하철의 시트지가 붙어 있고, 그 끝까지 가면…….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울린다. 붉게 칠해진 플랫폼 끝. 역사 저 멀리 선 신호등, 타는 곳 번호, 낮이라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려 들어오는 전철까지 한번에 감싸올려 파란 하늘로 띄워 놓을 것 같은 봄바람. 늦은 4월 오후의 전철역은 사쿠라이 모모세가 입은 갈색 재킷 품을 부풀려 그 사이로 녹음을 통과한 빛이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냈다.




자가용


하코네마치까지는 먼 길이 아니었다. 도심에서 가까운 휴양지인 만큼 이전에도 친목이나 개인적인 친분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자가용으로 달리면 두 시간이 되지 않아 금방 리조트 등이 보이는 온천 마을로 진입한다. 벚나무, 소나무, 향나무 등 갖가지 높이의 조경수들이 도로변을 따라 불쑥불쑥 늘어서 있다. 익숙한 천변을 따라가는 길에서 차는 구불구불한 언덕을 택해,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운전사의 말 상대가 되어 주지 못했었기에, 그때부터도 한동안 말없이 주행이 이어졌다.

덜컹거리는 승차의 느낌은 생각보다도 쿠션이 잘 되어 있는 차량 덕에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는, 그렇지만 이렇게 안락한 차체 안에서 보호받고 있음에도 잘 닦여지지 않은 번듯하지 못한 도로를 택해 접어드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점점 나에게 이 여행의 비일상성을 환기시키고, 숲 속인가 싶을 만큼 어느새 무성히 우거져 있는 수목의 터널 속으로, 마치 어느 영화 속에서나 비추어 줄 법한 전조등의 조명과 우수수거리는 이파리 쓸리는 소리 등만과 함께 파고드는 이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아마도 거기서부터 여름 밤의 기묘한 서정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리라.


갑자기 차가 다리 위로 진입하면서 오후 네 시의 해가 창 안으로 쏟아들어왔다. 박편처럼 노니는 물결 위 황금색, 광선 같은 주황이 손을 물들였다. 회색 모직 스커트와 자동차 문 사이. 삼각형으로 잘린 빛의 조각과 시시각각 바뀌는 그림자.


날이 어두워지자 앞유리만 닦은 차창 모서리에 점점이 진 얼룩들이 선명해졌다. 가물거리다가 눈을 뜨면 희뿌연 열기의 차 안과 유리창 끄트머리에 쌓인 무늬들은 버석거리는 흰 별 같고… 말러의 9번 교향곡이 나오고 있었다. 

고속도로 톨을 통과하자 하나둘씩 집이며 상가가 보였다. 마을에 들어온 모양이라, 와타루는 이따금씩 차를 멈추고 방향이나 건물을 확인하곤 했다. 에이치도 창 밖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밤거리의 유흥가같이 붉고 주황색 불빛들이 알록달록했다.




숙박


"어쩐 일이시랍니까. 관광객들은 여기로 거의 오지 않는데요." 2층짜리 조그마한 여관은 근처 주민이나 트래킹,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소수의 단골만이 종종 방문한다고 했다. 온천탕이 있는 뒷마당을 돌아 언덕을 내려가면 파도가 비교적 좋은 해안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은 그냥, 정갈한 집을 유지한다고 생각하고 저희끼리 지냅니다. 여름에는 근처 고등학교와 협력해 단합회 숙소로 드리기도 하고요."

사촌과 둘이서 여관을 운영한다는 여자는 나이가 꽤 있었는데 겸양어가 듬뿍 들어가고 시종일관 조곤조곤한 말씨로, 뜻밖의 손님인 두 사람을 응대했다.


객실로 돌아가면 이불이 깔려 있었다. 2층도 손님 방으로 쓰는 것은 두 칸뿐인 듯했는데 대신 방 하나가 상을 놓고 모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크기였다. 지금은 둘뿐이라 별달리 장식을 놓지 않은 실내가 썰렁했다. 도코노마에는 족자를 걸고 청소만 내내 깔끔히 했는지 펼쳐진 부분이 바래 있었다.  


모퉁이를 돌면 자갈길이었다. 여관의 입구는 바로 보이지 않았고 길 끝에 보이는 것은 앞으로 흙을 돋우어 만든 키 작은 대나무 화단이었다. 통로를 만드는 양쪽 담의 오른쪽은 어두운 그늘 색이었지만 왼편에서부터는 어른어른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발 밑에서 자갈들이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잘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화단 앞까지 가면, 다시 방향을 반 바퀴 돌아 울타리로 된 담은 이어지고 있었고 거기에서부터 이제는 오른쪽에서 비추어지게 된 불빛 또한 더 짙어졌다. 자갈의 사면에도 노란 빛이 버무려져 마치 금이 섞인 알 껍질들 같았다. 


그리 크지 않은 뜰에서 맞은편의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사각형을 이루는 마당을 유일하게 밝히는 불빛은 목조 건물로 된 여관 입구의 처마 밑에 달린 등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뜰은 편백나무 담장이 둘러싸고 그 안으로 높이 자란 대나무 숲들로 인해 안팎으로 시야가 차단되어 오직 이 안만을 위한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

노란 빛은 아마도 백열등이었다. 방문객을 홀리듯 부피나 형태, 향기를 지닌 척 울렁울렁 모습을 바꾸던 그 빛은 전통 채색화의 금칠이나 혹은 달빛처럼 우쭐거리면서 여관의 현관을,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마당까지 이어진 통로와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 할 경로를 비추고 있었다. 불빛이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주홍이 된 목제 지붕은 어슴푸레한 윤곽이 녹작하니 어둠에 잠겨 있었다.  




관광지


가게는 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새롭게 연 찻집 건물에서 계단을 돌아 반 지하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오래된 가게로 건물도 가게의 연식만큼이나 오래되어 푸르게 자란 담쟁이덩굴이 외벽을 뒤덮고, 내려가는 계단에는 우윳빛 타일에 고풍스러운 색유리 장식이 되어 있어 홀에서 드는 빛을 바닥에 반사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하네요……." 쿠루무는 첫 번째 찻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자리에 멈춰서서, 바람이 불어 가려지는 햇빛에 따라 다르게 바닥에 그려지는 색깔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게, 꼭 바닥에 꽃이 핀 것 같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도쿄예대 인근, 창 밖으로 우에노 공원이 보이는 오래된 킷사텐(喫茶店)에서였다. 노렌 대신 서양식으로 유리를 끼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편도 비슷한 풍으로 꾸며 두었고, 테이블이며 내장재 등속이 죄다 6, 70년쯤은 되어 보이는 무척 고풍스러운 가게였다. 테이블은 나무인데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고 색색깔로 된 유리 램프가 천장 낮은 가게 내부에 은은한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실제 레코드 판을 사용하는지 모조품인지 얼핏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창문 근처에는 전축이 피아노 선율을 뽑아내고 있었다.


미얀마에 가서 헬기를 타고 사원이 군락한 하늘을 날 때, 강과 목적지인 도시 사이에서 예상치 못하게 숲에 뒤덮인 건물을 봤어. 가까이 가서 보니 거기도 번쩍거리는 황금과 정교한 장식으로 지붕을 치장한 어떤 유적이었어. 가이드는 아마도 교통이 용이치 못해서 사람이 오지 않는 건물일 거라고 했고, 나는 내려가서 보고 싶다고 했지만 근처에 조금이라도 착륙할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없어서 불가능했어. 결국 낮게 날면서 관찰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사원은 대단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삼각꼴로 된 쾌속선의 선수가 셀룰리언 블루의 해수면을 가르며 새하얀 포말을 피워올렸다. 오키나와 제도에서도 남쪽, 동중국해와 태평양을 면하는 바다를 달리는 배는 이곳저곳을 왕복하는 일반 여객선의 항로를 따르지 않고 발진하자마자 곧장 목적지를 향했다. 정규 항로가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는 다른 배나 섬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너르게 펼쳐진 수평선 위로는 그들 항해의 궤적만이 긴 꼬리를 남기며 그려지고 있었다. 구름이 잡힐 듯 하늘은 쾌청하고, 지속적으로 튀는 물방울 때문에 난간에 기대어 있으면 바짓자락을 적실 만한 날이었다. 


바깥은 관광지에 필요한 여러 편의 시설들이 들어섰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 많은 불빛들은 보이지 않았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드문드문 밝혀진 가로등만이 조약돌처럼 희게 빛나 주변에 심긴 야자나무 실루엣을 드러냈다. 리조트는 이시가키 섬에서도 정남쪽에 있었고 지도 위에 선으로 그어도 바다의 물에는 경계가 없으므로 고개를 이쪽으로 길게 돌리면 태평양과 오세아니아, 저쪽으로 멀리 내다보면 동중국해와 대만의 연안에 닿을 것이었다.  


유원지의 공원에는 파랗게 별이 내려온 것처럼 화단에 장미가 물결쳤다. 낮에는 잔디가 피어 있던 야트막한 언덕들은 밤에 자그마한 조명들의 인공 장미로 소복이 물들었는데, 지지대의 튜브에 진짜 줄기처럼 얇고 탄성 있는 것들을 사용했는지 바람에 이따금씩 흔들리기도 하면서 산들산들 춤췄다. 같은 곳의 장미 정원은 축제가 열릴 만큼의 생화가 아직도 가득 피어 있어 밤바람에는 향기 또한 듬뿍 실려 있었다.


밤의 유원지는 낮과는 꽤 분위기가 달라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구성도 가족보다는 두엇씩 짝을 지은 연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과연 아이들은 잘 시간이라며 돌려보낸 이후일까. 그러고 보면 밤바람은 선선했고 놀이공원은 네온사인이든 은은한 장식 조명의 등불이든 느긋하게 걸으면서 볼거리가 되는 광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유원지의 성 모양으로 지은 메인 건물의 지붕들에서부터 맞은편에 있는 서커스 천막 위로 줄을 매달아 만든 작은 전구들의 차양이 성단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계단이 80여 개가 있다는 이야기는 신사 안으로 들어가서 배전까지의 일인지 마을에서부터 초입까지 가는 길은 어둠에 잠긴 채 얼마나 걷게 되는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허리 아래 높이로 낮게 줄을 쳐서 구분해 둔 산길의 너머에는 굵게 자란 소나무 줄기 사이로 점차 어둠이 깃들고 있었다.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만 바지런히 몇 분을 더 가면 거북 모양으로 된 좌우의 석조 조각상과 함께 토리이를 지나치게 되었다. 옆에서는 제법 높게 자란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가지와 잎을 총채처럼 흔들고 있었고 나무그늘 때문에 더 어두워 보였던 산길에 비해 돌로 바닥을 깔아 둔 신사의 안편은 아직 꽤 밝은 것처럼 여겨졌다. 

배전 앞에 나란히 섰을 때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격자창 안쪽의 건물은 어두웠고 손이 흰 끈을 쥐려고 했을 때, 하도 조용하고 어두우니까 그랬던 모양인지 그들의 눈 앞으로 팔랑, 깜박, 꽁무니에서 연노랑 불을 밝힌 반딧불 하나가 와서 날았다. 


점점이 노랑 연두색의 빛들은 마치 무리를 이룬 군무처럼, 허공에서 춤추는 파도나 가루처럼 소리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찌르르 물결쳤는데 여느 유명한 관광지들에서도 드문 풍경이어서 토리도 입을 살짝 벌리고 황홀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돌 바닥은 숲 그림자, 옆의 너머는 검은 흙이었다. 바닥에는 드문드문 갓 넓은 버섯들이 나 있었고 튼튼하고 높게 자란 삼나무 줄기들은 반딧불 무리가 어른어른 지나가며 비추는 바람에 껍데기가 황금색으로 물든 듯 누르게 보였다. 

소란스러운 다른 이들도 없이 사람이란 그들뿐으로 수천 마리의 반딧불들은 그 정도 적은 머릿수의 행인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날아다녔으므로 둥근 불들이 일렁일렁하며 들었는데, 그것은 감람 유리로 겉을 만든 등이나 신록처럼 예쁜 연두의 토리의 눈빛과 같은 빛깔이었고 절경이라 할 만치 어수선하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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