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고개







가마꾼들과 가마를 호위하는 청년이 앞장서서 밤이 내려앉은 산기슭을 걷고 있었다. 구름이 하늬바람에 흘러가자 달빛이 길을 밝혀주었다. 앳된 얼굴의 청년은 그 모습이 아름다우며 기이함에 가까워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청년은 청구의 주인인 연화의 적자이자 다음 백두대간의 산신의 자리에 오를 구미호인 이연이었다. 모두들 입을 모아 그의 외모에 감탄하고는 했다. 사해팔방 제일 가는 미인이라 불리우는 연화의 외모를 쏙 빼닮고, 강인한 눈매는 부친을 빼닮았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불길이 타오르듯 발간 긴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어내린 청년은 피부가 내리고 있는 겨울의 끝자락 눈처럼 새하얬다. 머리끝은 새하얀 서리가 내려 앉은 듯 했다. 고됨이 느껴지지않는 걸음걸이에서는 우아함마저 느껴졌다. 제법 발목까지 쌓인 눈 위로 열개의 발걸음들이 부지런히 움직였으나 소리는 모두 눈이 끌어안아 쥐죽은 듯 고요했다.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설산에서는 하얀 입김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아 보였다. 청년은 앞서 땅을 딛으며 가마꾼들에게 길을 안내했다. 삿갓에 얇은 천이 덧달린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부적에 붙은 걸 보니 식으로 만들어진 가마꾼들이었다. 힘에 부치지 않는 몸놀림으로 가마는 커다란 낙상홍 나무 아래를 지나갔다.


가마 안에서 종종 들려오던 갓난쟁이의 칭얼거림이 기어코 울음소리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달래는 여인의 목소리가 가마 안에서 흘러 나왔다. 앞서 걷던 이연이 발걸음을 멈추자 가마도 따라 멈춰섰다. 저벅저벅 걸어 가마에 다가간 이연은 가마의 창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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