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고어한 묘사, 신체 훼손, 폐소공포, 추락(투신), 식인, 살인, 벌레 묘사 등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작성된 수칙입니다. 빌딩명이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명과 겹친다 하더라도 현실과 전혀 관련 없는 가상의 장소임을 밝힙니다.

수칙보다는 소설의 느낌이 강합니다.

다크모드 감상을 권장 드립니다.


빌딩 정문을 밀고 들어서자 물비린내가 풍겨온다.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건물 특유의 냄새다. 옥상까지 합하여 총 17층 높이의 건물은 관리부실의 냄새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도 6대의 엘리베이터가 모두 작동하고 있다.


▷ 계단으로 올라간다.

▶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고층 전용, 저층 전용, 전층 엘리베이터가 있다. 습관처럼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출근 시간대를 지난 덕에 엘리베이터는 멈추는 층 없이 내려오기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다. 연식이 꽤 된 건물의 단점이다.

엘리베이터 사이를 오가며 초조함을 달래던 차에, 저층 엘리베이터와 전층 엘리베이터 사잇 공간에 붙어있는 코팅 종이를 발견한다.



[ 협 조 문 ]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오랜 전통의 영화빌딩을 이용해주시는 입주사 여러분께 안내 말씀 올립니다.


1. 승강기가 만원임에도 불구, 무리하게 탑승하시는 분이 종종 계십니다. 이는 엘리베이터 고장의 원인으로 정원이 모두 찼을 경우 다른 승강기를 이용하여 주십시오.

간혹 승강기에 탑승한 인원이 많지 않음에도 만원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다른 승강기를 이용하여 주십시오. 다만 2번 항목에 상충할 경우 해당 승강기의 이용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2. 승강기는 항상 2인 이상이 탑승하도록 유의하여 주십시오.

타인을 배려함과 동시에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이오니 반드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승강기가 도착했을 때에 기다리는 인원이 본인 혼자뿐인 관계로 홀로 탑승하여도 무관하더라도 가급적 타인을 기다린 후 함께 탑승하시기를 권장 드립니다.

최근 임료비 인하는 위와 같은 입주사 여러분의 노력으로 인해 일구어진 것입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따라주시기 바라며, 이를 준수하지 않을 시 임료비 상승, 안전 상의 문제는 일절 책임지지 않음을 명시합니다.


3. 관리실장의 허가 없이 화물 등 무거운 물체를 무단으로 싣지 마십시오.

최근 모 기업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관리실장의 허가 없이 책상, 의자 등을 승강기로 실어 나른 바 있습니다. 타 입주사의 이동에 불편을 끼칠 수 있을 뿐더러, 자칫하다 승강기가 고장날 수 있는 관계로 이러한 행위를 엄격히 금합니다.


4. 승강기 내에서 뛰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폭한 행위를 자제하여 주십시오.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공중도덕을 지키며 승강기를 이용하고 있으나, 드물게 발생하는 승강기 내 정전, 멈춤 사고에 있어 패닉에 빠진 인원이 승강기의 문을 억지로 열어 탈출하거나, 거울을 깨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부수는 등 이용 상의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습니다.

전통 있는 영화빌딩의 이용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기를 거듭 강조하는 바이며, 문제가 발생할 시 승강기 내 비상 버튼을 눌러 대응하여 주십시오. 임의로 판단하여 탈출을 시도하지 마시고, 구조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주십시오.


5. 승강기 내 흡연은 엄격히 금지됩니다.

다른 이용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으므로 자제하여 주시기 바라며, 반드시 흡연 구역을 이용하여 주십시오. 일전 발생한 안전사고의 시발점이 흡연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립니다. 

흡연 구역은 현재 정문, 후문에 각각 마련되어 있습니다. 과거 옥상에서도 흡연이 가능하였으나, 시설물 노후화로 현재 보수 중에 있사오니 출입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입주사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영화빌딩 관리실장 황지성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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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착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협조문은 꽤 구구절절했지만, 그 덕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넉넉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인원은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


▶ 탑승한다.

▷ 기다린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 1층까지 도달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치고 빠르게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 안은 벽면에 어지럽게 붙어 있는 지류로 어지럽다. 비어 있는 벽은 물론이고 거울의 절반을 침범당했으며, 엘리베이터 버튼 일부마저 가려져 있다. 관리인이 일을 썩 성실히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첫인상이 확고해진다. 


▷ 버튼을 누른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위층의 누군가가 버튼을 누른 듯 엘리베이터가 저절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느리게 올라가는 층수 옆에 붙어있는 공고문 하나가 눈길을 끈다.

아래 적힌 공고문의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으로, 부착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낡아 보인다. 코팅 안의 종이는 쨍한 엘리베이터 조명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변색된 듯하며 조그만 날벌레 몇이 죽은 채 눌러붙어있다


▶ 공고문을 읽는다.



[ 공 고 문 ]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근래 본 건물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습니다. 이에 입주사 여러분에 불안이 높아짐을 인지하고 있는 바, 본 공고문에 해명을 기재하오니 이를 정독하시어 불확실한 소문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1. 본 건물은 납치, 감금, 살해 등 강력범죄의 온상지가 아닙니다. (거짓말! 누군가 유성펜으로 낙서를 한 듯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과거 모 회사 직원이 로비에서 본인이 납치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난동을 부린 사건에서 파생된 소문으로 추측됩니다.

추후 해당 직원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다수의 이목을 끌었던 자극적인 언사 또한 그의 상태가 원인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당시 경찰까지 출동하여 상당한 소동이 일어난 바, 위 소문이 현재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본 빌딩은 어떠한 범죄에도 연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악의적인 소문으로 영화빌딩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랍니다.

- 9층 입주사 직원 H씨 : 그때 진짜 무슨 일 난 줄 알았어요. '도와주세요', '아무나 경찰 좀 불러주세요', '이 사람들 납치범이에요'... 그 사람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제압하고, 억지로 엘리베이터에 태우려는 모습이 보이니까 더 그랬죠.

아, 근데 제가 경찰에 신고한 건 아니고요. 왜 안 했냐면... 그 사람 좀 이상했거든요. 뭔 왕? 시해자? 이런 사이비 같은 얘기 하는 것 보니까 딱히 제정신인 것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눈빛이... 그, 알죠. 좀 돌아있는 사람은 눈빛에서 티가 나는 거. 그래서 그냥 신고 안 했어요. 엮이고 싶지도 않았고, 납치를 할 거면 직장인들 돌아다니는 벌건 대낮에 할 것 같지도 않았고. 또 밖에서 오래 지체하면 팀장님 눈치도 보이고요.



2. 본 빌딩에서 투신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예의 난동 건 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옥상 출입 금지 조치가 발효된 점에 대해 억측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에 해당 조치는 노후 시설물의 보수 공사를 위하여 시행되는 일시적인 조치임을 밝힙니다. 입주사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구하며,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를 자제하여 주십시오.

- 5층 입주사 직원 K씨 : 아, 그때 보고자료를 만들어야 해서 야근 중이었습니다. 새벽 1시였나... 담배 한 대 피우러 잠깐 나갔어요. 거리상 옥상이나 정문은 아니고 후문 쪽으로 갔죠.

한 대 태우고 핸드폰 좀 하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뭐가 콱! 떨어지더라고요. 왜 밤 되면 소리가 더 울리잖아요. 쇳소리가 쫙 퍼지는데 진짜 기절할 것 같이 놀랐는데, 보니까 부서진 난간이었습니다. 처음엔 사람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고, 내가 좀만 더 앞으로 나와 있었으면 야근 하다가 그냥 죽었겠구나, 싶어서 섬뜩하기도 하고...

다음날 관리실장한테 막 따졌더니, 그냥 미안하다고, 시설물 보수공사 중이라고 얼버무리더라고요. 뭐 미안한 티도 별로 안 내고. 품격 있는 영화빌딩은 얼어 죽을... 근데 이상한 게, 누구 건드린 사람도 없는데 난간이 저 혼자 떨어지기도 하나요?


3. 빌딩 내 실종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승강기 탑승을 마지막으로 행적이 묘연해진 자에 대하여, 본 빌딩이 원인임을 시사하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근래 가스누출 사고로 인하여 발생한 인명피해, 이로 인한 건물 내 암울한 분위기, 도시 괴담이 결합되어 퍼진 유언비


대낮에 닥친 비극... OO 소재 빌딩서 가스누출로 23명 사망·15명 중상

OO시 OO구 소재의 한 빌딩에서 도시가스가 누출되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입주사 직원 23명 사망, 15명 중상을 입었으며, 그 외 5명이 경상을 입었다.

경찰이 oo일 오후 2시 발생한 폭발에 대하여 조사를 진행한 결과, 건물 내벽 가스관이 노후로 인해 부식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부식으로 인하여 발생한 가스 누출이 각 층의 환풍구를 통하여 실내에 퍼졌으며, 흡연자가 건물 내에서 화기를 사용함에 따라 가스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빌딩 이용자들의 대다수는 가스 폭발로 인한 소음, 불길, 연기 등은 목격하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으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빌딩의 입주사에서 근무하는 O씨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음과 비명이 들렸다. 가스 폭발이나 충격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했으나 갑작스러운 소음에 불안했다'고 말했으며, A씨는 기괴하게 생긴 자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상당 수준의 환각을 겪은 바 있다. 

현재 A씨는 본인이 말한 내용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빌딩 측은 위와 같은 손실에 대하여 적절한 수준의 보상을 협의하고 있음을 밝혔다.



공고문 중반부에 신문 기사 스크랩이 붙어있어 나머지 부분을 읽을 수 없다. 테이프가 떼어진 자국과 신문 기사의 찢어진 면이 안쪽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건물 측에서 지속해서 수거하고 있음에도 누군가 집요하게 붙이고 있는 듯하다. 신문 기사 옆면에는 아직 시들지 않은 흰 국화가 테이프로 부착되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희미하게 끽끽거리는 소리가 난다. 층수는 아직도 5층을 지나고 있으며,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다른 벽면을 살핀다.


시선을 옆으로 살짝 비껴내자 알록달록한 포스터 여러 개가 연속하여 붙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의 포스터는 누군가 거칠게 찢어낸 듯 허리가 잘려 있으며, 몇몇은 실종자의 사진 중 눈만 남겨놓았을 정도로 내용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 포스터 아래에는 예의 코팅 종이가 붙어있는 등 여러모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실종자를 찾습니다>

이름 : 이석환

나이 : 36살

인상착의 : 짧은 스포츠머리, 검은 뿔테안경, 푸른색 반소매 와이셔츠, 회색 정장 바지, 검은 구두

마지막 목격 정보 : 영화빌딩 엘리베이터 6호기 탑승 중 돌연 실종되었습니다. 이동 중 정전이 발생하여 CCTV 녹화본을 확보할 수 없었으며, 복구 후 실종자가 흔적 없이 사라진 모습이 발견되었


[ 공 고 문 ]


xxxx.xx.xx 공고문 부착에도 불구하고 영화빌딩에 관련된 악의적인 소문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본 건물에서 사람이 증발하고 있다는 등, 도시괴담마저 활발히 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본 빌딩에서 위와 같은 기현상은 일어난 바 없음을 명확히 합니다. 본 건물의 입주사 직원 중 몇몇이 실종되었다는 점 자체는 사실이나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모두 단순 가출로 판명된 바, 항간에 떠도는 이상현상과는 완전히 무관함을 명확히 밝힙니다.

본 안내문 게시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작성하는 등 고의로 영화빌딩의 위상을 실추시키거나, 허가받지 못한 게시물을 무단으로 부착하여 타인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행위를 지속하는 행위를 지속할 시 강경하게 대처할 것임을 알립니다.


영화빌딩 관리실장 황   


관리실장의 나머지 이름자는 다른 실종자 포스터에 가려져 있다. 공고문의 권위도 이들의 절박함 앞에서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백수환, 정윤지, 송재윤... 더덕더덕 붙은 활자들을 모두 읽기도 전, 누군가 눈꺼풀을 억지로 닫은 듯 시야가 검어진다. 이내 잠시 불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다시 캄캄해진다. 점등이 반복된다.

좁다란 공간에 시야마저 어지럽자 두통이 밀려온다. 새삼 밀폐된 공간임을 상기시키듯, 공기가 묘하게 탁한 듯한 느낌이 든다.


▶ 비상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자 귀가 아플 정도의 노이즈가 길게 이어진다. 괜히 눌렀나 후회할 즈음, 상황에 맞지 않게 명랑한 멜로디가 들린다. 

약 10초간 이어진 멜로디가 끝나자 음성은 멋대로 말을 시작한다. 노이즈가 심하게 끼어 있지만 아마 여성의 목소리인 듯 싶다. 다소 지직거리는 탓에 귀를 틀어막고 싶어지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음성이다.

과장님은 여전한 듯하다.




귀하께서는 현재 (주)개미싹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귀하의 상황이 아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점검해주십시오.


일, 동승자 없이 영화빌딩 내 승강기에 탑승함.

이, 저층 전용 승강기에 탑승하였음에도 불구, 승강기가 계속하여 올라감.

삼, 버튼을 누르지 않았음에도 불구, 승강기가 이동함. 이때 통상적인 이동 시간을 넘겼음에도 계속하여 이동함.

사, 승강기 이동 중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하였으며, 휴대폰 기능이 정지함.

오, 동승자와 함께 승강기에 탑승하였으나, 정전 발생 후 본인만이 남아 있음.

육,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거나, 노이즈, 비명 등의 환청이 들림.


상기 항목 중 2가지 이상에 해당하신다면, 다음의 내용을 따라주십시오.


(경쾌한 음악이 흐른다.)


첫째, 지상 16층부터 지하 3층까지의 버튼을 역순으로 누르십시오.

일반적인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불이 즉각적으로 들어오나, 현재로서는 버튼을 눌러도 별다른 반응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끊김없이 버튼을 누르는 데에만 집중해주십시오. 귀하께서 지시를 잘 따르셨다면 층수 중 몇몇에 무작위로 불이 들어옵니다.

만약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이를 불이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낮은 확률로 옥상과 인접한 17층에 불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17층에 도착하기 전, 버튼을 눌러 불을 꺼주십시오. 그 후 지상 16층부터 지하 3층까지 다시 한 번 역순으로 전층을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을 시 귀하께서는 17층에 도착하시게 되며, 부서진 난간 너머로 하차합니다.


셋째, 첫째 수칙을 따르신 후, 불이 들어온 층수를 모두 눌러 불을 꺼주십시오.

이어 다음의 순서대로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누르는 도중 급정지, 극심한 소음, 신체 부위가 갑작스럽게 가려워지는 증상 등으로 지시를 따르는 데에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는 관계로 2번 반복하여 드립니다.


지하 3층 - 9층 - 5층 - 13층 - F층 - 1층 - 16층 - 16층 - 16층

지하 3층 - 9층 - 5층 - 13층 - F층 - 1층 - 16층 - 16층 - 16층


귀하께서 버튼을 알맞게 누르셨을 경우, 엘리베이터 내 전력이 복구되며 거울에 변화가 발생합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통상적으로 아래의 순서를 따르나, 이따금 예외가 있사오니 음성을 주의 깊게 청취하시어 지시에 따르시기 바랍니다.



일, 검고 반짝이는 것에 귀하의 모습이 무수히 비칠 경우

귀하는 관찰당하고 있습니다. 비명을 지르거나 거울을 파손하려 하는 등 자극할 경우, 그는 귀하께 매우 실망할 것입니다. 그를 과하게 만족시켜서 좋을 것은 없지만, 그를 실망시킬 경우 더더욱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옵니다. 침착을 유지하며 그에게서 10초 이상 눈을 떼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해당 상황의 경우 지하 3층을 누르신 후, 거울을 다시 한번 확인하십시오. 상이 바뀌었다면 다음에 안내될 지시를 따라주시되, 바뀌지 않았다면 상이 바뀔 때까지 반복하여 주십시오.


이, 일상적인 공간이되 그 구성물이 익숙지 않은 공간이 비칠 경우

만원 지하철, 잡화점에서 도둑질을 하는 손님, 옷가지와 신체 일부가 물에 떠 있는 냄비 안, 수증기로 자욱한 세탁소, 귀하의 방향을 일제히 바라보는 학생 무리, 어두운 밤거리, 연주회장의 붉은 커튼, 저울을 든 거뭇한 그림자, 모여 앉아 손뼉 치는 이용자와 사서, 병상에 누워 거멓게 시든 왕의 모습 등이 보일 수 있습니다.

수칙의 근간은 침묵입니다. 그들의 주의를 끌지 마십시오. 탈출 시도, 버튼을 누르려는 시도, 공격 행위 일체를 삼가며 상이 바뀌기를 기다리십시오.


삼, 세탁기, 바닥 깔개 등 잡동사니들이 보관된 창고가 보일 경우 

前 정■지 사원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그는 틈바구니에서 알을 확보한 후 극도의 폭력성을 내보일 것입니다. 세탁기가 찌그러질 때까지 알을 부딪히고, 벽에 던지고, 발로 밟고, 라이터로 지지고, 손톱이 깨질 때까지 긁어댑니다. 알 표면에 닿은 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흠집 하나 나지 않습니다.

그는 무의미한 폭력을 포기하고 알을 확보하여 귀하의 방향으로 걸어올 것입니다. 그가 귀하와 눈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으나 이는 착각에 불과합니다. 그가 거울 밖으로 완전히 벗어나기 전, 17층 버튼을 대신 눌러주십시오.


사, 옥상의 풍경이 보일 경우

사위가 어둡지만 부서진 곳 없이 온전한 난간을 배경으로, 前 정■지 사원과 故 송재원 사원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前 정■지 사원은 난간에 기댄 채 알을 든 손을 허공으로 쭉 뻗고 있으며, 故 송재원 사원은 그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때 귀하의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거나, 어렴풋이 윙윙대는 소리, 고함, 웃음소리, 욕설이 들릴 수 있으나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들을 이해하거나 주의를 끌려는 일체의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지켜보십시오. 곧 故 송재원 사원이 前 정■지 사원을 향해 달려들 것이며, 동시에 낡은 난간은 두 사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추락할 것입니다. 

승강기의 급락에 유의하시기 바라며, 즉시 지하층을 제외한 모든 층의 버튼을 마구잡이로 누르십시오. 지상의 층이라면 어떤 층이라도 괜찮습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추락하기 전 신속하게 완수해야 합니다.


오, 거리가 비칠 경우

추락 전 무사히 버튼이 활성화되었다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아래의 풍경을 관찰하실 수 있습니다. 승강기의 속도 또한 정상적인 운행 속도보다도 느리게 감속되었을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기이하게 꺾인 故 송재원 사원의 시신과 그 옆을 구르는 알, 그들을 둘러싼 '미화원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조그만 크기에 형광 줄무늬를 띤 그것들은 구세대 왕가의 마지막 혈통이자 현대의 왕인 기업가를 목도하는 첫 증인입니다. 그들은 영광스럽습니다. 그들은 환호합니다. 모두가 잠든 밤의 침묵을 그들의 기쁜 웅성거림이 깨뜨립니다. 알에서 막 깨어난 새로운 지도자는 왕성하게 피를 흡수합니다. 곧 껍질을 완전히 벗고 故 송재원 사원의 육신을 완전히 취합니다. 과거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충실한 직원이었던 故 송재원 사원은 비로소 보답받습니다.

바닥에 너무 가까워지기 전, 1층과 지하를 제외한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미화원들'은 귀하까지 반길 이유가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잠시 덜컹거린다. 그 후 부드럽게 올라가는 감각이 느껴진다.)

(손등이 간질거려 확인하자 날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니고 있다. 손 끝으로 퉁기자 그 다른 손에도 벌레가 붙어있다. 바닥이 거멓게 굼실거린다. 분명히 밀폐된 공간일진대 거울 틈, 사면의 선, 버튼 틈새, 비상버튼 인터폰의 구멍으로 크고 작은 벌레가 쏟아진다.)

(날벌레는 일제히 비상하여 시야를 가리고 기는 것은 사방을 뒤덮기 시작한다. 코와 귀로 벌레가 새어드는 느낌에 미친듯이 손을 휘두른다. 틈새로 보이는 거울은 기괴한 영상을 비추고 있다.)

(세탁기에서 점프슈트 차림의 인간이 쏟아져 나오며, 길고 붉은 머리칼을 지닌 자가 기어나온다. 잡동사니 틈새를 비집고 노란 유니폼을 입은 자들과 붉은 유니폼을 입은 거대한 것이 걸어나온다. 앞서 보았던 풍경들 속 기괴한 자들이 무수히 걸어나와 일상적인 공간을 짓밟는다.)

(와중에 음성은 이어진다.)


육, 뛰어난 수완으로 취임에 반대하는 인원을 모조리 축출하신 후 신규 취임하신 □□□ 대표이사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故 송재원 사원과 똑같은 외모의 남성이 대표이사실에 앉아있으며, 주변으로 직원들이 도열해 있다. 앉아있는 자세가 어딘가 엉성하며, 목을 쑥 빼고 입을 벌리고 있다. 침방울이 책상 위로 떨어진다. 본래 (주)개미싹 대표이사의 성명인 성■■이 적힌 명패는 표면이 긁혀져 나갔으며, 그 위에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무언가가 쓰여 있다.)

(무어라 웅얼거리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그는 본인의 손가락을 입 안에 넣더니 강하게 빨기 시작한다. 직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대부분은 기묘한 생김새이나, 몇몇은 현실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이다.)


칠, 입사를 환영합니다.

16층에 도착 후 사무실 앞 인터폰으로 연락하시면 인사팀 민도헌 사원이 계약서 작성 및 간단한 절차를 소개해드릴 것입니다.

기업이 활성화되어야 사회가 부흥함은 자명한 바, 대표이사님의 고결한 뜻에 따라 ■■의 부조리를 ■■하고 직원들을 ■■하며 ■■를 넓힐 사명을 부여받은 만큼 향후 업무에 성실히 임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다시 한 번 (주)개미싹의 가족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기업을 넘어 사회로, 사회를 넘어 현실로.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멈춘다. 칸 안을 가득 메운 벌레는 문이 열리자 밀물처럼 빠져나간다. 돌아온 전등과 흠결 없는 거울, 벌레의 시체 조각 하나 없는 엘리베이터 안은 여태까지의 과정이 모두 환각인 양 지극히 일상적이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퇴로를 차단당한 듯한 느낌에 비상계단을 기웃거렸으나, 위층과 아래층으로 통하는 계단 모두 이상하리만치 짙은 그림자로 뒤덮여 있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복도로 복귀한다.

사무실 문을 밀어 연다. 관리부서는 언제나처럼 조용하다. 기존 직원들 대신 기괴한 얼굴의 개체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모든 것이 익숙하다. 나는 습관적으로...


▶ 조사팀


조사팀으로 향하는 도중 지나치는 탕비실에서 라면 냄새가 풍긴다. 반사적으로 참기 어려운 허기가 들었으나 빠르게 지나친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냄새는 빠르게 휘발된다. 조사팀의 명패가 보인다. 조사1파트는 기이할 만큼 텅 비어있으나, 2파트에는 몇몇이 드문드문 앉아있다.


▶ 조사3파트


익숙한 배치가 보이지만 몇몇 요소가 다르다. 자리에 권태롭게 늘어져 서류를 뒤적이는 목한솔 부장은 언제나처럼 누가 들어오든 쳐다보지도 않지만, 권준호 대리의 자리였던 곳은 집기가 말끔히 치워져 있다. 한 때 비어있던 자리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으나 자리 곳곳에 서리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의 옆자리 책상에는 동그마니 갈색 원이 남아있다. 한때 누군가가 화분이라도 둔 듯하다.

업무를 보던 사원이 쭈삣쭈삣 고개를 들어 침입자를 쳐다본다. 커다란 덩치가 묘하게 익숙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낯익은 얼굴에 말을 잃는다. 오랫동안 봐 온 얼굴을 다시금 마주할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어쩌다 마주친 얼굴을 보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한 탓이다.


▶ 뒷걸음질 친다.

▷ 아는 체를 한다.

▷ 이 곳이 현실이 아님을 일깨운다.

 

등 뒤로 누군가 부딪히는 감각이 느껴진다. 어디서 본 듯도 싶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흔한 얼굴이다.


▷ 그를 걷어차고 도망친다.


시도하려는 찰나 그는 불쾌한 접촉은 일절 없었다는 듯 본인을 인사팀의 민도헌 사원이라 소개한다. 그는 따뜻한 환영 인사를 건네며, 말씀도 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본인 파트를 찾아오셨느냐 너스레를 떤다.


▶ 침묵한다.


일상적인 반응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으나,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듯 신규 입사자는 대표이사의 면담을 거쳐야 함을 알린다. 본래 내가 알던 회사는 이런 짓을 하지 않거니와, 일개 조사팀 직원이 대표이사실에 드나들 사유는 없으나······.


▶ 그의 뒤를 좇는다.

▷ 도망친다.


그는대표이사실을 노크하고는 문을 열고 손짓을 한다.


▶ 들어간다.

▷ 도망친다.


들어서자마자 고약한 악취가 풍긴다. 조사 경력으로 냄새의 정체가 살 썩는 내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챈다. 

평생을 보고 산 익숙한 얼굴은 얼굴과 손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살과 피 때문인지, 보자마자 침방울을 뚝뚝 흘려대며 눈에 광채가 도는 면상 때문인지 영 본인이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실종된 형의 실마리를 잡았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지마는.


▷ 공격한다.

▶ 바깥을 살핀다.

▷ 받아들인다.


창 밖은 흐리다. 들어왔던 문을 되돌아보니 눈 여러 쌍이 안을 주목하는 것이 창 너머로 보인다. 임주아 차장님, 지구별 과장님, 구영빈 대리님, 민규원 사원, 한세람 사원.

코 앞까지 다가온 냄새에 고개를 돌린다. 인간의 구강구조로는 도저히 벌어질 수 없을 크기로 활짝 벌어진 입이 보인다. 출처를 알 것만 같은 이물질이 이빨에 덕지덕지 끼어있다.


▷ 도움을 청한다.

▶ 현실을 직시한다.


······.


▶ 점화한다.




지켜보던 얼굴들은 어느새 다가와 문을 두들기고 있다. 문이 터져나갈 듯 발작적으로 들썩였으며, 실제로 부서지기 얼마 남지 않았다. 살이 타는 냄새가 매캐해 눈물이 나왔으나 멈추지 않았다. 



▶ 창문 방향으로 그를 이끈다.

형이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인질극을 하는 것처럼 그를 붙들고 창가로 간다. 맞닿은 살이 뜨거워 손 아래로 몸을 뒤틀며 발광하고 있다. 몸부림 치며 부딪는 손톱과 뼈에 맞을 때마다 살이 패이고 뼈가 덜걱인다. 마침내 문이 폭발하듯 부서져 나가고 좁은 틈새로 아는 얼굴과 모르는 면상이 꾸역꾸역 밀려들 때 우리는 창밖으로 몸을 기울이고 몸을 빼내어 마침내 그 때 하지 못했던 일을 기어코······.




해내려 한다.

▷ 추락한다.








본편은 이로써 완결입니다. 이게... 완결...? 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짤막한 후일담이 에필로그로 마련되어 있으나, 몇몇 분들께 답글로 말씀드렸듯 딱 사족에 계륵이므로 참고 부탁드립니다.

어찌되었건 본편은 이걸로 끝을 맺었다는 사실...! 여기까지 함께 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특히나 완결 편을 쓰기 전 무통보 잠수에... 아주 가지가지 폐를 끼쳤음에도 묵묵히 기다려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에필로그까지 연재를 마친 후 후기로 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늦어서 거듭 죄송하고...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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