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 햇빛 

백일천자 63

1097자 

 눈을 뜨면 느껴지는 따스한 공기가 좋다. 미세한 공기 입자들이 전해주는 햇빛의 따스함이 내 몸에 닿으면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아직 데워지지 않은 차가운 공기를 허파에 가득 채우는 것도 기분 짜릿한 일이지만 이런 따스한 햇살이 나를 깨울 때까지 내버려두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두어 번 뜨면 세상은 황금빛이 되어있다. 따스하고 안락한 빛은 나를 감싸고, 내 침대를 감싸고, 내 방바닥에 다시 반사되어 내 가구들까지 빛을 뿜게 한다. 햇빛의 마법이다. 하지만 이런 마법은 오래가지 않는다. 얼굴을 묻었던 폭신한 이불에서 벗어나고 이불을 정리하고, 한 10분, 20분 정도가 되면 세상은 내가 알던 곳으로 돌아온다. 똑같은 빛을 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에 적응한 나의 눈은 이 사물들이 더 이상 나를 반기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를 기다리는 것을 상기한 뒤에는 그저 의무감과 아침 시간을 날려보냈다는 죄책감이 내 몸을 알아서 움직이게 하도록 내버려둔다. 

 하지만 가끔, 내가 해야 할 일이 없거나, 혹은 몇 시간 뒤로 미룰 수 있을 때면 다는 다시 소파나 침대 이불 속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러고 눈을 깜박이면 아직 이불 속에 남아있던 내 몸의 온기는 마법을 부려 나를 그 황금빛, 포근한 빛을 뿜는 세상으로 데려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 것 뿐인데도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작 이불 속에 들어가있는 것인데도 마치 태초의 태양의 따사로운 빛을 만끽하며 뜨뜻하게 데워진 지구의 수면 위에 떠다니는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공기 입자들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면서, 저 입자 속의 새로운, 혹은 수억년은 되었을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상상하고, 빛줄기들을 보며 빛을 타고 올라가 따끈한 태양에 몸을 파묻어버리는 상상도 한다. 혹은 온 세포 하나 하나의 힘을 쥐어짜 최선을 다해 침대에 눕고, 다시 온 몸의 털을 바짝 세워 태초의 지구-침대의 감각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다. 늦은 오전의 태양의 마법은 나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만든다. 

눈을 감고 세상을 보다. 무지한 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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