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회지 내는 용으로 연재하고 유료발행 돌린건데 이런저런 개인사정이 있어서 2021넌 디페스타 때나 회지를 뽑게 생긴 비운의 작품(...)입니다. 3화부터는 유료입니다.


※ 작가가 이거 쓸 당시 한그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1부 기준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Fate/FGO] 칼데아의 오늘의 밥상






Written by 하나린Hanarin






보글보글.


오늘도 칼데아의 주방은 가스불의 열기 때문에 훈훈했다. 짙은 갈색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붉은 아처는 끓이고 있던 국을 조금 퍼서 맛을 보더니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인리계속보장기관 피니스 칼데아. 통칭 칼데아. 인리를 되찾기 위한― 즉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기관이다. 마술왕에 의하여 2015년 이후의 인리가 소멸당한 지금, 칼데아는 그야말로 인류의 최후의 희망의 등불을 들고 있었다.


이 지구에 생존자라곤 칼데아에 있는 직원들이 전부다. 그러나 칼데아는 수호영령소환시스템 페이트를 이용하여 수많은 영령들을 서번트로서 소환했다. 인지를 초월한 힘을 가진 영령들이라면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리하여 칼데아에는 백수십 기의 서번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생존자가 스무 명 남짓밖에 없었던 칼데아였지만, 인류 최후의 마스터 후지마루 리츠카가 연달아 영령을 소환하는 것에 성공하여 현재는 이렇게 북적이는 대가족이 되었다.


당연히 먹을 입도 늘어났다. 인리 붕괴 초기, 레프 교수의 음모로 인하여 47명의 마스터를 포함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덕분에 칼데아는 늘 인력이 부족했다. 주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번트가 소환되며 인원은 계속 늘어나지만 요리사 수는 한정적이었다. 서번트들이 먹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나, 그들도 생전에 사람이었던 만큼 음식을 먹으며 맛을 즐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처는 칼데아의 주방장과 같은 존재였다. 주방장이다, 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아무도 그를 주방장에 임명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처도 어째서 자신이 매끼 요리를 맡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식사시간마다 요리사들이 바빠 보이길래 아처는 미력하나마 거들겠다고 나섰다. 어차피 특이점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아처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 점차 그를 찾기 시작했다. 요리사들도 아처에게 지시를 구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주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맡게 된 위치이나 아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이제는 주방장을 넘어 칼데아의 엄마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다소 낯부끄러워지는 별명이기에 이것만큼은 그만둬주었으면 좋겠다고 아처는 생각했다.



“좋아, 완성이다.”



아처는 가스불을 끄고 냄비에 뚜껑을 덮었다. 아처는 오늘도 요리를 한다. 이것은 그를 둘러싼 왁자지껄한 일상의 한 페이지. 인리를 수복하기 위한 격전들 사이에 숨어있는, 자그마한 평화로운 날들이다.






01. 마슈의 크로와상 샌드위치






아처는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서있었다. 오늘의 저녁밥은 차가운 오챠즈케다. 주방의 한 편에 걸려 있는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을 만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나, 차가운 오챠즈케를 먹기 위해서는 미리 다싯물을 끓이고 식혀놓아야 한다. 그 때문에 아처는 오늘따라 조금 일찍 주방에 나와 요리를 하게 되었다.


다싯물이 완성될 즈음이었다.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주방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아처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



“에미야 선배, 여기 계셨군요.”

“마슈인가. 무슨 일이지?”



주방을 찾아온 사람은 짧은 보랏빛 머리카락에 안경을 쓴 가진 소녀, 마슈 키리에라이트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주방으로 들어왔다.



“부탁이 있어서 에미야 선배를 찾아왔어요.”



마슈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결심했는지 허리를 푹 숙이며 외쳤다.



“저에게 요리를 가르쳐주세요!”

“요리?”

“네. 늘 저희가 먹을 요리를 하시느라 바쁘신 에미야 선배께 부탁을 드리게 되어 염치가 없지만요…….”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어차피 식사 준비 시간까지는 2시간 이상 남았기에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아처는 갑작스럽게 요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마슈의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가르쳐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왜 갑자기 요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거지?”

“그게… 선배에게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마슈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떨어뜨렸다.



“선배는 수십의 서번트를 통솔하는 유일한 마스터로서 늘 무리하고 계세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선배를 격려해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힘이 되어드릴 수 없는 것 같아서 괴로워요. 적어도 맛있는 간식이라도 만들어드리고 싶어서…….”



아처는 그들의 마스터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그 작은 소녀는 인류의 미래를 등에 업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실패는 인류의 실패였고, 그녀의 죽음은 인류사의 멸망이었다. 부담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마스터― 후지마루 리츠카는 언제나 웃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늘 곧게 서있었다. 사실은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텐데도.


아처는 마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또한 리츠카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마스터에게 줄 간식이라도 만들어 볼까?”

“아, 네! 감사합니다!”



마슈가 환한 얼굴로 반색하며 외쳤다. 아처는 마슈에게 여분의 앞치마를 내어주었다. 앞치마를 착용한 마슈는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무엇을 만드는 게 좋을까요?”

“음… 요리는 처음인 거지? 그렇다면 간단한 것부터 하는 것이 좋을 거다. 간식이라면 샌드위치도 괜찮겠군.”

“그럼 샌드위치로 부탁드릴게요.”



아처는 여러 가지 샌드위치를 머릿속에서 떠올려보았다. 계란 샐러드 샌드위치, BLT 샌드위치, 치즈 파니니……. 하지만 역시 간단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이것이다.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만들어 볼까.”

“크로와상이요?”

“그래. 식빵으로 만든 것도 맛있지만, 크로와상을 쓰면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어.”



크로와상이란 페이스트리의 일종으로 초승달 모양을 한 빵이다. 파이처럼 겹겹이 쌓여있는 반죽이 특징이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냉동실에 크로와상이 몇 개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처는 크로와상을 꺼내 오븐에 넣고 낮은 온도를 맞춰 해동시켰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양파, 햄, 치즈, 상추, 토마토, 버터를 꺼냈다. 아처는 마슈에게 칼과 도마를 건넸다.



“나는 토마토와 상추를 씻고 있을 테니 양파를 썰어 봐라. 껍질을 벗기고 둥근 모양으로 얇게 썰면 된다.”

“아, 네!”



마슈는 비장한 각오를 담은 얼굴로 양파를 손에 쥐었다. 아처는 순식간에 토마토와 상추를 씻고 물기까지 털어낸 후 마슈가 양파와 씨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슈는 양파를 다듬어보는 것도 처음인지 어디부터 손대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양쪽 끝을 칼로 자르고 겉의 갈색 껍질을 벗겨내면 된다.”

“감사합니다.”



마슈는 아처의 지시대로 양파 껍질을 벗겨냈다. 그리고 어색한 손짓으로 식칼을 들어 양파를 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난관에 부딪혔다.



“저, 에미야 선배……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요. 몸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요.”



마슈가 훌쩍이며 칼질을 멈추었다. 아처는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양파를 자르면 누구나 다 그렇게 되니까.”

“그, 그런 건가요? 양파라는 것은 무서운 채소였군요. 머릿속에 입력했습니다.”

“뭐,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긴 하지만…… 아, 손으로 눈을 비비지 마라. 눈이 더 따가워질 거다.”



그 와중에도 주의사항을 상세히 말해주는 것이 칼데아의 엄마라는 별명에 더없이 어울렸지만 아처는 애써 외면했다. 마슈는 토마토도 둥근 모양으로 잘라 재료 손질을 마쳤다.


아처는 오븐에서 해동된 크로와상을 꺼냈다. 양파 손질을 끝낸 마슈에게 크로와상과 버터를 주며 말했다.



“이제 크로와상을 세로로 반을 자르고 안쪽에 버터를 발라라.”



마슈는 아처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아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순서를 말해주었다.



“그 안에 상추, 양파, 토마토, 치즈, 햄을 겹겹이 쌓으면 된다.”

“네. 어, 혹시 이걸로 끝인가요?”

“그래. 간단하지?”

“네! 이 정도라면 다음 번에는 혼자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슈는 완성된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조심스레 포장했다. 바로 리츠카에게 가져다줄 생각인 것 같다. 아처는 샌드위치만 먹으면 목이 막힐 것 같아 냉장고에 들어있던 팩 우유도 챙겨주었다.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에미야 선배.”

“별거 아니야. 다음번에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가르쳐줄 수 있어.”

“에미야 선배는 정말 상냥하신 분이시네요.”



마슈가 생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처는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말로 상냥한 것은 너 같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을 상냥하다 부르지.”

“상냥함이라는 것을 그렇게 정의한다고 해도 에미야 선배는 상냥하신 분이에요. 왜냐하면 마스터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이 샌드위치는 에미야 선배와 제가 함께 만든 거니까요.”

“…….”



입을 다문 아처를 보며 마슈가 인사했다.



“그럼 저는 선배에게 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아처는 마슈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상냥하다는 흔하디흔한 문구가 어째선지 그의 마음을 조금 낯간지럽게 하였다. 하지만 가끔은 상냥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아처는 픽 웃음을 흘렸다.





아무거나 끄적이는 잡덕 글러입니다

나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