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 비추는 것이 물인지 바람인지 모를. 그리도 맑고 투명하여 날카로운 것. 온통 그러한 것들이 가득한 설원에 그대는 발끝을 디뎠다. 그 무엇도 걸치지 않은 발은 투명한 눈 위에 닿았다. 이내 새빨간 치맛자락이 흩날린다. 나비가 날개를 움직이듯, 폭풍이 나뭇잎을 떨어트리듯.

 그대는 나를 보려 조차 않고 그저 사뿐히 움직인다. 그 흔한 악사 하나 없이, 설원에는 오직 그대라는 무희뿐이다.

 

화려했던 어여머리는 없고 단정히 쪽을 지은 것, 내 사랑해 마지않던 먹빛의 머리가 찬찬히 움직인다. 내 손수 꽂아주었던 은빛의 비녀와 붉은 동백만이 그대의 먹빛 머리칼을 수놓는다. 내게 전해지는 온기라고는 내 품에 들린 그대의 비단신 뿐. 그대는 저 멀리 핏빛 치마와 함께 춤을 춘다.

 아득한 기억이 그대와 내 사이에 있다. 그대의 발목을 잡았던 더러운 손길들, 내 시선을 가로막았던 높다란 담장들. 이제 그런 것들은 날카로운 눈송이에 찢겨지고 없다. 그대의 춤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낭자. 이제 그대의 춤을 막을 이는 없소. 그대를 향한 나의 시선을 막을 이도 없소. 이 차가운 눈밭 위에 그대의 맨발이 닿아도 나무랄 이 하나 없소. 낭자, 이제는 나를 보오. 나를 향해 자유로이 웃어주오.


 

그대의 발끝이 자유로이 움직인다. 그 누구도 아닌 그대만을 위한 그대의 춤. 장옷조차 걸치지 않고, 날선 겨울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그대는 자유를 춤춘다. 눈을 닮은 백색의 저고리, 그 가운데 매달린 얇은 고름이 그대를 따라 춤춘다. 동백을 닮은 붉은 치맛자락이 그대의 발길을 따라 살랑인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하늘 아래, 그대의 발끝에 구름이 피어나고 그대의 숨결에 안개가 흩어진다. 어쩌면 나는 이 모습을 보고자 그대의 담장을 부쉈을까. 어쩌면 나는 이런 모습을 보고자 그대의 손을 잡았을까. 그리 하여 나는 내 모든 것을 버렸을까.

 

악사 하나 없이, 관객이라고는 나뿐인 이곳에서 그대는 춤을 춘다. 그대의 손끝에는 떨림 하나 없고, 그대의 입술 끝에는 망설임이라고는 하나 없다. 그래, 그대는 이리 자유로운 사람이었거늘.

 그대는 끝내 나를 본다. 그대의 손길이, 그대의 발길이 어느새 춤의 마지막을 알리고 그 마지막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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