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치고 해가 떴다. 어제까지는 눈 위로 눈이 내려 겨울이 한껏 몸집을 키우느라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술과 음식은 충분해서, 저택 안의 하인들은 눈폭풍이 마른 덤불을 할퀴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가게도 열려있지 않을 것 같다고 쑥덕거렸다. '저 밖으로는 서리 할아버지와 함께 간다고 해도 돌아오지 못할 거야.'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끄덕인 사용인들은 바쁘게 창문을 걸어 닫았다. 실제로 아무도 나가지 못했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다.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는 까라마조프 가의 핏줄들에게 완벽한 이유가 되어 준 셈이고, 어쩌면 오늘 저녁의 만찬을 함께 하고 싶지 않아 하루 즈음 더 눈의 세상에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

며칠 내내 거친 바람을 타고 내린 눈은 서재의 창틀에 바람의 모양대로 쌓여 있었다. 자신의 침대로 쏟아지는 햇빛이 너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던 메이드는 서둘러 서재로 향했다. 눈이 쏟아지는 동안 까라마조프의 저택 안에서 홀로 귀중하고도 평온한 시간을 보낸 둘째 도련님은 해가 뜨고 집안에 활기가 돌기 시작하자 서재를 떠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으리라. 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마자 서재로 달려온 메이드는 등불의 탄내를 날리기 위해 얼어붙은 창문을 힘주어 열었다. 자그마한 몸으로 온 힘을 써서 창문을 열자 보이는 건 천처럼 흘러내려 반짝이는, 저택 곳곳을 눈 아가씨의 숄처럼 덮고 있는 눈과 빛의 향연이었다.

"눈에 반사된 빛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멀어버려. 알고 있을텐데."

꺅. 놀란 메이드가 작게 내비른 비명이 서재 안의 책들에 부딪혀 사라졌다. 어두운 서재 안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지혜로운 도련님의 말대로 눈에 무리가 간 것은 분명했다. 아, 도련님이 분명 방으로 돌아가셨을 시간이라 생각하고 달려왔는데, 여기 계셨네요. 이를 어쩌나. 서재 안이 곧 들쥐도 죽을 정도로 공기가 탁하더라고요. 요 며칠 환기를 못 시켰으니까. 들쥐는 밖에서 얼어 죽을 뻔 했을까요... 빠르게 머리 속을 내달리는 여러 문장을 뛰어넘고 나오는 첫 인사는 꽤나 담담했다.

"날씨가 참 좋아서요. 죄송합니다. 여기 계신 줄 몰랐어요."

제법 어른스럽게 말을 하며 허리를 숙이는 메이드는 까라마조프 가의 둘째 도련님이 서재 한 켠에서 자신의 호들갑을 다 지켜보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듯 했다. 이 곳은 겨울이 오면 땅이 얼어붙는 일은 예사고 바다도 얼어붙는, 모두가 술을 마셔야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나라가 아닌가. 평생 지겹도록 쌓여있는 눈을 보고 경탄을 터트리는 저 모습이 순수일까. 생각을 만년필로 쓰고 있었다면 분명 잉크가 종이를 망칠 정도로 오래 세상이 멈춰 있었다. 그러다 문득 도망치지 않고 이 저택에 남아있는 귀한 메이드의 눈이 혹여 멀어버릴까 주의를 주었을 뿐인데, 그녀는 자신의 비명도 깜빡 잊은 것처럼 자세를 바로 했다.

"따뜻한 차가 필요하겠어."

죄송하다는 인사는 필요 없다는 의미였지만 메이드는 그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고 다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잠시만요, 네. 창문은 아직 닫으면 안 되니 이 담요를 꼭 덮고 계세요. 빠르게 속삭이듯 말하며 담요를 덮어주는 손은 얼음처럼 서늘했다. 눈토끼처럼 빠르게 서재를 빠져나간 메이드의 갈색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났다.

***

경탄이 나올 정도로 창 밖이 아름다운가. 따뜻한 차를 기다리며 창 밖을 바라보던 둘째 도련님의 뒤로 '흠흠', 작게 인기척이 들려왔다. 숨을 고르는 메이드는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티 테이블 위에는 워머를 덮은 티포트.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차. 그리고 딸기 타르트가 놓여 있었다.

따뜻한 차가 필요하겠어, 도련님의 이 말을 듣자마자 메이드는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자 크리스마스 아침에 보내달라 부탁했던 딸기 타르트가 때맞게 도착했고, 충실한 메이드는 밤새 논문을 읽었을 둘째 도련님을 위해 타르트를 곧바로 챙겼다. 크리스마스에 날이 딱 맞게 개다니, 주님 감사합니다. 눈이 그치지 않았다면 내일 저녁 정도에 냉동 딸기 타르트를 받을 뻔 했어요. 속으로 입맞춤을 섞은 기도를 하늘로 날려보낸 메이드가 티 트레이를 밀며 한 번 폴짝 뛰는 모습은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정한 이리나의 마음이 이반의 눈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뿌듯한 얼굴의 메이드와, 수색이 아름다운 홍차와, 반짝이는 딸기 타르트. 이어지는 평화로운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 이반 도련님."

"이게 눈 아가씨의 선물인가?"

"네. 식사 전에 디저트는 안 되지만, 오래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단 음식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크리스마스니까, 봐 드릴게요."

웃음과 뿌듯함에 섞인 메이드의 맹랑한 말에 이반도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서늘한 손, 빛을 받으면 황금같은 머리카락, 다정한 선물. 싸늘한 까라마조프 저택에도 찾아온 스네구로치카.

"메리 크리스마스, 이리나."

마주 돌아오는 다정한 인사에 서재의 창문을 닫는 메이드의 얼굴이 붉었다. 그녀의 손 위로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겹쳐졌다.

오늘은 사랑해도 녹지 않을 거야. 크리스마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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