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로써의 삶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행위와 같다. 적의 시체를 거름으로 자신의 삶을 증명하고, 임무를 해내는 것으로 자신의 역사를 증명하고, 느끼는 감정으로 자신의 인격을 증명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음에 존재는 증명된다.

나의 경우에는, 그래. 리리 아마란타인, 그녀가 나의 존재 증명이다.

그녀와의 첫 만남이 순탄치많은 않았다. 나에게 그녀는 그저 최근에 조직에 들어온 꼬마 아이일 뿐이었고, 보스의 지시로 그나마 같은 나잇대였던 내가 행동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녀는 본능의 덩어리 같았다.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하기 싫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통제는 가능했기에, 나는 서서히 그녀를 다루는 방법을 알았다. 당시의 나는 영리하다기 보다는 영악했다. 자신이 가진 정보를 토대로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결국 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간부들은 내게 그녀와 파트너가 될 것을 명했다. 그녀에게 있어 나 자신이 가지는 의미는 별로 없었기에, 파트너라는 입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쾌히 승낙했다.

결과만 말하자면 좋지 않았다. 아니, 좆된 거겠지. 몇 년간 그녀와 함께 하는 것, 그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의 변화와 그녀에 대한 내 인식. 그 두 가지가 결과를 망쳤다. 그녀는 더이상 내가 생각했던 본능에만 충실한 인간이 아니었고, 그녀 나름대로의 신념과 긍지, 자아가 있었다. 그녀에 대한 내 인식에 남아있는 것은 아집, 고집 따위의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새로 생긴ㅡ원래 있었을지도 모를ㅡ 것들에게는 일절의 관심조차 없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대화에서도, 행동에서도 자잘한 마찰을 빚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은 거의 대부분이 증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을 터였는데 그녀는 내가 쥐어준 증오의 크기만큼은 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의 고집에 주변에 힐끗 눈길도 줄 생각을 않았던 내가 그녀가 돌려준 것이 그저 조금의 불만 정도에 그쳤던 것의  이유를 알 턱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성장해 성인이 되었다. 다행히도 그녀와 나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임무에 참가하게 되었다.

리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잘 듣고 따르는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편'이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많았고 조금 성급했다. 그런 면 때문에 나는 주로 골머리를 앓았다. 우리가 맡은 잠입 임무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집에 그저 조용히 들어가서 사람을 사람이었던 것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임무. 하지만 얄궂게도 나와 그녀 모두 집 마당의 잔디를 밟자마자 일이 꼬였음을 알았다. 집에서 일어난 미미한 총성은 소음기로 가려져 있어도 두 사람의 귀에는 명확히 꽂혀 들렸다. 조급함이 일었다. 조금의 변수 정도는 고려하고 왔지만 상황 자체가 틀어질 거라곤 생각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흐르는 식은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리리는 조용히 숨죽이며 돌입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이상하게도 차분하게 되었고 고갯짓으로 좌측 창문을 가리켰다. 손으로 셋, 둘, 하나. 픽, 픽 하는 소음기로 억눌린 소리와 함께 소총탄이 검은 정장의 남자들에게 박혔다. 남자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열려있던 창문으로 뛰어든 우리는 서서히 잠입을 시작했다. 

온 집안이 조용하다. 방금 처리한 것들만 있는 게 아닐 텐데. 긴장감으로 인해 일어난 약간의 조바심을 가라앉히며, 2층에서 들렸던 총성을 확인해야 했기에 조심히 계단을 올라갔다. 꺾인 모퉁이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하얀 벽지에 튄 수많은 핏자국이 일방적인 학살을 연상케 했다. 지향사격 자세를 풀지 않은 채로 천천히 다음 문으로 접근했다. 문 너머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확인할 방법도,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약간의 도박을 걸었다.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고, 한껏 들이쉰 숨과 함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마주한 것은 이미 나를 향하고 있었던 다섯 개 정도의 총구였다. 검은 옷의 남녀 4명 정도와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흰 정장의 남자가 한 명. 아차 싶었다. 핏자국의 주인이 없었던 것을 의심했어야 했다. 욕지거리와 함께 소총을 난사하며 옆에 있던 소파를 엄폐물로 뛰어들었지만 총탄의 속도보다 빠를 순 없었다. 운 좋게 두 명 정도는 난사에 맞았는지 둔탁하게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를 꽉 물었다. 호흡이 가빴지만 어떻게든 침착하게 만들어야 했다. 왼쪽 어깨를 맞아서 소총을 더이상 쓰는 건 멍청한 짓이라 생각했다. 허벅지에 차 뒀던 소음기 권총을 쥐어들었다. 숨을 참고 일어나려 했던 순간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이 흩날렸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붉은색 머리칼이 시야에 들었다.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건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총구를 치켜들곤 격발했다. 순식간에 남은 세 명이 쓰러졌다. 

리리는 깨진 창문을 마저 박살내버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테라스는 어떻게 간 건지. 나 잘 했지, 하고 웃는 그녀가 싫지 않았다. 

HANVI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