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수해의 눈동자는 깊고 까만 편이었다. 속이 퍽 깊어 보여, 늘 들여다보게 되는 눈동자. 까맣지만, 부드럽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정운의 눈동자는 그와 반대로, 색이 옅고 빛이 잘 드는 편이었다. 늘 사람의 시선을 끄는 색이다. 빛이 정운의 눈동자에 들 때면,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을 주게 된다는 걸 정운은 알고 있을까. 수해는 숨기고 있는 속내를 알아내려 하기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그 빛 때문에 정운의 눈을 자꾸만 보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지는 하늘의 노을빛이 정운의 눈동자에 들어오는 걸 보았을 때부터?

   잠시 말이 없던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수해가 먼저 건드렸다.

   “정운 씨. 일정 없으시면, 우리 집에 잠깐 들러보실래요?”

   “집이요? 지금요?”

   “네. 지금요.”

   “가도 됩니까?”

   “그럼요.”

   잠시 고민하던 정운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카페를 나와 찬 공기를 맞으며 나란히 걸었다. 계절 탓인지 유난히 높고 먹먹해 보이는 하늘이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해가 지는 걸 볼 새도 없이 해가 져버리네요.”

   하늘로 하얀 입김을 뿜어내던 정운이 씩 웃으며 수해를 보았다. 수해의 시선이 정운에게 머무르다, 살짝 미소 지으며 바닥을 향했다.

   “이렇게 편하게 웃어주신 거, 처음입니다.”

   “그런가요. 밖으로 나오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나 봐요.”

   수해의 표정도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 나에게 영향을 주다니, 흔치 않은 일이다.


***

   동네에서 간단한 간식거리와 마실 것을 사 들고 수해가 새로 계약했다는 오피스텔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해가 정운을 곁눈질로 살짝 보았다.

   “긴장했어요?”

   “…조금?”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정운은 괜히 계기판의 층수가 바뀌는 것에 시선을 고정했다. 몇 번 오가면서 얘기 나눴던 사람의 집에 처음 가는데, 긴장을 안 할 리가 없지. 아무리 집들이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해도 사적인 공간이다. 더군다나 직업이 탐정인데, 쉽게 자기 집 위치를 알려줘도 되는 건가.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아무렇지 않은 기색으로 복도를 걷던 수해가 돌아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집에 손님을 초대한 건 처음이에요.”

   경계심도 없이, 정운의 코앞에서 번호 키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삑, 삑,삑, 삑.

   “이거... 제가 봐도 되는 겁니까.”

   수해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탐정 집 털어서 뭐 하시려고요.”

   문이 열리자 수해가 현관문을 한 팔로 짚은 채 고개를 돌려 정운을 잠시 바라보다 곧 미소 지었다.

   “들어오세요.”


   오피스텔에는 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입주를 제대로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침대 프레임도 없이 매트리스 한 장이 방 한구석에 덜렁 놓여 있었고, 좌식 테이블 하나, 휴지롤 한 묶음, 그리고 정운이 건네줬던 머플러가 매트리스 위에 놓여 있는 게 전부였다.

   “이게… 다인가요.”

   “네. 이게 다예요. 아직 좀 휑하죠.”

   정운은 포장해온 음식을 좌식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수해가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 데 망설임이 없던 이유를 깨달았다. 이곳은 개인적인 집이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잠시 거쳐 가는 거처라면 모를까. 거처라고 하기에도 너무 부족해 보이는 이 공간은 임차인이 누군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해 보였다. 내가 언제든 밀고 들어와도 아무 상관 없다 이거군. 엉거주춤한 자세로 정운이 어디 앉느냐고 묻자, 수해가 먼저 매트리스에 털썩 앉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내리쳤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딘가 어색한 자세로 정운이 매트리스에 주저앉았다. 가깝게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것이 처음이라, 정운은 수해가 옆얼굴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새삼스레 보았다.

   “어때요, 여기. 저 여기 집으로 삼아도 되겠어요?”

   “아직은 뭐가 많이 없어도… 점점 물건 들여오고 정 붙이다 보면 훨씬 나아질 거예요.”

   “음.”

   휑한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수해의 시선이 다시 정운을 향한다.

   “그럼 다음 번에 오실 때, 집들이 선물 하나 가져다주면 안 돼요? 방을 채울 수 있을만한 걸로.”

   화분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건가. 정운은 안타깝게도 주인이 잘 오지 않는 이런 원룸에 화분을 갖다 놓으면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센스 테스트인가. 수해의 요구는 마치 지금까지 지내면서 나를 얼마나 파악했는지 묻는 시험 같았다.

   “좋아요. 근데… 하나만 둬야 해요? 생각하다 보니 이것저것 다 두고 싶은데.“

   씩 웃는 정운의 얼굴에, 도리어 수해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뭘… 두고 싶으신데요.“

   ”미리 말하면 재미 없죠.“

   정운이 혼자 싱글대며 포장해온 음식을 풀었다.

   작은 동네에서도 의외로 이런 걸 판다며 정운이 추천한 메뉴는 오코노미야키였다.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 촉촉한 오코노미야키는 일본에서 먹어본 그 맛과 정말 비슷해서 내심 놀랐다. 작은 캔맥주를 가볍게 홀짝이며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동네에 있는 맛집 이야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던가. 낮이 되면 초등학교에 아이들이 등교해서 왁자지껄하다던가. 특별할 것도, 유난할 것도 없는 담담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오코노미야키가 금방 동이 났다.

   수해가 손목시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정운이 이제 돌아가 봐야겠다며 일어섰다. 요 앞까지 같이 가겠다며 수해가 코트를 집어 들고 따라나섰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편안한 시간이었다. 한 달만에 다시 만났는데도, 이야기를 주고받을수록 그 한 달이 금세 좁혀지는 것 같다. 가로등이 불을 밝힌 어둑한 골목을 걷다, 살짝 앞서가던 정운이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근데… 수해 씨. 오늘 진짜 거기서 잘 건 아니죠? 너무 아무것도 없던데. 이불도, 씻을 만한 것도.”

   수해가 가로등 불이 환한 원을 그리는 곳 한 가운데 멈추어 섰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올라 조명을 받은 배우 같았다. 

   “저 걱정돼요?“

   정운이 수해 쪽으로 몇 걸음 다시 다가와 수해를 마주보았다.

   ”걱정되죠. 불편하게 쪽잠 자는 거 아닌가 해서.“

   ”어쩌죠. 맥주를 마셔버려서 다른 집으로 운전해서 가지도 못하겠네.“

   수해가 하나도 곤란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빙글거렸다. 저렇게 웃는 걸 보니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한데. 그나저나 나는 왜 자꾸 이 사람에게... 잠시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던 정운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실래요? 침대를 같이 써야 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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