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 올렸던 단문 묶어 올려둡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박철 


나는 철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그건 내가 박철의 여러 얼굴을 보았다는 뜻이다. 철이는 보이는 게 다인 놈은 아니었다. 아, 오해 마라. 그는 보이는 대로의 꼴통이기‘도’했다. 박철은 잘 싸웠고 싸우는 걸 좋아했다. 자기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과시하길 즐겼고, 옆 동네나 모르는 학교에 쎈 놈이 나왔단 소문을 들으면 주먹을 붙여 보고 싶어 안달을 냈다. 오락실 게임기에 새 스테이지가 추가됐다 하면 새벽부터 나가 줄을 서고, 보스 스테이지를 깰 때는 부러 화려한 기술을 뽐내며 구경꾼의 경탄을 즐기는 오락실 폐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오락실에 사는 오락실 폐인과 달리 박철은 싸움만 하고 살진 않았다(그 점에서 그는 농구만 하고 산 나와도 달랐다). 박철에겐 여러 모습이 있었고 개중 하나는 놀랍게도 박식함이었다. 텔레비전이 그의 스승이었다. 박철은 자기가 일곱 살 때부터 금요일 밤 열 시에 하는 잡학 퀴즈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는 비밀을 내게만 살짝 알려주었다. 한 번은 나도 같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그는 패널로 나온 연예인들보다 빠르게 아르헨티나의 수도 이름을 맞췄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내가 깜짝 놀란 눈으로 보자 그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이어지는 퀴즈도 다 맞췄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이름도,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어를 브라질을 포르투갈어를 쓴다는 사실도 박철은 알았다. 각각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였기 때문이라며, 중학교에서 퇴학당한 놈이 사회 선생님처럼 설명도 해 주었다. 

내가 재미있어하자 그는 신이 나서 - 철이는 내게 감탄을 사면 유독 즐거워했다 - 간단한 스페인어도 해 보였다. 안녕은 홀라, 잘 가는 아디오스. 다음에 보자는 아스따 루에고. 그 말도 퀴즈 쇼에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알고 보니 박철이 퀴즈 쇼 다음으로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일요일 오후 두 시의 세계여행 가이드였다. 너만 알고 있으라고 당부하며 박철은 그날 침대 밑 작은 라면 상자의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그 상자엔 여러 종류의 여행 잡지가 들어 있었다. <트레벨러 매거진: 부에노스아이레스 특집> <여행 스케치: 아이슬란드 완전일주> <배낭여행 가이드: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에 가다> …잡지사 로고가 찍힌 부록 엽서 몇 장과 낡은 외국어 회화 가이드북도 있었다. 

그걸 보니 내게도 생각나는 게 있었다. 다음날 나는 평소의 학교 가방 대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박철네에 갔다. 배낭을 거꾸로 뒤집자 철이네 거실에 아빠가 모아온 여행 잡지와 기념엽서, 기념품이 우르르 쏟아졌다. 하와이 조가비랑, 마오리족 나무피리랑, 자유의 여신상 모형이 달린 열쇠고리. 태국 전통 문양 향초. 가족여행에서 산 물건은 뭐라고 설명도 해 줬는데, 가이드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내가 잊어버린 로마 마그넷에 그려진 건축물의 이름을 박철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콜로세움이네.” 잡지 사이에서 우리 가족의 여행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되기도 했다. 하와이, 뉴질랜드, 이탈리아, 태국, 미국, 프랑스 곳곳에서 카메라를 보고 브이 자를 든 엄마, 아빠, 그리고 순수하던 시절의 어린 나. 사진 속 나는 지루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는 모습이다. 그때 내 관심은 농구뿐이었고 숙소에 들어갈 때마다 얼른 집에 가서 농구하고 싶단 말로 엄마 아빠의 흥을 깼었으니까. 철이는 내게 여행 얘기를 해 달라고 했지만 내가 재미 없어서 다 잊어버렸다고 하자 실망했다. 철이가 그럼 이 사진들을 가져도 되냐고 물어서, 나는 그러라고 했다.




박철의 봄여름가을겨울봄


박철은 꿈을 꾸었다. 자기 전에 읽던 웹소설 주인공처럼 회귀자가 되는 꿈이었다. 스트레스풀이로 깔아서 무료 100연차를 돌리고 지운 싸구려 모바일 게임 시작 화면 같은 새하얀 빛의 방에 그는 서 있었다. 

네 개의 문이 보였다. 

게임 나레이터가 말했다. 

네 개의 문은 회귀자님께서 살아오신 삶의 어느 지점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문을 열면 그곳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죠. 지금 아는 것을 전부 아는 채 그때로 돌아간다면 많은 게 달라질 거예요.

많은 게 달라진다라, 하긴 내일모레 마흔인 박철의 인생이 진창 꼴인 건 상당 부분 앞일 생각 않고 내린 멍청한 결정들 때문이었다. 신문 뉴스를 즐겨 보지 않고 경제 정치 따위에도 어두운 박철은 과거로 돌아가도 웹소설 주인공처럼 주식매매와 땅 투기로 떼부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뭐라도 용을 쓰면 지리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낫게 바꿀 수 있겠지. 

첫 번째 문에 다가가자 문틈으로 새나오는 한기에 뼈가 시렸다. 칠 년 전 겨울밤 교도소 창에서 흘러나오던 한기였다. 적대 조직 출신 방장에게 패해 방 서열 꼴찌가 된 박철은 외풍 드는 창가 자리에 이불을 깔아야 했다. 그 해 겨울은 삼십 년만의 한파였다. 이 문을 열면 그 뼛골 시린 비참을 피할, 전과자의 붉은 낙인을 등에 인 삶을 피할 길이 열리리라. 

두 번째 문 앞엔 빨간 낙엽이 흩어져 있었다. 낙엽에서 은은한 동전 냄새가 풍기는 것이 깜빵가기 이 년 전 가을이구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일한 재산인 집을 같잖은 사기에 날려먹은 계절. 사기꾼 새끼 족치겠다고 사시미칼 품에 숨기고 뒷골목을 전전하다 박철의 인생은 한층 깊은 어둠으로 떨어졌다. 평생 산 집을 잃고 여인숙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집을 보전했더라면, 날릴 돈으로 작은 가게라도 차렸더라면 하고 어찌나 후회했던지. 

세 번째 문틈에선 청량한 여름 그리고 유년의 냄새가 났다. 여름은 고아의 계절. 그 여름 전까지 박철은 누군가의 아이였다. 찌는 더위를 얼음물과 하드로 달래던 나날이라, 집나가기 전 부친은 냉동실 가득 하드를 채워두었고 떠나기 전 모친은 빙수를 한 그릇 만들어주었다. 어색한 친절에서 죄의식을 감지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뻣뻣한 어린애보다 오늘의 박철은 훨씬 뻔뻔해, 부모 있는 집 아이로 한 생 다시 살아 보기 위해서라면 눈물이든 애원이든 어린아이의 무기는 전부 동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친도 모친도 얼굴도 때로는 이름까지 가물가물하지만 그들이 제 곁에 남아 주기만 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 

마지막 문은 봄이었다. 그 문에서 박철은 사랑의 냄새를 맡았다. 

가지 가득 피어난 연분홍 꽃송이를 부드럽게 흔드는 봄바람이 코끝을 간질이고 가슴을 부풀여 박철은 홀린 듯 그 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봄의 길거리였다. 박철이 고등학교 일학년을 중퇴한 해의 오월. 동년배들은 죄 학교로 끌려간 한낮,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리를 떠돌던 열일곱의 박철은 길 저편에서 제 쪽으로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목발을 끼고 왼다리를 절뚝이며 걸어오는 한 소년을 본다. 그가 철에게로 다가온다. 얼마만에 보아도 예쁘구나 정대만. 

첫눈에 마음이 맞아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는 세상 모든 친구들처럼 박철과 정대만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 애와 어깨를 나란히 하자 사계절이 쏜살같이 흐른다. 여름에 박철은 새로 산 오토바이 뒷자리에 그애를 태우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달렸다. 가을에는 훔친 버너와 삼겹살을 들고 둘만의 단풍놀이를 나갔다 그만 산불을 낼 뻔한다. 겨울에는 당근 대신 담배를 코에 꽂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런 양아치답잖은 놀이를 한 건 모두에게 비밀이다. 

다음 사계절도 눈 깜박할 사이 지나간다. 봄에는 연분홍 벚꽃잎이 눈비처럼 쏟아지는 거리에서 패싸움을, 여름에는 바다수영을 실컷 했다. 가을에는 구제샵에서 각자 티셔츠와 청바지를 슬쩍하려다 주인에게 걸려 폐 터지는 추격전을 벌였다. 겨울에는 유리병에 든 과일 주스 선물세트를 사들고 생애 첫 병문안을 갔다. 아니 회귀자이니 생애 두 번째구나. ‘웃기는 꼴이지?’ 하고 웃는 그애의 앞니 구멍으로 픽 픽 바람이 샜다. 

과연 박철은 창의력이 부족한 놈이다. 소설 만화 주인공 노릇은 못 하겠다. 육십억 중 한 명에게 찾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도 과거를 그대로 다시 사는 것밖에 못한다. 고작 리플레이라니. 박철에게 기회를 준 관객은 영화 '라이프 오브 박철: 리스타트'가 얼마나 재미없을까. 영화의 재생 바가 시시각각 끝으로 달려가는데 박철은 살아온 모든 순간이 너무 소중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듯 가필을 위한 멈춤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농구부에 그애를 돌려주러 가기 전날 밤 박철은 기억처럼 정대만에게 입맞췄다. 일생 마지막으로 녀석의 얼굴을 보는 밤에는 충동적으로 대사를 바꾸어 읊어 버릴 뻔하지만 그 순간, 종합병원 앞길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정대만의 낯이 새 인생을 살 준비가 되기라도 한 듯 맑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박철은 꿈에서 깨어났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무쇠상의 눈물


정대만은 박철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도 사람이니 눈에 눈물샘이 있고 서럽고 슬프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인데 정대만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무쇠로 주조된 사천왕상의 눈가에서 소금물이 흘러나오는 기적을 목격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박철은 옷소매로 눈가를 슥 닦았다. 회색 면티의 소매가 짙은 색으로 젖었다.

"대만아."

"응, 철아."

"나 니 어리광 받아주는 거 피곤하다."

박철의 낮게 잠긴 음성이 귓전을 때린 순간 정대만은 그래야 한다는 계시라도 받은 듯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철의 핸드폰에서 기상 알람이 울렸다. 오전 5시였다. 정대만은 12시간 전, 전날 오후 5시에 대학 동창들과 술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다. 11시에는 들어온다던 약속이 한 시간만 한 시간만 한 시간만 더 하고 미뤄지더니 데리러 나간대도 묵묵부답으로 답을 않던 정대만이 이 시간이 돼서야 도둑처럼 조용히 제집에 기어들어오니, 잠들어 있을 줄 알았던 애인이 희뿌연 새벽녘에 잠긴 거실 소파에 불상처럼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뺨이 눈물에 젖어......

제 죄를 아는 정대만은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박철이 앉은 소파에 다가갔다. 무릎에 얹힌 박철의 손에는 빨간 가죽 키링 붙은 오토바이 키가 들려 있었다. 또 보자 스포츠맨. 바이크의 배기음이 귓가에 환청처럼 선연해 정대만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빌기 시작했다.

"철아, 미안해.

내가 잘할게. 정말 정말 미안해... 다신 이렇게 늦게 안 들어올게. 연락하면 다 받고, 연락 없이 너 기다리게 안 할게. 새벽 늦게까지 다른 남자들이랑 있는 거 좀 너무했지 그치? 내가 잘못했다. 정대만이 잘못했네. 술 약속 다 취소할게. 이번 주말도, 다음 주도 아니 이번 달 일정 전부 못 나간다고 전화 돌릴게. 아니다 아예 술 약속은 안 나갈게, 술은 너랑만 마실게. 남들이랑은 물이랑 커피만 마실게, 2차 3차 가자고 졸라도 절대 절대 안 넘어갈게... 응?"

"너 그런 삶 감당할 수 있겠냐."

"응. 완전. 진짜 완전 진짜. 이렇게 된 김에 우리 통금 시간 만들자. 누구든 그 시간 이후에 들어오면 상대방 소원 들어주기."

정대만은 소파 앞, 박철의 발치에 무릎꿇고 두 손을 사마귀처럼 싹싹 비비며 만들 수 있는 가장 불쌍한 얼굴로 철을 올려다보았다. 정대만 비장의 '애원하는 눈빛'. 눈꼬리를 한껏 내려뜨리고 곱게 쌍꺼풀진 동그란 사슴눈에 물기를 가득 담으면 회초리를 든 어머니도, 꾸지람을 작정한 선생도,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 동기도 못 이기는 척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대만의 사죄를 받아주곤 했다. 철이에게도 항상 통했다. 세탁물을 건조기 안에서 썩혔을 때도, 만들어준 도시락을 두고 갔을 때도, 바뀐 훈련 일정 알려주는 거 까먹어서 저녁 약속 파토내고 통보 없이 외박했을 때도 그들 관계를 유지시켜 주었던...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전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박철은 여느 때처럼 대만을 금방이라도 죽일 듯 무섭게 노려보는 대신 먼 허공을 쳐다보았다.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새벽빛이 박철의 옆얼굴을 희끄무레하게 비추었다. 그의 짧은 눈썹은 팔자로 축 처져 있었고 원체 두터운 눈두덩이가 눈물로 부어 가늘게 찢어진 눈매가 더 가늘어 보였다. 물기 띤 눈동자는 평소보다 검었다. 흰자위엔 실핏줄이 섰고 눈가의 살은 붉었으며, 뺨의 거칠은 피부에는 군데군데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옆얼굴에 정대만은 충격을 받았다. 검은 무쇠로 만든 사천왕상처럼 주먹으로 아무리 쳐도 변하지 않던 무심한 얼굴이 하룻밤 만에 물렁한 사람의 살로 변해 흐물흐물 불고 벌겋게 얼룩진 것만 같았다.

박철은 붉게 부푼 눈가를 만지작대다 허공을 보고 말했다.

"대만아. 나 울어 보는 거 엄마가 집 나간 날 이후로 처음이다."

"철아......."

"말했지? 엄마가 집 나갔을 때 그 여자 원망 안 했다고. 가고 싶으니까 갔겠지. 너 갔을 때도 원망 안 했어. 농구가 오죽 좋은가보다고 했지."

"그때 일은 정말 고마워,"

"그런데 나, 니가 한 번 더 떠나면 원망 안 할 자신이 없다."

"내가 널 왜 떠나...."

확신을 담아 말하고 싶었는데 정대만은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멍청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대만은 그 순간 무엇이 박철을 울게 했는지, 지난밤 자신이 자극한 그의 근원적인 두려움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정대만은 한 시간 전까지 함께 술잔을 부딪힌 친구들에게 집에서 저를 기다리는 사람의 존재를 감추었다.

정대만의 친구와 지인 누구도 그와 한집에 살림을 풀고 한 침대에서 살을 섞는 남자의 존재를 몰랐다. 그를 누구라고 소개할 것인가, 불량 시절의 친구?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담배 연기 자욱한 골목길을 전전하던 그 시절은 청량한 이미지로 CF까지 찍은 스포츠 스타에겐 드러나선 안 되는 과거였다. 박철은 존재 자체로 정대만의 치부였다. 정대만의 지인들은 식사 자리에 교제 중인 아나운서, 변호사, 치과의사, 미술 교사를 데려왔다. 박철은 근처 카센터에서 파트 타임 정비사로 일했는데, 정비 자격증을 딴 곳은 교도소였다. 손등에는 칼빵 흉이 있었고 티셔츠 목깃 위로는 색색의 문신이 보였다.

지난밤 술자리에서 정대만은 박철의 전화를 한 번 받았는데 한두 마디 대꾸하다 옆 사람이 '누구냐, 애인?'하고 물으니 무슨 소리냐고, 친구라고 얼버무리다 통화를 끊어 버렸다. ‘늦었으니 데리러 가겠다'는 메시지를 두 번이나 확인하고도 답장하지 않았다.

정대만의 끝을 흐물흐물하게 흐린 장담에 대꾸하는 대신 박철은 벌떡 일어섰다. 한 손에 오토바이 키를 쥔 그는 소파 한켠에 걸쳐둔 무스탕 재킷에 팔을 꿰고 식탁에 준비해 둔 여행용 배낭을 둘러멨다. 정대만이 귀가하지 않는 새벽 내내 그는 짐을 싼 모양이었다. 정대만은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어 신발장에서 구두에 발을 구겨넣는 박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박철은 요령 좋게 대만을 걷어차고 현관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철문 사이로 작별 인사가 흘러들어왔다. 또 보진 말자, 스포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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