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괴스타레일 게파스텔/게파여척/게파드x스텔레(개척자,여성)
  • 금발벽안미남 착하고진중하고고지식한 남자 짱~
  • b류 목소리(승곤님)를 더 듣고싶은데.....들을수가 없어서......급한대로 경원이 목소리를...(만족중~^_^)
  • 전부 날조입니다. 공식이 아닙니다.
  •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뚝딱거리는 게파드가 보고싶어서...
  •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완벽한 남자는 모자란 여자한테 끌린다던데,
그래서 내가 모자란 여자라고?>


 

 

 

 

벨로보그. 광풍과 폭설이 몰아치는 영원한 겨울의 도시. 이 도시 사람들이 평안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실버메인 철위대가 도시를 수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게파드 랜도가 있다. 극도로 색소가 옅은 희고 창백한 뺨, 또렷한 푸른 눈동자에 찬란하고 고결한 금발. 어깨에 짊어진 가문과 지위만큼이나 수려한 용모.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상적인 금발벽안의 기사님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남자 때문에 이 도시에 와 있었다.

 

“서벌 씨. 남동생분 말인데요. 그러니까 게파드 씨요.”

 

누나의 앞에서 동생의 흉을 보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까. 망설이는데 기계공방 카운터에 앉아 부품을 만지작거리던 서벌이 명랑하게 되물었다.

 

“왜. 그 애가 속 터지게 해?”

“헉…”

“뭐야. 그 반응은?”

“독심술이라도 쓰시는 건가 해서요.”

 

솔직하게 감탄하자 서벌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서로 헤어질 때 예의상 인사말로 다음에 밥 한 끼 먹자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인데. 게파드 씨가 그 뒤로 계속 우리 밥 언제 먹냐고 물어보셔서요.”

 

오늘 벨로보그에 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걔는 그런 농담 몰라. 밥 먹자고 하면 진짜 밥 먹는 줄 알지.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없어.”

 

아주 고지식하고 앞뒤 꽉 막힌 녀석이라며 서벌이 킥킥거렸다.

 

“어쩐지 나한테 여자들은 무슨 음식 좋아하냐고 물어보더라니, 전부 너 때문이었구나. 오늘 여기 온 것도 게파드 때문이고?”

“네.”

“재미있네. 걔가 너랑 잘해보고 싶은가보다.”

“게파드씨가 저를요? 그럴 리가요.”

 

극구 부정하자 서벌이 눈을 가늘게 뜨며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라는 눈빛이었다.

 

긴 금발을 늘어트린 이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은 서벌 랜도. 벨로보그의 실버메인 철위대 방위관 게파드 랜도의 누나다. 게파드 랜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썩 긍정적인 첫 만남은 아니었다. 말을 섞기 전에 칼부터 부딪혔으니까.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듯 함께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으며 등을 맞댈 수 있는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되었다.

 

“잘 생각해봐. 낌새 같은 거 없었어? 반할만한 사건이라거나.”

 

게파드가 나에게 반할만할 사건이라…

 

“저번에 쓰레기통 뒤지다가 쓰레기통 입구에 몸이 끼었거든요. 그때 지나가던 게파드 씨가 꺼내주셨는데. 그때 게파드 씨 표정이…음. 좀 충격받으신 것 같긴 했어요. 그때 반한 걸까요?”

“…내 동생 취향이 특이하네…”

“역시 아닌 것 같죠? 그런데 진짜 그 일 말고는 없어요. 평소에 딱히 만나지도 않았고.”

“쓰레기통은 왜 뒤진 거야?”

“그냥…저도 모르게…쓰레기통만 보면 열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서…”

 

그러게. 나 쓰레기통 왜 뒤지고 있었지. 하지만 이상하게 쓰레기통 주변은 항상 반짝반짝 빛났다. 꼭, 지금 당장 열어보라고 보이지 않는 손이 손짓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파드의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머리만 복잡해졌다. 꼬고 앉은 다리를 부산스럽게 까닥거렸다. 그런 나를 빤히 응시하던 서벌이 아,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게파드가 너한테 꽂힌 포인트를 알 것 같다.”

“뭔데요?”

“너 은근히 좀. 그런 스타일이네. 관리해주고 싶은 스타일. 내 동생이 그런 거에 약하거든. 뭐라고 해야 하나. 사연 있어 보이는 타락한 여자라고 하나.”

“네?”

“빚 많고 애까지 딸린 술집 여자 데려와서는 이 여자 인생은 내가 구해줄 거라고 선언하면서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거 아닌가 했는데, 얼마나 다행이니. 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네?”

“게파드가 옛날부터 모자라 보이는 애들한테 약했어. 백치 같은 애들 말이야. 간섭하고 싶어 하고 잔소리하고 싶어서 정신을 못 차려.”

“백치요? 제가 모자라 보인다고요?”

“어머. 포트에 물 끓는다.”

 

벌떡 일어난 서벌이 급한 일이 생긴 척 안쪽 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기가 막혀. 멍하니 서벌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

 

딸랑-

 

그때 등 뒤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흠칫 놀랐다. 검은 부츠에 푸른 망토, 흰 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남자. 게파드 랜도였다. 오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차림새였다. 남자가 카운터 앞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 살짝 웃는다.

 

“미안. 기다리게 했네.”

“아니요. 저도 방금 왔어요.”

 

남자, 게파드의 눈이 사르르 휘어진다. 냉막하고 결벽적인 인상의 미남인데, 이렇게 웃으니 딴판으로 다정하고 유순해 보였다.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왜인지 오늘따라 한층 더 찬란하게 느껴졌다. 보면 볼수록, 여자애들이 가지고 노는 왕자님 인형같이 생긴 남자다.

 

“누나는?”

“안쪽 방에 계세요.”

 

고개를 끄덕인 게파드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꽃다발이 보였다. 내 시선을 눈치챈 게파드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연한 분홍빛 꽃잎이 겹겹이 둥글게 뭉친 모양의 아름다운 꽃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답은 금방 나왔다. ‘둥근 모란’이다.

 

“이건 선물이야.”

“선물? 서벌 씨한테요?”

“아니. 너한테 주는 거야.”

“저한테요? 왜요?”

“…어?”

 

설마 왜냐고 반문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남자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대답을 망설이는 남자의 손에서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가장 큰 사이즈로 산 건가.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꽃다발이었다. 예쁘고 향긋하긴 한데, 이걸 들고 다닐 생각을 하니 까마득해졌다.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그렇군.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어. 이리 줘. 내가 들고 다닐게.”

“아니에요. 됐어요.”

 

말실수했다. 내게서 다시 꽃다발을 가져가려는 게파드를 뿌리치고 꽃을 품에 힘주어 안았다.

 

“고마워요. 선물 기뻐요. 누군가한테 꽃을 받는 건 처음…? 이에요.”

 

처음 받는 거 맞나? 처음 맞겠지? 그런 걸 하나하나 일일이 기억하는 편이 아니라 모르겠다. 뭐, 듣는 사람만 기분 좋으면 된 거지. 모든 위화감을 뭉개기 위해 애써 웃으며 게파드를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이야기하려는 듯 입술을 벙긋거리던 그가 이내 한 손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귓바퀴 끝이 조금 붉은 것도 같았다.

 

“미안.”

 

왜 사과하는 거지? 멀뚱거리며 올려다보자 귀 끝에서 시작된 열기가 서서히 뺨까지 번졌다. 게파드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빨개진 건 처음 봤다. 진짜 왜 저러는 거지.

 

“큼.”

 

주먹 쥔 손을 입가에 대고 헛기침한 게파드가 곧 평정을 찾았다. 남자의 시선이 내 어깨에 닿는다. 그가 조심히 손을 뻗어 재킷 안에 받쳐입은 흰 티의 목 부분을 살짝 위로 당겨주었다.

 

“다른 옷은 없어? 항상 이것만 입는 것 같네.”

“냄새나요?”

 

그럴 리가 없는데.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는데 옆에서 높고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 좋은데 끼어들어 진짜 미안.”

 

방으로 피신했던 서벌이었다. 동생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 듯했다.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실로 묘한 표정을 한 서벌이 내 품에서 꽃다발을 가져가며 말했다.

 

“꽃은 여기 두고 가도 돼. 내가 맡아줄게. 집에 갈 때 찾으러 와. 그리고 누나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동생이 연애하는 걸 눈으로 보니까 진짜 좀…징그럽다…속이 안 좋-”

“가자.”

 

게파드가 도망치듯 앞장서 공방을 나갔다.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한 서벌에게 황급히 인사하고 게파드를 따라 나갔다.

 

 




 



 

게파드가 예약해둔 레스토랑은 호화로운 호텔 최상층에 있었다. 주변에 일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온통 귀족 같은 사람밖에 없었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 나온 직원이 나와 게파드를 가장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무려 프라이빗 룸이다.

 

돈이 좋긴 좋네.

 

주요리부터 후식까지 모든 것이 풀코스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셰프가 내오는 요리를 먹기만 하면 된다.

 

“......”

“......”

“......”

“......”

 

음식을 먹는 동안, 방 안은 적막만이 감돌았다. 나도 썩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닌데다가, 게파드도 오늘따라 이상하게 과묵해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게파드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안 그래도 인형 같은 생김새인데, 말도 하지 않으니 진짜로 인형 같았다.

 

게임이나 하고 싶다.

 

한입 크기로 자른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다리를 까닥거렸다. 이 맛있는 음식들을 다 싸가서 침대에 누워 게임하면서 먹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그때 주머니 속 통신기가 부르르 진동했다. 광명 찾은 신도처럼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단항에게서 온 문자였다.

 

[어디야]

 

무뚝뚝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사나운 눈초리를 한 검은 고양이 같은 청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판을 눌렀다.

 

[돈 많은 유부남이랑 데이트 중]

[언제 오는데]

 

답은 금방 왔다. 별로 놀라지도 않는군. 농담은 익숙하다는 건가.

 

[자고 옴]

 

단항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문자함을 뒤적이며 다른 문자가 온 것은 없나 살폈다. 즐겨 하는 게임 아이콘 위로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가 떼었다가 했다. 아. 재미없어. 단항은 왜 답장을 안 하지? 그 순간 또 통신기가 짧게 진동하며 웰트의 이름이 떠올랐다.

 

[스텔레. 단항에게 이야기 들었다. 문자 확인 후 연락 다오]

 

아. 그새 달려가서 일렀나 보네. 웰트의 문자를 옆으로 치우고 단항의 문자함으로 들어갔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두드렸다.


[장난친 건데 그걸 달려가서 이르냐]

 

옆에 초록색으로 ‘읽음’ 표시가 떠올랐다.

 

[대답 안 해?]

 

문자를 보낸 즉시 또 ‘읽음’으로 바뀌었다. 이게 읽고 씹어?

 

[대답 안 해? 대답 안 해? 대답 안 해? 대답 안 해? 대답 안 해?]

 

자판을 빠르게 연타하는데 눈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손등에 핏줄이 불거진 하얀 손이 통신기 화면을 덮었다. 소스라치며 고개를 들었다.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게파드가 손으로 통신기를 가리며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급한 연락이 있나 봐.”

“아…”

 

아. 맞다. 나, 이 사람이랑 밥 먹고 있었지.

 

“다 식겠다. 먼저 음식부터 먹고 연락하지 그래?”

“네. 그렇게 할게요.”

 

예의 없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예의 없었다. 통신기를 가방에 넣고 다시 포크를 들었다.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썰며 슬쩍 게파드를 곁눈질했다. 그다지 화가 났다거나 짜증 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왜 이렇게 찜찜할까.

 

탁-

 

포크 내려놓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고개를 들자 게파드가 새파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내가 가지고 있을까?”

“네?”

“통신기 말이야. 계속 연락에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식사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지고 있을게.”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게 무슨 논리지. 됐다고 거절하고 마저 음식을 먹었다. 게파드도 더 고집부리지 않고 어깨만 으쓱이고 다시 포크를 들었다. 그렇게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니야.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리 줘.”

 

게파드가 내 쪽으로 단호하게 손을 내밀었다. 자진해서 통신기를 주지 않으면 빼앗기라도 하겠다는 뜻 같았다. 남자의 눈동자에 새파란 불길이 일렁이는 게 보였다.

 

화났구나. 역시 화났구나! 그러니까, 게파드 랜도 이 남자는 감정을 곱씹는 스타일인 것이다. 즉각적인 분노가 아닌, 곱씹을수록 분노가 차오르는 타입이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이다.

 

▶죄송해요. 긴장해서 그랬어요.

▶재미도 없고 맛도 없어요. 돌아갈래요.

▶됐고, 당신 누나 이야기나 해봐요.

 

“죄송해요. 긴장해서 그랬어요. 통신기라도 만지면 긴장이 풀릴까 했어요.”

“긴장해? 왜.”

“그야 이렇게 근사한 분이랑 단둘이서 밥을 먹는데 당연하죠. 방위관님은 힘도 엄청 세고 키도 크고 근사하고 잘 생기고 또, 미래도 창창하고 집안도 좋고…또…”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좋게 봐줘서 고마워. 기쁜걸.”

 

다행히 게파드의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냥 밥 한 끼 먹는 건데 뭐.”

 

게파드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음식에 데코레이션으로 올라간 레몬을 껍질까지 먹어 치웠다. 자기가 뭘 먹고, 뭘 씹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였다. 본인이야말로 긴장해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걔가 너랑 잘해보고 싶은가보다’

 

설마 그 말이 진짜인가? 불길한 예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도망치자.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가방은 두고 가.”

“화장을 고쳐야 해서요.”

“화장 안 했잖아. 스텔레.”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목소리였다. 내가 병신인 줄 아냐는 투였다.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포크를 내려놓은 게파드가 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을 깍지 꼈다.

 

“가방을 꼭 가져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돌아올 텐데. 돌아올 생각이 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제 가방이 그렇게 좋으면 오늘 계속 들고 다니세요.”

 

핸드백을 들어 게파드에게 휙 던졌다. 얼굴로 날아오는 가방을 가볍게 낚아챈 게파드의 눈이 동그래진다. 놀란 것 같은 게파드를 뒤로 하고 재빨리 방을 빠져나왔다.

 

게파드 씨, 은근히 살짝 성가신 구석이 있네.

 

뒷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향했다.

 

 






 

(끝)

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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