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뒤, 임도운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은 아직 없었다. 아니,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정확했다. 박진혁은 한없이 다정하고 너그러웠다. 적어도 임도운에게는.

“가기 싫어어억!”

한바탕 난리가 있었다. 이사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우영이를 달래는 데는 한 달이 좀 덜 걸렸다. 이제 좀 나아지나 싶었더니, 정작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터졌다. 슬슬 미국으로 다시 나가라는 아버지의 독촉에 떠밀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 줬더니 아이가 뒤집어진 것이었다. 보통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배우고 오면 내 적성처럼 좋아하던가, 두 번 다시 나가기도 꺼릴 정도로 싫어하던가 둘 중에 하나라던데. 우영이는 그 후자인 듯 했다.

“박우영. 일어서.”

우영이가 가기 싫다고 하면 임도운은 나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기업인들에게 유명한 프로그램이든, 선택받은 몇 명만이 갈수 있든, 애가 가기 싫다고 하는데 강요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다. 그 점에서는 박진혁도 의견을 같이 하긴 했는데..

“싫다고! 엄마! 엄마아.. 으허엉.”

얼마나 싫은 건지,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는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아이에게 박진혁이 무서운 얼굴을 했다. 친해져도 모자를 판에 아이의 훈육 담당부터 가장 먼저 차지한 것이 그였다. 중간에 끼어버린 임도운은 곤란해서 이쪽저쪽 눈치를 한 번씩 보았다. 늙은 고집불통과 어린 고집불통. 박진혁은 우영이를, 우영이는 엄마만을 보았다.

“우영아, 알았어. 알겠으니까.”

“박우영. 아빠가 일어나라고 했어.”

버둥버둥 다리로 바닥을 쓰는 것을 안아 올리려 하면 박진혁이 경고하는 눈빛을 했다. 아니, 뭐 어쩌라구 나더러. 억울한 얼굴을 해 보아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떼쓰는 아이 대함에 있어서 자신의 교육관이 확실했다. 안아주지 마라. 자꾸 떼쓰게 두지마라. 결국엔 너만 힘들다. 뭐, 말 자체는 틀린 것이 없었다.

“싫어! 싫어! 엄마.. 엄마아아..”

“네가 하기 싫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안 돼. 일어나.”

“싫다고! 아빠 싫어! 저리가!”

“박우영!”

“으아아앙! 엄마아..”

힘이 들어간 목소리에 무거운 바짓가랑이가 눈물을 터트렸다. 그마저도 억지로 터트린 것이라 제대로 흐르는 것도 없었지만 난감함은 짙어졌다. 박진혁 눈치에 안아 달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교육하는 걸 제지하지도 못하고. 임도운이 중간에 서서 곤란해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 박진혁이 직접 아이를 안아들었다. 끌려가면서도 엄마 품 아닌 것을 알아서, 우영이가 끝까지 바짓가랑이를 놓지 않아 임도운의 몸이 삐걱했다.

“괜찮아?”

“응.”

“싫어! 시러어.. 끼야아아악!”

“내가 달랠게. 넌 거실에 가 있어.”

아이가 내지르는 소리는 돌고래의 초음파에 가까웠다. 그것도 들으면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소리. 나도 이 정도인데, 아이 대하는 게 처음인 쟤는 오죽할까. 박진혁의 실주름 낀 눈가가 그를 지쳐보이게 만들었다. 몸부림치는 몸 사이로 임도운의 상태를 물어보는 얼굴은 말만 다정했지, 억지로 내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는 끝까지 막무가내라고. 내키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을 알았으니 임도운은 군 말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이는 저를 안아든 사람을 사정없이 내려치고 있었는데, 그 탓에 퍽퍽 꽤나 과격한 소리가 났다.

“싫어어! 엄마 가지마.. 엄마.. 아빠 싫어! 아빠 가라고! 으아앙!”

“박우영. 네 마음에 안 든다고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했지. 어떤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차분하게 설명을 해야지.”

“싫어! 시러어!”

“씁, 떼 그만 써.”

“으.. 으.. 엄마아.. 엄마아아!”

차분하게 문을 닫고 나오면 그 사이로 투닥 거리는 소리, 비명 같이 악 쓰는 소리도 들렸다. 박진혁은 인내심도 참 좋았다. 아무리 상대가 아이라도 맞으면 기분이 나쁘고 고집을 피우면 질리는 게 당연했는데 떼쓰고, 고성을 지르고, 울었다가,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 사이로 차분하게 타이르는 말만 끈질기게 오갔다. 박진혁이 말 할 때 마다 부러 더 듣기 싫게 악을 쓰던 아이는 제 풀에 지쳤는지, 아니면 제 편을 들어줄 사람이 더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얼마 못 가 항복을 선언했다. 조곤조곤 울리는 목소리만이 듣기 좋게 남았다.

임도운이라고 해서 단호히 가르쳐야 할 때 그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아이들이 두 명 분 사랑을 먹고 자랄 때 우영이는 그러지를 못했으니까. 그게 안타까워 그런 것도 있었다. 그를 대신해서 아이를 잡아주는 것은 좋지만.. 가뜩이나 아버지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될 텐데, 혹여나 박진혁과 우영이의 사이가 그와 아버지처럼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박진혁의 아들을 향한 애정 표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서도 훈육 방식은 아슬아슬하게 엄해 보였다.

불안감에 얼마간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을까, 조곤조곤 대화하는 소리 사이로 아이가 울음 삼키는 소리가 섞여났다. 이제야 격해진 감정을 걷어내고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과 다름없이 조곤조곤 타이르는 박진혁의 목소리와, 뭐라고 웅얼웅얼 대답하는 우영이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던 것은 금방 요란한 전쟁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임도운이 속으로 안도의 숨을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방 안에서 손을 잡고 걸어 나왔다.

“엄마아..”

“그래, 우영아.”

습관처럼 아이를 안아들려는데 또 한 번 경고하는 눈빛이 찾았다. 아직은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에 임도운이 코로 한숨을 쉬었다.

“우영이는 미국 가기 시러요..”

“그랬구나, 우영이 미국 가기 싫구나.”

“어째서 그런지도 말 해야지.”

이미 눈물은 그렁그렁 차올랐는데, 자신이 얼마나 싫은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싶어 몸이 달았는데, 박진혁의 말에 아이는 꿀꺽 울음을 삼켰다. 히끅, 히끅. 금방 나눈 대화를 아이가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기는 유치원 친구들이 없어요.”

“그렇구나. 우리 우영이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어?”

“응, 싫어요.”

“거기도 새 친구가 있을 텐데.. 우리 우영이 새 친구는 싫은가보다.”

후으응, 싫다는 말이 죄인 것 같았는지, 아이는 대답하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 커다란 손이 등을 다독였다. 박진혁의 것이었다.

“괜찮아. 더 말 해.”

“햄버거 도시락도 없고, TV에 골드봇 만화도 안 나와요..”

“그래? 우영이가 좋아하는 것들이 거기엔 하나도 없었구나.”

킁, 차분하게 공감해주면 아이가 크게 코를 들이마셨다.

“그래서 거기 있는 게 싫었어?”

“네, 저번에는 선생님이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서 참았는데.. 또 가면 또 참아야 해요. 우영이는 거기서 매일매일 울었는데.. 힝... 흥..”

“뚝. 아빠가 뚝하고 말하라고 했지?”

“흐응, 뚝.”

엄하게 말하면서도 박진혁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임도운의 불안감이 살짝 옅어졌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어쩌면 자신 혼자만의 문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박진혁이 여전히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쩌나, 믿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불신이었다.

“알았어.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잘 말 해 볼게. 우영이가 싫어한다구.”

“할아버지한테 말하면 우영이 안 갈 수 있어요?”

촉촉한 눈으로, 아이가 절실하게 물었다. 박진혁이 다정하게 덧붙였다.

“엄마랑 아빠가 우영이가 말 한 이유들로 할아버지를 설득해볼게.”

“꼭 잘 말해줘야 해요.”

“그래, 그러니까 우영이도 앞으로 어떤 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드러눕지 않기. 울지 말고 이렇게 척척 말하기야.”

“웅.”

“아빠랑 약속해.”

작은 손가락과 큰 손가락이 고리를 단단히 걸었다. 엄지로 도장까지 꽉 찍고서야 아들을 안아줄 수 있었다. 안아든 아이 너머로 박진혁이 진땀을 훔쳤다. 그제야 깨달았다. 박진혁은 그저 평범하게, 싫어하는 게 있어도 감정이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을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우영이가 어릴 때 읽어주었던 옛날 동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말은 한 편으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무책임한 면이 있었다. 그저 보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요량으로 ‘그래서 잘 살았다’로 끝. 현실은 그것과는 달랐다. 자신에 대한 박진혁의 애정은 어느 정도 확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 그 다음은 아이에 대한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애정을 확인 받으면 그 다음엔 또 뭐가 나오게 될지.

“우영이한테 너무 엄하게만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안하면 네가 힘들잖아.”

너무한 처사 같아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임도운에게 아이가 먼저라면, 박진혁에게는 언제나 임도운이 먼저였다. 지금도 그때도, 모든 일들이 전부 임도운 위주로 돌아갔다.

“그치만 그러다가 너하고 우영이 사이가 멀어지며 어떡해. 가뜩이나 친근한 부자사이는 아니잖아.”

“걱정 돼?”

“응.”

모로 누워 바라보면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에 올 말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미안. 내가 더 노력할게.”

“칫, 맨날 그 소리.”

“듣기 싫어?”

“누가 듣기 싫대. 난 그냥 걱정된다구.”

몸을 돌려 마주보는 박진혁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커다란 손이 몸을 끌어당기는 게 느껴지면 어느새 그 품에 폭삭 안겼다. 얼굴에 적당히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졌다.

“걱정하지 마. 오늘 둘이서 이야기했는데, 우영이도 제가 고집부리면 네가 힘든 거 알고 있더라. 그래서 우리 엄마 힘들게 하지 말자, 했더니 그제야 악 쓰는 거 그쳤어.”

“그런 이야길 했어?”

“어. 원래 사람이 친해지려면 공감대가 필요한데, 우영이랑 나랑은 타고난 공감대가 있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그 공감대가 임도운이라는 소리였다. 낯 뜨거운 소리를 잘도 하네. 궁시렁거리면 박진혁이 낮게 웃었다. 크흐흐, 듣기 좋기 울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언제까지 따로 잘 순 없었어.”

농담처럼 덧붙이는 말에 임도운 역시 웃음이 터졌다. 부부답게 살아보기로 해 놓고선 다시 침실을 합치게 된 것은 얼마 되질 않았다. 그들 사이에 우영이가 ‘꼬마 빌런’으로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우영이는 우영이 방이 있잖아.’

이사 이야기에, 낯선 곳에서 힘들었던 기억에, 아이는 아주 엄마 바라기가 되어 돌아왔다. 며칠, 제 방에서 자는가 싶더니 어느 날 밤 갑자기 그의 방에 베개를 들고 온 아이는 엄마 옆이 아니면 잠에 들지를 못했다. 울고, 징징거리고, 고집을 피우고. 아무리 달래도 달래지질 않으니 두 손 두 발 다 들고서 할 수 있는 일은 박진혁을 쫓아내는 것 밖에 없었다. 그에 억울한 얼굴로 툴툴거리는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곤란했던 것은 아이가 둘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상황이었다. 엄마 방에 있는 아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 순번대로 따져서 한 명이 나가야한다면 박진혁이 선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도 네 방 있잖아.’

‘우리 이제 부부잖아.’

‘우린 원래 부부였어.’

‘같이 자고 싶단 말이야!’

‘안 그래도 우영이 예민해서 힘든데 너까지 왜 그래.’

박진혁은 억울했다. 이제야 겨우 마음을 확인 받아 좋은 일만 남았다 싶었는데, 또 함께 하면서 해 보고 싶은 것도 잔뜩 있는데. 고집을 피우다가도 임도운이 싫은 기색을 보이면 금방 기가 죽었다.

‘솔직히 난 우리가 따로 자는 게 맞는 거 같아.’

고민하듯 임도운이 말했다. 닫히고 있는 문 사이로 쑥스러운 얼굴은 반쯤 가려진 채였다. 삐죽, 그의 말에 박진혁이 입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게 만났을 때 더 떨린단 말이야. 연애하는 거 같아서.’

다행인 것은 우영이도 그도 다루기가 참 편했다. 한 마디, 좋은 소리에 도로 싱글벙글해지면 임도운은 겨우 문을 닫을 수 있었다.

문제는 잠자리 뿐만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의 일과가 전과는 달랐으니 같이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해도, 우영이는 ‘변화’라는 것에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아빠와 따로 사는 것은 싫고, 엄마와 아빠가 부부같이 변하는 것은 더 싫다는 의미였다. 박진혁이 일찍 퇴근하는 것도, 부엌살림을 도맡은 것도 아이는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어색해만 했다.

‘아빠는 왜 자꾸 일찍 들어와?’

‘우영이랑 엄마 밥 해 주려고.’

‘왜?’

‘우영이랑 엄마 배고프잖아.’

능청스러운 변명은 임도운의 몫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웃어넘기려 하면 박진혁은 그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보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우영이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이나 삐죽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제 아버질 닮았는지.

그러고서도 해 주는 밥은 맛있게 먹었다. 우영이가 귀국했던 날, 어린이 정식을 왜 세 개씩이나 사왔나 했더니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박진혁은 우영이가 좋아하는 맛이 궁금했단다. 달고 순한 맛. 당분간은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만 식사가 준비되었다. 그간 둘이서만 식사를 했으니 임도운이 먹지 않는 것은 우영이도 먹질 않았다. 식사의 주도권을 빼앗긴 그들은 한동안 편식으로 박진혁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볶음밥은 엄마 거가 훨씬 맛있어.’

결국엔 아이도 아빠가 해 주는 밥이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그 와중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비장하게 귓속말을 하는 것은 그만의 작은 자존심이었다.

 

박진혁은 정말로 잘했다. 출근 전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아침을 챙겨놓고 나가고, 점심 먹을 때가 되면 꼭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들었다. 회장님의 눈치가 보이는지 주말 출근은 여전했지만 저녁 먹을 시간은 꼭꼭 맞춰서 돌아왔다. 임도운이 손 하나 까딱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해서는 식사 한 설거지를 도맡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우영이는 부모의 알콩달콩한 그 과정 하나하나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아이는 아마 저도 모르게 위기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남는 시간에 붙어 앉아 TV를 보려 해도, 주말 중 하루를 빼서 멀리 나들이를 가는 와중에도, 우영이는 엄마를 제 옆에 붙여놓아야 안심하는 것 같았다. 어른들끼리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하면 어느새 제가 끼어들어선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했고, 가벼운 스킨십을 하려하면 시도 때도 없이 안아 달라 매달렸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쌀 한 포대에 가까운 무게를 안아주는 것도 한두 번 일이지. 영혼 없는 리액션과 허리, 팔의 통증으로 임도운은 점점 버거움을 느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박진혁이 일어나고, 그를 경계한 우영이가 따라 일어섰으니 되던 일도 글러 먹었다.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기 힘든 지경에 우영이가 안심할 때까지는 거리를 두자고 권하게 된 것이었다. 괴롭다는 소리에 그러자 선뜻 대답은 했지만 박진혁은 조건을 걸었다. 우영이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만 하지 말 것. 혹여 그게 심해지면 제게도 훈육할 시간을 줄 것. 처음에는 더욱 곤란하고 난감하기만 하던 일이 어느 정도 먹혀들고는 있었다. 우영이가 다시 제 방에서 혼자 잘 수 있게 되었으니.

“너도 참 대단하다.”

박진혁은 끈기가 있었다. 우영이 고집이 쇠고집이라는 건 그가 제일 잘 알았는데, 그걸 어르고 달래고 다잡고. 육아의 ‘육’자도 몰랐던 그가 얼마나 알아보고 찾아보았을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물론 그 어설픈 방식이 자리를 잡기까지의 피해는 전부 임도운이 감당했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내 짝을 내 줄 순 없어.”

우영이가 제 방으로 돌아가니 박진혁은 그의 방에 있던 침대부터 내다버렸다. 아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못 박음은 물론, 본래 지어진 의도대로 제 방은 서재, 임도운의 방을 안방으로 사용하기로 선포한 것이었다.

“칫. 원래 저러진 않았거든. 미국에서 겪었던 변화들을 감당하기엔 힘이 들었고, 또 돌아왔는데도 네가 안 하던 짓을 하고 있으니까 불안해서 그런 거잖아.”

“알아. 그래도 너는 안 돼. 우리가 어떻게 이러고 있을 수 있게 됐는데. 양보 못 해.”

과정이 능숙했을지라도 의도는 아니었다. 이럴 때보면 그 역시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얘가 이렇게 유치할 수 있다고 누가 예상했을까. 그럼에도 이런 모습들이 좋아서 임도운은 감당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으니 중증이었다.

“이럴 때보면 우영이보다 더 해.”

“큭, 내 아들이잖아.”

힘 있게 끌어당기는 팔에 얌전히 안겨주면 몸이 아무렇게 겹쳐 불편해졌다. 내 아들. 또 한 번 임도운을 안심시키는 말이었다. 그만큼 기분 좋은 알파 페로몬 덕인지도 몰랐다.

“우영이도 알파일까?”

“내 생각엔 그래.”

“왜?”

“윤슬기 말로는 가끔 페로몬 조절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힘을 끙끙 준대.”

“정말? 우영이가 그랬대?”

발현하기 전의 어린아이들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속설처럼 떠도는 이야기였다. 내 앞에서는 그런 적 없었는데.. 생각하면 박진혁이 들은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어.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흔들릴 때 그럴 수 있대. 네 말대로 미국에 갔었던 게 많이 힘들었나봐. 어쨌거나 페로몬 조절을 시도하는 건 베타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그래. 근데 왜 오메가가 아니라 알파야?”

“그냥, 내 느낌이 그래.”

실상 오메가든 알파든 큰 차이는 없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만 해도 아버지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고, 우영이가 자라서 맞게 될 세상은 그보다 더 좋아져 있겠지.

“뭐, 알파든 오메가든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지는 게 몰상식한 일이니까.”

박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그 말에 임도운은 새삼 놀랐다. 함께하다보면 의외로 그와 박진혁은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세상을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랄까. 그제야 온전히 임도운이 안심했다.

“아이한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겠지. 우리도 그러니까.”

“그렇지 않아도 윤슬기한테 그 부분도 물어봤어. 근데 의외로 아이들은 적응하는 시간이 빠르대. 그래서 우리가 얼른 같이 잘 수 있게 된 것 같아.”

“오, 그런 것도 물어봤어? 윽.”

놀라서 마주보면 좋다는 듯 박진혁이 입을 맞추었다. 데록데록, 임도운의 부끄러운 눈알이 굴렀다.

“물어봐야지, 독수공방 고독사하기 싫으니까.”

“칫, 오버하기는.”

“그래서 우영이 유학 문제도 말이야. 지금은 싫어하긴 하지만, 너하고 우영이하고 같이 나가면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우영이도 싫고 너도 싫으니까 안 되겠지?”

슬쩍 눈치를 보며 그가 말했다. 그래, 언젠가 우리 사이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긴 했다. 그 와중에도 서운한 것은..

“너는 나하고 떨어져 살아도 괜찮아?”

박진혁의 반응이었다. 전이었다면 결코 신경 쓰지 않았을 그 반응. 숨 쉴 틈도 없이 박진혁이 대답했다.

“안 되지. 절대. 그치만 그 프로그램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아버님 말대로 아들한테는 좋은 것만 해 주고 싶기도 해서. 우영이 프로그램 보고서를 쭉 읽어봤는데, 우리 아들이 머리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아서 미련은 남아.”

박진혁이 얼마나 진지했던지 임도운은 잠깐 서운했던 것도 잊고 말았다. 부자간 소 닭 보듯 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아들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임도운이 바라던 바로 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의도했건 아니건, 박진혁은 이렇게 또 그의 바람을 간파했다.

“우리 우영이가 잘나긴 했지. 말도 또래 아이들보다 빨랐어! 그치만 너, 우영이한테 아빠 설득하는 거 돕기로 약속해놓고 자꾸 딴소리 할 거야?”

“아냐, 도와야지. 도울 거야. 난 그냥 그런 거야. 나는 굉장히 받고 싶었던 교육인데, 아들은 들이밀기도 전에 싫다고 고집을 피우니까 안타까워. 나중에 억지로라도 갈 걸 후회하진 않을까?”

차분히 속마음을 전해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박진혁은 낭떠러지 떠밀리듯 사업을 배웠다. 그랬으니 좋은 기회에 대한 미련이 남을 만도 했다.

“아.. 그랬구나, 그건 몰랐네. 그래도 아이가 싫다는 건 하게 하고 싶지 않아. 우리가 그렇게 만들지 않아도 살면서 해야 하는 일이 아주 많잖아. 후회도 그것 중에 하나가 아닐까.”

어쩐지 명언 같은 소리를 한 것 같아 임도운은 민망해졌다. 하지만 박진혁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진중한 얼굴로 공감해왔다.

“그래, 그 말도 맞네.”

예전 같았으면 무시하고 말을 자르고, 제 생각을 강요하면서 끝이었을 텐데 확실히 변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아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로.. 부부 같았다.

“큭.”

“왜, 왜 웃어.”

“아니, 우영이 이야기를 이렇게 하니까 우리가 진짜 부부다워진 것 같아서.”

솔직한 태도는 쉽게 옮았다. 임도운이 거리낌 없이 말하면 박진혁도 숨김없이 기분 좋은 것을 드러냈다.

“우린 원래부터 부부였다며.”

“그건 그렇지.”

그가 임도운을 더 꼭 끌어안았다. 온기와 단단한 뼈, 가만있지 못하는 몸이 정말로 그들이 한 침대에 있게 된 것을 실감시켰다.

“몰랐는데, 이런 기분 느낀 거 처음이 아니더라.”

“이런 기분?”

내 팔인지, 네 팔인지 모를 자세로 얽혀선 박진혁이 귓가에 속삭였다. 임도운이 순한 얼굴로 되물으면 그는 입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한테 널 빼앗긴 기분.”

부끄러운 애정표현도 그렇고, 뱃속 어딘가를 간질이는 말까지. 임도운은 대꾸하지 못했다. 솔직한 건 적응이 됐는데.. 이건 참 어려웠다.

“우영이 태어나고는 줄곧 이런 기분을 느꼈었던 것 같아. 물론 내가 못한 건 변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느꼈어. 널 빼앗긴 기분. 근데 그땐 그게 뭔지 몰랐어. 질투든 독점욕이든 옹알이도 못하는 아이에게 느끼기엔 적절하지 않은 기분이잖아. 게다가 그 대상이 너라면.. 그 땐 인정 못했어.”

“너.. 정말. 우영이를 자꾸 라이벌로 생각하지 마. 우영이한테는 내가 엄마고, 너는 아빠잖아. 네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는..”

“알아. 알아. 부성애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어. 나 정말로 열심히 회사 다닌 거, 거기엔 ‘우영이에게 온전한 경영권 쥐어주기 위해서’가 포함이었으니까. 그 땐 회장님의 뜻을 일방적으로 따랐다고 해도 지금 역시 그 생각엔 변함이 없어. 나중에 우리 아들이 경영 하겠다고 나서면, 그 땐 정말 남들보다 더 그럴듯한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

“그래, 그럼 됐어.”

“너처럼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이미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근데 최선은 다 할 거야. 이제 내 인생의 목표는 너하고 우영이, 셋이서 가족같이 사는 것밖엔 없으니까.”

돌아서 마주보면 정말로 주눅이 든 얼굴이 보였다. 박진혁은 원래도 눈주름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유독 아이의 이야기를 하면 눈가가 더욱 자글해졌다. 그에겐 그만큼 어렵고 난해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꼭 그런 얼굴을 보일 때면 위로하고 싶어졌다.

“할 수 있어. 늦은 건 맞지만. 너는 인생의 목표라고 하면 정도를 모르고 덤비잖아.”

“그런가.”

아무렇게나 껴안아주면 그제야 그의 팔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주 안아 오는 것은 박진혁의 팔이었고.

“칭찬이지?”

“욕이겠냐.”

과격한 칭찬이긴 했지만 장난치듯 주고받는 말에 둘 다 웃음을 터트렸다. 임도운도 박진혁도, 최근 하루 중 가장 좋은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지금이었다. 잠자기 전,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런 순간들이 모여 그들을 진짜 부부로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실 우영이 낳고 너도, 우영이도 입원해 있을 때 매일 병원에 찾아갔었어.”

미숙아로 태어나 아이도, 그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그 때, 박진혁은 회사 일로 바빠 자주 오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그런데 막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달랐으니 임도운은 많이 놀랐다.

“매일?”

“어. 너나 우영이나 갈 때마다 자고 있더라. 내가 너무 늦게 가서 그랬나.”

“그랬구나, 그건 몰랐네.”

그가 모르는 일이, 그의 기억과 다른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 임도운이 생각했다. 아픈 기억을 헤집은 탓에 가슴이 뛰었다.

“우영이를 처음에 봤는데, 솔직히 조금 실망했어.”

“왜, 너무 안 튼튼해 보였어?”

“아니. 그 땐 몰랐는데, 지금은 알겠어. 네가 낳았으니까 너를 많이 닮았겠지, 기대했었나봐.”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애정에 면역이 덜해서 임도운이 쑥스러워했다. 그러면 박진혁이 웃었다가, 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다가 네가 아프니까, 아이가 널 아프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아이를 낳게 만든 게 나잖아. 지금 생각하면 진짜 유치하고 단순한데.. 그 땐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그런 기분을 느꼈으니까 더 피하고 싶었나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보듬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끝은 진심어린 사과였다. 임도운은 그냥 잊고, 없었던 일로 치고 싶은 것도 박진혁은 능숙하게 끌어왔다. 힘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상처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임도운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쉽게 괜찮다고 할 수도, 이제 와 원망하고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저 그 때가 기억나면 눈물이나 찔끔. 아프게 했던 사람이 주는 다독임이나 받았다.

“이런 감정 느끼는 거, 우영이한테도 미안해. 그래서 나 더 잘하려고 하고 있어. 사실은 많이 불안하고 떨려. 이러다가 아이랑 멀어지면 어쩌지 걱정도 돼.”

임도운이 하나를 걱정한다면, 박진혁은 열을 하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정확하고 착실해야 하는 사람인데 가족 일이라고 다를까. 그러면 결국엔 괜찮다는 소리가 나왔다. 쌓고 쌓았던 것들이 단단해져선 영원히 상처로 남을 것 같았던 흉터위로도 새살이 돋는 것 같았다. 그러면 생각했던 것보다 상처가 깊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내가 도울게. 걱정하지 마. 사실은 나도 완벽하지 못한데 우영이가 저렇게 좋아해주잖아.”

“그럴까?”

“그래, 네 말대로 우리 아들 똑똑하잖아. 착하고.”

“맞아, 널 닮은 것 같아.”

“크흡.”

속보이는 칭찬에 임도운이 웃었다. 그러면 애절하고 슬픈 얼굴을 하던 박진혁도 겨우 미소를 찾았다.

“아부 좀 하지 마. 엄청 티 나서 민망해.”

“진짜야. 너 닮아서 똑똑하고 착하잖아. 게다가 어른스럽기도 하고.”

“웃기시네. 떼 쓸 때는 세상 다 지친 얼굴이더니. 이 세상에 어른스러운 아이는 없어. 그런 건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거야.”

임도운이 정색하면 이번에는 박진혁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겨우 이 정도 겪을 때, 임도운은 훨씬 많은 일들을 홀로 참아내고 분투했을 일이었다. 그래, 어른인 척 굴어야 하는 아이는 있을지라도 어른스러운 아이는 없지. 어른도 어른답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들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가 동의했다.

“그러네, 하긴 나도 어렸을 땐 만만치는 않았지.”

“너도?”

“어. 엄마 아프지 않았을 때는 엄청 고집불통이었대.”

“그랬구나, 그래도 넌 나처럼 아빠랑 사이가 나쁘진 않았잖아.”

“글쎄, 아버지 말로는 그것보다 더 했다고 들었어.”

한 번은 엄마가 나를 치과에 데려가려고 했는데 말이야.. 조잘조잘 이야기는 다시 아주 사적이고, 소소한 주제로 돌아갔다. 어렵지 않게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경험담이었다. 임도운은 비로소 아주 솔직하게 좋을 수 있었다.

아마도 한동안은 계속 무언가 불안하고, 의심하고, 또 확인하고 싶어질 일이었다. 시작이 좋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매번 그랬듯 안심하고, 확신하고, 좋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괜찮았다. 애초 그런 생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으니까. 더 이상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임도운을 안심시켰다. 그들은 한동안 야밤의 토크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임도운에게도 박진혁에게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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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로 본편 완결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뒤에 나오는 화들은 성인물이고 작은 에피소드 형식일 것 같아요 ㅎㅎ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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