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 판을 치는 시대였다. 알파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졌고 오메가가 설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기껏 우성 오메가 정도나 제대로 대접을 받으면서 살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말이 좋아 대접이지 거의 팔려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성 알파에겐 우성 오메가를. 거의 선전 문구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알파들이 고작 한 오메가에 한정될 리는 없었으니, 그게 불법이 판을 치게 된 이유였다. 겉으로는 고고한 척 알파 행세를 해야 하는데 속으로는 이 오메가 저 오메가 다 탐하고 싶었거든. 어떤 시대든지 욕심이 넘치는 건 한결같은 거였다.


  제대로 된 루트를 통해 만남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건 우성 오메가나 가능한 일이었고 경매 시장으로 넘어가 팔려가듯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오메가 시장은 여러 개로 나뉘어, 등급이 높으면 우성 알파들이 찾는 비밀 경매장으로 그 아래로 가면 갈수록 시설도, 환경도 찾아오는 알파들도 후졌다고 보면 되는 거였다. 특히 최하 등급이 팔리는 시장에서 오메가들은 거의 짐승 짝이었다. 


  차라리 거기에서 팔릴 바에야 한강으로 뛰어드는 게 낫다더라.


  오메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짐승도 아닌데 철창에 갇혀서는 사방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시선에 갇혀 능욕당하고, 훑어 지고 또 수치당하다 푼돈에 팔려 넘어가면 그때부터가 지옥이라더라. 차마 말로 꺼내지도 못할 짓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그 길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는 사람도 있었다. 말이 좋아 오메가 시장이지 목적도 불분명한 바이어한테 잘 못 걸리면, 인생이 조져지는 거였다. 


  그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경수는 생각하곤 했다. 만약 내가 그곳으로 끌려간다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1억 2천 전부 현금이다. 01







  






  오메가가 이런 좆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방법은 뻔했다. 



  첫 번째, 우성 오메가로 태어난다. 두 번째, 열성 오메가이되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난다. 세 번째, 열성 오메가로 태어나 그냥 좆 같은 삶을 산다. 


  경수는 애초부터 글러 먹은 삶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우성 오메가가 아니었을뿐더러 집도 가난했고 부모님은 저를 버리고 떠났으며 제 곁에 남은 건 삼촌 하나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돈에 눈이 멀은 개새끼일 뿐이었다. 차라리 돈이라도 많았으면 그 돈으로 여기저기 찔러넣고 처발라 괜찮은 삶이라도 살았으련만, 있는 건 자존심과 몸뚱이 하나뿐이어서 걸어온 길은 똥 밭이었다. 


  경수는 새벽같이 일어나 알바를 뛰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또 알바를 뛰었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전부 챙겨 먹는 건 사치였고 제대로 한 끼라도 먹었으면 다행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졌을 무렵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 문을 연 집 안에서는 벽에 찌들은 메케한 담배가 풍겼고 빈 술병이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발에 채이곤 했다. 여느 드라마에서 연출할 법한 모양새였다. 주인공의 힘들고 개 같은 인생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와도 같이 말이다. 클리셰였다. 그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더러운 거실을 지나 지친 몸으로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경수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클리셰란 어디에선가 있을법한 일을 말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거지 같은 삶을 그렇게 짤막하게 현실적으로 나타낼 리는 없었다. 항상 그렇잖아. 찢어지게 가난한 주인공은 못되 처먹은 피붙이 집에 얹혀 살며 하루종일 개 같이 돈을 벌고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한다. 그리고 그 개 같은 피붙이는 집 안을 저처럼 쓰곤 했는데, 술에 쩔어서는 꼭 한 마디씩 쏘아붙이곤 했다.




  "오늘 번 돈 어딨어?"




  이게 포주지 삼촌이야? 근데 병신같게도 아무 대꾸도 못 한다. 꿋꿋하게 설거지를 할 뿐이었다.




  "이 새끼가...돈 어딨냐고 시바알!"

  "......아직 월급 안 들어왔어요."




  잔뜩 꼬인 혀도 클리셰다. 욕도 클리셰고. 아직 중순이었다. 월급이 들어오려면 한참인데, 술에 쩔은 삼촌이란 새끼는 아마 대뇌까지 술에 절은 모양이었다. 삐딱하게 군 것도 아니고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이 씨발새끼가 어디서 변명질이야????"




  재떨이가 날아왔다. 설거지를 하느라 차마 보지 못한 경수는 고스란히 어깨에 재떨이를 맞았다. 아윽... 아픔이 잇새로 흘러나왔지만 이내 욕지거리에 가려졌다.




  "저 건방진 새끼... 재워주고 키워준 보람이 없어...퉤!!"




  때로는 삶이 드라마보다 더 극적였다. 

  그게 좋든, 나쁘든.











  


  경수는 입가에 피딱지를 단 채 출근을 해야 했다. 간밤, 술 사 먹을 돈을 내놓으라며 개지랄을 떨던 삼촌 때문이었다. 덕분에 지갑에 남겨뒀던 얼마 안 되는 적은 돈마저 뺏겨 걸어서 출근을 해야 했다. 당연히 지각이었다.




  "도경수, 5분 지각. 월급에서 깐다."

  



  사람이 융통성이란 게 있는데, 이 바닥은 그렇지 못했다. 일찍 온다고 뭐 주는 건 없으면서 늦으면 가차 없이 돈을 까댔다. 아쉬운 놈이 우물을 찾는다고 그럼에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 하는 건 경수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페이가 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빙하는 새끼가 얼굴 꼴이 그게 뭐냐? 또 처맞았어?"

  "...아닙니다. 넘어졌습니다."

  "넘어지기는...그 꼴로 나올 생각하지 마라. 넌 오늘 손님 받지 말고 뒤에 있어. 알겠어?"

  "알겠습니다."



  

  경수가 하는 일은 알파 클럽 서빙이었다. 친구 통해 소개받은 곳이었는데 우성 알파들만 출입하는 곳이었다. 우글거리는 알파들 사이에서의 서빙이 그닥 내키진 않았지만, 크게 터치도 없고 간단하게 서빙만 한다는 설명과 함께 한달 월급을 듣자마자 홀랑, 넘어가 버린 거였다. 덧붙여 '우린 그런 싸구려 가게 아니야. 알파들이랑 붙어먹을 생각일랑 마. 알겠어?' 매니저의 한 마디에 안심하고 당당하게 대답까지도 했다.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오히려 나야 좋지. 하고.








  매니저 말대로 클럽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깨끗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진즉에 일을 그만뒀으리라. 그렇다고 아예 터치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무뚝뚝하니 딱딱한 얼굴로 말없이 서빙만 하는 경수를 건드는 알파는 열에 손을 꼽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살갑게 살랑거리는 오메가가 훨씬 더 입맛에 맞을 거였다. 


  해도, 간혹가다 경수를 곤란하게 만드는 손님이 있긴 있었다. 능글거리는 되먹지 못한 멘트를 날려대며 손을 뻗어 경수의 둔부나 허벅지 같은 곳을 끈덕하게 쓸어내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경수는 한결같이 반응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도 모르면서. 영혼을 좆도 안 담아서 뱉어내곤 한 거였다. 당연히 반응이 구리고 재미도 없었으니 쉽게들 흥미를 떨구고 손을 떼곤 했다. 열에 한 번. 그것만 참으면 하루종일 개같이 알바를 한 것보다 몇 배로 벌었으니 그 정도 쯤이야 참을만 한 거였다.


  경수가 돈을 버는 이유는 딱히 없었다. 일단 당장 개지랄 떠는 삼촌의 입을 막기 위해서였고 그다음은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그다음이 삼촌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 엿 같은 집을 나오면야 참 좋겠지만, 몸 뉘일 곳도 없었을뿐더러 일하고 나면 거지 같은 집일지라도 당장에라도 뻗어 눕고 싶은 생각뿐인 거였다. 삼촌은 돈만 가져다주면 되는 거니까. 몇 년에 걸친 경수 나름의 노하우였다. 




  "야, 그거 들었어? 오늘 물 대박이래."

  "맨날 대박이래...가서 보면 구리더만..."

  "아니야, 오늘은 진짜 대박이래. E그룹 알지? 거기 이사 왔대."

  "뭐? 거기 이사 장난 아니잖아! 몇 번 룸? 혼자 왔나??"

  "몰라, 지인들이랑 온다는 거 같아. 지금 매니저 난리 났잖아."




  주방 문턱에 서 있던 경수는 옆에서 호들갑 떨며 지나가는 다른 오메가들을 피해 몸을 구겼다. 어떻게든 룸 넘버를 알아내 서빙을 가겠다며 벌써부터 요란이었다. 경수를 제외한 나머지 오메가들의 목적은 비등비등했다. 클럽에서 알파 하나를 제대로 물겠다는 거였다. 결혼까지는 못 하더라도 하룻밤 제대로 잡으면 연애까지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거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버림받으면 끝인 것을.


  경수 자체는 비관적이지 않았으나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부모도 자식을 버리는 판국에 타인이라곤 뭘 못 하겠어. 당장, 오늘 내일이 급한 삶은 미래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야! 거기 너! 빨리 이리 와봐."

  "...저요?"

  "그럼 여기 너밖에 더 있냐? 빨리 와."




  손을 팔랑이며 부르는 부매니저를 향해 가자 불쑥, 손에 얼음통이 들린다. 이게 뭐냐는 뜻으로 눈을 하니 답답하다는 듯 부매니저가 경수를 타박한다.





  "지금 가게 정신없는 거 알지?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빨리 이거 33번 룸에 주고 와."

  "...저 오늘 서빙 하지 말라고.."

  "아 거 새끼 진짜.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빨리 갔다 오라고! 서빙하는 새끼들 다 어디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여서 일 시킬 놈도 없구만!!"





 몸이 돌려지고 등이 떠밀려졌다. 얼떨결에 얼음통을 든 경수는 '33번!!! 빨리 뛰어 새끼야!!!' 뒤에서 재촉하는 부매니저 목소리에 그대로 복도를 뛰어 달렸다. 







  33번 룸은 가게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서빙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경수는 33번 룸이 처음이었다. 답지 않게 조금 복도를 헤맸던 경수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33번 방 앞에 도착했을 때 조금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부매니저가 분명 빨리 갔다주라고 했었지. 헤매느라 늦어졌다는 걸 알면 또 한바탕 개지랄을 떨 것이다. 잔소리 듣는 것엔 취미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서둘러 헉헉거리는 숨을 갈무리한 경수는 손을 올려 노크를 했다. 




  "들어 와."




  조금은 앳된 목소리에 이상하게도 꿀꺽, 침이 다 삼켜진다. 




  "들어가겠습니다."




  목소리도 좀 떨렸던 거 같다.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간 룸 안에는 알파 향이 그득했다. 남자 셋에 여자는 다섯. 차림새는 다들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게 있는 집 자식임이 틀림 없었는데 여자들이 반 쯤 풀린 눈을 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오메가인 모양이었다. 남자들은 당연하게도 우성 알파겠지 싶었다. 가게에서 주는 억제제를 잔뜩 먹고 들어 왔음에도 강하게 풍기는 알파 향이, 그럴 만도 하다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남자들은 하나같이 경수를 쳐다봤다. 시선이 몰린 것뿐인데 이상하게도 저릿하게 밀려오는 그 냄새에 인상이 써 지려던 걸 애써 넘긴 경수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 눈빛에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에야 대답했다. 




  "...얼음 통, 바꾸러 왔습니다."




  몰렸던 시선이 이내 흩어졌다. 알아서 하라는 거였다. 꾸벅, 고개를 숙인 경수는 테이블로 걸어가 반쯤 다 녹아있는 얼음 통을 빼고 제가 들고 온 것을 내려놨다. 이제야 안 사실이지만, 급하게 받아 오느라 통을 감쌀 것도 없었다. 그 바람에 양손이 다 벌겠다. 조금은 둔해진 감각에 한 번 손을 쥐었다 편 경수가 굽혔던 허리를 펴던 그때였다.




   

  "빨가네?"




  불쑥, 튀어나온 얼굴 아래로 턱이 괴어졌다. 씨익, 올라가는 입매가 시원스러웠다. 경수는 갑작스런 시선에 당황했다. 정황상 빨간 건 제 손인데, 남자의 시선은 웬일인지 제 입술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디오?"

  "네?"





  버릇처럼 대답이 튀어나왔다. 헙. 뒤늦게 입을 닫았지만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대답 잘하네. 남자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내가 디오인 건 어떻게 알았지? 바보 같은 의문은 쉽게도 풀렸다. 남자의 시선이 경수의 가슴팍으로 잠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아, 명찰. 박 터지는 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많이, 빨개."





  다시금 남자의 시선이 꽂혔다. 이번엔 경수의 눈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허리를 채 펴지 못해 턱을 괸 남자와 퍽, 거리가 가까웠다. 우성 알파 같더라니. 생긴 건 또 욕 나오게 잘생겼다. 분명 시선이 비슷했는데 이상하게 서늘한 눈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었다. 후끈거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저도 모르게 바짝, 말라오는 입술을 혀를 내어 핥자 남자의 시선이 잠시 내려갔다 올라온다. 빨가네. 할짝, 남자의 혀가 입맛을 다신다. 훅, 냄새가 밀려왔다.


  경수는 본능처럼 상황을 깨달았다. 열에 한 번꼴로 일어나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였다. 양옆에 연예인 뺨치는 여자들을 두고 뭐가 그리 그의 호기심을 일깨웠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분명히도 남자는 제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취향 참 독특하시네요. 이럴 때면 한 번쯤은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말야... 정복욕 뭐 그런 비슷한 건가 싶기도 했다. 우성 알파한테 관심도 없는 오메가라니. 눈길 한 번쯤은 줄 법도 하다. 


  그렇지만 그 대상이 틀려먹었다.




  

  "그럼 전 이만..."




  

  더 늦기 전에 서둘러 발 뺄 요량이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알판건지, 냄새가 억제제를 밀고 들어왔다. 힛싸는 아닐 텐데, 자꾸 발끝이 저릿해 머리가 빙빙 도는 기분이었다. 다른 오메가들처럼 모르는 알파들에게 부비적거리고 싶진 않다. 서둘러 방을 나가야 했다. 건방지다는 소리가 나오면 곤란한 건 경수였으니, 살짝 입꼬리를 들어 예의 비지니스용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펴려던 참이었다. 턱을 괴고 있던 남자가 손을 경수 쪽으로 뻗었다. 또 몸 어딘가를 더듬겠거니, 이러면 곤란한데... 생각하는 데





  "아프겠네...."





  손끝이 닿은 곳은 피딱지가 내려앉은 입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아.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픈 건 아니었는데, 순간 느껴진 온기에 인상을 살짝 찡그리니 덩달아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진다. 아파...? 퍽, 안쓰러움이 남자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와 순간, 경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네, 아파요...



  


  "..이거 누가 그랬어?"


  



  차마 대답은 하지 못 했다. 아니,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입술을 살살, 손끝으로 쓰다듬는데 이상하게 등 뒤가 오싹거렸다. 남자는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데 도가 튼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면서 삼촌이 그랬다고 애새끼마냥 고자질을 하고 싶게 만들었거든. 남자는 계속해서 입술을 매만졌다. 퍽, 다정했다. 손길도, 눈빛도 전부. 경수는 옭아 매여졌던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기분이 이상했다. 뭐에 홀린 것 같았다.





  "너 이렇게 만든 새끼..."

  "......"

  "..내가 혼내 줄까?"

  




  떨어 트렸던 시선을 경수가 끌어 올리던 그 순간이었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남자의 손이 뺨을 감싼다 싶더니 츕. 입술이 닿았다. 아. 또 바보같이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혀가 들어오고, 얽혔다. 흐으..... 밀려오는 향에 머리가 빙글 돌았다. 제가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잇새로 신음을 뱉던 경수는 손끝으로 만져지는 차가운 느낌에 퍼드득,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밀어냈다. 




  "죄, 죄송합니다."



 

  이건 아니다. 열에 한 번. 호기심에 일어날 일이었다. 곧장 허리를 펴고 얼음통을 챙긴 경수는 서둘러 방을 빠져나오려고 몸을 돌렸다. 빨리, 빨리. 급한 마음으로 여전히 후끈거리는 손을 쥐었다, 펴는 순간 턱, 손이 잡혔다. 어어...! 그 바람에 꼬여버린 스텝에 몸이 휘청, 하고는 그만 앉아 버린 곳이 하필이면- 



  남자의 무릎 위였다. 창피함에 열이 홧홧하게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다시 말하고 일어서려는데 팔이 허리에 둘러진다. 훅, 풍기는 알파 향과 함께 귓가에 숨소리가 닿았다. 



 


  

  "..지금 나 꼬셔?"

 

 

 

 

 

 

 

 

 


 

  방을 뛰쳐나온 경수는 그 길로 일을 그만뒀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못 하게 됐습니다. 별 시답잖은 이유를 댄 탓에 욕도 존나게 처먹었다. 경수 하나 그만둔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는데 매니저가 개지랄을 떤 이유는 아마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리라. 그래도 돈은 꼬박 다 챙겼다. 애초에 당일 급여로 딜 친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물론, 오늘 일한 건 받지 못했다. 아깝긴 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혹하는 건가?"

 

 



  하필 앉은 곳이 남자의 무릎 위였다. 다른 곳도 많은데 왜. 차라리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게 나았다. 멍청하게 굳어버린 사이 남자 옆에 앉아있던 여자들이 깔깔 웃어대던 소리도 들렸다. '오빠 인기 많다~ 일하던 애도 들러붙고~' 오메가인 네가 그럼 그렇지. 일단락시켜버리는 목소리에 경수는 수치스러웠다. 난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고. 웃기게도 부정의 말은 혀끝에 걸릴 뿐이었다. 지독히도 풍기는 박하향때문이었다.

  남자는 상체를 세워 가까이 붙인 상태였다. 남자가 숨을 내쉴 때마다 목덜미에 닿아선 오싹오싹 거렸다. 이성은 정신 차리라 하는데 본능은 꿈틀거렸다. 한주먹 욱여넣은 싸구려 억제제는 그 효능이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이어 츕츕. 목덜미로 입술이 닿았다. 으으... 비틀어지는 몸이 싫다는 건지, 본능에 꼬이는 건지. 경수 본인도 알 수 없는 거였다.

 

 




  "하...하지마,"

 

 




  남자는 끈덕졌다. 입술을 피해 몸을 수그리면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고는 쫓아와 입술을 박아댔다. 아, 싫어. 싫다고... 이대로 끝이 나 버릴 것만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일하다 말고, 낯선 알파의 아래서 소리를 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수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메가로 태어났지만 단 한 번도 본능에 고개를 숙인 적은 없었다. 더욱이 이런 곳에서 오해까지 받아서면서.




  "너 복숭아 향 나..."





  이런 경수를 알 리 없는 남자는 잘근, 경수의 귓볼을 깨물었다. 읏... 축축한 느낌에 경수가 움찔거리자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너 진짜... 진짜로...어디 복숭아 숨겼어?  계속해서 경수의 귓볼을 괴롭히던 남자는 경수의 몸을 더듬었다. 뭘 찾는 듯이 몸을 비트는 경수를 꽉, 끌어안고는 몸 이곳저곳을 더듬던 남자의 손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서는 경수의 둔부를 손으로 꽉, 쥐었다.






  "...이건가?"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복숭아 같은 소리. 온몸을 비틀어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온 경수는 색색거리는 숨을 채 숨기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 와중에 얼음통은 확실히 챙겼다. 잔소리 듣는 건 싫었다. 툭툭, 더러운 걸 쳐내듯 옷매무새를 정리하곤 방을 나왔다.



 



  "죄송한데..."



 



  지금 나 꼬셔?



 



  

  "착각... 작작하시죠, 시발."

 

 




  남자가 E그룹 이사 변백현이라는 걸 깨달은 건, 이미 방문을 닫고 나온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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