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부가 촬영을 끝낸 자리에서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C부의 인원들이었다. 슈포어는 사실 불만이...없지는 않다. R부처럼 딱딱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튈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 잠깐 슈포어가 누구냐. 슈포어는 대충 로시니와 파가니니 기수 대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원래는 다른 부서로 갈 생각이었으나 눈에 불을 켠 비발디와, '그 사건' 이 있고 C부로 바로 들어와 의욕 넘쳤던 모차르트가 반쯤 납치하다시피 -한 직원이었다. 매일 탈주하는 비발디와 어딘가 다른 부서에서 무슨 기획을 늘 하고 있는 모차르트에게는 고마운 C부 지킴이 겸 막내였다. 아마 막내 중 가장 나이많은 막내일 것이다, 슈포어는...

어쨌든, 슈포어는 본질적으로 비더마이어 시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 소박하고 따뜻하고 건전한 게 좋다는 건데, 이 사람들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선글라스! 선글라스!"

"형 별모양 하실래요, 하트 하실래요?"

일단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나이차를 고려했을 때 저렇게 무람하게 '형 형' 거릴 수 있는 나이차가 아니다. 회사에선 그래도 팀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출근했다는 자각이 없으니 저렇게 된다.

"별은 너 해야지."

"오, 그럼 외계인 눈은 슈포어 줄게요."

한다고 한 적 없다는 건 또 묵살이다. 슈포어는 얌전하게 싸구려 하얀색 선글라스를 받아들었다. 본인만 그래도 좀 사람같이 나름 밝은 색 캐주얼 정장으로 입고 왔는데, 비발디는 노란 티셔츠 안에 긴팔 하얀색 옷을 길게 빼입은 게 누가보면 힙합 하는 사람인 줄 알겠고, 모차르트도 노란 티셔츠에 멜빵바지인 모양새가 그냥 딱 미니언이다.

"맘에 안 들어?"

"별로긴 해요."

모차르트의 표정이 축 처졌다. 슈포어는 본인이 또 생각없이 말을 내뱉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하겠습니다!"

비발디와 모차르트의 표정이 나란히 펴졌다. 와- 하면서 박수를 친 둘은 슈포어의 멱살을 잡아끌다시피하고 밝게 웃으며 촬영장으로 간다.

"자세는 정하셨어요?"

비발디가 불길하게 웃었다. 저 웃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아마, 모차르트랑 같이 아무한테 이야기도 안 하고 다섯 시간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왔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료조사의 일환이긴 했지만 덕분에 그날 회사가 발칵 뒤집어지고 (사라진 두 명 가운데 하나는 원 히트 원더라지만 엄연한 팀장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군래컴퍼니의 간판 디자이너 가운데 하나다!) 본인은 죽도록 심문(?) 당했으니 슈포어는 불길해졌다.

"정했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치, 루이한테 선택권이 어디 있다고."

...있는데.

모차르트는 웃으면서 슈포어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약간 빛바랜 19세기쯤 되어 보이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슬픈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나이까.

"...진짜 이거요?"

"어, 진짜 이거."

아마 모차르트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비발디는 적당히 어깨동무 하고 스티커 사진 찍듯이 하자? 정도 선에서 끝낸다면 모차르트는 늘 튀지 않고는 못 견뎠다.

그래서 지금 슈포어는 비발디에게 밟힌 채 사진을 찍고 있다.

팀장이 가운데라는 원칙에 따라 비발디가 가운데, 모차르트와 슈포어는 엎드려서 등을 발판으로 만든다. 원래는 더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슈포어, 너 등빨 너무 좋은 거 아니냐? 몸 좀만 더 숙여봐, 균형이 안 맞잖아."

그럼 차장님이 키가 더 크셨어야죠...! 슈포어가 198cm인 게 슈포어 탓이냔 말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한 존경으로 꾹꾹 참으며 슈포어는 몸을 낮췄다. 나름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경도 받고 제 음악에 프라이드도 있는데... 나름 남들은 평가하고 다니는 입장인데...

"다른 포즈 있으세요?"

"네!"

모차르트는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손가마, 초등학교 때 많이 해봤던 거였다.

"너무 유치하지 않나요...?"

비발디는 선글라스를 한 손에 걸치고 돌렸다.

"어쩔 수 없잖아. 나도 그리 사람이 무거운 이미지는 아니고, 모차르트는 아예 신동 이미지라고? 우리는 차라리 유치하게 밀고 나가는 게 이미지에 더 맞아."

저는요.

"아, 근데 이거 또 키 안 맞지 않나?"

"안 맞겠죠?"

비발디는 가서 뭐라뭐라 협상을 하더니, 오케이 표시를 보냈다. 슈포어는 모차르트의 눈짓을 따라 30cm 정도 되는 나무 발판을 가져왔다.

"굿."

그제서야 키가 맞는다. 비발디는 힙하게 선글라스를 끼고 한 팔로 슈포어의 목을 감싼 채 반대편 손으로는 레모네이드를 빨아마셨다. 레모네이드는 또 어디서 났냐고 묻고 싶다. 순간 빛이 너무 밝아 슈포어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났다.

"팀장님, 저 이거 선글라스 좀만 내려주세요."

"아, 오케이!"

비발디는 슈포어의 이마에 걸쳐 있던 선글라스를 툭 쳐 내려준다. 그제서야 빛이 좀 견딜 만했다. 이따가 개인 사진 찍을 때는 절대 이런 짓 안 한다, 내가 하나 봐라... 슈포어의 귀가 먹먹해질 때까지 셔터 소리가 울렸다. 나름 모델 경력이 오래된 슈포어조차도 힘들게. 하지만 태생이 관종인 두 사람은 이 순간이 인생의 하이라이트인 것처럼 찍는다.

"자유 포즈 갈까?"

"아 완전 콜이죠!"

"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선글라스를 살짝 내린 힙스터 비발디, 블록에 앉아서 천진한 브이 포즈를 하는 모차르트...슈포어는 적당적당히 고참들에게 맞춰주며 촬영을 끝냈다. 

한참 동안 카메라 앞에 서 있던 탓인지, 완전히 땀에 젖은 채 셋은 카메라와 연결된 노트북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촬영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을 골랐다.

"슈포어는 진짜 옷빨이 잘 받네, 기럭지가 있어서 그런가봐."

"히야-그러게요. 루이가 모델 활동도 또 많이 했잖아요. 이게 그 포스가 있네, 포스가."

포스도 태생 관종은 못 따라가거든요. 슈포어는 적당히 두 사람의 장단에 맞춰주며 그나마 덜 또라이같이 나온 사진들을 하나하나 골라냈다.

"그럼 15번이랑 94번, 132번 정도로 하면 되나?"

"네, 그러면 될 것 같네요."

"형, 남은 거 파일로 받으면 단톡으로 보내주십사."

"아 그럼 또 내가 보내줘야지. 둘 다 단체촬영하느라 고생 많았고! 먹고 싶은 거 있냐, 아그들? 우리 개인 촬영 되게 늦잖아.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오자."

슈포어는 닭갈비...라고 작게 중얼거리고 모차르트가 손뼉을 치며 아 이거네 이거네! 치즈떡이랑 라면사리 추가! 하고 반응했다. 비발디는 척,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며 회사 돈으로 결재한다. 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원, 이래서야 슈포어는 자신이 C부를 떠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정말 존경하는 사람들이었고,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영 아쉬운 부서였으니까 말이다. 부서이동 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질 것 같지도 않고, 부서이동을 굳이...? 할 마음까지는 없었다.

한 20년쯤 지나면 저 두 사람이 이렇게 찍은 사진을 창피해하는 날이 올까?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반인 채 슈포어는 답없는 두 상사와 함께 군침이 가득 돌게 하는 닭갈비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건전한 생활패턴을 가졌던 C부까지 촬영을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어야 하는 부는 다섯 개로 줄었다.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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