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보고 싶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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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학생?”

예오는 자신을 부르는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총무가 얇은 붉은 색 테두리 안경에 곱게 빗어 단정하게 넘기고 얄팍하게 생긴 긴 얼굴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이 독서실은 예오가 초등학생 때부터 다녔던 곳이다. 그사이 독서실 총무는 여러 번 바뀌긴 했으나 어차피 이곳에 착실하게 오는 학생들은 정해져 있었고, 학구열만큼 연락하는 학부모들도 정해져 있었다.

“저기, 예오 학생 맞지? 아까 어머님께 전화 와서.”

사십 대쯤 되어 보이는 총무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예오에게 뜸을 들였다. 그러나 소년은 남자의 표정과 행동에 아! 하는 소리를 속으로 감추었다. 어떤 일인지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는 총무의 가당치도 않은 변명을 들은 후, 예오는 그대로 독서실을 빠져 나왔다. 원래대로라면 입실 체크를 하고 한 시간 후에 몰래 빠져나가 호율의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호율의 집에서 잠을 잔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험이 가까워졌으므로 그의 부모는 더욱 아들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직 학원과 독서실 체크가 전부였고, 집에서 먹을 걸 챙겨주거나 자식의 건강을 돌볼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예오는 상처받기는커녕 오히려 너무 좋았다.

주말뿐만이 아니라 가끔은 평일에도 밤샘을 핑계로 호율이네서 아침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고 같이 등교를 했다. 잠을 푹 자니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벼웠다. 공부는 더할 나위 없이 잘됐다. 먹는 것도 호율의 어머님이 잘 챙겨주셔서 전보다 많이 먹었고 소화도 잘되니, 예오의 뽀얀 얼굴 위로 분홍빛이 사라질 일이 없었다. 

오히려 곤란한 건 호율이었다. 함께 잠들긴 했으나 새벽녘에 깨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들끓는 열기를 혼자 삭히느라 힘들었다. 아침마다 어제 잠 못 잤냐? 라고 능글맞게 물어오는 아버지 때문에 다른 의미로 열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호율도 이제는 예오의 체취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옆에 딱 붙어 있는 게 좋긴 좋았으니까. 

서로 좋기만 했던 시간에 물들 때쯤, 이런 일이 찾아온다. 예오는 집으로 가며 호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예오야.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에 왠지 모르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차지했다. 예오는 제 가슴 한편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오늘은 못 갈 거 같아.”

-…왜?

어찌나 실망스러운지 축 처진 목소리가 가감 없이 전해져 왔다. 예오는 거대한 호랑이가 다람쥐 앞에서 귀를 축 늘어뜨리고 꼬리를 말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

어, 그래. 라는 기운 없는 목소리에 지금 당장 호율에게로 달려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예오는 제 맘속에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고 집으로 향했다. 

“왜 벌써 오니?”

이미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예오는 조금 질린다는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총무한테 얼마나 주셨어요? 그럴 돈 있으면 제 용돈이나 올려주세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TV 소리를 들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너 요즘 매일 밤샌다고 독서실 간다더니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첫째 아들에게 신경을 썼다고. 예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얼씨구나 미국에 있는 막내를 보러 갈 사람들이었다. 다른 집은 장남에게 기대가 커서 힘들다는데 이 집안의 애정은 오로지 막내한테 가 있었다.

“성적에는 문제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쨌든 예오도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적어도 아버지가 없으면 큰소리 날리는 없었으므로 빨리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설마 문제 있는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건 아니지?”

사실 그녀는 진작 담임한테도 연락해본 참이다. 다행히 학교생활에 큰 이변은 없었고, 학원은 잘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밤을 새우는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났다. 아이가 걱정돼서가 아니라 제가 모르는 곳에서 돈 아깝게 허튼짓을 할까 봐.

“너, 공부 안 하고 이상한 짓 하는 애들 미래가 어떤 줄 아니? 사람은 자기가 자라온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는 거야. 가난한 애들이 왜 공부도 못하고 문제만 일으키면서 변변찮게 살겠니. 돈도 없고 공부할 환경을 받쳐주지 못하니까. 그런 애들이 사회에 나가봤자 비슷한 애들끼리 또 만나고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 거지. 그러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부모가 이렇게 뒷바라지해주는 집이 어디 있다고.”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까지 들썩이며 말하는 어머니를 보니 예오는 새삼, 저의 성격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인생에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위안 삼기로 했다.

“그래서 어디 있었던 거니? 공부는 하는 거지?”

“용 독서실.”

“뭐?”

예오는 순간적으로 호율의 집과 가까운 독서실 이름이 떠올랐다. 3층짜리 건물은 연식이 오래될 정도로 그 동네 터줏대감인 듯 보였고 늦은 시간에도 1층 편의점에 학생들이 왁자지껄해서 직원이 고생이 많겠구나- 하고 매번 생각하며 지나가던 곳이었다.

“독서실 옮겼어요.”

“그럼 말을 했어야지. 거기가 어딘데? 여기만큼 시설이 좋니? 여기가 나을 텐데.”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지만 그다지 흥미가 없어졌는지 어머니는 다시 TV에 집중하며 물었다.

“여기서는 30분 거리인데, 거기보다 나아요. 시설은 좀 됐지만, 건물주가 운영하는 거라 깨끗하고 관리도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개인실이에요.”

사실, 다 거짓말이다. 가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학군에 호율이네가 유별나지, 그곳도 학구열은 높아서 여기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편의점만 빼면. 어쨌든 어머니는 그렇게까지 캐물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거기 독서실 연락처 적어놓고 가라. 총무 연락처도 물어봐서 문자로 보내.”

예오는 그러겠다 말하고 다시 집을 나왔다.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올 때까지 숨을 멈췄다. 빠르지 않았던 걸음이 뜀박질로 변하고 집에서 멀어져 건널목 앞에 다다랐을 때쯤에야 거친 숨을 마구 쏟아냈다. 늦게 귀가하던 한 회사원이 교복 입은 학생이 괜찮은지 슬쩍 쳐다보며 지나쳤다.

무릎에 손을 대고 헉헉거리고 있던 예오가 가까스로 허리를 세우고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귓가에 울리는 커다란 숨소리가 제 것임을 알아차렸을 땐 스스로 놀라 움찔거렸다.

때마침 파란색으로 바뀐 신호에 다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정지선을 지키는 차 한 대도 없는 황량한 보도를 혼자 걷고 있으려니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예오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편의점 안이 한산하다. 아, 아니구나. 있긴 있는데…. 왜 고양이들이 편의점을 돌아다니지?

아무튼, 환하게 불이 밝혀진 편의점 건물 앞에서 가만히 간판을 올려다본다. [용 독서실]이란 이름이 이상하면서도 평범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경비실처럼 보이는 사무실이 보였다. 정중히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모니터 화면을 보고 낄낄거리고 있었다.

“어? 무슨 일?”

남성은 가볍게 대꾸하며 예오를 바라보았다. 

“여기 등록 좀 하려고요.”

“이 시간에?”

“야간은 안 하나요?”

“아니. 해. 여기 이름이랑 연락처 적어주고, 부모님 성함이랑 연락처도.”

남성은 간결하게 대답하며 펜과 종이를 예오에게 주었다. 예오는 내용을 적고 다시 남성에게 주며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연락할지도 몰라요.”

앞뒤 다 자른 예오의 말에 남성은 잠시 물음표를 띄웠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부모님이 좀, 스~파~르~타~ 식인가 보지? 근데 이 동네 사는 애는 아니네. 뭐 하러 여기까지 다녀? 학생 집 근처에 더 좋은 독서실 많을 텐데.”

“사정이 있어서요.”

그 대답에도 남성은 개의치 않은 듯 넘어갔다. 

“아, 오늘은 안 하고요. 앞으로 입실 체크만 하고 한 시간 뒤에 나갈 거예요.”

“그래? 그런 걸 뭘 얘기해.”

건물주이고 총무인 남성은 학생들이 뭘 하든 상관 하고 싶지 않았다. 독서실에 와서 공부하든 가방만 놓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든, 제 독서실에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하지만 예오는 남성의 시큰둥하고 느슨한 반응에 순간 두 눈이 번뜩였다. 

“그럼 저와 거래를 하시죠.”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람. 야심한 시각에 들이닥친 또라이인가 싶어 남성은 예오를 위아래 훑어보았다. 정상인 거 같은데, 생긴 것도 멀끔하고 누가 봐도 똘똘하게 생긴 아이였다.

“제가 잠을 못 자서 친구네서 잘 거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이 확인 차 전화 할 수 있어서요. 입실 후 혹시 전화가 오면 예오 학생 공부 중이고 확인했다고 전해주세요. 물론, 맨입으로 부탁드리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일주일에 5만 원, 한 달 20만 원으로 손잡고 싶습니다.”

남성은 기가 차서 입을 벙- 하니 벌린 채였다. 이리도 맹랑한 아이를 보았나.

“학생이 나쁜 짓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고? 게다가 미성년자한테 뇌물 받으면, 이건 뭐, 이것도 김영란법이나 뭐, 미성년자 착취 그런 거 걸리나?”

제 턱 밑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남성을 보고 예오는 희망을 얻었다. 돈 받는 건 꺼림칙한 반면, 이유가 타당하다면 들어줄 마음이 있다는 소리였다.

“김호율이라는 친구네서 잘 거예요. 이건 호율이 전화번호도 원하신다면 친구 아버님 연락처도 알려 드릴게요.”

예오는 순식간에 아버님까지 팔아버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일주일 동안 자신이 얼마나 충만한 일상을 보냈던가. 단순히 잠을 잘 잤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런 감정을 뭐라 부르면 좋을지 몰라도, 예오에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드넓은 잔디밭에서 단 하나의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것만 같았으니까.

남성은 예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요런 꼬맹이 말에 휘둘릴 이유야 없었지만, 무표정 속에 담긴 절실함이 특이했다. 게다가.

“호율이라면 나도 알지. 덩치 큰 호랑이 학생이잖아. 아버님이 워낙 화통하셔서 재미있으시기도 하고, 어머님은 엄청난 미인이시고, 동생들도 어찌나 귀여운지.”

그의 발언에 예오는 깜짝 놀랐다. 동네라고는 해도 호율이네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남성, 독서실 총무이자 건물주 종석은 피식 웃었다. 예오의 놀라는 표정에 그제야 제 나이의 순진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전에 공부 좀 하라고 호율이를 여기 넣어뒀는데 녀석이 맨날 몰래 빠져나가는 거야. 어디 가서 못된 짓이라도 하나 싶어서 아버님이랑 쫓아갔더니 뭐했던 줄 알아? 한강 가서 뜀박질하고 있더라고. 저랑 비슷한 덩치의 친구들하고 씨름하고. 크크크. 얼마나 웃겼던지. 결국, 아버님이 포기하고 말았지. 공부는 됐다, 건강하게 자라다오~ 하면서. 그래도 다행이지. 얼마나 건전해,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애도 없어. 아무튼, 돈은 안 줘도 돼. 호율이네서 지내는 거면 믿을 만하고. 하지만 학생 부모님께 거짓말해야 하는 이유는 말 안 할거지?”

종석은 눈치 있는 어른답게 넌지시 묻고 말았다. 총무에게 전화해서 일일이 확인하는 부모라면 극성일 거라 판단한 것도 한몫했고 여차하면 호율이네 아버님께 여쭤보면 될 일이다. 종석은 독서실이란 집에서 할 수 없는 시간을 보충해줄 수 있는 학생들의 편의 시설로 여겼다.

사실 조금 긴장했었나 보다. 예오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풀린 일에 어안이 벙벙한 채로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인사도 잊지 않았으나 뭔가 멍해진 기분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호율이네 집 앞이었다. 아직 열쇠를 못 받았기에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휴대폰을 보니 자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모두 잠자리에 들었는지 집안은 깜깜했다. 오늘은 못 간다고 연락했으니 호율이도 자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전화를 걸어 본다. 받지 않는다면 [용 독서실]로 가서 밤을 새울 생각이었다. 무심하게 울리는 기계음이 뚝 끊겼다.

“…안 받네.”

어쩐지 실망스럽기도 하고 서운함이 밀려왔다. 왜 서운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호율이라면 언제든 제 연락을 받을 것이라 여긴 모양이다. 자만도 이런 자만이 없다. 인제야 마음 한구석에서 꾸물꾸물하는 불편함이 뭔지 알 것 같다. 예오가 자조적인 미소를 흘리며 뒤돌아서려던 찰나, 철컹- 하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맑은 종소리처럼 들려왔다.

“예오야.”

그리고 돌아선 어둠 속에서 호율이 환한 웃음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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