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쓸모는 없지만 귀여운 내 동생, 어디로 간거니.

 

현은 소리없이 울었다. 작고 마르고 힘도 약한 허연 애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저보다 눈높이가 있고 이제 성인인 나이였지만 그는 제 동생이었다. 그리고 손목도 발목도 그냥 목도 가느다란 젓가락같은 인간이었다. 잔뜩 덜렁거려서 넘어지기도 잘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이 곱게 키워진 애라 혼자 두면 그것들에게 잡아먹히거나 그런 일 없더라도 굶어죽을 게 뻔했다. 그가 사라진 건 분명히 현의 실책이었다. 10살때부터 쏘다니던 걸 알았는데 그 잠깐 한눈 팔았다고 사라지다니.

 

유록은 그런 현을 진정시켰다. 다시 만날 수 있다던가, 그런 희망섞인 말은 없었다. 그에 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잔뜩 찡그린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급박함과 혼란스러움에 제쳐두고 있던 걱정들이 쏟아져나왔다. 엄마 만나면 뭐라해야해. 동생놈 하나 간수 못하고 이러고 있다고?

 

유록은 생각했다. 이제 내 친척중에 멀쩡한 사람은 없는걸까. 물론 그도 이해했다. 그는 삼남매의 장녀였으니까. 과거형이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드레스가 너무 잘 어울려, 이 날이 너의 날이라 떠들었던 자기 자신을 지독하게 패버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아직 너의 날은 달이 뜨지도 않았다. 피로연도 사진촬영도 없었다. 형식적인 결혼식은 확실히 아니었지. 그 예식장에 들인 수백이 스쳐지나갔으나 이내 픽 웃어버렸다. 그래, 너가 죽었음에도 나는 이런거나 생각하는구나.

 

그는 이제 무엇을 걱정해야할지도 혼란스러웠다. 그가 유일히 할 수 있었던 건 벌써 흐릿해지는 동생들의 기억을 끌어당겨 제 눈앞에 두는 것이었다. 현은 여전히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고 멍하니 있었다. 오빠들은 어디로 갔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억지로 접었다. 그의 머리는 이런 것에 에너지를 쓰기엔 너무 바빴다.

 

걱정, 불안,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첫 번째 반응. 유전자가 만들어낸 거지같은 장치. 갑자기 세상이 망한다고 지금까지의 생이 쌓은 경험과 습관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착실히 적응과 변화를 이어갔다. 차는 간간히 적당히 무게있는 살덩어리를 치고 지나갔고,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에 이리저리 치이고 눌렸다. 오히려 덕분에 완전히 지쳐버린 현은 잠들 수 있었다.

 

세 번째 구호소는 오히려 그들이 빠져나온 피의 결혼식보다도 더 피의 붉은색이 발 어울렸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광인과 인간이었지만 죽었다 다시 일어난 죄로 조각난 시체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사람들,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본인조차 정신을 못차리는 군인들까지, 말그대로 엉망이었다. 어쨌든 ‘안전’이란 단어에선 가장 멀어보였다.

 

현과 유록은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여섯 달이 더 지났다.

 

그들은 제법 태는 멀쩡해 보이는 마을을 지났다. 물론 이장의 집 지하에서 끼익거리는 소리는 잠시 묻어둔 채였다. 사람 좋은 표정을 짓는 이장은 차까지 내어주며 친절하게 주변 지리를 설명해주었다. 현은 찻잔에 손만 대었고, 유록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

 

“저쪽엔 돼지농장이 하나 있는데, 그쪽은 돌아가는 게 좋을거야.”

“‘그것’들 수가 많나요?”

“아니, 아예 하나도 없지. 그게 문제야. 그것들을 싸그리 몰살할 수 있는 무뢰한들이 점거하고 있거든.”

 

그들은 하얀 달이라 불렸다. 거창한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니고, 다들 이름에 달이 연상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럼 하얀 건요? 하얀 옷만 입고 다닌데요?”

“그것 참 빨래하기 힘들 것같은 컨셉이네. 그건아니고, 유일하게 달이 안들어간 애 이름에 흰색이 있다나. 생각해보니 너희랑 비슷하네 특이했지. 외자였는데.”

 

그 순간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차마 뱉을 수 없었다. 헛된 기대엔 견디기 힘든 절망이 따라옴을 그는 이미 너무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작은 희망을 늘 흔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늘 희망이나, 삶을 이어가는 이유도 희망뿐이기에.

 

그저 그 빛을 따라갈 뿐이다.

 

하얀 달의 수는 소문의 위상과는 달리 무척 적었다. 물론 그들이 지난 열다섯 시간동안 겪은 일을 생각해보면 그 많은 사상자들의 이유는 뻔했다. 그들은 신체능력과 수보단 머리로 살아가는 부류들이었다. 송화는 오히려 이쪽이 어울릴 것같은데. 노란 산의 시커먼 남정네들을 떠올렸다. 적어도 사나운 인상만큼은 비슷했다. 태어날 때부터 저렇게 생기지는 않았겠지. 멸망 이후 벌어진 별의 별 이상한 일들을 떠올리면 당연한 거였다. 대치 상태는 길어지지 않을 것이다. 수는 비슷했지만 체급은 확실하게 그들쪽이 밀렸다. 이 곳은 하얀 달의 거주지였고, 그들은 열다섯시간동안 전쟁터에서 버티며 잠도 못자고 막 빠져나온 상태란 것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불리했다. 아마 도축돼어 걸이에 걸리려나. 아니면 저 구덩이로 던져지려나. 결말은 뻔했으나 발버둥은 쳐봐야했다. 그러나 현이 채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그 모든 생각은 허사가 되었다.

 

험상궂은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삐져나왔다. 근육들 사이로 확연히 튀는 색깔이었다.

 

현은 그 색을 사랑했다.

 

여전히 작고 마른 그의 동생이었다. 직전까지 평균 키 180을 웃돌던 군단 사이에서 동생은 종잇장마냥 구겨져있는 미간과 구릿빛 피부 사이 유난히 하얗고 말랑해보였다.

 

현은 수백 번, 수천 번을 속으로만 되뇌이던 이름을 부르질렀다.

“백아!”

보는 것과 직접 만져보는 것엔 역시 차이가 있었다. 원래도 살이 없던 편인 백은 아예 홀쭉해져 살집은커녕 말랑함조차 없었다. 그러나 닿자마자 굳고 질색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평소처럼 고양이마냥 쑥 품에서 빠져나가는 것까지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그였다. 입을 삐죽이는 그를 보며 실실 웃고있자니 방금 전까지의 분위기를 잊을 뻔했다. 물론 백과 현을 떨어트려놓는 손길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얜 우리 소속이라서. 누가 얘 데려왔어?”

“아무도요. 우리 다 여깄잖아요. 보나마나 혼자 쏘다니다 나왔겠죠.”

“이번 주 교육 담당은?”

“두목이요.”

“...”

 

백의 가는 손목을 잡고 뒤로 죽 빼버리는 보름에 백은 비틀거리며 현과 멀어졌다.

 

그들은 아주 간만에 인맥의 도움을 받았다. 현이의 기준. 두 번째 이직한 회사에서 만난 옛날 회사 동기와의 만남으로 어려운 일을 약간만 어려운 일로 만든 후 처음이었다.

 

약해빠져서 잡일도 못하던 백은 다행히 머리는 좋은 편이었다. 물론,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육체 노동으로 먹고살던 그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보았을 때 말이다. 그는 농장의 수치와 관리를 맡고있었다. 우리 애가 관리직에 오르다니. 현은 자랑스러움과 약간의 의아함으로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보름과 그믐, 하현은 굳은 살 하나없는 손으로 서툴게 바닥을 문지르고(닦는다고 표현하기엔 그가 지나가도 달라지는 건 바닥의 물기가 더해졌단 것뿐이었다. 그리고 보통 그 물기는 바닥을 더 더럽게 했다.) 환풍구 사이즈에 맞길래 이거다하고 들여보냈더니 그 안에 살던 쥐가족들을 전부 농장 안으로 초대한 덕에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던 백을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쥐어준 일이란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백이 별 쓸모없는 전력인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미 일원으로 받아버린 걸 겨우 저런 집단에게 넘길 수 없었다. 혈연이란 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사어에 불과했다. 아주 가끔 백의 호기심과 지루함에서 비롯한 위험한 심심풀이가 그들에게 어정쩡한 도움이 된다는 게 그들의 변명이었다.

 

보름은 관대하게(보온도 뭣도 없는 깔개를 보관하는 컨테이너 박스에서)그들의 하룻밤을 허락해주었다.

 

 

 

백과 하얀 달이 되기 전 하얀달과의 만남은 멸망 후 아주 초기였다. 그들이 지금만큼 경계심이 심하지않고, 그저 사람으로서 경계하던 시절,의 직후. 이방인은 그냥 눈에 띄자마자 죽이기 시작하던 그 때말이다. 마을 하나와 강을 맞닿고 있는 농장에 찾아오는 사람은 그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여자들만 있는데다가, 생존에 필수인 먹을 게 풍부한 장소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고 노리는 이들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멸망 전에도 사람에게 잔뜩 데인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 의심은 습관이었다.

 

한 이방인은 젊은 남자였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미끼로 팔고 도망쳐 그것들까지 이끌고 농장에 파고들려했다. 하현은 오히려 그를 이용해 그것들로 완벽한 덫을 만들었다. 농장 바깥쪽을 두른 구덩이들은 좋은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가끔 올라오는 그것들과 어떻게든 건너오는 인간들이 골치이긴 했지만, 적어도 1차 방어막으론 훌륭했다. 언젠가 농장의 문을 두드린 건 중년의 여자였다. 그믐은 거의 속을 뻔했다. 세월이 쌓은 남을 조종하고 무릎 꿇게 하는 혀와 간사한 갈라놓기는 거의 먹힐 뻔했다. 보름은 구덩이에 그를 매달아놓고 모든 걸 자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를 풀어주었다. 그가 그렇게 꺼내달라고 외쳤던 구덩이 속으로. 보름은 선언처럼 제안했다. ‘우리’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믿지 말자고. 그들은 과반수로 동의했다.

 

잔인한 그들의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할 때즈음, 초승달의 무덤에 꽃을 올리기위해 농장을 나온 상현은 백과 만났다. 그것과 사람 구분없이 보이는대로 다 죽여서 땅의 거름으로 만들어주자고 결정한 게 바로 지난 밤이었다. 상현은 망설였다. 죽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건만 이미 죽어가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백은 그렇게 유일하게 농장에 정착한 처음이자 마지막 이방인이 되었다.

 

백에 대한 경계는 천천히 허물어졌다. 처음엔 항시 옆에 붙어서 감시하고(백은 그냥 모여있는 걸 좋아하나보다 했다), 말의 단어마다 쪼개 의심하고(백은 말수가 아주 적은 편이었고, 하는 말도 배고프다같은 1차원적 욕구풀이에 그쳤다), 이것저것 캐물은 결과(갓 고등학교 졸업한 애+작고 마름+조용함 콤보. 실용적인 정보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은 백에게 완전히 적응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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