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그대에게 해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너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것.
한가한 주말 오후 함께 쇼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것.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저녁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가 하기 싫어
가위바위보를 하는 그런 일들.

물기 가득한 내 머리카락을
손수 네가 말려주고
그 긴 손가락으로 쓸어 넘겨주면
난 항상 기분이 너무 좋아
바보 처럼 웃어 버릴 거야.

네가 아픈 날이면 밤 세워 너를 지켜보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눈물 흘리더라도
그 침대 머리 맡을 지켜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일.
그것 뿐이야.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하고 지극히 소박한 일들.
누군가에겐 그저 반복되는
일상에 지나지 않을 일들.
단지 그것 뿐인데.

왜 우리에겐 그게 과분한 바램이었을까.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손이 닿지도 않는 그런 바램.

왜.. 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아직도 난 그런 꿈을 꾸고 있어.

그런 소박하면서 화려한 나날을.


                                                                                                                                






“ 아.. 기분좋다.”


  아직은 차가운 겨울 햇살이 얼굴을 간지럽혀 눈을 감고 나지막히 혼잣말을 내뱉는 민호. 빠르게 지나가는 겨울 바람이 아직 꽤 차가울 텐데도 그의 말처럼, 기분좋다는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달리고 있는 차안.


조수석에 앉아있는 민호는 창밖으로 내밀었던 얼굴을 돌려 옆자리, 운전석에 앉아있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운전대를 잡고서 집중하느라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 진우야.”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바람이 상쾌하게 그의 이름을 실어간다. 진우는 민호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민호는 눈썹을 한번 씰룩이더니 한 손을 들어 진우의 미간 사이를 살짝 만졌다.


“ 헉. 뭐야.”


그제서야 반응을 하는 진우.

깜짝 놀란 탓인지 차가 한번 휘청 거렸다. 간신히 운전대를 바로 잡은 진우는 차마 시선을 민호에게 두지 못한 채 화가 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야! 놀랬잖아!”
“ 놀랬어? 헤헤, 미안~”
“ 왜 그래. 운전하는데.”
“ 너 너무 인상 쓰며 운전하잖아. 예쁜 얼굴에 주름 생겨. 그리고.. 내 옆에 있는게 너 맞는지 확인도 하고 싶고..”



진우는 곁눈질로 민호를 힐끔 보더니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이런 행동이 바로 송민호다.

이렇게 생각 없는 듯 행동하지만, 그 손끝에 다정함이 뚝뚝 묻어나는 녀석.
그래놓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웃는 눈 웃음이 또 마음을 설레게 한다. 진우는 순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싱겁긴. 방해돼. 나 초보운전이라고.”


핀잔 섞인 그의 말에 민호는 기분이 좋은지 소리 내어 웃었다.









“ 여행가자.”


오늘 아침 부모님이 외출한 사이 자신의 방을 찾아온 진우가 대뜸 꺼낸 말.
게임을 하고 있던 민호는 갑작스러운 진우의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 어? 여행?”
“ 너 겨울 내내 집에만 있었잖아. 그러니까.”


방문에 기대어 자신을 바라보는 진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동안 사고 후유증 때문에 바깥 외출을 잘 하지 못해 답답해하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진우가 갑작스런 제안을 건넨 것이었다.

물론 기뻤다.
 진우가 먼저 무언가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까. 항상 자신이 먼저 무언가를 하자고 진우에게 졸라대는 편이었고, 진우는 거절 아니면 마지못해 알았다고 해 주는 정도였다.

물론 최근 들어 그런 면이 조금 줄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달라진 것 뿐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10시.. 어딘가 외출하기에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이른 시간도 아니다.


“ 지금 가기에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 갑작스러운 거 좋아하잖아, 넌.”
“ 하하, 그런가.. 그래도. 괜찮을까?”


부모님에 대한 것이 걱정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진우와 자신 사이를 가로막을 벽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이야기했지만 이따금씩 고개를 내미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기분을 아는지 진우는 싱긋 웃었다.


“ 뭐, 어때. 가기 싫으면 말고.”
“ 아, 아냐!! 근데.. 나 오래 걷거나 그런 거 못하는 데 아직...”
“ 알아. 나만 따라오면 돼.”


진우의 진지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웃음이 참 예쁘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머릿속에 잠시나마 가득 찼던 불안감이란 녀석은 저 만치 사라진지 오래.

자신의 마음은 오래전부터 그에게 향해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집안에서는 그의 얼굴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없으니까 함께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마음이 자꾸만 설레였다.



“ 뭐 챙길까? ”
“ 옷 몇 개만. 나머진 내가 다 챙겼어.”
“ 옷? 얼마나 있을 건데?”


옷 몇 개.. 라는 단어의 의미는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있을거냐고 묻는 자신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진우는 구석에서 캐리어를 꺼내 자신을 재촉했다.

옷장에서 입을 만한 옷가지를 꺼내면서도 내심 그가 여행에 대해서 어떤 말이라도 해주길 바랬지만 전혀 코멘트가 없었다.
묵묵히 빠진게 있냐 챙겨봐주는 진우.



“ 진우야, 우리 도망가는 거야?”


여행이라고 쓰고 도망이라고 읽는 거냐는 뉘앙스로 물어보았지만 자신의 말에 피식 웃기만하는 진우였다. 그렇게 옷을 다 챙겨 넣을 때까지도 아무말 안해주던 그가 민호에게 다가와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천천히 입을 열였다.

아주 신중하고, 진지하게.


“ 내가, 널 납치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말이었는데 그가 그렇게 내뱉을 때 얼마나 설레였던지. 납치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변태적인 성향 같은 건 없지만 뭔가 둘이서만 몰래 떠나는 여행이라는 것이 갖는 미묘한 기분은 이루 설명 할 수 없다.

그렇게 간단한 짐만 싣고 어디로 떠나는 지도 모른채 진우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약간은 시린 겨울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는 기분도 괜찮다. 몸 속 곳곳 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 너 근데.. 운전은 언제 배운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운전을 하고 있는 진우가 어색한지 민호는 약간 미심쩍다는 목소리로 묻는다.


“ 너 다쳤을 때.”
“ 앗, 너 혼자만 운전 면허 따러 다닌거야?”
“ 너 잘못 움직이니까.. 태워주려고.”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 진우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그의 간단한 대답과는 다르게 민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확대해석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그의 대답은 분명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밖에 없다.


정말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멈출수도 없고, 그만 둘수도 없다.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상투적인 대사 처럼 어떻게 되든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진우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 민호야, 뭐해?”
“ 어, 응?”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차는 멈춰 서 있었다.
놀랐는지 동그란 눈을 하고서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는 민호.

진우는 운전을 하느라 잔뜩 긴장했던 탓인지 주먹을 힘껏 쥐었다 놓으며 기지개를 켰다. 안전벨트를 풀고 옆을 보니 아침부터 영문도 모른채 자신에게 실려왔으니 민호의 표정이 아직도 얼떨떨한 듯 했다.


진우는 해사하게 웃으며 민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살짝 자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촉감이 좋다.
 

민호도 기분이 좋은지 싱긋, 정말로 싱긋 웃는다.



“ 다왔어. 내리자.”
“ 응. 여기가 어디지?”
“ 어디긴, 내려서 봐.”



그렇게 말하며 민호의 안전벨트를 손수 풀어주는 진우.

 진우의 몸이 자신에게 기대오자 그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별다른 향수를 쓰지 않아도 좋은 향기가 난다.

또 두근.

정말로 그와 15년 넘는 세월을 함께했는데도 이 놈의 심장은 차분해 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 아침부터 내내 그 생각뿐이었는데.
진우야, 너에게서는 나를 끌어당기는 호르몬이 있나봐.
네 향기만 맡으면 정신을 못차리겠어 나.


민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차문을 열고 내렸다.






드 넓은 광장. 예전에 한번 쯤 와 본 적이 있는지 전혀 낯선 곳은 아니다. 바깥 경치를 보거나 진우를 보느라 이정표도 체크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옆에서 진우는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민호는 가볍게 그의 웃음에 답하며 시선을 옮겨 다른 쪽을 보았을 때 한 눈에 이 장가 어딘지 알려주는 커다란 이름을 보았다.


 왜 진작 못봤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노골적인 이름.


E@@land



“ 어.. 여기.”
“ 응. 놀이동산.”
“ 놀이동산?”
“ 나랑 같이 놀이동산 가서 토끼머리띠하고 사진 찍고 싶다며.”




- 너랑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백만 가지쯤 있어. 놀이동산 가서 토끼머리띠 하고 사진 찍기 라던가..



예전 함께 영화관에 갔을 때 지나가는 말 처럼, 장난처럼 자신이 내 뱉었던 말이었다.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이긴 했지만 진우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미로 머리 속에 생각나는 걸 내뱉었던 것일 뿐 진우가 함께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그런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여기 서 있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마음을 기억해주었다는 사실이.


민호는 진우의 어깨를 끌어당겨 그를 품속에 안았다. 급히 주위를 의식하며 민호를 살짝 밀어내던 진우도 이내 잠잠해졌다.
민호는 진우의 귓가에 얼굴을 묻고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 후, 민호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 그 말.. 기억하고 있었어?”
“ 음.. 글쎄. 모르겠는데?”
“ 나.. 대학 떨어졌다고 위로해 주는 거야?”


진우의 능청스러운 말에 민호는 장난스러움을 섞어 말했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장난에 섞어 진심을 이야기 하는 편이 조금 더 두사람의 관계에 있어 편할지도 모른다.

진우는 민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재촉했다.


“ 그래. 그렇다고 치자. 얼른 가자.”
“ 하하하. 너랑 같이 간다니까 좋네.”
“ 어린애 같이. 얼마나 놀이동산에서 잘 노는지 한번 보자.”



진우는 벼르기라도 하듯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어린아이  같은 해 맑은 웃음을 지으며 앞장 서는 진우. 민호는 잠시 뒤 쳐졌다가 성큼 걸어 앞서 걸어가는 진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허리에서 타고 들어오는 민호의 체온이 따스하다. 이렇게도 그가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그가 다치기 전에, 좀 더 두 사람의 관계를 타인이 바라보기에 자연스러웠을 때 함께 올 걸 그랬다라고 작은 후회를 삼켰다.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이렇게 즐겁게 웃는 걸 볼 수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진우는 자신의 허리를 감싼 민호의 손을 한번, 그리고 뿌듯하고 의기양양하게 앞을 보고 걸어가는 민호의 얼굴을 한번 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그의 모습을 바라볼 수록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동시에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풀려나가던 실이 엉켜버리기 시작한 건 꽤 되었다.
해결해보려 발버둥치지만 돌아오는 걸 수 많은 물음표 뿐.



“ 진우야."
“ 어, 어?”
“ 뭐 해~ 얼른 가자. 정말 토끼 머리띠에 사진도 포함된 코스 맞지?”
“ 하하. 몰라, 보고.”
“ 김진우우~”


민호는 눈을 찡긋 찡긋 하며 연신 애교를 부려댄다. 이럴 땐 영락없이 어린 티가 난다. 진우는 풉 하고 짧은 웃음을 내뱉고는 민호의 애교에 못 이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얀 피부에 손가락이 길게 뻗은 진우의 손.
민호는 잠시 동안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그의 손을 잡게 되리라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의 손을 꽉 잡는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
맞잡은 두 손이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차가운 아직은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달칵


욕실 문을 열고 나온 진우는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걸어 나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한층 따뜻해진 느낌이다. 시리던 마음 한켠도 녹아버릴것 같은 그런 기분.



“ 민호야, 뭐해.”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고 있는 민호쪽으로 걸어갔다.

무언가를 보며 킥킥 대며 웃고 있는 민호. 자신이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계속 낄낄거리는 그가 야속해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그에게 살짝 던져 버린다.



“ 앗, 너 나왔네? 큭큭.”
“ 뭐하길래 나 나오는 소리도 못듣고.”
“ 사진 보고 있었어.”



얼마나 웃었는지 빨개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민호는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사진을 건네준다. 사진 가득 진우, 자신의 모습이 사진 가득 있었다.


바쁜 아침에도 꾹꾹 카메라를 이것 저것 챙겨대더니 놀이공원에서 계속 눌러대던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제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군데 군데 차마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었던 비운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사진을 급하게 넘겼다.


“ 아, 뭐야. 이건 언제 찍었어!”
“ 그거? 아까 회전 찻잔인가? 그거 탈 때. 너 유체이탈 한 것처럼 나왔어. 완전 웃겨.”
“ 이건?”
“ 그거? 롤러코스터 탈 때. 아까 가위바위보 해서 네가 져서 미니 롤러코스터 네가 탔잖아. 그때 찍었지. 너 은근히 이런거 무서워 하는 구나? 담담한 척 하더니. 푸하하하.”
" 너도 만만치 않았거든!"


사진이 꽤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는 진우는 새침하게 삐진 얼굴을 하고 선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침대위로 뿌려버렸다.

아예 배를 잡고 뒹굴 뒹굴 구르며 웃고 있는 민호가 야속할 뿐. 진우는 옆에 누워서는 구르는 민호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에게 잡힌 민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만들어 낸다.


“ 저주 받은 손으로 카메라를 더렵혔구나, 너.”
“ 네가 저주 받은 피사체겠지.”


한마디도 지지 않은 그의 말에 진우는 발로 그를 침대 밖으로 밀어 떨어뜨려버렸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은 민호는 본능적으로 이불을 꼭 잡았고 덕분에 자신이 창조해낸 김진우 굴욕의 순간들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꽤나 아플텐데도 어찌나 웃어대는지, 진우도 그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을 수 밖에 없다.

늘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민호.
그와 함께 있으면 어느덧 자신의 마음도 밝아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 환자를 이렇게 발로 차다니, 정말 예의 없어, 김진우.”
“ 예의는 무슨. 얼른 네 침대로 가. 난 잘 거니까.”



바닥에 떨어진 사진들을 주워모으던 민호는 진우의 말에 환자 운운하던 투덜거림을 꾹 삼키고 진우의 시선이 닿는 곳에 베게를 끌어안고서 앉았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호소하는 눈빛을 가득 머금은 초롱초롱한 그의 눈을 애써 무시하는 진우는 한쪽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최대한 귀찮다는 말투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 왜.”
“ 진우야.”
“ 왜. 덩치는 남산 만 한게 꿈자리 사납게 그러고 있을래?”
“ 후후. 다른 사진 좀 더 있는데~ 안볼래?”
“ 무슨 사진? 내 엽기 사진이라면 이제 됐어.”
“ 아니 아니, 엽기 아냐. 진짜 안보면 후회하는 사진.”
“ 뭔데?”



얼굴을 가렸던 팔을 내리며 진우가 방심하는 틈을 타 민호는 그의 침대 진입에 성공했다. 민호는 침대 위쪽으로 올라가 헤드쿠션에 살짝 몸을 기대더니 능청스럽게 진우를 자신의 날개 밑으로 끌어 당긴다.
진우는 그런 민호의 행동이 어이없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자신도 편하게 자세를 고치며 그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민호는 그런 진우의 행동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하게 그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약간 새침한 표정을 하고서 자신에게 기대있는 진우.
 너무나 좋다.

민호는 두근대는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고는 침대위 협탁 위에 두었던 다른 몇장의 사진들을 손을 뻗어 꺼냈다.


“ 이거봐.”
“ 또 이상한 사진이기만 해봐. 야외취침이야."
“ 크크크. 아니야.”


진우는 건네받은 사진을 한장씩 천천히 넘겼다.

그 사진 속에는 아까의 사진들과는 다른 예쁜 색감의 사진들이 여러장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수 많은 사진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발 사진.
고개를 돌려 다른 편을 바라보고 있던 자신과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민호의 셀피.
사진 찍던 그 순간이 기억나긴 하지만 어색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자신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 사람의 사진.


진우가 사진을 넘기는 속도에 맞추어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주는 민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바로 낮에 있었던 일인데도 마치 10년 뒤 서로 함께 누워 지나간 옛 일들을 이야기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다.


그리고 진우가 마지막 사진을 넘기자 민호가 서둘러 설명을 덧붙인다.


“ 오늘의 포토제닉은 이거.”


그렇게 말하는 민호의 눈꼬리가 또 휘어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어쩌면 사진 보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좋지만 자랑스러운 톤으로 이야기 하는 그의 기대를 져버릴 수는 없는 지라 다시 시선을 사진으로 옮겼다.


“ 이게 뭐야..”


혹여 마음이 들킬까봐 상투적으로 실망했다는 듯 말하는 진우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놀이 동산에서 끝끝내 토끼 머리띠와 곰돌이 머리띠를 사더니 진우의 머리에는 토끼 머리띠를, 자신의 머리에는 곰돌이 머리띠를 얹던 민호.

주변 사람들이 모두 힐끔 거리며 쳐다보는게 너무 의식되어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지만 너무나 신나하는 그의 얼굴 표정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어 끝까지 토끼로 변신해 있었더랬다.

키가 180 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민호와 그보다는 작지만 작지않은 자신이 함께 나란히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주변의 시선을 끌만한데 머리까지 그러고 있으니 진우는 어딘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민호의 어린아이와 같은 눈빛이 자신의 행동을 막았다.

그리고 폐장 시간이 다되어 갈 때 즈음 민호가 자신의 팔을 잡아 끌며 무언가를 바라는 촉촉한 눈빛을 마구 보내었다.
그리고는 내 뱉는 그말. 들어주는 게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다.


- 사진, 사진 찍어야지!


어두워서 잘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해서 잠시 동안 사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러나 불이 들어온 회전목마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은 예쁜 조명, 그리고 생기있어 보이는 두 사람의 얼굴 표정이 생기 있어 보여서 좋았다.



내가 이런 표정을 하고 있었나?
민호 옆에서, 이런 머리띠를 하고서 이렇게 맑게 웃고 있었나?
네 옆에 있으면 나는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진우는 자신과 민호의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 맘에 들지? 난 이 사진이 제일 좋다.”
“ 그래, 그렇다고 치자.”
“ 이거 너 줄까? 아, 아니다. 네가 가지든, 내가 가지든 상관 없겠네.”
“ 무슨 말이야.”


진우가 건넨 사진을 자신이 들고 있다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다시 사진을 챙겨 넣는 민호.

그리고는 조금 시간을 두어 생각하듯 이야기 한다.



“ 같이 있을 거잖아. 앞으로 계속.”
“ 어?”
“ 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어도 네가 보고 싶을 때는 꺼내 보면 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민호의 표정이 꽤 진지하다.

방금까지 연신 웃고 있던 개구쟁이 같은 웃음은 그의 깊은 눈동자 사이로 숨어버린채 진지한 얼굴로 정말로 진심이라는 것이 뚝뚝 묻어나는 빛깔의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잠시동안 괜찮았던 진우의 마음 한 켠이 바늘에 찔린 듯 쿡쿡 아려온다.

그에게 대답을 해주고 싶은데, 어떤 말을 만들어 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다. 자신의 속마음이 들킬까봐 긴장도 된다.

지금 자신은 행복하다.

진우를 자신의 품으로 가득 끌어 당겨 안아주는 민호도,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는 자기 자신도.

늘 함박웃음 짓는 민호가  있어서.
늘 함께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진심을 전하는 그가 옆에 있어서.

그래서 행복하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운다.



“ 진우야, 우리 내일은 어디가?”
“ 어? 어.. 음.. 자전거 타러?”
“ 헉! 나 자전거 타는 거는 무리일거 같아. 다리때문에.”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민호의 표정이 귀엽다.


“ 커플 자전거타고 싶다며. 내가 앞에 타지 뭐.”
“ 오, 김진우. 너 나 몰래 몸이라도 키웠냐? 나보다 키도 작은 게.”
“ 키는 작아도 너.보.다 사지는 멀쩡하거든? 그리고 싫으면 말던가.”


나름대로 민호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어서 고민한 계획에 토를 달아대는 민호가 살짝 미워진 진우는 뾰로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의 반응이 재밌는 듯 한참을 크게 웃던 민호는 그의 쪽으로 몸을 돌려 그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나머지 한쪽 팔을 자연스럼게 진우의 위로 올려 가볍게 그를 품안에 가두었다.

민호는 그윽한 시선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를 스캔하듯이 훑어내렸다.

원래 이렇게 말랐었나 싶을 정도로 부쩍 여위어있는 그의 얼굴에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과 그런 일이 있었고, 자신이 다치던 그날 이후 보다 부쩍 얼굴 표정도 좋지 않았던 진우.

그런 그가 어느 순간 부터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방으로 찾아와 자신과 함께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그럴때면 표정이 좋아보였는데.


말없이 자신을 안아줄 때 느껴지던 그의 심장 고동소리.
그런 모든 것들이 자신이 찍어대었던 사진들 보다 더 많은 사진첩을 채우고 있다. 민호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 내가 너와 하고 싶다고 하는 일 백 만가지.”
“ 어?”
“ 그거구나? 그때 영화관에서 이야기 했던거.”


민호의 진지한 물음에 진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무언가 기억 속을 헤집듯 천천히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고는 약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낸다.


“ 생각해 보니, 나는 너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더라. 네가 뭘 좋아하는지, 네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 기억나는게 네가 그때 이야기 했던 것들. 그것 밖에 없었어.”
“ 바보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잖아.”
“ 응?”
“ 너. 김진우, 너 말이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촉촉한 민호의 입술이 다가오는게 느껴진다. 자신의 위에 가볍게 얹어져있던 그의 팔이 조금 세게, 자신을 끌어 당긴다.
민호는 가볍게 그의 입술에 버드키스를 했다. 아직은 조심스러워하는 그의 키스가 좋다.

그리고 그의 고백에 또 마음이 저려온다.

잠시 맞닿아 있던 입술이 멀어지자 민호는 눈웃음을 지으며 진우의 얼굴로 살짝 흘러내린 그의 머리 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려준다. 간지럽히듯 얼굴에 와닿는 부드러운 그의 손가락끝에서 전기가 나오는 것 마냥 찌릿 찌릿했다.

민호는 진우의 눈을 가만히 보더니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한다.


“ 진우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
“ 응? 뭔데? 민호야 다른거 하고 싶은거 있음 말해, 뭐든.”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다는 진심이 묻어나는 진우의 말.
민호는 싱긋 웃었다.


“ 내가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뜨면, 항상 이렇게 네가 내 옆에 있는 거.”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민호의 눈이 천천히 감았다 떠진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진우에게서 떠나지않는다.

자신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진우는 애써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려는 듯 엷은 미소를 띄었다.


“ 이렇게 흘러내리는 네 머리카락을 내가 항상 쓸어 넘겨줄 수 있는 거리에 네가 있는 것. 네가 늦게 집에 들어오는 날에는 먼저 들어온 내가 왜 늦게 오냐고 널 구박하는거. 물론 반대의 경우도 좋고.”
“ 구박이 뭐가 좋아.”
“ 그래도 좋잖아. 또.. 너랑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는 거. 함께 청소하고 햇볕에 잘 말려진 뽀송뽀송한 빨래를 함께 개는 거.”


민호는 마치 오랫동안 그려오기라도 했듯이 자신의 바램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한번도 그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그에게 소박하게 자라오던 진우와의 나날들.

지금 이순간, 그에게 자신의 꿈들을 꺼내놓고 있는 이 순간이 가슴 벅차도록 행복하다.


“ 같은 파자마를 입고 잠들어도 좋고, 함께 카트를 끌며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좋아. 반복 되는 일상에 서로에게 화를 낼때도 있겠지만 오늘처럼 예전 추억을 떠올리는 사진을 꺼내보면서 그때는 그랬었지 하고 낡은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 그런게 하고 싶어.”
“ 민호야.”
“ 그게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야, 김진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민호는 진우를 꼭 끌어 안았다.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기라도 하듯이 그를 안고는 그의 머리카락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진우는 끝나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두 사람의 일상들을 꺼내놓는 민호의 말이 마음에 파고드는 건 어쩔수가 없다. 이런 일상들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거라고 이야기하는 민호의 목소리가 마치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신을 더욱 더 꼭 끌어안는 민호의 손길에 진우의 눈물샘이 차오르는 것 같다. 혹시나 자신의 얼굴을 민호가 보지 못하도록 진우는 민호의 품을 더 파고 들었다.



나도 너에게 그런 약속들을 해주고 싶어.
낡은 영화의 한 장면 처럼 서투른 약속이나마 새끼손가락 걸고 너에게 그렇게 해주마하고 말해주고 싶어.
너와 같은 꿈을 꾸고 너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싶어.
그러고 싶은데..
왜 나는 너에게 그런 약속들을 쉽게 할 수가 없는 걸까.



“ 내가 바라는 건 그냥 그런 거야. 너와 함께 있는 것. 그냥 그거 뿐이야. 그러니까, 나에게 뭘 해줘야 되지 않을까. 나에게 뭔가 특별한 걸 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런 부담 가지지 않아도 돼. 늘 이야기 하지만 내가 다쳤던 건 너 때문이 아니야. 네가 언제까지나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자꾸 너에게 미안해 지잖아.”

“ 그런 생각 안해.”

“ 요즘, 네 눈 속에 슬픔이 가득하잖아. 그날.. 그날 이후로. 난 너랑 여행 온거 좋아. 이렇게 마음껏,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너와 꼭 끌어안고 있을 수 있어서. 이 여행이 그냥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그 의미로만 가득 찼으면 좋겠어. 다른 어떤 이유도 끼어들 틈 없이.”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 처럼 이야기 하는 민호에게 더 이상 어떤 말도 해 줄수 없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음이 아프다.
심장이 저려온다.
손끝이 떨린다.
그저 자신의 눈 앞에는 그의 모습으로만 가득 찬다.


지금 자신을 끌어안고 사랑을 표현하는 그에게  자신도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고 싶다.

좀더 진실되게, 미친듯이, 깊게 사랑하고 싶다.
그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이라는 녀석을 끄집어 올려 그의 몸에 나의 흔적을, 나의 몸에는 그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모든 것을 다해 그를 사랑해주고 싶다.



그러고 싶은데..
민호야,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나는.



" 진우야, 울어?"
" 아, 아니야."
" 나 좀 봐바."

민호는 자신의 품에서 진우를 잠시 떼어내더니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가볍게 감싸쥐었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지만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의 큰 눈이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민호는 가볍게 그의 눈동자에 입맞췄다.


" 울지마. 이렇게 행복한데, 왜 울어."
" 행복해? 너는?"
" 응. 정말로.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내 삶을 통틀어서."
" 그럼 됐어.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 너도 행복해야지. 나로 인해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너 사랑해. 이렇게 두근대는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민호는 그렇게 속삭이며 진우의 입술을 물어왔다.
진우가 내뱉는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준다. 진우의 혀끝이 자신의 혀끝에 닿는 감촉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데도 처음 느꼈던 그 때처럼 짜릿한 맛이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훑어내린다.


" 나.. 정말, 너를 가지고 싶어 진우야."


민호는 입술을 살짝 떼며 숨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늘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 욕망이 섞여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지 진우 역시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게 느껴졌다.

민호의 입술은 진우의 입술을 떠나 그의 귓가로 옮겨갔다. 귓볼을 살짝 깨물고 당겼다. 하아 하는 짧은 신음소리가 진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민호는 진우의 길고 하얀 목에 자신의 키스로 도장을 찍었다.

민호의 허벅지가 진우의 다리사이로 들어갔다. 살짝 부풀어 오른 그를 살짝 뭉근하게 문질러 보았다. 한번 더 진우의 빨간 입술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자신의 시야에 놓인 진우.


언젠가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욕망에 사로잡힌 어떤 날이면 그를 떠올리며 욕망을 해소하곤 했었다.
빨간 입술로 옅게 신음 소리를 내뱉는 것을.
공기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숨 가쁘게 불러주기를.
그의 하얀 몸에 자신의 붉은 흔적을 가득 새기기를.


그런데 진우야.
아직 나.. 그래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아.
내 마음 말고, 네 마음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주먹을 꼭 쥔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만히 대고 있는 진우를 본 민호는 그에게 다가갔던 다리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다시 그의 입술을 덮치지 못하게 가슴으로 진우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 하아, 진우야."


진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게 느껴졌다. 어깨가 위 아래로 움직이고 하아.. 하는 숨소리가 귓가에 가득 울린다.


" 나 아직은 참을 수 있어. 당장이라도 너를 갖고 싶지만, 아직은. 근데.. 오래 못 기다릴지도 몰라."
" 송민호.."
" 그런 목소리로 나 부르면 위험해. 그러니까 그냥 자. 오늘은 내가 안아 줄게."


진우는 고개를 살짝 들어 민호를 보았다. 민호는 애써 자신의 얼굴을 외면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 잘 자.”


민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가벼운 입맞춤으로 대신한 자신의 마음. 말로 전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해주겠다는 그런 사소한 약속조차 쉽게 할 수없지만 그래도 전해지길 간절히 원한다.



너에게 해주고 싶은 사랑한다는 그 말은.. 연습이 많이 필요하구나.




진우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장가처럼 울리는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모놀로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