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국 방송국인 BBC에서 방영한 TV 드라마 <셜록>의 패러디입니다

      


    존은 지긋지긋한 약병을 집어 던졌다. 하얀 알갱이들이 절벽을 부서트리려는 환호성처럼 쏟아졌다. 두통, 끊이지 않는 아픔. 빌어먹을 자취방은 지나치게 좁았다. 어머니는 누이 해리엇을 마법학교에 보내려고 수입의 70퍼센트를 쏟아 부었다. 마법사, 멍청하게 선택 받은 인종들. 그깟 지팡이 하나 휘두를 줄 안다고 인간들을 발 아래 두는 것처럼 구는 독재자들. 존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머릿속에 세 발 달린 용이 섬세하게 뇌수로 스튜를 끓이는 것 같았다.

 

    용을 잡으려면 적어도 마법협회의 멍청한 수장이 되어야 할 테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머리는 곧 맑아졌다. 존은 시계를 보았다. 제사를 올릴 때 흰 가운을 차려 입은 마법사처럼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속은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분침과 시침이 한마음으로 12를 가리켰다. 존은 벽시계를 흔들었다. 탁, 하는 소리가 들렸고 분침이 조금씩 움직였다.

 

    눈앞에  펼쳐진 아티반, 미다졸람,  벤조디아제핀 따위의 성분들과 효용 범위가 머릿속으로 뱅글뱅글 돌았다. 존은 뻑뻑한 눈을 깜박였다.

 

 


 

 

    "인간은 죄다 정신병자야. 전부, 하나도 빠짐 없이."

 

    폴턴 대학, 갓 입학한 의과 1학년생들에게 홈즈 교수가 던진 말이었다. 큰 키에 나무젓가락 같은 팔다리, 항상 풍기는 커피와 담배 냄새,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과 새벽녘에 꿈처럼 찾아 온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웅하는 듯한 눈동자, 그 눈은 겨울 안개 같았다. 존은 그 눈이 자신을 바라볼 때마다,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보고 있었다. 홈즈 교수가 존 따위를 신경 쓸 리는 없고,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들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존은 차마 홈즈 교수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사막, 더위가 툭 걸린 목젖을 따라 밖으로 나올 것 같은 기분. 어머니는 해리엇을 숭배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너머의 세계를 찾아 헤맸다. 그 끝이 바로 마법이었다. 마법, 마법. 목구멍에서 실밥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마법이라니! 그 쓸데 없는 중상모략과 계획과 지나친 아부와 권력의 세계는 존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눈 깜박이는 횟수가 4초에 한 번에서 2초에 한 번으로 줄었어. 자네가 아마 이 실험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빈약한 근거로 지지해 펼친다 해도 나는 흔들리지 않아."

 

    "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멈춰. 생각도 하지 마."

 

    홈즈 교수는 간이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존을 눈빛으로 제지했다. 존은 홈즈 교수의 개인 연구실 안에 있었다. 존 뿐만 아니라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홈즈 교수의 수업을 청강하는 학생으로서 참여해야만 하는 방과후 활동이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학교 측에서 묵인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짓이었다.

    딱딱해 보이는 검은 책상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기본음이었다. 홈즈 교수는 간이 침대 앞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짜증스럽게 휴대폰을 낚아 챘다. 액정 화면을 보고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한참 동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예 배터리를 뽑아 두었다.

 

    "질척질척한 사랑 놀음 같은 짓거리에 날 끼워 팔지 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자네의 몽롱한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어."

 

 

    존은 눈썹을 들어올렸다. 사실이었다. 홈즈 교수가 이 정도까지 화를 내는 것으로 봐서는, 그를 뒤흔들 수 있는 가족이나 어떤 연인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홈즈 교수는 윗단추 두 개를 푼 검은 셔츠를 걷으며, 다시 의자에 다가 앉았다.

    

    "눈을 감아."

 

    "교수님."

 

    "어서."

 

    "들어오자마자 누우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었으니, 교수님은 적어도 설명을 해 주셔야 합니다."

 

    홈즈 교수는 미간을 눌렀다. 존은 흰 타일 바닥과 벽지로 둘러싸여서 텅 비어 보이는 연구실이 마치 홈즈 교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실제 마주 보고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고, 홈즈 교수는 아마도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것이다. 기껏해야 실험체 23121번이라고 생각하겠지. 학생들 사이에 만연하게 퍼진 소문처럼 미치광이 의사라던가, 관찰하는 능력이 기분 나쁠 정도로 뛰어나다던가, 뒷배가 있어서 사람을 죽이고도 멀쩡히 교직생활을 계속한다던가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홈즈 교수는 신랄했고, 총명했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이 그렇듯 사람을 무시하는 기색이 있었다.

 

    "자네가 마법사 누이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쓸데 없는 저항은 하지 마."

 

    존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눈 감으라고."

 

    "아닙니다. 저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어요."

 

    홈즈 교수는 딱딱한 시선을 툭 던졌다.

 

    "오, 아니라고? 자네가 그 때문에 매일 아스피린을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존 해미쉬 왓슨. 정신분열증을 고치려면 대학이 아니라 정신병원으로 가야 할 거야."

 

    존은 벌떡 상체를 들었다.

 

    "절 미행하셨습니까?"

 

    "들어온 지 13분이 경과했어."

 

    존은 한동안 아무 말도 않고 홈즈 교수를 쳐다보았다. 어떤 생각이 보름달처럼 퍼져나갔다. 홈즈 교수는 존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존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홈즈 교수의 길쭉한 얼굴과 얇은 입술,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 두드러진 쇄골과 가느다란 손가락, 이 모든 것을 따라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민? 두려움? 아니면 기쁨? 홈즈 교수는 정말 아무 것도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정말 아무 것도? 존은 익숙한 공포를 느꼈다.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자에게서 풍기는 경이의 냄새. 자랑스러운 해리엇 왓슨의 향기였다.

 

    존은 그 순간 셜록의 얼굴에 주먹 한 방을 갈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하긴 교수님이 저를 미행하든 말든 알 바는 아닙니다."

 

    "미행하지 않았어."

 

    "그럼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세 번째야, 존 해미쉬 왓슨. 눈 감아."

 

    존은 침대에 누운 뒤, 눈을 감았다. 적어도 홈즈 교수가 자신을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뭘 하시려는 겁니까?"

  

    연구실의 불이 꺼졌다.

 

    "자네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것."

    "권위의식이요?"

    "최면 분석. 정확히는 마법적 연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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