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뜨문뜨문 눈이 내렸는데 걷기 어려울 정도로 눈발이 휘날리는 날도, 가볍게 흩날리는 날도 있었다. 놀이터 옆 경사진 언덕은 눈썰매를 가지고 나온 아이들로 북적였고 게 중에는 소복이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조차도 덩달아 살짝 들뜬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 들뜬 기분 한 쪽에 의아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행위는 고찰해 볼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살짝 씁쓸함이 배어 나와서 이 글을 남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데,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반응을 노린다고 보지는 않는다. 짧게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간 느끼지 못했던 낮은 수준의 자기효능감을 느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릴 누군가를 생각할 여유 따위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이 속한 자폐적 세계에 타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 외에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 자폐적 세계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래전 어느 중국집에서 엿듣게 된 중년 남자 세 명의 대화가 떠올랐다.

어느 날 나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중국집에 갔다. 가게 안에는 세 명의 중년 남성이 하나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메뉴를 고르는 모양으로 보아 그들도 막 들어온 듯싶었다. 그 중 한 남성이 말했다. "유니짜장 먹을까? 아니다 너랑 같은 짬뽕 먹어야겠다." 그러자 다른 남성이 물었다. "먹고 싶은 거 먹지 왜?" 이에 그 남성이 답했다. "같은 거 시키면 주방장도 편하고 유니짜장 만들려면 힘들 거 같아서"

서로 다른 메뉴를 시키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주방장이 그리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가게는 한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이 남는 것은 주방장을 언급한 남자의 말 때문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마주칠 일도 없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 음식 뒤편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이 대화가 여전히 기억나는 이유다.

음식 뒤편에 있을 사람을 떠올리는 그 남자와 같은 마음이라면 우리는 눈사람 뒤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눈사람을 보고 들뜬 기분을 느낄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존재를 떠올릴 수 없는 이들이라면 어차피 녹을 눈사람 때려 부수는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개인적으로 기억할만한 것들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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