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leedonghwie@gmail.com)

1. 들어가며

예전에 쓴 한 글(현재는 읽을 수 없음)에서 누군가 댓글로 반론을 제기했다. 댓글이 꽤 길어서 중요한 지점이 언급된 부분만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3. 예술이 철저히 사적이고 주관의 영역이라는 명제는 글쓴이의 주장에 매우 중요한 전제로 보입니다. 또 뒤샹의 [샘]이 저마다 다르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 위 명제와 함께, 예술의 해석 또한 그 예술일 수 있다는 식의 명제도 해당 논증에는 이리저리 포함되어 있기도 하네요. 그러나 이 명제들에 대한 해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동휘의 동료 미학 연구자—인용자 주] 이다민에 대한 비판은 사실 별로 효력이 없거나, 의도치 않게 논의를 일종의 취향 문제로 귀결시키는 듯 합니다. (...) ” (댓글작성자: 엉덩이, 작성 일시: 2021-07-19 at 17:33)

위에서 인용하고 있듯이 댓글의 긴 내용 중 “3.” 부분에서 문제 삼고 있는 점은 두 가지였다. 그 의문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이 단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a) 우리는 작품, 가령 [샘]을 볼 때 같은 것을 보는가? - 그렇지 않다. 즉, 예술작품은 각자에게 철저히 다른, 사적인 개체일 수 있다.

b) 예술작품은 해석을 포함하는가? - 그렇다. 예술작품의 해석도 예술작품이다. 즉, 예술작품은 해석 없이 개념화되지 않는다.

작성자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지만 나는 a) 와 b)를 따로 주장하고 있지 않다. b)는 내가 a)와 같이 주장하는 이유에 해당한다. 댓글에서 요청하듯이 나는 위 두 가지 주장에 대한 해명을 내놓고자 한다.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한 이야기인지를 상술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그 전제로 삼고 있는 바를 제시할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중순에 출간될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예술·이론·언어』 (이동휘, 이여로 지음 | 미디어버스 & 기획:1)에 수록될 예정이라 비공개(=터무니 없는 유료화) 처리합니다. 

***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2022-08-18)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34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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