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코, 오비완 케노비는 속도광은 아니다. 다만 툭하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그의 파다완이 드디어 굉장한 규모의 사고를 쳤고 마스터인 그가 급하게 달려가야 했을 뿐이다. 

 마스터와 그의 파다완이 나란히 사고 경위서를 쓰게 된 것은 그 이유였다. 물론 아나킨의 것이 훨씬 길고 성의 없었지만.


 오늘도 마찬가지로 별 소득 없어 뵈는 잔소리를 한바탕 늘어놓은 오비완은 한숨을 쉬며 병실 앞에 섰다. 이 안에 그가 스피더로 강렬하게 반토막 낼 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무고한 피해자가 반으로 접혀 나뒹구는 것을 보았을 때 젊은 제다이의 머릿속에는 그의 자유분방한 스승이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스터 콰이곤, 저도 그냥 진리를 찾아 떠날까요? 제게 아나킨을 떠넘기고 매일매일 즐겁게 살고 계신가요?
 라이트 세이버는 보통 피 튀기는 일 없이 깔끔한 부상을 입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피를 볼 일은 없었다. 오비완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붉은 액체를 보며 창백한 얼굴로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분명 죽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가여운 사람. 
 그러나 쓰러진 피해자를 슬쩍 굴려 눈을 마주했을 때 그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째로, 그는 살아있었고, 둘째로, 그는 시스였기 때문이다.

 그 노란 눈깔은 시스가 분명했다. 세상에 맙소사, 시스라니. 그럼 구급차는 부르지 않아도 되는 건가? 오비완의 얼굴에 화색이 돌자 땅에 누운 피해자는 갑자기 피를 토했다. 기쁘게도 곧 죽을 운명인 듯했다. 제다이로서 마지막 자비로 오비완은 그를 편하게 보내주고자 했다. 
 하지만 막 라이트 세이버를 꺼내 들으려 할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제가 일단 신고해두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마스터 오비완 맞으시죠?"

 

 오비완은 난처한 표정으로 절망적인 마음을 숨기며 대답했다.


 "아, 예, 예. 감사합니다. 아니, 자자?"

 "맞구나, 오비! 오랜만이야!"

 

 포스시여.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오비완은 코러산트의 발 빠른 구급 대원들에게 감사했다.


 "저기 구급차가 오는군. 오늘도 수고하시는 대원들에게 제다이 나이트 오비완 케노비의 이름을 알려주면 고맙겠어.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앗, 오비!"


 뭐라 주절대는 시끄러운 건간족과 곧 반토막 날듯한 시뻘건 시스 환자를 내버려 두고 제다이 마스터는 피 묻은 스피더에 올랐다. 그리고 전보다는 느리지만 여전히 엄청난 속도로 제다이 사원에 도착하여 12인의 분노한 평의회 위원들을 달랜 뒤 가련한 아나킨의 되바라진 주둥이를 일장 연설로 닥치게 해 두고 이 문 앞에 섰다. 부디 흰 천이 그 시스의 머리 끝까지 덮여있기를.
 하지만 슬프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위에 달린 팻말에는 영안실 대신 581호가 쓰여있었으니. 침잠한 표정으로 오비완은 문을 열었다.


 "거기 안녕하십니까?"

 "케노비!!!!!!"


 뭐야? 오비완은 얼굴을 찡그리며 문을 닫았다. 시스들은 모두 분노에 차있다더니 정말이군.
 그가 막 돌아서려 할 때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큰 소리 내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오비완은 다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자 그대로 붉은 얼굴의 시스가 온갖 기계 장치를 주렁주렁 매달고 누워있었다. 심박수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요동치는 것이 간호사를 불러야 하나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일단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머리에 부상이 크신가 보군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머리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시스들은 회복이 빠르니 많이 걱정하시지, 해주세요."


 정말 머리를 크게 다친 듯했다. 하긴 뿔이 저렇게 박혀있는데 회전초마냥 구르고도 죽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이미 알고 계신 듯 하지만 저는 오비완 케노비입니다. 혹시 차후에 문제가 생기신다면 이쪽으로 연락 주시죠."

 "아, 예, 예. 감사합니다."


 시스는 오비완이 내민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소중히 받아 들었다. 기분 탓인지 수줍어하는 것도 같았지만 그의 빨간 얼굴 때문에 볼을 붉혔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다행히도 그를 고소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오비완은 상쾌한 얼굴로 형식적인 안부 인사를 읊었다.


 "그럼 빠른 쾌유를 빕니다."

 "아, 저... "


 일부러 조금 큰 소리가 나게 문을 닫으며 뒤에 이어지는 말소리를 듣지 못한 척 걸음을 옮겼다. 안쪽에서 저기요 하는 가냘픈 부름이 들려왔지만 오비완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과연 시스를 그냥 저렇게 두어도 되나 싶었으나 빠르게 작성해 올린 보고서에 수신 확인 알림이 왔음에도 별 말이 없다는 것은 괜찮다는 뜻 이리라. 오비완은 나름 규율을 잘 따르는 훌륭한 제다이였고, 그 말은 시키지 않은 일은 굳이 찾아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 오비완은 가끔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러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매우 놀라운 일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성관계를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야.


 "제가 세 살 더 어린데 비완이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예?"

 "고마워요, 비완이 형!"


 시스는 노란 눈을 빛내며 음산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슬프게도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이고 환한 표정이었지만 오비완에게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식되었다. 고결한 품성의 제다이 나이트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완쾌하신 것은 축하드립니다만 그... 아래쪽 일에 대한 것은 제 책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스는 기다렸다는 듯 서류 뭉탱이를 앞에 내밀었다. 오비완은 냉큼 그것을 집어다 빠르게 팔랑팔랑 넘기며 십몇년간 쌓아 올린 '문서 대강 스캔하며 요점 찾기' 오의를 펼쳤다. 마지막 종이에 휘갈겨진 유명한 전문의의 서명을 확인한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덩어리를 불사를 만한 적절한 쓰레기통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됐습니다."

 

 시스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양손을 맞비볐다. 고자가 된 마당에 웃음이 나오니? 망했군. 오비완의 손에 들린 것은 확실히 헛소리 뭉치였지만 공신력 있는 헛소리 뭉치였다. 그 말인즉슨 오비완에게는 선택지가 몇 가지 없다는 것이었다. 첫째,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저 사악한 시스를 돕는다. 둘째, 당장 저 사악한 시스를 쳐 죽인다. 셋째, 무시한다. 넷째, 그의 스승처럼 자유를 찾아 멀리 떠난다.
 네 번째 선택지가 가장 유혹적이었지만 오비완은 비록 망아지처럼 날뛸망정 그의 혈육이나 마찬가지인 아나킨을 내팽개치고 달아날 수 없었다. 가여운 아나킨. 최근 그 애는 나부의 여왕에게 반해 되지도 않는 말을 재잘대며 그 빛나는 얼굴을 낭비하고 있었다. 아직 제 구실도 못하는 그런 아이를 놓아버리기엔 오비완은 마음이 너무 약했다.
 세 번째 선택지. 고소당할 확률이 높다. 믿기지 않지만 아나킨은 곧 제다이 나이트가 될 것이고 오비완은 마스터의 칭호를 받게 될 예정이다. 그는 자랑스러운 제자의 앞길이나 혹은 그 자신의 커리어에 이런 식으로 오점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두 번째 선택지. 이거 괜찮은데?

 오비완은 바로 자신의 라이트 세이버를 꺼내 들고 3식 소레수를 취했다. 
 머릿속으로만.

 불행히도 그들이 앉아있는 곳은 코러산트 시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카페 안이었다. 카페의 커다란 전면 창으로 들이치는 공허한 햇살에 오비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드리면 됩니까?"



 불행 중 다행으로 시스가 요구한 것은 제법 간단했다. 주마다 한 번 있는 클리닉에 동행할 것. 오비완은 정신적인 문제로 발기가 어쩌고 하던 서류 내용을 떠올리며 차라리 저 시스의 하반신이 두 동강 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쥐꼬리만 한 제다이 봉급으로는 힘든 길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의 정신적인 부분은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비완은 네 장의 종이를 꼼꼼히 읽어보고 서명을 마친 후였다. 이것도 보고해야 하나? 뭐라고 보고해야 하지? 시스의 발기 불능 치료 상담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아나킨이 이 일을 알면 신이 나서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닐 것이다. 저 멀리 아우터 림의 얼굴도 모르는 현상금 사냥꾼까지 이 일을 알게 되겠지. 오비완은 부디 그전에 시스의 발기 불능이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몰이라고 부르셔도 좋고, 아니면 다른 애칭으로 부르셔도 돼요."


 명백히 수줍어하고 있군. 오비완은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저런 흉악한 뿔과 노란 눈과 문신을 달고 수줍어하다니.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최소한 두 번 이상은 더 보아야 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오비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운명이었다.


 "그래요, 다스."

 "몰이라고 부르셔도... "

 "그럼 다음 주 정해진 날짜에 봅시다. 안녕히."


 정신과 의료 사고를 위장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지?
 오비완은 침울한 얼굴로 그의 일거리가 쌓여있는 사원으로 돌아갔다.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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