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 겹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





전쟁이 끝난 지 여섯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저잣거리는 아직 집과 가족을 잃은 다친 병사와 굶주린 백성들로 가득했다. 겨우 앉혀놓은 임금은 그래도 나라를 버리고 도망간 왕보다는 나았다. 사람들은 그 하나에 마음을 달래며 이제나저제나 어서 빨리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근근이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이구, 어서 이리 오세요.”

고운 얼굴의 미인이 다급하게 누군가를 방으로 안내한다. 외모만 봐서는 허드렛일 하나 못 해본 양갓집 규슈 같은데, 반빗간 차집마냥 얼룩덜룩한 앞치마에 얼굴도 검댕을 묻히고, 높게 틀어 올려 낡은 나무 비녀로 옭아맨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흘러 내려와 있었다. 그러나 허름한 차림새에도 누구 하나 흘겨보거나 핀잔주는 이 없었다. 여인의 피곤함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임을 어느 사람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소식은 알아보셨습니까?”

월화는 자리에 앉으며 양손을 불안하게 맞잡았다. 냉수 한 그릇을 꿀꺽꿀꺽 두꺼비처럼 들이키던 여욱관이 그릇을 탁- 내려놓으며 입가를 거칠게 쓱쓱 문질렀다. 그 행동에 월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어휴. 모르겠습니다. 도통 알아낼 수가 없어요. 미안합니다.”

역시 예상대로 우솔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월화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으나, 실망스러움에 눈가가 축 처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원.”

하다못해 전쟁터에서 죽어 썩은 몸뚱이도 제 가족을 찾아 왔다. 그러나 우솔과 류호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류호가 끌려갔던 청진에서 피난 온 군인과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봐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 박도영이란 분은 어떻게 되셨답니까?”

그나마 우솔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알려준 노인이 있었다. 그는 우솔이 류호를 찾아 떠났고 그 길에 박도영이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이라고.

“아, 그분은 며칠 전에 청진에서 내려와 지금은 한남(옛날에 수원을 일컫던 이름 중 하나)에 계신다는 소식만 들은 참입니다. 내일쯤 출발하면 빨라도 이레는 걸릴 듯합니다.”

“아니에요. 천천히 쉬시다 가셔도 됩니다.”

월화는 나직하게 웃으며 방문을 열어 생언에게 조용히 한 상을 차려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고, 아니에요. 빨리 가 봐야지요. 저도 두 사람 소식이 궁금해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지 뭡니까. 눈을 감을 때마다 핏기없는 얼굴로 수라장으로 끌려가던 모습이 계속 아른거리고. 역시 사람은 죄짓고 살지는 못하나 봅니다.”

여욱관은 대접에 남아있던 물 한 모금을 꿀꺽 삼키며 시원하다는 듯 속엣 소리를 내었다. 그의 입가에 살며시 깃든 자조적인 미소가 애써 현재의 삶을 씁쓸하게 비춰주고 있는 듯했다. 

“죄라니요. 나리께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신 것뿐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발이 부서져라 알아보고 계시고, 죄라고 따진다면 우솔이와 류호 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야말로 두 발 뻗고 자면 안 되지요.”

여욱관이 두 눈을 댕그랗게 떴다가 이내 허탈한 듯 웃어버렸다. 압송관이었던 여욱관은 전쟁터를 피해 어찌어찌 송희의 금양까지 올 수 있었다. 천운이 송희를 굽어살핀 것인지, 금양은 다행히 전쟁의 피폐함에 그나마 아주 조금,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어딜 가도 부상자와 굶주림에 쓰러져가는 사람들투성이였다.

그러나 여욱관은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보다 죄책감이 더욱 컸다. 똥 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 하지 않던가. 제아무리 죄인이고 몸이 아픈들 여기 이렇게 부대끼며 숨을 느끼며 사는 것이 좋은 것이었다. 그는 낮이고 밤이고, 눈을 뜨고 감아도, 도통 류호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그러나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체념하면서도 미련을 가득 묻은 아픈 얼굴을. 제가 지금껏 살면서 죄인을 한두 명 상대한 것도 아니건만. 상황이 사람 맘을 이토록 애틋하고 슬프게 만드는 것인지. 

저잣거리에 쏟아진 아픈 사람들 사이에도 웃음과 안도, 안온함이 깃들어 있거늘. 저 또한 피붙이가 없이 혼자일지언정 이리도 두 발로 걷고 잘 살아 있지 않은가. 그러니 궁금했다. 그도 저처럼 어디선가 살아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나라에서는 살아 있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소식을 알아보고 조사를 해줄 숙지(공인 탐정, 특수 정보원)와 포사(민간수사요원)를 구한다는 벽보를 내걸었다.

여욱관은 그것을 운명이라 여겼다. 사람들도 주변이 정리됨에 따라 제 사람들의 생사 여부를 알아봐 달라며 물밀듯이 관아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라에서 녹을 먹게 해준다고 해도 지원자들은 많이 없었다. 그나마 지원하는 사람들도 입에 풀칠하기 위해 생판 해본 적 없는 일에 뛰어든 어중이떠중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다행히 기존에 전문 숙지와 포사들이 몇 명 남아있어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여욱관이 하는 일은 말 그대로 발품 팔아 전국 방방곡곡 옮겨 다녀야 하나 그에게는 이렇게 몸이 힘든 게 차라리 나았다. 간간이 보부상단과 만나게 되면 나그네 길이 쓸쓸하지만도 않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터이니 너무 심려치 말고 몸 잘 챙기고 기다리십시오!”

“고맙습니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가시는 길에 갖고 가셔요.”

뱉은 말과 같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여욱관의 소매를 붙잡고 월화는 생언이 건네준 주먹밥과 마른 채소 한 주먹이 담긴 보따리를 건넸다. 

“이런 걸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참.”

걸음을 옮기려던 여욱관은 어쩐지 입술만 달싹이며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월화는 의아하게 갸웃거리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 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긴 했는데, 그래도 말은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차피 월화 행수도 곧 알 테니….”

어딘가 착잡한 표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체념한 듯한 여욱관의 끝말에 월화는 짐짓 눈치를 채고 허탈한 바람 소리를 내었다. 보통 먼 길을 가야 할 때면 숙지나 포사는 보부상단과 함께 이동했다.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보부상들도 있었으나 상단과 함께 움직여야 식(食)은 물론 인맥과 발이 넓은 그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욱관은 김우솔과 류호의 의뢰를 월화로부터 받고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들 사이에 섞여진 행적들을 알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시간이 많이 흐르고 다들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있기를 바라기에 그저 지난한 세월의 한 조각으로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다.

“행수만 의뢰한 것이 아니라 미희 상단의 대방 나리께서도 의뢰하셨기에 이번에는 그쪽 상단의 도움을 받아 한남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합니다.”

월화는 작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어찌 저이의 잘못인가. 지금은 그 누구의 손길이라도 필요한 때였다.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으로선 사실 아무 감정도 없답니다. 게다가 감정이라 함은 제가 아니라 우솔이와 류호 씨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김우형 대방 나리의 손이 필요하다면 꼭 잡으십시오.”

월화는 담담하니 읊조리듯 여욱관에게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미에 담긴 떨림만은 숨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알게 된 사이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가 문득 재밌다고 느껴졌다.

“이것도 인연인 게지요. 부디 몸 건강히 잘 돌아오십시오, 나리.”

“예. 그러하겠습니다. 행수께서도 건강히 지내십시오.”

여욱관은 옆에 있던 생언에게도 꾸벅 인사를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월화는 그제야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멀고도 험하구나. 다른 보고, 듣고 싶었던 이네들은 쉽게도 만나건만, 네 소식은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있을 때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나는 네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까. 고 씨 아저씨도, 옥순이도, 율청이, 춘봉 아주머니도 모두 살았으니 너도 살아서 방긋 웃으며 류호 씨와 함께 나타날 것이라고. 

월화는 움츠러들려던 어깨를 쭉 펴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던 명월관은 이제 적막하고 고요하긴 했으나 그 누구보다 지친 사람들을 위해 온기를 베풀어주고 있었으므로, 월화는 이 또한 모든 것이 제게는 행복이라 여기기로 했다.







미희 상단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송희에 퍼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월화가 포사가 된 여욱관에게 의뢰를 맡기고도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전쟁 시 미희 상단은 배를 끌어와 기회가 닿은 백성들과 함께 인근 섬에 내려주거나 서역으로 피난을 갔었다. 이국땅에서도 자국의 전쟁 물품을 조달하며 끈을 놓지 않았으므로, 다시 돌아온 미희 상단을 송희의 백성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건 당연했다.

전생연분의 사람들이나 여욱관처럼 속내를 알고 있는 이들도 전쟁의 참상에 지난 일은 묻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오로지 두 사람의 생사만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득시 행수 나리의 소개로 온 여욱관 포사라고 합니다.”

욱관은 바쁘게 짐을 나르는 상단 사람 중 한 명에게 말했다. 그는 잠시 상대를 훑어보더니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기분 나쁜 투라기보다는 그저 바빠서 미처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지금 오랜만에 송상(개성)과 내상(부산 왜관)쪽에서 거래가 들어와 무척 바쁜 상황이라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서기(행수를 보좌)인 듯한 남성이 욱관에게 꾸벅 인사하며 저를 부른 다른 서기의 등을 툭 치며 지나쳤다. 그에 다른 서기가 뾰로통하게 입술을 샐쭉대는 모습이 우스워 욱관은 속으로 웃고 말았다.

“거참 다행이군요.”

욱관은 개의치 않고 곧장 서기에게 화제를 돌렸다. 전쟁 후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다. 하물며 상업이건 농업이건 먹고 살 일거리가 시급한 것도 사실이었으니, 거래가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희 대방 나리께서 워낙 수완이 좋으셔서 서역과도 무역을 끊지 않고 송희로 돌아오시긴 했으나 백성들께 나눠주는 게 원체 많았으니 남는 게 없었지요. 그래도 나라 안에서 이리 거래가 시작되니 이제 좀 숨이 트일 요량인가 싶어 다들 한시름 놓았습니다.”

서기의 말투에 진심 어린 감사와 감동이 스며 있었다. 그의 말처럼 김우형은 거의 모든 사람이 존경해 마지않는 송희의 최고 인품을 가진 사람이자 주인이었다. 그를 잘 모르고 우솔과 류호만의 이야기만 접했던 초반에 욱관은 그 소문의 주인공이 설마 그러하겠나 의구심이 가득했었다.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겨봐야 지나온 날을 뒤돌아볼 수 있나 봅니다.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한 점이 그토록 화가 나고 괴롭더니,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용서를 바라지도, 내게 돌아오라 하지도 않겠습니다. 그저 잘 살아있는지만 알아봐 주십시오.-


김우형을 처음 만난 날. 그는 여욱관이 월화의 의뢰를 받았고 눈치껏 속사정을 알고 있다는 걸 넌지시 내비쳤다. 오히려 욱관이 당황할 정도였으니 한편으로는 김우형의 성정이 참 강하구나 싶었다.


-류호의 아비와 친구인 이득시가 내 상단에 있으니 그들과 함께 한남으로 이동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들도 친구이자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은 깊은 속사정까지는 모르니 그 일은 함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말의 양심인 걸까, 아니면 죄책감에 감추고 싶은 치졸함일까. 하지만 욱관은 김우형의 말에 동조했다. 류호의 아버지 류춘발과 그의 친우인 이득시는 김우형의 도움으로 상단에 기거하며 안전하게 먹고 살 수 있었다. 백정이었던 이득시 아버지가 피난 중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생업이 막막했던 득시로서는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류춘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이정만의 간악한 짓뿐이었다. 

욱관은 이미 두 사람을 만난 터다. 그리고 더더욱 김우형에 관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정만의 일도 분통이 터질지언데, 지금 저희를 도와주는 김우형과의 연관성까지 알게 된다면……. 특히 이제 나이가 먹고 몸이 아픈 류춘발이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직접 마중 나가야 하는데 갑자기 일이 몰려서.”

지난번보다 밝은 안색의 득시가 욱관을 반갑게 맞이했다. 집무실인 그의 책상 위로 서신과 문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니에요. 오면서 들으니 거래가 늘어났다고요. 잘된 일이지요.”

두 사람은 사환이 들고 온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며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한남에 계신다는 박도영 나리는 어떠신답니까?”

며칠 전 전인(품삯을 받고 편지를 전달하는 배달꾼)을 통해 박도영으로부터 서신을 받은 참이다. 

“다행히 건강은 많이 좋아지셔서 저희가 오면 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청진에서의 전투 후 피난민을 끌고 송희로 왔다. 이미 청진에서 크게 다친 터라 오늘내일할 것 같았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한남에 있는 친지의 집으로 내려가 요양 중이다. 득시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머리를 작게 끄덕였다. 

“아 참. 류춘발 어르신은 건강이 좀 약해지셔서 이번 행렬에는 못 따라가고 대방 나리께서 함께 가시기로 하셨습니다.”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겁니까?”

욱관의 물음에 득시는 착잡한 미소를 더하면서도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들의 생사도 모르는데 어찌 먼저 눈을 감겠냐며....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오늘도 거뜬히 일어나 무두질을 하시고는 한 상 거하게 드시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짐짓 농담처럼 건넨 말이나 욱관은 그 속에 담긴 불안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박도영에게 가야 했다. 우솔과 어디쯤에서 헤어졌는지만 알아도 승산은 있어 보였다.






*



실로 오랜만에 거대 상단이 꾸려졌다. 여욱관 뿐만 아니라 가는 길에 다른 포사들도 합류해 일을 보기로 했다. 김우형은 흔쾌히 수락하며 길을 나섰다. 대방이 잠시 자리를 비운다 해도 현재 송희의 유일한 미희 상단을 해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백성들이 나서서 지키면 지킬 분위기였다.

여욱관은 실로 인간의 사주팔자가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하게 살건 못되게 살건, 혹은 길가에 핀 잡초처럼 평범하게 살건.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고 자신조차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이 기반이나,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꼭 자신이 이끌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맘대로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하며,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될 때도 있으니. 인생이란 실로 깜깜한 숲이자 밝은 낮과 같았다.

여욱관과 김우형은 아마도 그렇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레가 넘어 도착한 한남에서 우형은 수행원 몇을 남기고 상단을 내상으로 보냈다. 그리고 곧장 박도영의 거처로 향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설렘도 작은 꽃씨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박도영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은 호기롭게 펼쳤던 작은 꽃씨를 속에 감추어야 했다. 금양에서도 이미 부상자들을 많이 보긴 했으나 어쩐지 박도영 앞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보고 싶은 사람의 소식을 가장 가까이 접한 유일한 사람이기에 더욱 마음이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말하고 듣고 먹고 싸는 거 모두 가능하니 이만하면 천운인 셈이지요. 어서 앉으십시오. 변변찮지만, 차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박도영은 하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왼쪽 팔을 들어 찻잔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하나가 비어버린 소맷자락이 물 먹은 빨랫감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당사자보다 그렇게 상심한 표정을 하지 마십시오. 되레 제가 더 불편합니다.”

도영의 너스레에 우형과 욱관이 겨우 미소를 띄웠다.

“미안합니다. 괜히 힘든데 말동무나 하겠다고 찾아온 건 아닌지 내심 걱정되어 그리됐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우형이 무척 정중한 태도로 도영에게 살포시 목례를 해 보였다. 도영은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우솔의 형님이라 하니 친근한 감정이 샘솟았다. 게다가 형제라 그런지 비슷한 인상에 저도 모르게 그만 감정이 울컥 밀려 왔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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