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Dynasty - MIIA 들으며 읽으면 좋습니다.


 14일 영하일보 점심시간. 영하일보 야쿠르트 배달원과 시간을 바꾼 영민 아주머니가 박한영과 오 기자님이 있는 7층으로 올라간다. 영민 아주머니가 일부러 박한영과의 접촉을 만들어 주머니에서 열쇠를 빼낸다. 그 열쇠를 오 기자님에게 넘긴다. 오 기자님이 열쇠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가면 차를 대기시켜 놓은 다성이가 미리 알아 놓은 열쇠 집으로 간다. 열쇠를 복사하고 다시 영하일보로 온다. 박한영이 눈치채기 전에 최대한 빨리 원본 열쇠를 박한영 자리에 놓는다.

 이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각자의 루틴대로 움직이면 되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다성이를 만나 최종 계획을 점검하는 날이었다. 다성이가 먼저 학교 이사장실에 가 있겠다고 했다. 나도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고 다성이 뒤를 따라 체육관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다성이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굳어 있던 표정이 단숨에 풀어지는 듯했다.


 “왔어? 여기 앉아.”

 “괜찮아?”

 “뭐가?”

 “아니, 그냥…. 뭔가 불안해 보여서.”

 “불안하긴. 연수 넌 나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다성이가 나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우리는 빠르게 14일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돌발 상황으로는 영민 아주머니가 열쇠를 훔치지 못하는 경우, 열쇠 복사가 생각보다 늦어지는 경우, 박한영이 열쇠가 없다는 걸 너무 일찍 눈치채는 경우 정도가 있는 거지?”

 “한 가지 더. 내가 영하일보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경우.”

 “그럴 일이 있을까?

 “모르지, 또. 서울이니까 차가 막힐 수도 있고, 내가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고.”

 “난 널 믿어. 그럴 일 없을 거야. 우리, 남다성의 운발을 믿어 보자.”

 “연수, 너…, 많이 능글맞아졌다?”

 “너한테 배웠어.”


 내 대답에 고개를 숙이고 푸흐흐 웃던 남다성이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함께 따라 웃던 나는 갑자기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뚝 멈춘 다성이를 살폈다. 다성이는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맞다, 나 기자님이랑 전화해야 하는데.”

 “오 기자님이랑? 기자님이랑 전화할 게 뭐가 있어?”

 “있어, 그런 게. 연수 너 수업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아니. 지금 수업 없는데,”

 “그래도 선생님인데 수업 준비해야지. 일어나서 얼른 들어가.”

 “아니, 왜, 왜. 잠깐만, 남다성.”


 다성이가 갑자기 내 양 어깨를 잡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180도 달라진 다성이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다성이 힘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쫓겨나다시피 이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쳐다보니 남다성이 해맑고 환한 미소로 다섯 손가락을 쫙 편 채 세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정말 이상한 남다성의 행동에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 나도 따라 손을 한 번 흔들어 주었다. 아무래도 영하일보에 제때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 때문에 기자님과 한 번 더 상의를 하려나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 주위를 살펴보고 다성이 쪽을 한 번 본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 - -


 연수가 체육관을 나갔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웃고 있던 다성의 표정이 한순간에 차갑게 식었다. 다성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이사장실 문을 닫았다. 혼자 남은 이사장실 안은 조용했다. 지나치게 조용했다. 다성은 이사장실 곳곳을 눈으로 훑었다. 다른 이상한 것은 없었다. 단 하나만 빼면.

 다성은 천천히 옆으로 향했다. 그리고 옷을 걸어 놓는 용도인 녹색 계열의 커다란 철제 캐비닛 앞에 섰다. 조심스럽게 손잡이 위에 손가락을 걸었다. 하나, 둘, 셋. 다성이 단숨에 문을 열었다.


 “…너, 뭐냐.”


 그 안에는 옆으로 쭈그려 앉은 채 놀란 눈으로 다성을 올려다보고 있는 애정이 있었다. 자신이 캐비닛 안에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토끼처럼 놀란 눈빛이었다. 이 학교의 그 누구도 천하의 주애정이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성 또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애정은 다성에게 그나마 제일 익숙한 대현고의 학생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학교 학생이 이사장실 안에 몰래 숨어서 자신과 교사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것도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 버렸다. 처음엔 놀란 표정이었던 다성의 얼굴이 점점 싸늘해졌다.


 “나와.”


 나오라는 다성의 말에도 애정의 근육이 쭈그린 그대로 굳어진 듯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극도의 긴장감이 둘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애정은 천천히 다리를 내려 바닥을 디뎠다. 긴장감이 다리로 흘러들어와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애정이 비틀거리는 듯하더니 이내 똑바로 일어섰다. 애정이 다성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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