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았지만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너무 적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현을 만난, 아니 혜성이를 처음 집 앞에서 만난 그때부터 내 인생에게 무언가 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긴 어려웠지만 마치 큰 돌 하나가 박힌 것 마냥 풀 수 없는 질문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 우리는 시작부터 이상했다. 어떻게 알고 온 건지 난데없이 집 앞에 혜성이를 만난 것하며, 매번 가는 바(Bar)였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우현을 그날 딱 만난 것 하며. 혜성이는 우리 집을 어떻게 안 거고 우현이 날 보고 운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분명 내가 가장 무언가를 숨기고 이었다. 나만이 모르고 있는, 우현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알려줄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를.

 

 

 “……데려다줄까요.”

 

 

혜성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온 우현이 조심스레 말했다. 평소였다면 물음이 아닌 데려다주겠다고 당장이라도 차에 올라탔겠지만 우현도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 상태로 우현과 같이 간다면, 나는 아마 참지 못하고 우현에게 다 물어볼 거 같았다. 사실 지금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질문들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감도 못 잡겠는 이 상황들이, 딱 하나만 알면 그게 실마리가 되어 다 풀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어요.”

 

 

겨우겨우 골라 나온 말이었지만 누가 봐도 머릿속이 복잡해 보일 게 분명한 표정을 했을 거다. 데려다준다는 그 사소한 질문조차 고민을 해야 하는 이 상황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한다면 다시 원점이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도 모르게 나온 한숨은 우현을 더 불안하게 하는 듯했고 나는 한숨이 빠져나가듯 이 고민들이 다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우현씨의 전 애인을 닮았나요.”

 “……아뇨.”

 “그럼 내가 아이의 엄마를 닮았나요.”

 “……….”

 “혜성이는 왜 운 거예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어리지만 중학생이나 된 아이가 다짜고짜 자신을 보고 눈물을 흘릴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이 날 부여안고 그렇게 울 이유는 더욱 없었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아빠와 연애를 한다는 말이 기쁘다고 해서, 그렇게 애달프게 울 이유는 전혀 없단 말이다. 그래서 미치겠다는 거다. 왜 이 사람들은 날 볼 때마다 이렇게 애타는지, 작은 행동에도 기뻐하는지.

 

 

 “내가 아직도 우현씨를 덜 좋아하는 거 같아서 대답을 못해줘요?”

 “……….”

 “지금껏 우현씨가 언젠간 말해주겠지, 언젠간 분명 다 말해줄 거라고 믿고 참았는데.”

 “……….”

 “아이가 우니까, 정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서 이젠 못 참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날 보며 서럽게 우는 이유가 무엇일 거 같냐고. 그런데 그 사람이 그냥 운 게 아니라, 날 보며 보고 싶었다고 우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며. 하물며 운 그 남자의 아이는, 날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집에 찾아와서 제대로 차리지도 못한 식탁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기쁘게 밥을 먹는데 대체 이 상황이 뭔 거 같냐고.

 

 

 “…내가 너무 용기가 없어서.”


 

한 놈은 그랬다. 네가 아이의 엄마를 닮은 게 아니냐며. 다른 한 놈은, 그냥 이상한 놈들이랑 엮인 거라고. 아무도 정확히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이 수많은 질문들의 해답을 알고 있는 건 우현이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 상황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건, 우현 하나였다.

 

 

 “당신과 이렇게 있는 지금이 너무 꿈만 같아서.”

 

 

떨리는 목소리가, 얕게 웃음을 내뱉으며 이어지는 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귀에 들어왔다. 단 한 번도 상상을 해보지 못한, 누구 하나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는 그 답은, 정말 상상 한 번 해보지 못해서 성규는 믿기지도 않는 그 말을 멍청히 듣고만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을 수는 없는, 천천히 운을 떼는 우현의 조심스러운 그 목소리들이 내려준 이 이야기의 결말은.

 

 

 

끊어도 연

 

 

 

  이야기는 성규가 열아홉, 우현이 스무 살 때 시작되었다. 스무 살이 된 우현이 성인이 된 기념으로 친구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벌어진 ‘사고’로 인해.

 

이런 단순한 말로 정의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건 정말로 사고였다. 아무리 관계를 쉽게 맺는 알파라 해도 임신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고 큰 문제라고 중요시 생각했고 오메가와의 관계를 쉽게 생각하는 알파들은 많아도 임신에 대해서는 또 달랐다. 알파는 아무에게나 자신의 씨를 뿌리지 않으니까.

 

 

 “임신이래요.”

 

 

그래서 아마도 성규의 그 말은, 오메가인 성규만큼이나 알파인 우현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어느 자리에서나 짓궂은 놈은 있기 마련이다. 장난으로 술에 타놓은 흥분제를 하필 우현이 마셨고 그런 우현에게 걸린 게 성규였다. 흥분되는 몸에 바람이나 쐬자며 밖으로 나온 우현이 우연하게 그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성규를 보게 된 거다. 짙은 오메가의 향에 알파인 우현은 본능적으로 성규를 붙잡았고 아무 데나 보이는 모텔로 들어가 관계를 가졌다. 당연히 그 결과는 임신이었다.

 

알파라면, 그런 오메가를 두고 도망가기도 한다. 한 번 욕을 먹으면 남은 인생 편히 살 수 있게 되니 간혹 그러기도 한다. 하지만 우현은 다음날 성규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을 하며 성규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 우현을 향해 성규는 욕을 하며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우현은 알파였고 성규 자신은 오메가이니 그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너무 무섭고 싫지만, 알파의 강한 페로몬을 맡아버리면 흥분하는 오메가라 자신도 강하게 거부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와 버리게 된 거니 성규는 무작정 우현을 탓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런 현실이 너무나 더럽고 거기에 화가 치밀 뿐.

 

 

  아이, 낳지 않을래요?

이기적이었지만 우현은 자신의 아이를 쉽게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규에게 제안을 했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돌봐주겠다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당신 곁에 있겠다고. 아이를 잘 낳아주면 당신이 살아가면서 많은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돈을 주겠다고. 가족이 없어 돈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있던 성규에겐 꽤나 혹하는 제안이었고 많은 고민 끝에 결국 수락을 했다. 그렇게 아이는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성규의 우울함은 지속되었다. 우현은 아이만 낳아주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낳고 나니 ‘엄마’라는 그 무게가 너무 크게 다가왔고 그게 스트레스로 번지기까지 했다. 아이를 낳고 휴식을 하는 동안 성규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내내 창밖만 바라보았다. 평균보다 작게 태어난 아이가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동안 성규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도 보러 가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성규의 병실로 왔다. 품에 안긴 아이는 너무 작아 세게 쥐면 으스러질 것 같았고 낯선 환경들이 무서운지 울기 바빴다.

 

 

 “……아니야. 내 애 아니야. 난, 나는 그런 적 없어.”

 

 

아이는 울었고 성규는 아이를 부정했다. 자신은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고, 저 아이가 내 아이일 리가 없는데,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거냐며, 당장 꺼내달라고. 아이는 끝내 자신의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성규가 임신하는 기간 동안 처음엔 미안한 마음, 죄책감이 컸던 우현은 점점 배가 불러오는 성규와, 맛있는 걸 먹으면 웃는 성규를 보고 정말로 자신의 사람이 되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다 준 딸기 사탕을 옆에 끼고 먹는 모습이 예뻐 보이기도 했고, 그렇게 성규를 향한 마음이 커지고 커졌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하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

 

아이만 보면 흥분을 하고 병원에 있다는 자체로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성규를 강제로 옆에 두는 건 성규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 아닌 거 같았다.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며 성규의 옆에서 보살펴주며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붙잡아두고 있던 성규를 우현은 끝내 놓아주기로 했다. 의사는 성규가 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를 낳았다는 기억을 억지로 지워버린 거 같다는, 절망적인 말을 남겼다.

 

우현은 오랜 시간 성규를 멀리서 보았다. 다가가지도 못하고, 단 한 번도 성규의 근처에 나타나지 않고 그저 멀리에 있었다. 그러다 못 참겠으면 가끔 성규의 집 앞에서, 성규가 나타나지 않아도 무작정 기다리며 밤을 새웠다. 얼굴을 보면 다행이었고, 아니면 실망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고 그렇게 살았다.

 

 

 “나는 왜, 나도 엄마가 있는데 왜 만나지 못해요?”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가끔씩 늦게 들어오는 아빠가 수상해 몰래 뒤를 밟았다. 그렇게 성규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아이의 기억 속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자신의 초음파 사진들이 모아져있는 앨범들 가운데 단 한 장 있던 그 얼굴을 아이가 기억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니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살아왔던, 마음 한구석에서 엄마를 그리워했지만 티를 내지 못하고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니 아이가 목 놓아 울었다.

 

그래서 아이가 찾아간 듯했다. 성규에게, 아이가 집에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사람은 이제 네 엄마가 아니라고, 다시는 찾아가지 말라며.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아이가 숨이 넘어갈 듯 서럽게 울었다. 그 누구보다 속상하고 울고 싶은 건, 우현이었다.

 

 

 

-

 

 

 

  믿기지 않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성규는 한참이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겨우 뗀 입에선, 잠시 시간을 가지자는 말을 할 뿐이었다. 내 아이라니. 내가 낳은. 내 아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에선 과거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라서, 나 이제 기억이 났다며 행복하게 끌어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던데 나에겐 해당이 되지 않는 듯 했다.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떠 멍하니 그 생각만 하다 창밖이 어두워지는 걸 눈치 못 챌 만큼.

 

정말 우현의 말이 맞는 거라면, 아이는 살아온 동안 평생 엄마를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건데, 성규는 그게 너무 두려웠다. 엄마 없이 혼자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외로울 지, 학창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매번 눈치를 봐야 하는 그 생활이 얼마나 괴로운 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이제야 이해할 수 있는, 아이가 부실한 식탁에도 맛있게 먹던 이유를, 우현과 만난다는 소리를 듣고 감사하다며 울었던 이유가 퍼즐 조각 끼워지듯 맞춰지기 시작했다. 우현이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 보고 싶다며 울었던 이유도, 이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유도.

 

내가 이 상황에서 제일 두려운 건, 지금에서라도 아이에게 다가간다면, 아이가 모든 걸 다 용서해주고 날 받아줄까, 하는 그런 마음.

 

 

 “나 오다가 너랑 비슷하게 생긴 애 봤다. 키가 한… 너보다 조금 작은?”

 

 

부스럭거리며 검은 봉지 안에서 반찬거리를 하나 둘 꺼내며 하는 친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규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바로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이렇게 뛰쳐나와 봤자 아이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으면서 차오르는 숨을 겨우 내쉬며 보이지도 않는 아이를 미친 듯이 찾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실망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대체 어딜 갔다 오냐고 묻는 말에 성규는 그냥, 하며 소파에 다시 앉았다.

 

 

 “근데 걔 진짜 너랑 비슷하더라. 네가 애 낳으면 딱 그런 느낌일 거 같았어.”

 

 

그 말에 차마 그거 내 아이래, 하고 말은 못하겠기에 잠자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많은 친구 놈들 중에 제일 친한 술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며칠은 집에서 홀로 마시다 이렇게 마시다 죽으면 아무도 모를 거 같아 바(Bar)를 찾아왔다.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친구 녀석이 건네주는 술을 잔이 채워질 때마다 들이켜며 멍하니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테이블 위에 붙여진 작은 쪽지를.

  ‘우리 내일도 만날래요?’

가장 구석은 내 전용 자리다. 다른 곳보다 더욱 어두운 이곳은 사람이 잘 앉지 않았고 아마 그걸 아는 건 성규의 친구, 혹은 그 한 사람뿐일 거다. 누가 써두고 갔더라, 누구누구한테 하는 말 같아서 그냥 놔뒀어. 친구 녀석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나올 거 같아 채워진 술을 단 번에 목으로 넘겼다. 이렇게 빨리 이러한 상황이 올지 몰랐던 그 사람이 써놓았을 게 분명한, 아마 이 쪽지를 쓰며 기분 좋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한 그 사람이 떠올라서 나는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어버렸다.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손으로 눈을 가리기도 했지만, 그 사이로 미친 듯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최대한 빨리 당신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난 뭐가 이렇게 두려워서 한 걸음도 못 내딛고 있는지. 한 걸음 앞에 있을, 뭔지 모를 그 무언가에 나는 지레 겁을 먹어서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아침이 밝았다. 덜 뜬 눈으로 둘러본 집안 곳곳엔 내내 마신 술병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고 나는 지겹다는 듯이 그것들을 바라보며 냉수를 들이켰다. 그러다 우연히 발끝에 부딪힌 빈병을 멍하니 쳐다보다 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병을 주었다. 좀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요즘은 학교가 언제 끝나는지도 몰라, 혹시 시간이 너무 늦어서 놓치기라도 할까 봐 두시부터 그 앞에 서있었다. 뜨거운 햇살이었지만 불만 한 번 내뱉지 않고 그저 가만히, 계속해서 아이를 기다렸다. 사들고 온 까만 봉지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아이스크림은 오래전 녹았지만 버리지도 못한 체, 다리가 아프면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계속.

 

 

 “……….”

 

 

무엇을 알리는 종소리인지도 모를 학교의 종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을까,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네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내 긴장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 긴장이 되는 마음에 비닐봉지를 더욱 꽉 쥐기도 했다. 그러다 친구들과 같이 나오는 아이를 보고 결국엔 침을 삼키기까지 하며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부르지도 못하고 멀리서 보았다.

 

 

 “…너네 먼저 가.”

 

 

아이가 먼저 다가왔다. 이번에도 먼저.

 

 

 “……안녕.”

 “……….”

 “…아이스크림 먹을래?”

  

 

이건 녹아서, 다시 사줄게. 검은 봉지를 뒤로 숨기며 조심스레 내뱉은 내 말에도, 그 어색한 침묵 속에서도 느껴지는 아이의 마음 때문에, 너무 울어서 메말라버린 줄만 알았던 눈물이 또 나오기라도 할 것 같았지만 끝까지 참았다.

 

 

 “네…….”

 

 

내민 손을 붙잡아주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아이는 고맙게도 손을 잡아주었다.

 

 

  먼저 다가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먼저 큰 문제는 생각해보니 내가 우현에 대 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우현을 만나러 가고 싶어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연락을 할 수는 있지만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혜성아,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된다니까요! 아빠가 좋아할 거예요.”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우현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혜성이와는 자주 만남을 가졌다. 혜성이는 고맙게도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더 좋아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그 모든 것들을 다. 혜성이에게 우현을 만나러 가고 싶은데 회사를 알려달라고 하니 무언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자신의 집에 오라고 했다. 아빠는 늦게 오니 우리끼리 깜짝 서프라이즈를 하자면서.

 

 

 “거기라 아니라 조금 더 위에, 더 위에 붙여야 돼요.”

 “여기?”

 “네. 거기쯤……. 음, 조금만 더 왼쪽으로.”

 

 

풍선 하나를 붙이는 것도 이렇게 신중해서야 원. 혜성은 이 상황이 너무 재밌는 듯 했다.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검색도 해가며 도와주고 이 기회에 우리 집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제안까지 했다.

 

  풍선을 불고 있는 혜성이 정말 이렇게 못해도 되는 거냐는 생각을 하며 성규를 보았다. 그래도 간격을 얼추 비슷하게라도 붙이면 좋을 텐데 바로 옆에다 다닥다닥 붙여놓고는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다시 보지도 않고 그렇게 나열해서 붙이는데 그 광경이 꽤나 볼만했다. 그러다 성규가 바닥을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풍선을 붙여나가고 있는데 바닥에 놓인 테이프를 밟을 것만 같았다. 저거 작아도 밟으면 꽤나 아픈데, 하는 생각을 하며.

 

 

 “저, 그…….”

 

 

조심하라고 성규를 부르려고 했는데 막상 부르려고 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아저씨, 라고 부르기는 싫고, 그렇다고 해서 저기요, 라고 하려니 더 싫고. 그래서 선택한 거였다. 꽤나 용기를 가지고.

 

 

 “엄마……!”

 “……….”

 “거기 바닥에 테이프, …밟으면 아프니까 조심하세요.”

 

 

혜성의 말에 성규는 하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 체 가만히,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곱씹었다. 곧바로 딴청을 하며 다시 풍선을 불기 시작하는 혜성이었지만 성규는 그러지 못했다. 아직은 어색해서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이, 아이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한 말인지 아니까, 자신도 같이 다가가기로 했다.

 

 

 “……어, 고마워.”

 

 

혜성이 네, 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지금은 이 정도면 됐다.

 

 

  정말로 무슨 파티인 것 마냥 집을 꾸민 혜성은 냉장고에서 케이크까지 꺼내었다. 너무 오버를 하는 건 아닌가 싶고, 이러고 우현을 마주칠 생각을 하니 긴장도 되고 정말 내가 잘하는 짓인가 싶기도 해서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벌어진 거,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벨 소리가 울릴 땐, 급속도로 심장이 뛰었다.

 

 

 “혜성아, 아빠가 너무 늦었…….”

 

 

하필이면 풍선을 양손 가득히 들고 있을 때. 우현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알록달록한 풍선에 일차로 놀라고 풍선을 가득 들고 있는 성규의 모습에 이차로 놀란 듯싶었다. 우현의 손에도 역시나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언제 준비해온 건지 주방에서 케이크를 들고 나온 혜성은 생일 고깔을 하나 쓴 상태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영문을 모르겠는 상황에 얼떨떨하게 우현과 혜성을 번갈아보는데 우현이 아직 신발도 벗지 못한 상태였지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혜성이, 축하합니다.”

 

 

아. 이제야 파티를 여는 것 마냥 집을 꾸미던 혜성의 행동도, 어울리지 않게 케이크를 사던 혜성도 다 이해가 갔다. 혜성이 초를 끄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원하는 그 얼굴에 한 번도 내뱉어보지 못했던 말을, 성규도 꺼내었다.

 

 

 “사랑하는 혜성이…, 생일 축하합니다.”

 

 

그제야 초가 꺼졌다.

 

 

  바닥에 널려있는 풍선들을 뒤로하고 우현이 주방으로 들어가 자신이 사온 케이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혜성은 눈치를 보다 방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고 거실에 어색히 둘만이 남았다. 우현은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들이켜기까지 했다. 얼마나 놀랐을 상황인진 알지만, 저렇게 아무 말도 없으니 초조해져왔다.

 

 

 “나가요.”

 “네?”

 

 

그 말에 나보고 나가라는 말인 줄 알고 당황을 해서 주섬주섬 옷을 챙기려다.

 

 

 “…아니, 미안해요. 같이 나가자는 이야기였어요.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성규가 오해한 걸 알고 우현이 곧바로 사과를 해왔다. 아아. 하마터면 정말 울 뻔했다. 그렇게 먼저 걸음을 옮기는 우현의 등을 보는데 왜 이렇게 서운한지.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우현이 먼저 등을 보인 적이 없어서였던 거 같다.

 

  우현은 이마를 짚었다. 성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이 상황에 우현이 꺼내는 말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며, 그 초조함 속에서, 왜 왔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지 머릿속에서는 우현이 할 법한 말을 정리하며 대답을 생각하고 있는데 우현의 입이 열렸다.

 

 

 “괜찮아요?”

 

 

응?

 

 

 “왜 그래요? 왜, 왜 왔어요?”

 “……….”

 “왜 다시 찾아와서 왜 이렇게 날, 또…….”

 

 

  흔들어.

지쳐 보이는 그 목소리는, 내가 몇 번이고 그려왔던 우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약한 모습이었다.

 

 

 “떠난 줄 알았어. 아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 같아도 내가 너무 원망스러울 거 같으니까.”

 “……….”

 “그래서 잊으려고, 혜성이에게도 그만 잊으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하며 참았어. 당신이 자꾸 꿈에 나오는데 나는 또 아침마다 울며 잠에서 깨고. 나 같아도, 나 같아도 내가 싫을 거 같은데, 그걸 아니까 나는 당신을 붙잡을 자격이 없는 거 같아서.”

 “……….”

 “그렇게 미친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나타났어.”

 

 

애절하게 내뱉는 그 목소리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망의 원인은, 아마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다면 내가 떠날 거 같아서. 다신 찾아오지 않을 거 같아서, 겨우 잊으려고 했는데 내가 나타나서, 라고. 말을 힘들게 내뱉으며 꾸역꾸역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아파왔다. 당신은 정말 바보구나.

 

 

 “울지 마요.”

 “자꾸, 당신이 꿈에서,”

 “안 울어도 돼.”

 “날, 원망한다고, 이렇게 만든 날,”

 “사랑해요.”

 “울면서 매일 밤마다, 날, 향해……,”

 

 

  사랑해요. 우현씨.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아니야, 당신을 원망한 적 없어.

그런 우현을 안아주며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고, 내가 지금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렇게 울지 않아도 된다며. 우현이 성규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자꾸 흘러나오는 눈물 탓에 겨우겨우 말을 뱉는 이 남자는, 몇 번이고 내 품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안해.”

 “응, 응.”

 “사랑해.”

 “나도요.”

 “…내 옆에 있어줘.”

 

 

그 어린 시절에는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그저 성규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때의 자신을 너무나 자책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그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혼자 앓아야만 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말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하고 싶었다. 내 옆에 있어달라고, 나와 아이를 부정하지 말고 내 곁에서, 행복하게 해줄 테니 그렇게 슬퍼하지 말고 제발 행복하게 있어달라고.

 

 

 “……우현씨도요.”

 

 

앞으로의 행복을 무조건 다짐할 수는 없지만, 더욱 애타고 더욱 절절한 이 이야기의 끝은, 그 어느 가정들과 똑같지 않을까 싶었다.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다시 사랑을 나누면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혼자가 아닌 옆에 누군가 있는 걸로 하루가 시작되는 그런 이야기.

 

  쨍하게 떠있는 해는 여전히 성규를 반기고 있었다. 겨우 뜬 눈으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성규가 뒤척이며 옆으로 몸을 돌렸다. 우현이 있었다.

 

 



지금까지 '끊어도 연(緣)'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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