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많은 비가 내렸다. 어쩌다가 그런 곳에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흠뻑 젖은 채로 구석진 곳에 몸을 구겨 넣듯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바깥에선 흙바닥이고 나뭇가지고 죄다 무자비하게 두들겨대는 빗줄기 때문에 온통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공간이 쩍 하고 갈라지는 굉음까지 간간이 터졌다. 그 굉음은 내 고막을 뚫고 들어와 혈관을 타고 흘러 심장을 찢어발길 것처럼 난폭했다. 얼굴이 축축했다는 게 기억난다. 그게 비에 젖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눈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물도 콧물도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잔뜩 젖은 채로, 나는 벽을 보고 앉아 세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다시 쩍. 하며 심장이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벽에 처박고 있던 머리를 들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다시 한 번 더, 쩍. 그야말로 세상이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카와!


벼락처럼 내리치는 목소리가 고막을 뚫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시선을 완전히 돌려놓았을 땐, 자그마한 몸집으로 성난 폭우보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네가 서 있었다.


이와쨩.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나 웃음이 나던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축축한 얼굴을 하고서는, 나는 안면의 모든 근육으로 웃어 보였다.





 *





“갑자기 그때가 생각났지 뭐야.”


찬바람이 불었다. 나는 옷깃을 잔뜩 여미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음절마다 하얀 입김이 피어올라 선율처럼 허공에 퍼져나갔다. 너는 한쪽 눈썹을 잔뜩 치켜세운 채 나를 쳐다본다.


“뭐가?”


단단하면서도 약간 긁는 듯한 느낌의, 어딘가 동굴 속을 울리는 메아리도 조금 들어 있는 듯한 너의 목소리가 짤막한 대꾸를 남긴다. 허공 위에서 독주를 펼치던 나의 입김 위에 너의 입김이 덧씌워진다. 숨결에 음색이 있다면, 조금 전의 그건 어떤 화음이었으려나.


“이와쨩이 오이카와상의 귀여운 아기천사였던 때.”


너를 향해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한껏 귀여움을 부렸더니, 돌아오는 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뿐이었지만. 하하.


“무슨 멍청이 같은 소리냐.”


너에게서 퉁명스러운 대꾸가 돌아왔다. 손가락으로 코끝을 슥슥 문지르는 너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웃음이 났다. 귓불이 발갛게 달아오른 건 찬바람 때문일까나, 이와쨩.


“어이.”


네가 나를 부른다. 참으로 정나미 없는 호칭에 정나미 없는 말투다.


“어이-가 아니라 오이카와상입니다만!”


셀쭉하니 눈을 흘기며 괜스레 주석을 붙여본다. 너는 그저 픽 하니 웃음으로 넘겨버린다.


“그만 가자.”


네가 말했다. 먼저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너를 본다. 어쩐지, 이상하다. 너는 고작 한 걸음 앞서 있을 뿐인데 나는 몇 걸음이나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와쨩.


“끝나면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찬바람이 돌연 세차게 불었다. 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눈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치우느라 손을 들어 올렸다.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엔, 너는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이와쨩.”


나지막이 너의 이름을 읊조렸다.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너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입 안이 텁텁하다. 몹시 갈증이 난다. 마치 좀 전의 한 마디가 마지막 물 한 방울인 것 마냥.


아. 오늘은 우리들의 졸업식이다.










언제부터를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너와 함께인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는 순간을 불현듯 깨달은 것처럼. 인류의 탄생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수정되었을 때부터 이미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 기점을 자신의 시작으로 삼지 않는다. 어떠한 계기를 시작이라고 보는 거지.


내겐 네가 그랬다. 나의 시작에 네가 있었다. 멋모르던 시절, 함께 공을 튕기며 놀다가 배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의 삶에서 절반도 더 넘는 부분에서 나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너는, 나의 시작이자 끝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너는 시작에만 있었을 뿐 아니라 나의 매 순간에 존재해 온 거야, 이와쨩.


졸업식을 기념하는 담임의 헌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이걸 끝으로- 라는 말을 읊는 담임의 목소리가 어쩐지, 따끔따끔하게 고막을 후벼팠다.


대학교는 서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너와 나는 이제, 이걸 끝으로... 그래. 나의 시작은 이걸로 끝이 나겠지.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그런 곳에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흠뻑 젖은 채로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먹색 구름이 가득했다. 하늘은 무거운 목울음을 내며 하염없이 빗줄기를 뿌리고 있었다. 아. 오늘은 천둥이 치지도 않는데 가슴 안쪽이 욱씬욱씬 한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비가 멎으면 세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적, 비 오는 공사장에서 비에 흠뻑 젖은 채 너를 기다리던 그때처럼.


하지만 나는 오늘, 세상의 끝에서 나의 시작인 너를 보내려-


“야!”


쩍. 하며 심장이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빗줄기에 얻어 맞고 있던 고개를 꺾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 멍청이가! 이런 데서 뭐하는 거야!”


네가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잔뜩 성난 걸음걸이와 잔뜩 성난 표정으로. 단숨에 내가 있는 곳까지 성큼 다가왔다.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벼락처럼 내리치는 목소리가 고막을 뚫었다. 네가 내 옷깃을 거칠게 잡아챌 땐, 그 어떤 성난 폭우보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네가 바로 코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잔뜩 붉어진 너의 코끝을 보았다.


“왜 항상 쓸데없이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하는 거냐, 망할카와! 내가 그쪽으로 간다고 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쪽으로 간다는 뜻이니까, 너도 무슨 일이 있어도 기다리란 말이다, 이 멍청아!”


아. 이와쨩. 울 것 같은 표정이야.


“이와쨩.”


비가 그치면 좋겠다. 비가 그쳐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 줘. 그리고, 네가 울고 있다는 걸 보여줘, 이와쨩. 불안한 건 나 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줘.


웃음이 났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축축한 얼굴을 하고서는, 나는 안면의 모든 근육으로 웃어 보였다.


나의 시작과 끝이 함께인 너를, 나는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보통 그 이름을, 전부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직, 시작의 끝은 멀리.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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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오이 전력 60분에 처음 참여해본 글입니다.

60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인줄 몰랐습니다.

애정도 서툴고 능력도 서툽니다.

그래도 많이 좋아합니다. 헤헤...







글을 쓰려고 합니다. 덕질의 노비스. SNS 속 청동시대. 무뢰한 문외한. ☆HQ! 아카보쿠 보쿠아카 보쿠로 쿠로다이 쿠로츠키 이와오이 카게히나 그리고 +@ 어마어마한 잡식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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