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JeA








요즘 들어 통화를 할 때 부쩍 목소리가 안 좋게 느껴져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다니엘은 병원일이 바빠져 그렇다고 말은 했지만 믿을 수가 없어 재환에게 연락을 해 보아도 별다른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다들 괜찮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괜찮지 않았다.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신이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다니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 온통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곳에 발이 묶여 있는 터라 어쩔 방도가 없었다. 원래는 학술회를 참석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연수는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설상가상으로 학술회도 미뤄지고, 두달을 더 있어야 했다. 이곳에 있는 두달 동안 자꾸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불안하게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옹성우! 너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 지성 선배. 오늘 형도 발표 있죠?"

"응. 특이 케이스가 있어서. VIP로 오셔서 맨 앞에서 보시겠네? 이거 대한민국 넘버원 앞에서 발표하는 거라 엄청 떨리는데?"

"넘버원은 무슨... 운 좋게 의지력 강한 환자들만 만나서 건강하게 나아준거지 뭐. 잘해요 선배! 파이팅!"

"그래"





지성이 맨 앞 테이블에 앉아있는 성우의 머리를 잠깐 토닥이고는 단상 위로 올라섰다. 머리를 부비적 하는 건 다니엘이 해주던 건데... 잠깐 딴생각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학술회에 집중하고 지성의 발표에 귀 기울였다.





"이번 케이스는 브레인투멀입니다. 30대 초반의 남성 환자로 최초 증상은 4개월 전 정도로 추정됩니다. 보통 브레인투멀은 두통부터 증상이 나타나는 반면 이 환자의 경우 손의 마비 증세부터 시작되어 두통으로 진행된 케이스입니다. 그 외의 증상은 없었으나 MRI 판독 결과 3기 수준의 교모세포종으로 판단이 되며 보시는 바와 같이 뇌에 뿌리가 깊이 박혀 수술요법은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우와.. 대단하다.


이쪽 분야에 전문가들만 앉아있는 자리다 보니 사진만 보아도 척하니 다 아는 듯 다들 영상에 비치는 것을 보고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성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런 환자를 여러 번 봤다. 이미 손쓸 수도 없이 진행된 상태에서 자신을 찾아와 뇌 구석구석 종양이 자리 잡고 신경을 감싸고 있어 도저히 머리를 열수 없었던 상태의 환자들도 있었다. 저 정도면 얼마 못 가겠구나, 항암치료도 치료의 목적이 아닌 생명 연장의 목적으로 써야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호기심에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화학요법과 약물치료로 진행을 하였고 신체 건강한 성인 남성인 덕에 효과가 좋아 한 달도 되지 않아 종양이 반이 이상이 줄었습니다. "




에이 그게 말이되? 아무리 건강해도 한 달도 안 됐는데 저게 반이나 줄었다고? 지성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성우는 말도 안 된다며 옆에 앉은 민현에게 속닥거렸다. 신경학에 관심이 없는 민현도 알만한 사실이었는지 민현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성 선배가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 이런저런 케이스들이 많다고 하니 이것도 그중 하나겠지.




"제가 의사 생활을 한 이래로 이렇게 호전이 빠른 환자는 처음이었습니다만 문제는 그 후에 나타났습니다. 종양 자체가 스스로 증식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물론 약물치료로 인해 그런 증상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도 많으시겠지만 문제는 그 진행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입니다.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이 뇌사진들은 일주일 상간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





다른 사진을 띄우며 일주일 상간으로 찍은 사진이라고 하니 모인 사람들이 웅성대며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지성이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고 버젓이 날짜도 적혀있었다. 정말 동일인물이 맞았고 그 사람의 사진이 맞았다. 일주일 정도로 종양이 배로 커졌다가 다시 줄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놀라운 임상결과에 성우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학술회에 푹 빠져 있었다.





"아마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종양 때문에 다른 환자들과 다르게 마비의 증세가 먼저 나타나고 그 후에 두통의 증세가 나타난 게 아닌가 합니다. 얼마 전 해당 환자에 대한 보고를 받은 바로는 현재는 마비의 증세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기억회로를 관장하는 부분으로 종양이 증식했는지 기억상실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브레인투멀의 증세는 동시다발적으로 오며 중복으로 경험하는 일들이 많은데 이 환자의 경우 한 가지씩 순서대로 나타나고 그전에 발현됐던 증세는 없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종양이 소멸되는 크기보다 증식하는 크기가 월등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소멸과 증식보다는 하나의 덩어리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연구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케이스가 없어 고명하신 여러 박사님들의 경험과 의견을 듣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





이따가 당장 찾아봐야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라고나 할까. 처음 겪어보는 환자에 궁금증이 커졌다. 얼른 이 회의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 인터넷을 뒤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지성의 말에 인터넷이고 뭐고 정신이 없어졌다.




"국적은 대한민국 국적으로 나이 30세. 이름은 강다니엘입니다. 직업은 한국병원 소아의학과 전문의로 환자의 신체정보는 키 180cm, 몸무게는 현재 67kg로 치료로 인해 많이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해당 환자는 세계 신경의학회에 등록해 두었으니 기타 사항은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덜덜 떨려오는 자신의 몸이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는지 몸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뭐라니? 응? 민현아. 지성 선배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아니지? 지성 선배 여기까지 와서 장난을 쳐. 왜 저러는 거야?"

"성우야...."





잘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었지만  마지막에 학회에 등록되어있다며 쉽게 그의 정보를 찾아 볼 수 있게 신상정보를 말할 때에는 가만히 듣고 있던 민현도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성우 몰래 따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던 의사가 지성인 줄 몰랐고 또 이곳 학술회에서 이렇게 발표를 할 만큼 특이 케이스를 가진 환자라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성우가 모르게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이별을 감내해하며 이곳까지 성우를 보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강다니엘이라는 환자는 세계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단상에서 내려온 지성이 멍하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성우를 보며 왜 그러냐 물어왔고 가까이 다가온 지성의 얼굴을 보자마자 성우는 경기하듯이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VIP석에 앉아 악을 쓰며 울어대는 성우 덕에 장내가 어수선하게 되어버리자 민현과 지성은 성우를 부축해 행사장을 벗어났다.





"성우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아는 케이스야?"





아니, 아는 사람이야.





"선배... 나도 처음 보는 거라... 혹시.. 죽을 수도 있을까?"

"나도 발표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보고자료 보내준 거 보고 올라간 건데 최근 부쩍 심해졌데. 이제 호전보다는 확실히 악화가 빨라. 약물도, 방사선도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고 하더라. 어쩌면 나도 이곳일 끝나고 돌아가면 그 환자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어"

"아니야! 아니라고!"

"성우야...?"





민현아.. 나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민현아.. 어떡하지? 

민현아.. 비행기 표 좀.. 

민현아.. 지금 당장 떠나는 걸로 부탁해. 

민현아.. 아니겠지? 

민현아.. 이거 꿈이지? 

민현아..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 

민현아...



악명 높은 신경외과에서도 독하게 살아남은 성우였다. 남들 두 손 두 발 들고 다 떠나갈 때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성우가 울며 불며 길길이 날뛰더니 결국엔 충격으로 그 자리에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성우야!!!"

"형! 부축 좀 해줘요. 방으로 옮겨야겠어요"

"괜찮겠어?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형 여기 의사만 300명이에요. 얼른 성우 업을 수 있게 좀 잡아줘요."





 다행히 학술회가 개최되는 호텔에 숙소를 정해놓은 터라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성우를 서둘러 둘러업고 민현은 방으로 뛰었다. 잠깐 충격에 쇼크가 온 것뿐이라 깨어나면 아무 이상 없겠지만 눈을 떴을 때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해져 왔다.


왜 갑자기 성우가 이러는 것이냐며 지성이 물어왔고 어쩔 수 없이 민현은 다니엘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성우 애인이에요. "

"뭐?"

"성우가 사랑하는 사람. 그 강다니엘이라는 사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넌 알고 있었어?"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성우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그게 형일 줄은 몰랐어요. 더군다나 이렇게 특이한 임상결과로 형이 이곳에서 발표할 줄도 몰랐고... 성우가 몰랐으면 좋겠다고 해서 맘 편히 치료받으라고 일부러 성우를 여기로 데리고 온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둘 걸 그랬나 봐요. 아마 성우 깨어나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 가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역시나 민현의 예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눈을 뜨고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어딘가.. 왜 이곳에 있나를 생각하는 듯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있던 성우는 지성의 얼굴을 보고는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듯 또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민현아. 나 한국으로 돌아갈래. 다니엘 내가 치료할게. 내가 옆에 있어야 해"

"성우야.. 지금 돌아가면 네가 알아버렸다는 사실에 다니엘은 더 힘들어할 거야. 그냥... 치료 한 사이클 돌릴 때까지만 여기 있다가...."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너 알고 있었어? 일부러 그런 거야? 너! 일부러 날 여기에 데리고 왔어? 왜? 무엇 때문에?"

"강선생이... 너 걱정 많이 했어. 자기 아픈 거 알고 네가 걱정할까 봐. 몰랐으면 좋겠다고... 끝까지 숨길 생각이라고 널 여기에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어."

"미쳤어 황민현. 너 정말 미쳤구나? 그게 말이되? 정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네가 말렸어야지! 다니엘이 그렇다고 해도 넌 나한테 말해줬어야지!!!!! 사람들 그 독한 치료받으면서 수십 번 무너져. 그걸 다니엘 혼자서 하고 있다고? 걔 세상천지 나밖에 없어. 혼자야. 그걸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그걸 황민현 네가! .......... 당장 돌아가겠어."




민현과 지성 둘 다 성우의 말에 죄를 지은 사람처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우가 일어나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가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공항으로 가는 게 분명했다. 정말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곳으로 성우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성우 보내면 괜히 치료에 방해만 되는 거 아닐까요?"

"아니야. 그냥 둬.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지금 가는 게 강선생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일 수도 있어. 강선생...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자신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거..."

"아마도... 미리 마음의 준비는 다했나 봐요. 그래서 성우를 이곳으로 보내려고 했어. 여기 와 있는 사이에 죽게 되면 그냥 마음 변해 도망간 것처럼... 그렇게 보이게 하려고요. 차라리 그게 성우가 덜 아플 테니까..."



영원한 이별보다 세상 어딘가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선물 Beautiful Never 약속해요 애인(愛人) 그냥 너라서 감기 밤의 가스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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