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살살 나 아파요..”

“여기서 어떻게 더 살살하니.”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에 힘을 더 푼다. 허공을 쓰다듬는 것처럼 검지손가락을 살에 스치듯이 움직인다. 아이는 내 방에 오자마자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너무 어이없으면 웃음만 나온다는 사살이 맞긴 한가보다.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면서도 입 꼬리가 잔뜩 올라간다. 내 침대에 누운 유소람은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날 종 부리듯이 부렸다. 다친 건 발등이면서 못 걷는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가 하찮고 귀여워서 나름 투정에 맞춰주고 있다. 하다못해 밥을 떠먹여달라는 유소람에 이마를 살짝 쥐어박았다. 어리광 그만 부리고 빨리 먹고 네 방으로 가. 아이는 내 말에 입술을 내밀고 툴툴 거리다가도 발등에 이불자락만 스쳐도 내 옷자락을 쥐어 잡고 앓은 소리를 잔뜩 해댔다. 결국 밤이 되도록 낑낑 거리는 초록머리에, 손수 약까지 발라주고 있는 꼴이다.

“아가씨, 다친 건 손이 아니라 발등인데 꼭 교통사고 난 것처럼 군다.”

“다친 건 발등뿐만 아니라 여기도.”

그러면서 자기 심장 깨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는 모습에 결국 웃음이 비싯 흘러나왔다. 약을 다 발라줬는데도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초록머리에 침대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 방에 안 가니.”

“내가 갔으면 좋겠어요?”

“아니, 맘 같아선 같이 자자고 하고 싶지. 근데 아가씨도 알다시피 내가 나이를 좀 많이 먹어서.”

아이가 뭐라고 토를 달기 전에 허리와 다리를 바쳐서 번쩍 들어올렸다. 가볍다. 키가 그렇게 작은 편이 아닌데도 품에 한 번에 안기는 것과 들어 올리는데 별 문제가 없는 게 마음이 걸린다. 국은 그렇게 잘 먹는데 왜 살이 안찌냐. 이 아가씨는.

“방에 데려다 줄 테니까 가자마자 얼른 주무세요. 아가씨.”

“내가 애도 아니고 자꾸 안아서 데려다줘..”

“아가씨가 아까 못 걷는다고 그렇게 찡찡 거렸으면서.”

“내가 언제 찡찡 거렸다고 그래요!”

“봐 지금 또 찡찡 거린다.”

초록머리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흘겨보다가 고개를 돌리면서 웅얼거렸다. 잘 들리진 않는데 안 들어도 뻔히 알거 같은 내용에 발걸음을 좀 더 천천히 늦췄다. 좀 더 안고 싶은 게 이유라면 이유가 될까. 결국 눈앞까지 도착한 유소람의 방에 괜히 아쉬워서 무거운 티를 냈다. 티라고 해도 팔을 좀 흔들면서 당장이라도 떨어뜨릴 거 같이 행동하는 것 밖 엔 할 줄 아는 게 없다. 유소람은 그런 내 모습을 다 아는 것처럼 나를 보고 예쁘게 웃었다.

철컹

쇳소리가 징그럽게 났다. 이제 저 소리도 오래 들어서 귀에 익을 것 같다. 유소람에 관련된 것들이 다 귀에 익어서, 나중에 너무 눈에 띠게 반응해 버리면 어쩌지. 유소람을 침대 위에다가 천천히 내려놨다. 나를 대할 때도 이렇게 소중하고 얌전히 행동한 적이 적은데 이 초록머리는 뭐라고 친히 이불까지 덮어준다. 앞머리를 대충 정리해주다가 길게 마주친 눈빛에 괜히 머쓱해져서 다시 손바닥으로 앞머리를 헝클린다. 얼른 자라 내일 보자. 깔끔하게 치고 빠지려고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킨다. 그것도 곧 내 손목에서 느껴지는 미지근한 촉감에 바로 힘이 풀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지만.

“벌써 가게요 아줌마?”

“그럼 뭐 자고 갈까?”

유소람은 대답도 없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욕망인지 애정인지 잘 모르겠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아닌데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꼼지락 거리면서 괜히 눈동자를 천장에 뒀다가 침대보에 뒀다가 아이의 눈을 피해 동그랗게 움직이자 아이의 작은 손이 내 볼을 살짝 움켜잡았다. 결국 눈이 다시 맞춰진다. 근데 이거 텐션이 되게 묘하고 이상하다. 여기서 꼭

“키스라도 해야 할 것 같죠.”

아, 이 아가씨는 너무 어리고 여리고 당돌하다. 그게 과연 내 행동의 타당한 이유가 될까.



세계를 만들기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제가 만들어 낸 인물들을 사랑합니다. 현재 권총을들고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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