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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블도어. 머글 학교. 번개 모양 흉터.

리들은 단어를 적어내리던 손을 멈췄다. 멈춘 깃펜 끝에서 나온 검은 잉크가 종이 위에 번져나갔다.


탁-. 리들이 펜을 놓고 일기장을 덮었다. 검은 표지의 일기장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지팡이를 휘둘러 그것을 사라지게 했다.


방안은 어두웠다. 책상 위를 비추는 옅은 조명이 방 안의 유일한 빛이었다. 리들은 의자에 느슨하게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해리포터를 처음 봤을 때 리들은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분명 처음 본 사이임에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함 말이다. 거기에 해리포터는 그 '존재' 자체에서 오는 묘한 거슬림이 있었다.

대체 뭘까, 이 기묘한 느낌은.


리들의 손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지팡이가 멈췄다. 


"…표정이 굳었었지."


리들은 상대를 파악하고 비밀을 알아내는 것에 능숙했다. 가면을 쓰고 몇 번의 호의를 베풀거나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면 그들은 자신을 쉽게 드러냈다. 능구렁이 같은 덤블도어를 제외하고.


리들은 자신을 만난 적 있냐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던 해리포터를 떠올렸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어느 날 갑자기 전학 온 머글학교 출신의 전학생, 그것도 호그와트에서 유일하게 상대하기 불편한 덤블도어의 추천 전학생. 어느 하나 리들과 접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번개 모양의 흉터.

누군가의 얼굴 반쪽이 날라갔데도 관심 없는 리들이었다. 어째서 그 번개 모양의 흉터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건지, 왜 그것이 그렇게 신경쓰이는 건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톡톡. 리들의 손가락이 책상을 두드렸다.

리들은 포터와 연회장으로 가던 길의 사건을 떠올렸다. 큰 소득이 없었던 산책을 마치고 연회장으로 가던 길에 두 사람은 퀴디치 경기장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퀴디치 경기장에는 후플후프와 그리핀도르의 연습경기가 있었다. 경기장 근처에는 몇몇 학생들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때 블레이저가 한 여학생에게 날아왔다.

그러자 포터는 스프링처럼 튀어 나가 여학생의 앞을 가로막고 주문으로 블레이저를 날려버렸다.

 자기가 다칠 수도 있는 무모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그 멍청한 모습은 뭐랄까.

그건 마치 슬리데린이라기 보단.


"…그리핀도르 같군."


해리포터의 무모하고 멍청한 그리핀도르 같은 행동은 덤블도어가 해리포터를 추천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애당초 그는 왜 슬리데린에 온 거지? 뭔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만 같았다.


마치 안개가 낀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불명확함은 리들을 지독히도 불쾌하게 만들었다.



똑똑.

그때 침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들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누구지?"

"톰, 우리야."


리들이 가볍게 지팡이를 휘두르자 잠겼던 문이 철컥- 열렸다. 리들이 고갯짓을 하자 입구에 서 있던 알파드와 아브락사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안에 들어서자마자 문이 스스로 닫히면서 다시 잠겼다.


리들이 방음 주문을 걸고는 알파드에게 말했다.


"찾아낸 걸 말해."

"그리핀도르 기숙사 근처에도 없었어."


알파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아브락사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대로 찾은 거 맞아?"

"세상에, 아브락사스! 말도 마. 그리핀도르 기숙사 근처를 쥐잡듯이 뒤지느라 좋아하지도 않는 레나랑 몇 시간 동안이나 스킨쉽을 했다고!"


걔 얼굴에 난 주근깨 너도 봤지? 맹세코 레나는 내 미적 기준에서 가장 멀리 있는 여자 중 하나라고! 게다가 걔는 가끔 허공을 보며 혼자 이상한 소리를 떠들어댄다니까. 그리고, 젠장. 오늘 걔가 내 허벅지를 몇 번이나 주물럭거렸는지 알아?! 내가 이렇게까지 희생하면서 그리핀도르를 조사했단 말이야.

알파드가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말에 아브락사스가 역겹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톰. 이제 레나랑 헤어져도 되겠지?"


알파드가 과장되게 울상을 지었다.


"래번클로, 후플후프도 모자라 이번엔 그리핀도르까지! 몇 개월마다 온 기숙사를 들쑤시고 다니며 여자친구를 바꿔 되는 개자식으로 이미 호그와트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필 그리핀도르 미인들이 통 안 넘어오는 바람에…. 젠장, 그래도 레나 러브굿은 너무 심했어!

알파드는 계속해서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리들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 그 근방을 좀 더 조사해봐. 놓친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윽-. 알파드가 죽는소리를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날카로운 리들의 시선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브락사스, 해리포터에 대해 알아낸 걸 말해."


리들이 아브락사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조사해봤지만, 많은 정보는 찾을 수 없었어. 우리와 같은 1926년생이고 마법사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 외에는."


리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른 정보는 없었어? 가족 관계는?"

"전혀 기록이 없었어."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마법사 등록. 그 외에는 기록이 없다라-.


리들은 지팡이를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말포이 가문은 현재 마법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가문이었다. 그에 비례하여 그들의 정보력은 단언 모든 가문 중 최고였다. 그런 말포이 가문조차 해리포터의 과거 행적을 찾지 못했다?


그건 마치 말포이가의 정보력을 뛰어넘는 어떤 능력자가 인위적으로 해리포터의 정보를 조작했다거나, 혹은 해리포터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누군가가 정보를 조작했든, 해리포터가 갑자기 나타났든 분명 방법이 있었을 것이고 무언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머글…들과 생활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해."


아브락사스는 '머글' 이라는 단어에서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리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아, 그리고 혹시 몰라서 포터 가문도 알아봤는데, 그들과도 관계를 전혀 찾을 수 없었어. 포터 가문에 독자는 플리몬트 포터인데, 톰 너도 알겠지만 그는 우리가 입학하던 해에 졸업했잖아."


리들은 짙은 갈색 머리에 준수하게 생겼던 플리몬트 포터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그러고 보니 해리포터와 은근히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긴 했다.


"플리몬트 포터는 그리핀도르였지?"

"그랬지. 그리핀도르 반장이었잖아."


톡톡. 리들의 손가락이 책상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플리몬트 포터와 해리 포터, 그리고 그리핀도르.

하지만 둘 사이에 전혀 관계가 없다? 연결될 듯 하면서도 연결되지 않는 무언가, 답답하고도 희미한 안개가 끼어있는 듯한 그것이 리들을 또다시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해리포터는 왜? 우리 모임에 끼워주려고?"


그때 알파드가 뜬금없이 물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알파드."


아브락사스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안될건 없지 않아? 마법 수준으로 따지자면, 아브락사스 너보다 낫던데."

"알파드 블랙. 그 입 다물어!"

"오,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진짜 화가 나긴 했나 보구나."


알파드 블랙과 해리포터. 

리들은 문득 오전에 연회장에서 알파드를 바라보던 포터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볼 땐 뭔가 인위적이었던 표정이, 알파드를 보는 순간 묘해졌다. 그것은 리들이 공감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담고 있었다. 리들은 그게 뭐든간에 처음 본 사람에게는 나타날 수 없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랙, 너……."

"알파드 블랙."


분노로 얼굴이 조금 붉어진 아브락사스가 알파드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함과 동시에, 리들이 알파드를 불렀다. 아브락사스를 놀리며 키득거리던 알파드가 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포터를 이전에 만난 적 있니?"

"내가 포터를?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


리들의 검은 눈동자가 알파드를 꿰뚫듯 바라보았다. 알파드는 결백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순간 리들의 검은 눈동자가 붉은빛을 띄었다. 알파드의 회색 동공이 빛을 잃고 멍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브락사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리들이 알파드에게 레질리먼시를 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짜군."


잠시 후 리들이 심드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알파드는 정신을 잃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리들은 창백해진 아브락사스를 무관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알파드를 데리고 이만 나가."



* * *



해리는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지팡이를 휘두르자 방안의 조명이 한층 밝아졌다. 슬리데린 기숙사는 전반적으로 그와 맞지 않았지만, 가장 싫은 걸 꼽자면 침실에 창문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핀도르 시절에 큰 창문에서 들어오던 햇빛과 달빛을 좋아하던 해리로써는, 지하에 위치한 슬리데린 기숙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휴우……."


침대에 기대어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던 해리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오늘 돌아온 호그와트 생활을 다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였다. 


물론, 문제는 정확히 그 일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해리는 다시한번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가 '톰 리들이 5학년으로 있는 호그와트'로 세팅이 된 타임터너를 그에게 남긴 이상 분명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해리는 2학년 때 톰 리들의 일기장을 통해 그의 과거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억에 따르면 톰은 이 무렵에 비밀의 방을 열었고 첫 번째 살인을 했다.


이곳에서 해리가 마법 모자를 다시 썼을 때, 해리는 본능적으로 슬리데린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덤블도어의 정확한 의도까지는 알수 없었지만 타임터너나 당시의 상황을 봤을 때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어쩐지 그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바꾼다.

톰 리들이 벌써 호크룩스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해리는 슬러그혼의 초대를 승낙했던 모임을 잠시 떠올렸다. 만약 늦지 않았다면 리들이 호크룩스의 존재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호크룩스, 비밀의 방, 톰 리들의 첫 번째 살인. 이 모든 것을 해리는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리는 숨 막혔던 리들과의 대화를 기억해냈다. 그는 매 순간 해리의 표정을 관찰하고 마음을 읽으려고 했었다. 어떻게 그를 속이고 이 모든 것들을 막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가 볼드모트가 되기 전인 지금, 그를 죽이는 것이 덤블도어가 원했던 의도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해리는 그를 죽일 수 있을까? 그는 볼드모트의 과거였지만, 아직 아무일도 저지르지 않은 열다섯 살의 소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마음대로 바꾸는 게 정말로 괜찮은 일일까?

엘로와즈 민텀블.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후손 25명이 태어나지 못하게 미래를 망가뜨리고, 세인트 멍고 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거둔 마녀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하아……."


해리는 한숨을 쉬며 침대 위로 몸을 뉘었다. 론, 헤르미온느, 덤블도어 교수님……. 모두가 너무나 그리웠다. 이 모든 것이 혼자 짊어지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하지만 해리에게 돌아갈 미래는 없다. 

해리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계속.


BL 소설 쓰는 주노네 작가 (구 빨강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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