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수는 의외로 머리가 되게, 좋은 것 같다.


지옥의 수학시간이었다.

“지금부터, 여기서 여기까지. 책상 모둠으로 모아라.”

정적분 샘이 뜬금 맨 앞줄을 가리키더니 넷씩 짝을 지어주었다.

“왜요?”

배두기가 묻자 정적분 샘이 칠판을 쾅 두들겼다.

“우리는 앞으로 수행평가를 조별로 하기로 했다.”

“왜요?”

“내 사전에 수포자는 없다. 모둠별로 공부해서 모르는 친구 없도록 해라.”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학은 적당히 포기하고 살려고 애시당초 마음 먹은 내게 정면으로 샘이 결투장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애가 한둘이 아니었는지, 다들 시꺼멓게 죽은 얼굴로 책상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샘은 자로 교탁을 탁탁 치며 경고했다.

“개인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조별도 중요하니까. 신경써라. 개인70, 조별 30프로 배점 할거니까.”

“아니, 내 공부 할 시간도 빠듯한데…….”

배두기가 투덜댔다.

“시끄럽고. 이제부터 미적분으로 세금 함수를 만들어 볼거니까. 너네가 국세청장이라 생각하고 어떻게하면 공정하게 세금을 잘 걷을지 함수를 짜볼거야. 조별로 잘 해봐라.”

미적분이라는 말만 들어도 토할 것 같은데 뭘 만들어보라고?

샘은 무심하게 프린트를 지우개로 세어서 우리에게 나누어줄 준비를하고 있었다.

선생님 왜 제가 그런걸 해야 할까요. 저는 국세청은커녕 주민센터 공무원도 안 될건데요.

차락대는 프린트 소리와 책상을 옮기는 소리로 교실이 분주했다. 내 마음도 분주했지만 어쨌거나 배두기랑 같은 모둠이 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 공부 잘하는 친구 덕 좀 봐야지. 언제 보나.

그런데 말이다.

이게, 왜. 조가 이렇게 된 거지?

 

나는 책상과 저쪽 모둠이 된 배두기.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신철수와 유도부 강덕구,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을 하느라 학교에 잘 안 나오는 단다라를 쳐다보았다. 얘는 진짜 오랜만에 학교를 나왔다.

그나저나 어떡하지…….

강덕구와 단다라는 수업을 거의 안나오고. 나는 예비 수포자이고. 거기다 무서운 신철수까지.

눈앞이 캄캄했다. 망했다.

 

“요번 시간 끝나고 모둠장 정해 놔라.”

그 말에 강덕구와 단다라의 눈이 일제히 나를 보았다.

아니. 나. 왜. 나 아냐.

나는 재빨리 눈을 피했다.

“헉!”

재빨리 숨을 삼켰다. 신철수와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아…….”

너무 가까웠다. 무심한듯한 얼굴이었지만 신철수의 눈은 태생부터 포식자 같이 무서운 눈이었다. 그 잔혹함을 숨기기라도 할 듯 모공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와 높고 예쁜 콧대, 완벽한 하트를 그리는 듯한 입술이 포장하고 있지만 나는 이 녀석의 숨겨진 진면목을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 그럼 잘 들어라.”

샘의 말에 겨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예제 풀어봐라.”

설명이 끝나고 나와 단다라 강덕구는 핏기가 빠진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손하나 까딱 않고 팔짱만 끼고 있던 신철수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마 눈 뜬 채로 기절한게 아닐까.

여전히 무섭지만 곁눈질로 훔쳐본 신철수는 정말 무념무상 그자체였다.

프린트를 내려다보며 샤프로 의미없는 숫자만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대체……. 수학에 왜 영어가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미동도 없는 신철수의 프린트를 흘끗 봤다. 역시나 깨끗했다.

우리야 설명을 못알아들어서 예제를 못 풀어도 그렇다 치는데 그래도 신철수는 그런 성의조차 안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샘이 시키면 어쩌려고.

“거기 전학생? 답이 뭐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아니나다를까 샘이 철수를 지목하고 말았다.

어쩌면 좋아. 나는 곧 불어닥칠 피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그래서 우리 모둠은 파탄이고 바보들뿐이니 샘이 모둠원을 좀 바꿔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하긴 했다.

“3번이요.”

“잘했다. 찍었냐?”

“…….”

“빨리 풀었잖아.”

“그래프 그려서요.”

아닌데. 너 그냥 가만히 있었잖아. 나는 눈을 새빨갛게 뜨고 거짓말 하는 신철수를 보았다.

“오……. 그래. 네가 걘가 보구나.”

샘이 이상한 말을 했다. 철수가 걔라고?

그러나 저쪽에 앉은 배두기가 신철수를 보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눈빛이 어딘가 질투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조장 누가 할거냐.”

샘의 말에 다른 모둠은 누구 누구가 하기로 했다며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들 침묵 속에서 눈치만 봤다.

모둠장이 되면 나서서 발표도 해야 했다. 국어나 윤리면 모르겠지만 문제 이해도 못 하는데 발표를 대체 어떻게 해.

수행평가는 이제 텄다. 아니. 수학은 끝났다.

아직 시작도 안 한 공부를 벌써부터 포기해야 하니 입맛이 쓰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런데 왜 자꾸 나를 쳐다봐 다라야 덕구야. 나 아니라니까.

“……내가 할게.”

그때 낮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이닥쳤다.

“어?”

얼빵한 얼굴로 내가 되물었다. 누가 뭘 한다고?

신철수가. 조장을 한댄다.

“발표 내가 할거니까 걱정하지 마.”

신철수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학, 가르쳐 줄게.”

신철수가 한술 더 떴다.

“어? 어?!”

내가 대답하자 신철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머릿 속에 종이 뎅뎅 울렸다. 천사의 환영 나팔 소리 같은 그런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을 뿐인데, 미친 미모였다. 가슴이 쾅쾅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진짜?! 우리도 가르쳐 줄 수 있어?”

그때 다라와 덕구가 신철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신철수는 웃음기를 지우고 두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다라와 덕구가 잠시 움찔 했지만 고개를 젓고는 철수에게 애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 예제 가르쳐 줄 수 있어?”

“…….”

작게 한숨 쉰 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구세주라도 만난듯한 얼굴로 덕구와 다라가 신철수의 팔을 잡으려다 화들짝 놀라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경건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신철수는 정말 구세주 같았다. 성스러워보이기까지 하는 예쁜 얼굴과 서양화에 나오는 천사같은 웨이브진 머리칼을 하고 매정한 얼굴로 어린양들을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그런데 너희 다 개념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외로 철수가 수락했다는게 신기해서 나는 멍하니 철수를 바라봤다.

“구영희 너도. 중학교 교과서부터 가져와.”

“…….”

 

그 뒤로는 계속 같은 패턴이었다.

영어도 토론 수업을 한답시고 모둠을 만들었다. 신철수는 유창한 발음으로 교과서를 읽었고 원어민 샘이랑 영어로 이야길 나눴다. 뭐야. 뭐야 이거.

 

그렇게 신철수는 모둠 5관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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