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에서 학생들을 위해 일할 전교회장 및 부회장을 뽑는 선거가 끝났다. 선거결과가 나온 다음 날, 나는 당선 소감을 이야기 위해 전교회장으로서 전교생 앞에 섰다. 전교회장 후보로서 전교생 앞에 설 때는 몰랐던 책임감 때문인지 긴장감으로 몸이 뻣뻣해졌다. 당선소감 및 인사를 하기 위해서 전교생 앞에 선 후 입을 열었다.

 

  “저를 지지해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전교생 앞에서 인사를 했다. 나의 당선 소감 및 인사가 끝난 후 많은 학생들의 지지를 얻어 부회장이 된 이가 전교생의 앞에 섰다. 앞으로 나를 도와 부회장으로서 나를 도와주며 많이 얼굴을 맞댈 예정이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 사람의 이름을 몰랐다. 전교생 앞으로 나서는 이는 용모가 단정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졌으며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안경에 비친 회색 눈동자는 강인한 의지가 보였고 금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도 당선 소감을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전교 부회장이 된 요한 테일드입니다. 여러분께서 저에게 보낸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전교 회장을 도와 열심히 발로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교 부회장의 이름이 요한 테일드라는 것을 전교생 앞에서 인사를 할 때 처음 알았다. 그의 인사가 끝나고 전교생은 교실로 돌아갔고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단을 내려가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앞으로 학교를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나머지 학생회 임원 구성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방과 후에 학생회실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요?”

 

 내 말을 듣고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방과 후에 뵙겠습니다.”

 

 그는 말을 끝내고 서둘러서 단을 내려갔다. 서둘러서 단을 내려가는 그에게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곧 수업이 시작하기 때문에 나 또한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향했다.

 

***

 

 학교 내의 모든 일과가 끝났다.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한 후 청소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 학생회장이 된 기념으로 나에게 쏘라고 이야기했지만 친구들의 말을 듣고 당선이 된 지금은 학생회 일이 인수인계로 인해 바쁠 시기이기 때문에 살 수 없다고 거절한 후 학생회실로 향했다. 학생회실은 2층 오른쪽 복도 끝에 있어서 4층 왼쪽 복도에 있는 교실에서 가기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늦지 않기 위해서 빠르게 발을 옮겼다. 학생회실에 도착하니 그는 먼저 와서 학생회실 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린 그는 내게 말했다.

 

  “오셨군요. 저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고 나는 그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그의 반대편에 앉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 자기소개가 늦었군요. 이번에 전교 회장이 된 로드입니다. 이름보다는 다들 이렇게 불러서 로드라고 부르는 편이 더 편해요. 2학년 3반에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3반으로 오셔서 찾으면 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 인사가 끝나고 요한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교 부회장이 된 2학년 8반 요한 테일드입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앞으로 로드를 도와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이 인사를 끝나고 나는 요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은 학년인데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로 하면 안 될까요?”

 

 요한은 내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제 존댓말이 불편하셨나요? 저는 존댓말로 이야기 하는 게 편해서요. 혹여나 불편하셨다면 제가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의 표정을 본 나는 당황해서 다시 말을 고쳤다.

 

  “그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볼 사이인데 이렇게 존댓말을 하면 거리감이 생겨서요. 그래서 반말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물어본 거예요.”

 

 내 말을 듣고 요한은 내 말에 대답했다.

 

  “그런 의미였군요. 로드가 반말이 편하면 반말로 해도 됩니다. 저는 존댓말을 하는 편이 더 편하니까 편하신대로 하세요.”

 

 요한의 말을 듣고 나는 요한은 예의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만들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요한이라고 부를게.”

 

 그렇게 말한 후 요한과 나는 그 전의 학생회가 어떻게 일했는지 확인하며 앞으로 학생회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를 한 후 헤어졌다.

 

***

 

 학생회 일을 하면서 지켜본 요한은 자신이 맡은 일을 꼼꼼하게 하며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편이어서 항상 늦게까지 나와 학생회실을 지켰다. 그런 요한의 모습을 보면서 호감을 가졌고 그 호감은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는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 감정을 깨달은 것은 인수인계가 끝나고 학생회가 한숨 돌릴 즈음이었다.

 

***

 

 그날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학생회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요한에게 오늘은 학생회실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알리려고 요한이 있는 교실로 갔다. 요한의 교실에 가니 요한은 다음 수업 준비로 인해서 교무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요한이 있는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로 향하는데 요한과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내가 끼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한의 앞에 서 있던 이는 요한에게 뭐라고 이야기 했지만 요한은 고개를 저었고 그 여학생은 요한을 지나쳐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요한에게 할 말이 있었던 나는 그 여학생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요한을 향해 갔다. 그러나 요한에게 말을 전하려는 순간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고 나는 교실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


 점심시간이 되었을 무렵, 요한이 칸나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교실 내에 퍼졌다. 칸나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나와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칸나가 대체 누군데?”

 

 내 말을 듣고 학교 신문부에 있는 프라우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로드, 그 칸나를 모른다고? 전교 회장이니까 이런 소문에 빠삭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아버지는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배우고 어머니는 현재도 활동하고 계신 피아니스트로 옛날에 아역배우로 활동한 칸나를 몰라?”

 

 프라우의 말에 학교 임원을 뽑을 때 자신을 어필했던 여학생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자신이 있으면 학생회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지만 잘하는 건 없다고 해서 떨어트렸던 것이 기억났다.


  “아, 그 때 그 학생인가보네.”

 

 내 말을 듣고 프라우는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그때 그 학생이라니? 로드 뭔가 아는 게 있어? 아는 거 있으면 알려줘라.”

 

 프라우의 말에 나는 자리에 일어나 대답했다.

 

  “개인정보니까 그 부탁은 거절할게. 그럼 나는 학생회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리에 일어섰다. 학생회실로 가면서 오늘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났다. 그리고 아까 요한에게 오늘 학생회실에 안 와도 된다고 알려주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리고 요한의 교실로 갔다. 요한의 교실로 가자 요한의 주변은 어느 때보다도 학생들이 많았다. 요한의 교실 앞에 서서 요한을 불러달라고 하자 요한이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로드, 무슨 일입니까?”

 

 요한의 미소를 보자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감정은 요한이 칸나의 고백을 거절하면서까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학생회장으로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흉잡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누른 채 말했다.

 

  “오늘은 급하게 처리할 학생회 일이 없으니까 피곤하면 일찍 하교해도 괜찮아.”

 

 그렇게 말하고 요한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가니 소변기 앞에서 볼일을 보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 학생들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지만 나는 그 인사를 받을 여유도 없이 양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갔다. 양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가자 담배냄새가 남아있었고 그 냄새를 맡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


화장실에서 한참을 울고 난 후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울었다는 것이 티가 나지 않도록 그렇게 내 자신을 다 잡고 교실로 갔다. 교실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과서를 꺼낼 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역사 선생인 헬가가 오늘 학교에 안 나와서 이번 수업은 자습이야.”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프라우가 서 있었다. 프라우는 나에게 다가와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로드도 인간인데 강한 척 하지 않아도 괜찮아.”

 

 프라우의 말을 듣고 프라우가 어떻게 알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놀란 표정만 짓고 입을 다물었다. 프라우는 그런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넨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원래 들어와야 할 담당 과목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내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에 앉은 후 프라우가 준 쪽지를 확인했다.

 

로드, 요한이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고 단정 짓지 마.

 

 프라우의 쪽지 내용을 확인하고 나는 프라우가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프라우에게 전달하기 위해 프라우에게 프라우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묻는 내용의 쪽지를 작성했다. 프라우에게 전달할 쪽지를 쓴 후 프라우에게 가장 빠르게 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미하일에게 쪽지를 전달했고 미하일 다음에 몇 사람을 거처 프라우에게 쪽지가 전달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자습을 하기 위해 영어 단어장을 펼쳤지만 단어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어장에 적힌 단어를 기계적으로 적고 있을 때 프라우에게서 답장이 왔다.

 

요한은 좋은 사람이고 아마 로드에 대해서는...... 그러니 오늘 로드가 요한한테 기성품인 초콜릿을 준다고 해도 기뻐할거야.

 

 프라우의 쪽지에는 나에 대한 요한의 생각이 지우개로 지워져있어 어떤 내용을 썼는지 알 수 없었다. 또한 프라우가 어떻게 요한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학교 내에서 프라우의 정보수집력을 생각해본다면 놀라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점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 대신 요한이 내 초콜릿을 받고 기뻐할 것이라는 프라우의 글씨를 보며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모든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

 

 모든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가 되었을 때 요한에게 학생회실로 와줄 수 있냐는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곧바로 요한에게 답장이 왔다.

 

저도 로드에게 할 말이 있었습니다. 학생회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요한의 답장을 읽고 나는 곧바로 학생회실로 갔다. 그러나 학생회실로 향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학생회실에 도착하기를 바랐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학생회실 앞에 도착했다. 학생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요한이 먼저 와있었다. 학생회실 내에 있는 책상에는 요한이 항상 들고 다니는 검은 메신저백이 놓여있었다. 요한은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린 후 내게 말했다,

 

  “로드, 혹시 오늘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나는 내 가방에서 가게에서 산 초콜릿을 꺼내 말했다.

 

  “요한은 인기가 많아서 이 초콜릿이 네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을 받아줄래?”

 

 내 물음을 듣고 요한은 이때까지 내가 알았던 요한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요한의 표정을 보며 나는 요리를 만드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오른손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실망했다면 미안해. 요한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알아. 그래도 오늘이 발렌타인이니까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내 말을 들은 요한은 내 말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기뻐서 할 말을 잊었던 것뿐입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나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요한에게 내 정성이 담긴 초콜릿을 전달해주고 싶어서 시도해봤지만 내가 원하는 모양과 맛이 나오지 않아 가게에서 파는 초콜릿을 사서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 초콜릿을 받고 요한이 기쁘다고 해주니 요한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때 침묵을 깨듯 요한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로드의 말에 정정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칸나의 고백을 거절하며 좋아한다고 했던 사람은 당신입니다.”

 

 요한의 말을 끝나자 눈물 때문에 내 시야가 흐려졌다. 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내 머릿속에는 요한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좋아한다는 말이 반복해서 자동 재생되고 있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로드, 눈물을 멈춰주세요.”

 

 요한의 말이 끝나자 내 입술에 요한의 입술이 겹쳤다. 그리고 요한은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물 때문에 흐려졌던 시야가 또렷해지니 내 눈 앞에 요한의 회색빛 눈동자가 있었다. 언제나 곧고 바르게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 밑에 눈물이 맺혀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몸이 기울어졌다.

 

  “이건 초콜릿에 대한 제 보답입니다.”

 

 요한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안아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 다음에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학생회실 창문에 있는 커튼을 쳐서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요한에게 무엇을 하려고 할 셈이냐고 물으려 했지만 그 물음은 말이 되지 못했다.

 

***

 

 발렌타인 데이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냈는지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 하나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은 우리들은 긴 시간동안 서로를 탐하고 갈구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요한은 나와의 사이를 다른 이에게 알리고 싶어 했지만 내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들의 사이가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요한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연성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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