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9 블랙자칼vs애들러스 배포전 [우5/M막둥이 S쇼요랑 B블자랑 Y영원히 B배구하자 J제발] 부스에서 판매 / 통판 예정인 블자히나 소장본 < MSBY BJs : 막둥이 쇼요랑 블자랑 영원히 배구하자 즐겁게 사이좋게 > 1권의 SAMPLE 입니다! 

 MSBY 블랙자칼의 우당탕퉁탕 시끌벅적하면서도 평화로운 일상 이야기 + 개그 / 블자히나, 히나른 요소 多


※ 아래와 같은 총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01. 스나의 의문. "MSBY 블랙자칼은 어째서 히나타에게 그렇게 무른 거지?" 

 02. MSBY 블랙자칼 깜짝 카메라! "식단 관리 중인 히나타가 간식을 먹고 있다...?!" 팀원들의 반응은?

 03. 제1 차 부엌대첩 발발! 블랙자칼 요괴즈 4인방의 우당탕퉁탕 요리 시간!

 04. 블랙자칼 막내즈, 사쿠사와 히나타의 공동 육아 일기 feat. 아기 고양이



※ 선입금 / 통판 폼 링크 :  (현장 수령 선입금 - 11/18  I  통판 수령 입금 - 11/18~11/28 )





[블자히나] MSBY BJs : 막둥이 쇼요랑 블자랑 영원히 배구하자 즐겁게 사이좋게 - 1권 (SAMPLE)












 01. 스나의 의문. "MSBY 블랙자칼은 어째서 히나타에게 그렇게 무른 거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 집단의 명칭을 맞혀 보시오.




첫째. 평균 신장 190.2cm의 남자 배구 선수로 이루어진, 국내 배구 리그의 강팀 중 하나이다.

둘째. ‘개인의 노력으로 사람을 맺다’라는 기본 이념을 지닌 국내 자동차 부품 메이커 주식회사 (―) 를 모기업으로 두었다.

셋째. 홈타운은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이며,

넷째. 상징 동물은 자칼이다.

다섯째. 지난 시즌, ‘챔피언’ 슈바이덴 애들러스로부터 3:1로 승리를 거둔 것을 시작으로 연승 행진을 달린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여섯째. 선수 각자의 뚜렷한 개성과 공동체로서의 시너지를 기반으로 예측 불허의 강인함을 휘두르는, ‘승리를 갈망하는 칠흑의 혁명군’이라는 별칭을 지닌 팀이다.




그리고, 일곱째―.






“……지금이야!”






날아올라라―!!




높고 빠르면서도 예리하게 띄워진 공이 허공을 갈랐다. 내내 시선을 떼지 않고 공을 노리던 한 사람이 코트의 오른쪽에서 힘차게 발을 굴러 뛰어올랐다. 그 엄청난 존재감을 놓치지 않고 따라 붙은 상대팀의 선수들.






“잡았… ……!!”






이런…!






“21번은 미끼야! 공은 반대쪽…!!”

“흐흥, 이미 늦었거든!? 봇 군, 내다 꽂아버려라―!”






모두의 시선을 오른쪽으로 이끌며 달렸던 한 사람이 네트 위로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눈으로 뒤쫓다가 뒤늦게 공이 반대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대팀이 몸을 움직였지만, 그 땐 이미 왼쪽에서 내리쳐진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중이었다.






“읏, 잡았…어…!”

“쳇―.”

“나이스, 코모리! 이어서 바로 반격한… ……어?”






얘가 왜 여기에 있지…? 겨우 성공한 리시브에 이어 조금은 조급하게 토스를 올린 상대팀, EJP 라이진 세터가 눈을 깜빡였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코트를 가로질러 왼쪽에서 도약을 준비하는 모습을 본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상대 세터를 본 아츠무가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웃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그 어떤 누구보다 빠르게 한 번 더 날아올랐던 누군가는, 정확히 예측했던 자리로 던져진 배구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곧 닥칠 승리의 희열을 예감한 본능적인 미소였다.





삐이이익―.






“경기 끝! MSBY 블랙자칼 대 EJP 라이진 오후 친선 연습 경기, MSBY 블랙자칼의 2:1 승!”






시합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코트 위 천장의 조명을 향해 높이 뛰어올랐던 누군가의 두 발 안정적인 착지를 마치고 크게 들이마시었던 숨을 도로 내뱉으며 씨익 웃었다. 이윽고, 그 주위에 모여들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들.




땀방울 하나가 또르르 흘러내리던 이마는 순식간에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동료의 가슴팍에 닿았다. 누군가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은 오렌지색 머리 위를 쓰다듬었고, 또 다른 이들은 등을 가볍게 툭툭 치거나 어깨를 주무르거나, 혹은 늘여내어 잡은 두 볼을 흔들며 칭찬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예에!! 블로킹으로 마무리! 잘 했어, 역시 내 제자!”

“바로 이 맛이제! 오늘도 최고였다, 쇼요 군!”

“잘 했어, 히나타. 오늘도 역시 집중력이 좋네.”

“Good job! 멋졌어, 히나타!”

“우리 막둥이~ 마지막에는 나도 깜빡 속을 뻔했잖아! 잘 했어, 잘 했어~”





12, 13, 4, 9, 그리고 6. 새까만 유니폼들과 하나의 새하얀 유니폼 위에 새겨진 등번호의 남자들이 감싸 안고 칭찬을 반복하자, 그 중앙에 묻혀 있던 이가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금 멀찍한 곳에 떨어져 서 있는 사람.






“……자, 와서 해. 하이파이브.”






다소 무미건조한 듯한 음성에 인심을 써준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딴에는 나름 최고의 칭찬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른바 ‘칭찬의 탑’에 갇혀 있던 이는 총총총 걸음을 옮겨 15번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이내 곧 그의 앞에 서서 기쁨의 미소를 띄운 채 마주보다가, 짝― 소리가 나도록 맞닿는 두 손바닥.






“와아, 오미 상이랑 하이파이브! 칭찬 감사해요!!”

“…그렇게 반응할 정도의 칭찬은 아니었는데. 애초에 히나타 네가 매번 경기에서 이기고 나면 하이파이브 하고 싶어 하잖아. 안 받아주면 아쉬워하고. 그래서 한 것뿐이야.”

“그래요? 그래도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오미 상이 옆에서 같이 블로킹 뛰어주셔서 엄청 든든했고!”

“…당연하지. 히나타 네 옆이 내 자리고, 우리가 블로킹을 뛰어야 했던 자리였으니까.”

“오미오미, 좀 솔직해져 봐~ 오미오미도 휘슬 울리자마자 두 주먹 불끈 쥐고 좋아했으면서!”

“그럼 가만히 있어야 해? 이겼는데 안 좋아할 이유는 없잖아.”

“이런~ 오후에는 우리가 이기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다음에는 안 질 거야, 사쿠사.”

“코모리! 아까 리시브 대단하더라! 나 분명 득점한 줄 알았는데!”

“봤나, 스나! 오전에 이어서 오후에도 우리가 이겼다!”

“…하, 경기 결과에는 납득하는데, 아츠무 네가 그렇게 웃는 거 보니 조금 싫어지려고 하네. 그리고… 언제 봐도 요 꼬맹이는 이쪽에서 번쩍 저쪽에서 번쩍, 사람 정신을 빼 놓는다니까?”

“그러게. 언제 봐도 깜짝 놀란다니까? 이제 조금 익숙해져서 적응했다 싶으면 또 다시 낚이고….”






검은색 유니폼의 무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던 EJP 라이진의 스나 린타로와 코모리 모토야가 말했다.




그 시선의 끝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오후 연습도 즐거운 경기였어요! 감사해요, 스나 상, 코모리 상!”이라며 제대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사람. 다른 이들보다 최소 머리 하나는 더 작은 곳에 위치한 그의 두 어깨 위로, 팔을 얹은 누군가가 자부심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흐흥! 어떤데! 내 스파이커! 우리 MSBY 블랙자칼 최고의 미끼가!”

“츠무츠무, 그러면서 은근슬쩍 히나타 유니폼에 땀 닦는 거 아냐?”

“왜 멋대로 ‘내 스파이커’라고 부르는 건지. 히나타, 연봉 잘 모아뒀다가 조만간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해버려.”

“아, 봇 군이랑 오미 군은 쫌! 이럴 땐 내 좀 냅두고 그냥 각자 갈 길 가라!”

“응? 나 지금 어디 가? 우리 여기에서 쉬다가 스트레칭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너야말로 히나타 좀 두고 네 갈 길 가는 건 어때. 애 불편해하잖아.”

“불편? 누가 불편해한다고. 우리 쇼요 군이 내를 불편해 할 리가 있나! 맞제, 쇼요 군? 응? 내 하~나도 안 불편하제? 불편하나? 응?”

“츠무츠무 집착 별로다.”

“으.”

“니들은 언제 봐도 사이가 참 좋네.”

“블랙자칼 요괴즈는 볼 때마다 재미있어서 같이 친선 연습 경기 하는 일정이 잡히면 그 전주부터 즐겁다니까?”






보쿠토, 아츠무, 그리고 사쿠사. ‘블랙자칼 요괴즈’라 불리는 4인방 중 세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스나와 코모리가 말했다. 그러자 둘을 향해 각각 “응? 우리 재미있어? 재미있다니 기분 좋네!”, “뭐가 재미있는데! 내 몰이 당하는 거 안 보이나!”, “…같이 묶지 말았으면 하는데.”라고 답하는 세 사람.






그런 그들의 정중앙에 서 있던… 아니,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던 누군가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둘러싼 대형으로 서 있는 세 명의 사이에 껴서 하하 웃고 있었다.




바로 ‘블랙자칼 요괴즈’의 마지막 한 사람이자, MSBY 블랙자칼의 ‘최강의 미끼’라 불리는 21번 유니폼의 남자.






“다들 기운 넘치시는 것 같은데, 저희 잠시 후에 연습 경기 한 번 더 하자고 부탁드릴까요?!”






히나타 쇼요였다.

 

 




◾ M ◽ S ◾ B ◾ Y ◾ B ◾ J ◾

 

 




“막둥아… 이제 그만… 오늘 시합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다음에 만날 때 또 하면 안 될까…? 나 이제 슬슬 힘든데….”

“…이누 상. 이누 상은 이제 슬슬 힘듭니꺼…? 내는 아까 전 세트에서 이미 허벅지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더….”

“젊은 게 좋긴 좋네…. 나는 그 전전 세트….”

“…….”

“다들… 사쿠사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숨만 내뱉은 지 한참 됐는데, 알고 있어…? 그리고 나도 이제 곧 knockout 될 것 같아, haha….”

“나도, 힘들어…!!”

“앗, 그래요…? 하지만 오늘은…….”






아직 아홉 세트밖에 못 했는데…. 못내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 한 히나타가 들고 있던 배구공 위의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직전 시합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바닥 위로 드러누운 동료들을 보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아직까지도 체력이 남아도는 모양이었다.




그런 히나타를 보며 제발 그만하자는 의사를 밝혀온 것은 비단 같은 팀 동료들뿐만이 아니었다. EJP 라이진에서 특히 친분이 있는 스나와 코모리, 심지어는 보쿠토와 같은 학교 출신이라 몇 번의 합숙을 통해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알고 있던 와시오까지 히나타에게로 다가와 고개를 저을 정도였으니…. 종종 친선 연습 경기를 진행했던 두 팀의 감독 또한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코트 정리를 선언했다.






“히나타, 물어볼 게 있는데.”

“앗, 스나 상! 어떤 건가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별 건 아니고, 혹시 뭐 따로 챙겨 먹는 거 있어…? 따지고 보면 너랑 나 5개월 차이밖에 안 나고, 나도 분명 체력 좋은 편에 속하는 선수인데 어째서 체력이 이렇게 다른 거야.”

스트레칭을 하던 히나타에게로 다가온 스나가 물었다.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제 옆의 사쿠사를 따라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꾸욱 꾹 몸을 누르고 있던 히나타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을 깜빡였다.

“앗, 저요? 저 그냥… 밥? 밥 잘 챙겨먹는 정도?”

“밥 잘 챙겨먹는 거라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친구가 있는데, 걔도 너만큼 체력이 좋진 않을 걸.”

“앗, 오사무 상 말씀이시죠? 오사무 상도 체력 좋으실 것 같은데. 애초에 장사 하는 건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거야 그렇지만, 히나타보다는 아니지 않을까. 말했잖아. 애초에 나도 체력 좋은 편에 속한다고.”






이번에는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바꾸어, 스트레칭 하는 사쿠사의 등을 꾸욱 꾸욱 눌러주기 시작한 히나타. 어느새 다가와 이 대화에 합류한 코모리 또한 궁금하다는 반응을 내비치자, 잠시 생각에 잠긴 그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자 아래에서 들려오는 사쿠사의 목소리가 있었다.






“집중해서 안 눌러? 동시에 하기 어려우면 가서 대화나 해. 나 혼자 해도 되니까.”

“아, 히나타. 사쿠사 자기한테 집중 안 해준다고 삐졌다.”

“그런 거 아니거든.”

“에이~ 아니긴 뭘. 사쿠사 너 전에도 히나타가 너랑 요가 하던 도중에 전화 받으러 나가선 한참 동안 안 돌아왔다고 투덜댔잖… 아, 알았어! 말 안 할게!”

“야, 너 가. 이미 다 말해놓곤 무슨.”

“오미 상… 그 때 저한테는 혼자 요가 하고 있었다고, 저 나갔다 온 거 신경도 안 썼다고 하셨으면서… 사실은 서운하셨던 거군요….”

“아냐. 누가 서운하대? 자의적인 해석 하지 마.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내가 왜 서운함을 느껴? 어이가 없네.”

“히나타, 알지? 사쿠사는 부끄러울수록 더 저렇게 말이 짧고 많아지는… 아, 알았어! 진짜 안 할게~”






사쿠사의 험악한 눈초리를 받은 코모리가 스나의 뒤로 물러서며 웃었다. 어쩐지 조금 붉어진 것 같은 사쿠사의 귀를 모르는 척해주기로 한 히나타는 손에 더 힘을 주어 지그시 등을 누르다가 불현듯 떠올랐다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저, 같은 방 룸메이트인 오미 상 따라서 영양제도 먹고 있어요. 이것 저것 종류가 꽤 많아요.”

“어떤 건데? 나도 마침 기존에 복용하던 게 떨어져서 새로 사려던 참이었거든.”

“음, 그게… 뭐였더라? 비타민이랑 오메가3랑 유산균 말고 또 있었는데… 무슨, 루, 루…….”

“루테인.”

“에, 눈 영양제잖아, 그건…?”

“그냥 히나타가 체력 괴물인 거야. 똑같은 영양제를 먹는 나를 봐. 일곱 번째 세트 때부터는 속에서 욕 나오던데.”






허리를 세워 앉은 사쿠사가 말했다. 이제는 반대로 사쿠사의 앞에 앉혀진 히나타가 눌리는 등을 앞으로 숙이며 엎드렸다.






“저 초등학생 때부터 동네 친구들이랑 야구나 축구하러 다니고, 고등학생 때는 매일 자전거 타고 산을 넘어 등하교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레 체력이 길러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운동 덕분이라고 하기엔, 우리 넷 다 프로 배구선수인 걸…?”

“어… 그러면… 역시 잘 모르겠는데…. 제가 체력이 그렇게 유별나게 좋은 건지도 모르겠고….”

“히나타 체력이 유별나게 좋은 게 아니라면, 우리 체력이 유별나게 거지인 걸까?”

“거지라니. 쇼요 군 앞에서는 고운 말 예쁜 말만 써라, 스나.”

“쟤 또 왔네.”

“우리 쇼요 군이 여 있는데 내가 당연히 와야제, 뭔 소리고.”






저지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다가온 아츠무가, 자신을 향하여 질린다는 표정을 하는 스나에게 말했다. 그리곤 히나타의 등을 누르고 있던 사쿠사를 밀어내더니 히나타의 등을 눌러주는 척 뒤에서 안으며 목소리를 이어갔다.






“우리 쇼요 군이 뭘 먹고 이렇게 체력이 좋은지 나는 알제~”

“어? 뭔데요? 저 뭐 특별한 거 먹었던가요…?”

“장담하건대, ‘분명 헛소리를 내뱉을 것이다’에 한 표.”

“두 표.”

“그럼 나도 한 표 넣을까~”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며 스나와 사쿠사, 코모리가 연이어 말했다. 세 사람이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아츠무는 히나타의 등에 이마를 대고 있던 얼굴을 들고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모르냐며 속상하다는 표정 연기는 덤이었다.






“뭐긴. 쇼요 군 진짜 모르나!”

“어어… 저 진짜 모르겠는데…?”

“내가 매일 같이 쇼요 군한테 내 애정을 듬뿍 먹이고 있다이가!”

“헛소리 수준이 아니라, 개수작이었네.”

“아츠무는 참, 질리지도 않고 열심히 주접을 떠는구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츠무의 행동에, 스나는 고개를 젓고 코모리는 재미있다며 웃었다. 스트레칭 파트너의 역할을 채 다 하지 못 한 사쿠사는 이미 자리를 뜬 지 오래였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너희 블자는 왜 히나타한테 유독 그렇게 무른 편이야?”






라커룸에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던 스나가 물었다. 별 생각 없이 MSBY 블랙자칼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 들어갔다가, 유독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히나타 관련 내용을 보고 떠오른 질문이었다.




스나가 말하는 ‘블자’가 자신들 MSBY 블랙자칼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았다. 스나의 옆에 앉아 있던 아츠무도, 손톱을 다듬고 있던 사쿠사도, 그리고 존댓말의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던 보쿠토 또한 말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스나의 질문을 이해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쿠사는 차치하더라도, 다른 두 사람, 보쿠토와 아츠무는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맞춰왔기 때문이었다.






“응? 우리가 물러? 히나타한테?”

“뭔 소리 하는 기가, 스나. 오늘 참 요상한 질문 많이 하네. 우리가 쇼요 군한테 언제 무르게 굴었다고.”

“에, 진심으로 하는 소리? 보쿠토 상도요?”

“응? 응! 딱히 히나타한테만 그렇게 행동한 적은 없는데?”

“…사쿠사, 설마 너도 그렇게 생각해?”

“…….”

“…….”

“딱히… 의식하고 특별 취급한 적은 없어.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사쿠사가 대답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양심이 남아있는 그의 말에도, 스나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스나의 맞은편에서 보호대를 풀고 있던 코모리가 말했다.






“왜~ 히나타 귀엽잖아. 다른 학교 후배였고 지금도 다른 팀이지만, 나는 볼 때마다 히나타 같은 동생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들던데.”

“코모리가 뭘 쫌 아네.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아니, 나도 히나타가 뭐 어떻다거나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니거든. 다만, 같은 성인 남성이고 동일한 동료 배구 선수인데, 가끔 보면 조금 심하게 아이 취급을 하는 것 같달까. 그렇다고 히나타가 다른 사람의 애정이나 관심을 갈구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편도 아니잖아.”

“쇼요 군은 안 그러지. 혼자서도 스스로 척척척 잘 하는 아다.”

“오히려 히나타의 애정이나 관심을 갈구하는 건 아츠무 쪽 아냐?”

“방금 한 말 취소. 코모리 니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내는 쇼요 군의 애정을 갈구하는 게 아니다.”

“그럼?”

“쇼요 군 자체를 원하는 거다.”

“이것 봐. 저런 주접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 안 들어? 아이돌 팬인 내 동생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던데.”

“쇼요 군이 아이돌은 아니지만 비슷한 존재인 건 맞제. 우리 블자가 낳은 최고의 아이돌.”

“츠무츠무, 방금 그 발언은 좀 사이비 교주 같았어…. 그리고 히나타를 우리가 낳진 않았잖아…?”

“열심히 배구 선수 하고 있는 애를 갑자기 아이돌 만드네.”

“맞아! 히나타의 배구 열정을 얕보지 마, 츠무츠무!”

“아, 그런 뜻이 아니고! 쇼요 군이 우리 팬들 사이에서도 아이돌 비스무리한 존재는 맞다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지적에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인 아츠무였다. 스나 또한 옆에서 휴대폰 화면을 내밀며 말했다.






“히나타가 아이돌이라는 아츠무의 의견과는 다른 맥락의 발언이라는 걸 미리 말해두고 싶은데. …솔직히 나도 가끔 그 생각 하긴 했거든. 여기 블자 인스타그램 계정만 해도 봐. 어느 배구팀이 소속 선수의 일상 사진을 이렇게까지 올려? 뭐, 팬클럽 계정이면 몰라도.”

“쇼요 군 팬들 계정은 따로 있다. 가장 유명한 건 ‘Orange Wings’랑 ‘쇼요바라기’라고, 전에 쇼요 군 생일카페도 진행한 곳이다. 특히 ‘쇼요바라기’는 홈마가 매번 우리 경기도 보러와가 쇼요 군 직찍을 억수로 잘 찍어 올린다.”

“아, 거기 유명하지~ 사진들 다 예쁘더라.”

“코모리는 어떻게 아는데?”

“나 전에 히나타랑 사쿠사랑 셋이 히나타 전시회 다녀왔… ……어? 이것도 비밀이었던 거야?”

“하아….”

“뭐야, 오미오미! 우리한테는 그런 데 안 간다면서 우리끼리 다녀오라며! 히나타도 데리고 다녀온 거야? 치사해!”

“내가 코모리랑 오전에 만났던 날 오후에, 히나타랑 코모리 둘이 전시회 다녀온다길래 뭔가 하고 따라갔던 것뿐이야. 그게 히나타 전시회라는 건 뒤늦게 알았고. 미리 알았으면 내가 갔을 것 같아? 그 사람 많은 데를?”

“엉. 사람 없는 시간대 골라서 다녀왔을 것 같은데.”

“이미 다녀왔잖아!”

“알았으면 안 갔을 거라고 하는 사람치곤, 그 때 받은 전프레들 다 안 구겨지게 가방에 조심조심 집어넣어서 가지고 가지 않았…… 아, 알았어~ 이것도 비밀이었구나. 미안!”

“오미오미는 비밀이 많은 남자네.”

“정작 지켜지는 건 별로 없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우리 계정에 쇼요 군 사진이 많은 건 그거다, 그거. 좋은 걸 같이 나눠보고 싶은 마음!”

“츠무츠무는 히나타 사진 찍으면 혼자 독점하려고 하잖아? 절대 공유 안 해주면서?”

“자기 보물까지 나눠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데.”

“너 어디 주접 학원 다녀? 골 때리네.”






스나가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거라 판단했는지,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빠져나오며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코모리가 궁금한 게 있었다며 새로운 질문을 건네었다.






“나도 궁금한 게 있었는데~ 블자 팬들이 경기 때마다 들고 오는 슬로건 문구 있잖아. 그거, 히나타 개인 슬로건인 거지?”

“뭐 말하는 기가. 쇼요 군은 개인 응원 슬로건이 많은 편이라가…. ‘오렌지빛 태양의 눈부신 도약’, ‘히나타만을 바라보는 쇼요바라기’, ‘한여름에 피어난 오렌지색 희망’, 또…….”

“아니, 그것들 말고 영어로 된 거였는데.”

“‘ALL WAYS SMILE ALWAYS SHOYO'? 아니면 ’FLY HIGH FLY HINATA'?”

“여기 진짜 무슨 아이돌 팬 집단이야?”






턱을 괸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나가 혀를 내둘렀다. 본인의 생각보다 많은 슬로건의 종류에 눈을 깜빡이던 코모리 또한 조금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으응, 그것도 아닌데. 내가 말한 건 그거였어. 블자 약칭이랑 비슷한 건데 끝에 ‘s’ 하나 더 붙은 거. 문구는 블랙자칼 문구 같은데 늘 보면 히나타를 닮은 오렌지색 슬로건만 보이더라고?”

“아아아, ‘MSBY BJs' 말하는 거였나. 그건 쇼요 군 개인 슬로건이기는 한데, 완전 개인 팬은 아니고 블랙자칼 전체를 올라운더로 파면서도 그 중 최애가 쇼요 군인 팬 계정에서 만든 거다.”

“어어, 그래? 그게 무슨 뜻인데?”

“MSBY BJs. 맨 앞 영문자부터 차례대로, ‘막둥이 쇼요는 블자랑 영원히 배구해 제발’이라던데. 마지막 소문자 ‘s'는 쇼요 군의 이름 이니셜을 의미하기도 하고, 누구는 우리들 중 가장 작은 쇼요 군이 마지막에 합류한 것처럼 끝에 쪼그만 's'를 붙인 거라고 하데?”

“‘사랑해’라는 의미라고 하는 팬 분도 봤어! 전에 경기 때 플랜카드 만들어 오셨던 분!”






보쿠토의 말을 들은 아츠무가 기억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도 슬로건을 갖고 있다며 제 라커를 열어 직접 보여주었다. 단순히 갖고 있기만 한 것도 아니고 투명한 비닐에 넣어둔 채 보관하고 있던 그것을 펼치자, 오렌지색과 붉은색이 조화로이 섞인 슬로건의 앞면이 보였다.






M 막둥이 S 쇼요는 B 블자랑 Y 영원히

B 배구해 J 제발 s 쇼요♥






“아, 참고로 뒷면은 쇼요 군 얼굴이다. 귀엽제?”






뒷면까지 알뜰하게 보여준 아츠무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의 자식을 소개하는 것 같은 그 표정에 스나가 눈을 감았다.




얼룩이라도 묻으면 큰일난다며 곧바로 슬로건을 비닐에 집어넣은 아츠무가 라커 가장 안쪽에 슬로건을 다시 넣어두곤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코모리는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팀의 이누나키 상도 히나타를 막둥이라고 부르시는 것 같던데.”

“어엉, 맞다. 쇼요 군 별명 중 막둥이라는 게 애초에 이누 상이 쇼요 군을 그렇게 불러서 생겨난 거다. 쇼요 군이 입단한 후에 처음 진행했던 팬미팅에서 이누 상이 그렇게 불렀었는데, 그게 계속 퍼지다 보니 지금은 뭐… 공식전에서 캐스터들도 가끔 얘기한다이가. 히나타 선수는 또 다른 별명이 막둥이 선수라고.”

“이누 상도 그래서 별명 생겼어! ‘히나타맘’이래!”

“맞다. 이누 상이 하도 쇼요 군 애껴서 생긴 별명이란다.”

“아깐 히나타한테 안 무르다며.”

“무른 건 아니제. 우리가 진짜 쇼요 군한테 물렀으면 오늘 시합 두 세트는 더 하고 끝났을 거다.”

“이미 아홉 세트나 했다는 점에서 ‘정말로 무른 게 아니라고?’ 싶기는 한데… 뭐, 그래.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뭘 더 말하겠어.”

“무른 건 아니다, 진짜로. 이누 상도 ‘히나타맘’이라 불리지만 원래 성격은 객관적이고 현실적이고 공과 사 구분 확실한 편이다. 그런데 무른 건 아니어도 애끼는 건 맞다. 쇼요 군 안 애끼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그래도 우리 중에서 가장 별명 많은 것도 히나타일 걸! 최강의 미끼 말고도 많아!”

“진짜요? 뭐가 있는데요?”

“여 오기 전에 브라질에서 비치발리볼 하면서 생긴 ‘닌자 쇼요’도 있고. 그것 외에 팬들이 붙여준 건….”

“팬들이 붙여준 건?”

“태양이, 햇살이, 오렌지, 귤, 미소천사, 배구 요정, 하이파이브 요정, 강아지, 병아리, 날다람쥐, 아기 까마귀, 주장의 효자손, 이누나키의 아들, 토마스와 친구, 보쿠토의 허그 담당, 아츠무의 스파이커, 아츠무 조련사, 아츠무의 애착인형, 사쿠사의 약점, 배구 집착남 등….”

“…도대체 히나타가 왜 내 약점이라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그 이유, 나는 알 것 같은데, 사쿠사가 또 노려볼 것 같으니까 비밀로 할게~”

“배구랑 관련된 건 두 개밖에 없잖아. 게다가 그 중 하나는 ‘배구 요정’이고…. 아니, 애초에 아츠무 넌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히나타의 별명 리스트에서 그렇게 지분을 차지한 거야?”

“흐흥, 별명의 개수는 곧 쇼요 군과 주고받는 애정에 비례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짓말! 그러면 나도 더 많아야 하는데?! 아츠무는 역시 ‘구라츠무’야…!”

“아, 내 구라츠무 안 할 거라고! 내는 ‘쇼요 군의 세터’나 ‘쇼요 군 껌딱지’라는 별명이 더 맘에 든다!”

“아니! 츠무츠무는 구라츠무야, 그것도 완전 심한 구라츠무!”

“완전 심한 구라츠무는 뭔데!? 그런 봇 군이야말로 바봇 군이다, 바봇 군!!”

“구라츠무보단 바봇 군이 더 낫지 않아? 히나타도 그랬어! ‘바봇 군’ 쪽 어감이 더 귀엽다고!”

“거, 거짓말…! 쇼요 군이 그랬다니, 봇 군이야말로 바봇 군에 거짓말쟁이 구라봇 군이다!!”

“참… 블랙자칼은 정말 언제 봐도 사이가 좋아.”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02. MSBY 블랙자칼 깜짝 카메라! "식단 관리 중인 히나타가 간식을 먹고 있다...?!" 팀원들의 반응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하겠다는 히나타 쇼요 선수,

그런 그가 드물게 힘든 기색을 감추지 못 하는 것이 있는데…….

 

과연, 식단 관리 기간에 간식을 먹고 싶어 하는 히나타 선수를

MSBY 블랙자칼 동료들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CASE 01. 메이안 슈고

 

04. 메이안 슈고 (29)

- 주장, 미들 블로커 / 196.8cm

- 별명: 블랙자칼의 아버지, 젊은 주장, 건강식품 매니아

- 팬클럽 대표 슬로건: 메이안 상 집에 홍삼즙 좀 놔드려야겠어요

 

 

 



“히나타. 잠시 들어가도 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때마침 룸메이트인 사쿠사는 씻고 있던 상황. 혼자 방 안에 있던 히나타가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며 이불 속에 숨겨놨던 초콜릿과 과자들을 꺼내었다. 그리곤 크게 외치는 한 마디.






“네, 네!? 어어, 잠시만요?!”






누가 봐도 연기 톤이라고 생각될 어색한 목소리. 누구를 작정하고 속여 본 일이 없는 히나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히나타의 말을 듣고는 알겠다며 문 앞에 서서 기다리는 메이안.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바로 문을 여시고 이 간식거리들을 보셔야 하는데…. 처음이라 더욱 당황한 히나타의 표정이 난처함에 물들었다.






“처음부터 메이안 상이시라니, 내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 차라리 보쿠토 상이었다면 노크도 없이 곧바로 들어오셔서 딱 들키기 좋았을 텐데….”






보쿠토가 들으면 “으응?”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말을 되뇐 히나타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초콜릿과 과자를 끌어모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바닥 위로 엎어지는 히나타.




쿠당탕탕―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나자, 문 밖에 서 있을 메이안의 걱정과 놀람을 담은 음성이 곧바로 들려왔다.






“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히나타? 무슨 일이야? 큰 소리가 났는데…. 문 열어도 괜찮아?”






정말, 우리 주장은 올바르고 매너 있으시다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냥 들어오셔도 되는데…! 고의로 넘어지는 소리를 낸 이후에도 열릴 생각이 없는 문을 보며 히나타가 ‘허엉’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다시금 내뱉는 어색한 연기톤.






“아, 아야야야, 아야야야야…! 아아, 아프다! 갑자기 메이안 상이 오셔서 깜짝 놀라는 바람에 내가 내 발에 걸려 넘어져버리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아야야…!”






바닥에 잔뜩 흩뿌려놓은 간식 봉지 위에서 일부러 팔다리를 더 움직여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마 영상이 올라가면 메이안보다 히나타의 발연기와 이런 행동들이 더 조명을 받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히나타의 간절함이 닿았던 것일까? 아니면 왜 저런 어색한 말을 하나 의아했던 것일까. 방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먼저 문을 열 것 같지 않았던 메이안이 한 번 더 노크르 하고 히나타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 있냐며 문을 열겠다는 그 말이, 드디어 해냈다고 수고했다고 보내주는 성공의 신호인 것처럼 느껴져 그저 기쁜 히나타였다.






“히나타. 왜 그래? 무슨 일 있… ……히나타, 너….”

“아앗, 메이안 상! 갑자기 들어오실 줄은 전혀 몰랐는데! 어어, 이건 제가 식단 관리 기간을 참지 못 해 몰래 먹으려고 숨겨둔 초콜릿이나 과자가 절대 아니라요…!”






이러다간 깜짝 카메라의 취지까지 다 설명해버리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사족이 붙은 히나타가 말했다. 누가 봐도 수상한 그 목소리와 표정을 보면 깜짝 카메라라는 사실까지는 몰라도, 눈앞의 히나타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유추할 수 있을 터.




그러나 메이안은 초콜릿과 과자 사이에 넘어져있는 히나타를 보며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은 모양이었는지, 문을 닫고 히나타에게로 다가가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CASE 02. 이누나키 시온

 

06. 이누나키 시온 (26)

- 리베로 / 174cm

- 별명: 이누 상, 히나타맘, 부드러운 카리스마, 보.아.목.남.

- 팬클럽 대표 슬로건: 이누 상 밑으로 다 목줄 들고 집합!

 



 

 

MSBY 블랙자칼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담당하고 있는 이누나키 시온. 코트 위에서는 떨어지는 배구공을 이으며 동료들을 서포트하고, 코트 밖에서는 주장인 메이안 슈고를 서포트하며 팀원들을 챙기며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알리게 된 계기였다.



그런 이누나키의 또 다른 별명인 ‘보.아.목.남.’은 ‘보쿠토와 아츠무의 목줄을 쥔 남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남자 배구계에 한 획을 그었고 실시간으로 그 획을 연장해가고 있는, 이른바 ‘요괴세대’. 블랙자칼의 보쿠토와 아츠무, 사쿠사, 그리고 히나타가 그 요괴세대에 속하는 선수들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한 데 묶어 ‘블랙자칼 요괴즈’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들 중 사쿠사와 히나타는 흔히 ‘막내라인’ 혹은 ‘막내즈’라고 엮이기도 하였지만, 지금 그 이야기는 논점이 아니니 넘기기로 하자.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누나키가 ‘보.아.목.남.’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관해서였다.




한 번 텐션이 오르거나 혹은 반대로 텐션이 낮아질 경우 유독 다루기 힘든 두 사람, 보쿠토와 아츠무. 그런 두 사람을 잘 통제하고 때로는 훈육하듯 대화의 시간을 갖기까지 하는 것이 바로 이누나키였다. 이따금씩은 주장보다 이누나키에게 더욱 깨갱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팬들이 이누나키에게 ‘보쿠토와 아츠무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누나키는 무섭고 엄격한 선배일까. 어느 날 EJP 라이진의 호기심대마왕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보쿠토는 곧바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누 상이 왜 무서워? 이누 상 좋은 사람인데! 물론 가끔은 흠칫 하기는 해…!”라는 답변을 내놓았었다.




무섭진 않은데 흠칫 하게 만든다는 건 결국 무서운 선배가 맞다는 게 아닐까 했지만, 보쿠토 본인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였고, 두 사람을 비롯한 블랙자칼 내에서 사이가 안 좋거나 엄한 군기를 잡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이누나키는 무서운 선배가 아닌 것이 맞을 터였다.




그러나 그 옆의 아츠무는 질문을 받은 순간부터 눈치를 보며 드물게 말을 늘여가며 이어갔었다. 대화 속의 당사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더듬더듬 말을 잇는 걸 보니, 정말 목줄을 잡혀 그 주인 앞에서만 유독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길들여진 맹수 같기도 했다.






“어… 으음… 글쎄…. 무서운 선배는 아니지만 엄격한 부분이 없다고는 못 하제…. 키타 상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다가 내를 스스로 단속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해야 하나…. 키타 상보다는 훨씬 더 장난도 자주 치고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한 느낌이기는 한데… 쾌남의 정석인 주장과 부드럽지만 장난이 잦은 토마스를 적절히 섞은 느낌…이랄지…. 그런데 왜 두 사람을 섞었는데 그렇게 내를 덜덜 떨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내한테 이런 질문하지 마라!”






끝에 가서는 목소리를 높이며 고개를 젓는 아츠무의 모습에, 질문을 던진 이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코트 안팎에서 아츠무를 다루는 이누나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왜 아츠무가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이유를 깨달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었다.





이처럼, 이누나키 시온이라는 선수는 여러 모로 블랙자칼에 꼭 필요한 인재였다. 물론 여기에 필요치 않은 선수가 있겠냐마는. 개인적으로 따로 생활 중인 오리번 번즈를 제외하고는 모두 함께 숙소에 거주하고 있는 팀원들을 관리하기에 있어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을 한 명만 꼽자면 역시 이누나키일 것이라고, 메이안은 늘 생각했다. 그만큼 이누나키 시온은 그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팀을 서포트하는 데에 출중한 선수였다. 기본적으로 늘 객관적인 팩트에 근거하며, 때로는 엄격하게 개개인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또 때로는 부드럽게 타이를 줄 아는 이누나키 시온.





하지만 그런 그도, 누군가의 앞에서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면모를 잊은 채 한없이 부드러워질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이.






“히나타~ 지금 뭐해? ……어?”

“앗…… 이, 이누나키 상….”






히나타는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그를 제외한 모두는 거실에서 ‘블랙자칼에 먼저 입단한 아츠무가 선배인가, 아니면 고등학교 때부터 한 학년 위였던 보쿠토가 선배인가’ 하는 논제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그 토론에 참여한 일도 참여할 마음도 결코 없어 보이는 사쿠사는 오늘도 샤워를 하고 있었다. 룸메이트인 사쿠사가 샤워를 하는 시간 정도야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당분간은 제 방 쪽으로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주 잠시 방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다음 깜짝 카메라 구상을 위해 초콜릿을 꺼낸 것이 화근이었다.






“히나타, 너 그 뒤에 숨긴 거… 초콜릿 맞지…?”

“아, 그, 그게…!”






첫 번째 깜짝 카메라의 대상이었던 메이안 때는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은 듯해 아쉬움을 가졌던 히나타. 다음 두 번째 때는 조금 더 확실하게 계획을 세워 상황을 만들어보려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마주칠 줄이야. 이번에는 연기가 아닌 진짜 놀란 반응이었기에, 진심으로 당황한 히나타가 저도 모르게 등 뒤로 숨긴 초콜릿을 가려가며 말을 더듬었다.




어차피 깜짝 카메라 때문에 준비한 초콜릿일 뿐이었는데! 먹을 생각은 하나도 없었는데! 나는 왜 진짜로 놀라서 숨긴 거지?






“히나타… 너 지금 사쿠사랑 같이 식단 관리 기간 아니었어?”

“그…… 맞아요…. 식단 관리 중이기는 한데… 그냥, 아주 잠시 할 일이 있어서 잠깐 보기만 하려고….”






진심으로 놀랐던 까닭인지, 순식간에 진심으로 상황에 몰입한 히나타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만약 그 표정과 행동이 연기라면, 올해의 신인연기자상은 히나타 쇼요가 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션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던 이누나키는 말이 없었다. 꽤 오랜 침묵이 끝나고 이누나키의 입이 다시 열렸을 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깊은 한숨이었다.






“하아……. 히나타, 너….”






…아니다. 잠시만 나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한숨을 쉬었던 이누나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방을 빠져나갔다. 문까지 굳게 닫고 나가는 그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결의에, 히나타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CASE 03. 아드리아 토마스

 

09. 아드리아 토마스 (27)

- 미들 블로커 / 201.3cm

- 별명: 나이스 토마스, 당근 매니아, 걸어 다니는 영화관

- 팬클럽 대표 슬로건: 토마스 나이스! 끝나고 당근 하러 가자♡

 

 




 

“히나타. 나 당근 하러 나갈 건데 같이 갈래? 이따 저녁에 같이 영화 보면서 먹을 팝콘 사러 마트도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하려 했는데, Uh-oh…. 내가 보면 안 될 장면을 봐 버린 건가?”

“아, 토마스 상. 그게….”






이번에는 작정하고 문을 열어둔 채 초콜릿을 꺼냈던 히나타가 도르르 눈을 굴렸다. 그래도 나름 세 번째라고, 어색함이 많이 줄어 있는 표정이었다.




때마침 숙소에는 토마스와 히나타 두 사람뿐. 당근 거래 매니아인 토마스가 오늘 오후에 당근을 하러 나갈 거란 사실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오늘 저녁에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하였으니 영화를 볼 때마다 팝콘을 먹는 토마스는 돌아오는 길에 팝콘도 사 올 터. 팝콘을 살 때마다 들르는 마트에는 히나타가 좋아하는 섬유유연제 테스터를 비치해 둔 구역이 있었고, 히나타는 그곳에 갈 때마다 한참을 서서 향을 맡곤 했었다. 도심 속 힐링 테라피라며.




그런 히나타를 토마스는 잘 알고 있었고, 또, 토마스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히나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외출을 권유해 올 것이라는 것까지도. 즉, 처음부터 토마스는 오늘 히나타의 목표물이었고, 보기 좋게 걸려든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나 이제 깜짝 카메라의 달인 같은데? 완벽한 계획이었어! 속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던 히나타가, 겉으로는 여전히 난감하다는 표정을 한 채 과자 봉지를 쥐고 있었다.






“놀랐나 보네. 그러면 나 그거 할까? ‘맨 인 블랙’의 기억제거?”

“어… 못 본 척해주신다는 걸까요?”

“응. 히나타가 그걸 원한다면?”

“앗, 제가 그걸 원한다는 건 아니고요…! 그렇다기보단… 으음, 토마스 상이 하고 싶으신 대로 행동하셔도 괜찮은데….”

“Umm… 그래?”






히나타의 이야기를 들은 토마스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토마스는 웃으며 말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CASE 04. 사쿠사 키요오미

 

15. 사쿠사 키요오미 (22)

- 레프트 / 192.3cm

- 별명: 오미, 오미오미, 블자 마스크남, 까칠도도 왕자님, 하이파이브 알레르기, 손소독제 기업 최대 주주

- 팬클럽 대표 슬로건: 퇴근길 마스크 한 번만 내려주면 안 되겠니? 나도 내 선수 얼굴 보고 기절하고 싶다

 

 

 



“너, 이거 다 뭐야.”

“…….”





예기치 못 한 상황이었다. 룸메이트이면서도 서로의 개인 공간은 절대 침범하는 일이 없던 사쿠사가, 히나타가 침대 아래에 숨겨둔 과자를 먼저 발견하고 물은 것은.




히나타와 마찬가지로 식단 관리 기간 중에 있던 유일한 사람인 사쿠사. 그는 히나타처럼 군것질을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원래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사쿠사 또한 식단 관리 기간 중에는 생전 안 먹던 초콜릿이나 과자에 눈길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히나타였다. 그렇기에 사쿠사의 앞에서 간식을 보이는 행동은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여, 가장 공을 들여 깜짝 카메라의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었던 건데…. 어째서 자신이 지금 사쿠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치를 보고 있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이걸 오미 상이 어떻게…. 저 분명히 침대 아래에 넣어 뒀었는데….”

“그래. 네가 나 몰래 자꾸 침대 아래에 뭔가를 숨기는 것 같길래 봤다. 왜, 그러면 안 돼?”

“오미 상, 전에 저랑 룸메 되자마자 그러지 않으셨어요? 같은 방을 쓰곤 있지만 서로의 개인 공간에 대해서 관심 가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






히나타의 발언에 사쿠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인상을 찌푸린 그는 팔짱을 끼고 있던 자세를 풀지 않고 그대로 서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히려 뻔뻔한 태도로.






“그래서, 내가 네 침대 아래 본 게 그렇게 기분이 나빠? 네가 먼저 티 나게 뭔가를 숨겼잖아. 아예 내가 모르게 잘 숨기던가 했어야지. 왜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서 자꾸 신경 쓰이게 해?”

“아니, 기분이 나쁘단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였어요! 오미 상이 이 아래를 볼 줄은 몰랐으니까….”

“나도 네가 겨울잠 자기 직전의 햄스터마냥 차곡차곡 식량을 쌓아두고 있을 줄은 몰랐네. 그것도 침대 아래에. 식단 관리 중에. 설마 이 과자들 중, 뜯어서 먹다가 대충 봉해서 넣어둔 건 없겠지.”

“설마요! 절대, 절대 안 그랬어요! 오미 상 벌레 극도로 싫어하는 거 다 아는데 벌레 생기면 어쩌려고 그런…! 애초에 저, 정말 모아놓기만 했지, 단 한 번도 뜯어서 먹은 적은 없어요. 정말이에요!”

“그 말, 확실해?”

“정말요! 확실해요!”

“네 발언에 책임질 수 있어?”

“당연하죠! 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책임질 일도 없는! 앗, 이건 책임을 질 마음이 없단 뜻이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일도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






정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젓는 히나타. 그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던 사쿠사가 다시 미간을 좁혔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CASE 05&06. 보쿠토 코타로 & 미야 아츠무

 

12. 보쿠토 코타로 (24)

- 레프트 / 190.3cm

- 별명: 헤이 헤이 헤이, 보쿠토빔, 평범한 에이스, 가슴 리시브 장인, 바봇 군

- 팬클럽 대표 슬로건: HEY! HEY! HEY! BOKUTO BEAM!!

 

 

13. 미야 아츠무 (23)

- 세터 / 187.7cm

- 별명: 천상천하 유아독존, 미남 세터, 쇼요 군 껌딱지, 블랙자칼 팬 감사제 말실수 걔

- 팬클럽 대표 슬로건: 우리 애가 유아독존인 것에 불만이라도?

 

 




“이제 두 분만 남았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마지막은 토마스 상이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다행이지….”






어느새 보쿠토와 아츠무, 두 명의 깜짝 카메라 촬영만을 남겨둔 시점. 히나타는 이미 이 깜짝 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는 토마스로부터 작은 도움을 받기로 했다. 바로, 두 사람을 옥상으로 올라올 수 있게끔 유인하는 것.




지금까지는 모두 히나타의 방 안에서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생각지 못 하게 먼저 상황을 맞닥뜨린 사쿠사의 존재로 인해, 더 이상 똑같은 행동을 방 안에서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날씨 좋은 낮, 미리 옥상으로 올라와 혼자만의 피크닉을 온 것처럼 간식을 늘어놓고 앉아있던 히나타.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의 반응을 예상해보는 것도 이제는 작은 재미로 즐길 수 있는 단계가 된 그가,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중얼거렸다.






“보쿠토 상은 음…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하지 않으시려나? 보쿠토 상도 평소 관리하실 때 너무 먹고 싶으면 그냥 드시고 나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하시는 편이셨으니까. 아마 그러시겠지? 그리고 츠무 상은…. …츠무 상도 역시 먹으라고 하실 것 같지? 어쩌면 이누나키 상처럼 더 갖다 주실 수도….”






혼자만의 추리를 이어간 히나타가 촬영을 위해 들고 온 인형의 위치를 조정했다. 잘 찍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마지막 깜짝 촬영의 주인공 둘을 기다리던 찰나, 옥상 문 쪽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옥상을 올라오는 짧은 순간에도 시끌벅적한 두 사람의 등장에 살풋 웃던 히나타가, 재빨리 웃음을 지워내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펼치는 연기.






“어, 어어… 두, 두 분이 왜 여기에….”

“어? 히나타? 여기에서 혼자 뭐해?”

“쇼요 군, 혼자 광합성 하고 있었나. 내 불러서 같이 앉아 있지, 왜 여서 혼자 그러고 있…… …….”

“응? 히나타, 그거 뭐야? 과자야? 히나타 지금 식단 관리 기간 아니었어?”

“어, 과자 맞는데… 식단 관리 중도 맞고… 그게…….”






처음과 비교하면 제법 술술 나오는 연기에 히나타가 스스로 감탄했다. 그런 히나타에게 다가온 보쿠토가 그 주위에 펼쳐진 과자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히나타, 이거 먹고 있었어?”

“아뇨! 먹은 건 아니고… 먹고 싶어서…….”

“그래서 혼자 여기 올라와서 앉아 있었구나.”

“…네…. 정말 너무 먹고 싶어서 그만….”

“음………… 그럴 수 있지…!! 나도 식단 관리 할 때마다 못 참고 먹은 적 많은 걸! 히나타는 아직 안 먹었다고 했으니까 끝까지 참은 거잖아? 잘 했어! 그렇지만 그렇게 먹고 싶으면 하나 정도는 먹어도 되지 않아? 대신 이따가 밤에 더 운동하면 되고!”

“그, 그럴까요…?”

“응! 지금 나랑 같이 하나 까서 먹고, 밤에 뛰고 오자!”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보쿠토의 반응에, 히나타가 피어오르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계속 연기를 이어나갔다.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은 아츠무가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옥상에 들어와 히나타에게로 다가오던 도중 과자를 딱 발견한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달리 아무런 반응 없는 그 모습을 보며, 히나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닌 진짜 반응.






“츠무 상…?”

“……쇼요 군. 과자가 그리 먹고 싶었나. 이 옥상에 혼자 올라와 바라보고 있을 만큼….”

“어… 네…. 정말 열심히 참았는데 계속 참기가 힘들어서….”

“……맞나. 뭐… 그럴 수 있제. 그래, 봇 군 말대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03. 제1 차 부엌대첩 발발! 블랙자칼 요괴즈 4인방의 우당탕퉁탕 요리 시간!






조각조각 형태를 알 수 없도록 쪼개져 바닥을 나뒹구는 빵. 벽 곳곳에 묻어있는 새빨간 딸기 시럽과 그 옆에 진득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노오란 달걀물. 온 바닥을 구르고 있는 동그란 미니 초콜릿과 현관 바로 옆 신발장 앞에서 눈을 감지도 못 하고 죽어있는 생선까지….




난장판이 된 MSBY 블랙자칼의 숙소는 어떤 의도에서 붙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실 벽을 장식한 ‘WHY'라는 파티 풍선과 딱 맞는, 그야말로 왜 발생했나 싶은 상황이었다. 꽤 오래 숙소의 부엌을 지키고 있던 테이블이 반으로 동강난 채 무너져있는 모습처럼, 그야말로 처참했다.




그 한복판에서 쪼르르 무릎을 꿇고 앉은 네 사람은 밀가루인지 부침가루인지 모를 새하얀 분말을 뒤집어 쓴 채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넷의 앞에서 잔뜩 뿔이 난 채 팔짱을 끼고 선 메이안과, 그 옆에서 한숨을 쉬는 이누나키. 그리고 분위기를 살피며 어깨를 으쓱하는 토마스까지… 그 어느 누구 하나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역시 주장, 메이안이었다.






“…그래. 어디, 불과 몇 시간 숙소를 비웠을 뿐인데 왜 이 꼴이 난 건지 한 명씩 말해볼까.”






메이안의 가라앉은 음성에 저항 없이 흠칫한 네 사람. 그 중 가장 왼쪽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이부터 차례대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는… 분명히 잘못은 했지만, 저 둘이 먼저 자극했습니더. 내는 오늘 종일 몰이당했는데…!” 두 손 가득 찐득한 밀가루와 각종 시럽이 덕지덕지 묻은 아츠무의 말이었고,

“츠무츠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생선을 던졌어! 나는 생선은 안 던졌는데…!!” 온몸에 생선 비늘이 묻어 있는 보쿠토의 항변이었으며,

“…저는 억울하네요. 맞는 말밖에 안 했는데. 그리고 제가 화가 난다고 누구처럼 음식을 집어던질 비상식적인 인간으로 보이나요? 저는 애초에 이 상황에 끼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새하얀 가루를 뒤집어 쓴 사쿠사의 호소였다.






마지막으로 세 쌍의 눈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지금의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반성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는 히나타에게로.






“죄송해요…. 이러려고 준비한 게 아니었는데…. 제가 처음부터 중간에서 잘 조정하고 끝까지 한 눈 팔지 말 걸, 정말 죄송해요….”

“하아…. 아니, 너희는… ……됐다. 됐고….”






히나타, 일어나―. 네 사람 각자의 짧은 이야기를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던 메이안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갑작스레 불린 제 이름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던 히나타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을 꿇고 있느라 다리가 저렸던 건지 잠시 휘청거리던 자세를 바로세운 그가 메이안의 눈치를 살폈다. 메이안은 그런 히나타를 보다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사람 다 잘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가 특별하게 잘못을 했다고 꼬집어 나무랄 생각도 없다. 하지만… 20대 성인 남성 넷이 지키고 있던 숙소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이 지경이 된 이유는 알아야겠네.”

“그건 저 둘이…!”

“츠무츠무가…!”

“둘 다 조용히 하고. 지금 내가 봐서는 가장 상황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건 히나타 한 명 같거든.”

“저는 진짜 억울한데요.”

“사쿠사. 너 지금 저 두 명과 같은 수준의 행동을 하는 건 자각하고 있지? 네가 평소에 가장 엮이고 싶지 않아 하던 식의 행동들로.”






반성 없이 억울함만 호소하던 사쿠사가 그 말을 듣자마자 인상을 팍 썼다. 하지만 차마 부정할 수 없다는 건 알았는지, 동시에 끄덕여지는 고개가 있었다. 그 뒤로 따라붙은 깊은 한숨은 숨기지 못 한 채.






“아무튼. 그러니까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은 히나타한테 먼저 듣도록 하겠어. 나머지 셋의 이야기도 물론 들을 거지만, 일단 전체적인 상황 파악은 히나타의 말부터 듣고 할 거다. 불만 있는 사람 있어?”

“없습니더….”

“없어!”

“……저도요.”

“좋아. 그러면 히나타, 얘기해 봐. 왜 이 상황이 벌어진 건지, 네가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우리한테 상세히 말해 봐.”

“제, 제가요?”

“혼내는 거 아니고 상황 파악을 위한 거니까, 그냥 편하게 다 얘기해.”

“맞아. 어차피 넷 다 충분히 혼난 후에 너희들끼리 숙소 청소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거든. 그래도 누가 어느 정도의 지분이 있는지는 알아야, 청소 구역을 공평하게 나눠주지.”

“나 아직도 발바닥 아래에서 생선 smell 나는 것 같아…. 저 생선은 왜 저기에 있던 건지, 왜 내가 저 생선을 밟아야만 했던 건지 제대로 설명해 줘, 히나타. 나 진짜 저기 있는 풍선처럼 이유를 모르겠어. Why?"

“저건 원래 ‘WHY’가 아니라… ‘ALWAYS THANK YOU’이기는 했는데요….”

“어떻게 하면 그 긴 글자가 저렇게 짧아질 수 있는 거야?”

“그게… 사실 저도 끝에는 옥상에 가 있어서 자세한 상황은 몰라가지고…. 저도 세 분이 들어오기 직전에 맞닥뜨린 상황이라, 저보다는 오미 상한테 물어보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메이안에 이어서, 이누나키와 토마스까지 대답을 요구하자, 히나타가 난감하다는 듯 눈을 도르르 굴리며 말했다.






“왜 오미 군이가. 내가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츠무츠무는 안 돼! 아까 완전 눈이 돌아 있었어! 차라리 내가 설명할게!”

“좋아. 사쿠사, 일어서.”






메이안의 말에 이번에는 사쿠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설명해보라는 목소리를 들은 그가 입을 열었다.






“W랑 H랑 Y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터져버렸어요.”

“아니,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 아니지, 그것도 맞기는 한데. 그러니까 왜 저게 그렇게 터졌고,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봐.”






사쿠사의 앞에 서 있는 셋과 옆에 서 있는 하나, 그리고 앉아 있는 둘까지. 총 여섯 명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고, 그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쓰던 사쿠사는 결국 서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오늘 아침으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렇게, MSBY 블랙자칼 숙소 내 ‘제1 차 부엌대첩’ 발발 과정의 역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 동태만 부칠 거 아니었나. 왜… 온갖 재료를 다 사온 건데…? 우리 뭐 전 장사 하나.”

“앗, 토마스 상이 처음 드셔보신다고 하니까 기왕이면 여러 가지 전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새우에 고기에 애호박에… 얜 뭐고. 깻잎? 깻잎도 부쳐 먹나. 토마스 깻잎 잘 안 먹지 않나? 시간도 얼마 없는데 깻잎은 그냥 치우고 나중에 고기나 싸 먹는 게 어떤데. 내는 깻잎전은 또 처음 보네.”






재료를 뒤져보던 아츠무가 냉장고 앞에 서 있던 보쿠토에게 휙 깻잎을 던지며 말했다. 그러자 맞은편의 사쿠사가 첨언했다.






“히나타 어머님께서 깻잎전 자주 해주셨대.”

“역시 우리 쇼요 군 어무이가 최고다!! 전은 역시 깻잎전이제! 내는 깻잎전이 제일 좋더라! 봇 군 뭐하나, 퍼뜩 깻잎 안 주고!”

“츠무츠무, 이중인격이야…?”





아츠무의 발언에 떨떠름한 표정을 한 보쿠토가 휙 깻잎을 도로 던졌다. 깻잎을 캐치한 아츠무가 일부러 잘 보이는 곳에 깻잎을 두며 “내는 깻잎부터 부칠 거다. 아무도 말리지 마라. 전은 깻잎이다, 깻잎.”이라고 되뇌었다. 그 모습을 본 사쿠사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아, 이건 또 뭐고. 웬 초콜릿…? 주장 이렇게 단 거 많이 안 먹는다이가. 오미 군, 식단 관리 생각 안 하고 아주 그냥 막 사 왔제. 애초에 우리 중에 누가 이런 초콜릿을 먹는다고.”

“그거 히나타 최애 초콜릿이라던데.”

“누가 먹긴 내가 먹제!! 이 초콜릿 전부 내가 먹을 거다!! 아, 내도 이 초콜릿이 제일로 맛있던데 쇼요 군이랑 내랑 입맛이 같나 보네~! 봇 군, 얼른 그거 다시 이리 줘라!”

“…….”






마찬가지로, 바구니에서 꺼낸 초콜릿을 보쿠토에게 휙 던졌던 아츠무가 급히 말을 바꾸며 하하 웃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보이는 이상 행동에, 이번에는 요리 전에 정신부터 차리는 게 좋겠다는 말과 함께 초콜릿을 던진 보쿠토였다. 아츠무의 머리를 향하여.




머리에 초콜릿을 맞고도 히나타의 눈치를 보며 하하 웃기만 하는 그 모습에, 사쿠사는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정작 그런 사쿠사도 아까 베개를 던진 일로 인해 군말 없이 히나타의 옆에 서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요리는 두 팀으로 나눠서 하는 게 어떨까요! 한 팀은 전, 한 팀은 케이크만 담당하는 게 훨씬 빨리 진행될 것 같은데.”

“좋다! 쇼요 군은 뭐할 건데?”

“전 둘 다 괜찮아서 마지막에 고를게요~”

“안 된다. 쇼요 군이 먼저 고르는 게 우리들 진행에 도움이 될 거다. 안 그러면 팀 짜는 것부터 몇 십 분 걸릴 걸.”

“나! 나는 케이크! 케이크 할래!”

“아, 그러면… 제가 전 할게요! 전 쪽이 종류도 많고 조금 더 손이 많이 갈 것 같으니까요. 두 분은 어떻게 하실래요?”

“그럼 내도 전! 오미 군은 쇼요 군 다음으로 요리 잘 하니까, 요리 잘 하는 사람끼리 갈라지는 게 맞지 않겠나.”

“아니지. 잘 하는 사람끼리 모여서 성공률을 높이는 게 더 효율적이지. 괜히 어중간한 요리 두 개보단 하나라도 제대로 살리는 게 낫다고 봐. 그렇지, 히나타?”

“하? 뭘 모르네. 니는 균형 개발도 모르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움이 더 필요한 쪽부터 지원을 해 줘야제. 그리고 사람이 몇인지 모르나. 맛대가리 없는 두 종류가 제대로 된 한 종류보다 낫다. 맞나 안 맞나, 쇼요 군.”

“아니, 두 분은 왜 벌써부터 요리를 실패할 거란 생각부터 하시는 거예요? 세 분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리려고 기획한 거 아니었어요, 저희…?”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에, 마스크까지 사 온 거가. 철저하네….”

“너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불거리는 사람한테는 특히 필수지.”

“쇼요 군, 오미 군이 자꾸 내한테 시비 거는데 점마부터 마스크 쓰고 입 닫으라 해라. 안 그러면 내 전 부치기 전에 점마부터 칠 것 같다.”

“전 부치면서 전부 치기…!!”

“봇 군 입도.”

“네, 네~ 잠시만요!”






장바구니에서 마스크를 꺼내어 뜯은 히나타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곤 사쿠사에게로 가 마스크를 건네었다. 그러자 이미 손에 착용한 비닐장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사쿠사가 히나타에게로 상체를 가까이 숙였다.






“응? 왜요, 오미 상?”

“비닐장갑 낀 손으로 마스크 쓰다가 머리카락에 닿으면 위생적이지 않으니까.”

“아아, 그러네요! 그러면 제가 씌워드릴게요! 조금만 더 낮춰주실 수 있나요?”

“응.”






히나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쿠사가 조금 더 상체를 숙여 히나타에게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런 사쿠사에게 직접 마스크를 씌워주는 히나타를 본 아츠무는 이미 다 착용했던 앞치마와 마스크를 순식간에 내벗어던졌다.






“쇼요 군, 내도! 내는 앞치마도 아직 안 했다! 내도 직접 해 도!!”

“츠무츠무, 여태 앞치마도 안 착용하고 뭐 했어? 게으르네.”

“봇 군은 모르면 가만있어라. 저런 게 바로 내가 상상했던 그림인데!”

“아, 저도 이미 비닐장갑을 껴서…. 보쿠토 상 아직 비닐장갑 안 끼셨으니까 보쿠토 상이 해주실 수 있나요?”

“응, 그럴게!”

“…….”






결국 저항도 한 번 못 하고 보쿠토에게 백허그를 당한 아츠무의 허리에 도로 앞치마의 끈이 묶여졌다. 피식 비웃음을 흘린 사쿠사가 유유히 뒤를 돌아 케이크 재료를 꺼내드는 것을 시작으로, 네 사람의 요리가 본격적인 진행에 착수되었다.






“쇼요 군, 달걀은 내가 다 깔게. 쇼요 군은 저 가서 재료들 늘어놓고나 있어라.”

“넵, 그럴게요!”

“그리고 전 뒤집는 건 기름 튀어서 위험하니까 그것도 내가 다 할 거다. 우리 쇼요 군 어무이가 잘 하신다던 깻잎전은 특히 더 맛나게 부쳐줄게. 알았제?”

“좋아요! 저 츠무 상의 요리 완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히나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환한 웃음에 더욱 힘을 내어 양손으로 달걀을 까기 시작한 아츠무. 의도적인 미소는 아니었겠으나, 팬들 사이에서 이른바 ‘미야 아츠무 조련사’로 통하는 히나타의 면모를 여실히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맞다, 오미 상. 그러고 보니 저희 어제 생선 사 온 게 조금 덜 싱싱한 것 같아서, 오늘 아침에 새로 사 왔어요.”

“잘했네. 어제 건 늦은 시각에 갔더니 상태가 영 아니라 고민했었잖아.”

“그렇죠? 그래서 완전 싱싱한 걸로 아침에 보쿠토 상이랑 나가서 사 왔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머뭇거리는 히나타의 모습에 사쿠사가 되물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히나타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새하얀 아이스박스의 뚜껑을 열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너무 싱싱해서 아직도 살아 있어요.”

“…….”

“얘 어떻게 기절시키죠…?”

“오미오미 지금 케이크 팀으로 오기를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멋대로 남의 생각 읽지 마.”

“오미 상 지금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는 걸요.”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츠무츠무는 못 해?”

“엉. 내는 못 하겠다.”

“왜 못 해? 주먹밥도 만들잖아?”

“그건 싸무고! 그리고 주먹밥이랑 생선 기절시키는 거랑 뭔 상관이 있는데?!”

“츠무 상… 저희가 전 팀이니까 책임지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쇼요 군, 내 진짜 저건 쫌. 아무리 쇼요 군이 그런 표정으로 바라봐도 저건….”

“츠무 상…….”

“…….”

“…….”

“……칼 줘 봐라. 해 볼게.”

“와, 츠무 상 멋져요!”

“그래, 쇼요 군. 내가 니를 이렇게나… 어? 이렇게나 애낀다. 알겠제?”

“멋있어, 츠무츠무! 반하겠다!”

“아니, 그건 좀 참아주라, 봇 군. 내 칼 다시 내려놓는 꼴 보고 싶나.”






결국 칼을 집어든 아츠무가 아이스박스 앞에 섰다. 일단 생선을 도마 위로 옮기는 것부터가 큰 산이었다. 크게 한숨을 내쉬던 아츠무는 질끈 눈을 감고 생선을 잡았다.






“으아아아악…!!”

“안 돼요, 츠무 상! 놓치시면 안 돼요!!”

“참아, 츠무츠무! 꽉 잡아, 꽉! 배구공이라 생각해!!”

“내는 세터다!! 배구공을 잡는 게 아니라 토스하며 올려주는 거라고!!”






두 손으로 잡고 들어올리자마자 팔딱이는 생선. 기겁한 아츠무가 팔만 앞으로 쭉 내민 채 허공을 방황하며 소리쳤다. 이미 히나타를 데리고 멀찍이 대피해있던 사쿠사가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섰고, 보쿠토는 자신을 향해 오는 아츠무를 냄비 뚜껑을 방패삼아 막고 있었다.




결국 물고기를 놓쳐버리고 만 아츠무. 부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것이 필사의 움직임을 선보였다.






“어떡하제!? 떨어뜨렸다!!”

“주워야 하지 않을까…!”

“내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걸로 보이나, 봇 군…!”

“미친…….”






기절초풍할 듯한 표정의 세 남자가 어찌할 줄도 모르고 서서 바닥의 물고기를 내려다보았다. 점점 더 격해지는 그 몸짓에 시작부터 포기하고 싶어지던 그 순간, 성큼성큼 다가온 히나타가 아츠무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들었다. 그리고는…….




팍―!!






“……기, 기절… 성공한 것 같아요….”

“…아니, 이건 기절이라기보단….”

“죽인 거 아니야…?”

“……쇼요 군, 내 진짜 다시금 실감한다. 우리 팀 막내온탑은 니다.”






그대로 칼을 바닥의 생선 위로 꽂아버린 히나타. 마지막까지 꿈틀꿈틀 움직이던 그것이 서서히 둔해지더니 결국에는 눈을 뜬 채로 먼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몸통 정중앙에 칼이 박힌 채 죽은 생선을 보던 히나타가 나머지를 살폈다. 셋 중 누구도 이것을 들어올릴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에, 히나타는 자진해서 그것을 들었다. 칼을 빼앗아들고부터 접시 위에 생선을 조심스레 올려놓을 때까지 그 일련의 과정 속 히나타가 용감하고 멋있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무서움을 느끼는 세 명이었다.






잠시 후, 그런 히나타가 내뱉은, 더 무서운 한 마디.






“…그런데 저희요, 생선 한 마리 더 있어요.”

“그냥 밖에서 전 사 오면 안 돼…?”

“처음부터 그냥 드시고 오라고 돈을 드리는 게 나았을지도.”

“내가 왜 내 무덤을 팠는지 모르겠다…. 너무 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그나마 낫다고, 히나타는 아이스박스 속 물고기를 들어 곧바로 도마 위에 얹어두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츠무는 이번에는 본인이 기절시키겠다며 칼을 넘겨받았다.






“츠무 상, 괜찮으시겠어요? 힘드시면 제가 할게요. 제 손은… 이미 더럽혀져 있으니까….”

“너 그 말, 이럴 때 쓰는 게 아닌 거 알지.”

“츠무츠무, 파이팅…!”

“쇼요 군도 했는데 내가 뒤로 뺄 수가 있나. 도전이다.”






그 말을 남기곤 곧바로 칼을 치켜든 아츠무. 어디서 본 건 있다고 칼날이 아닌 옆면으로 생선의 머리를 내려친 그의 움직임에 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한 번에 기절하지 못 한 채 고통만 느껴 괴로워하는 물고기의 펄떡거림도 함께.






“으.”

“츠무츠무, 너무해. 진짜 잔인하다.”

“생선 근처에도 못 온 둘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츠무 상. 역시 제가 할게요. 한 번에 보내주는 게 서로를 위한 길인 것 같고….”

“으응… 부탁한다, 쇼요 군. 내 면목이 없네….”

“에이, 아니에요. 저도 딱 이번까지만 칼을 들고 그 다음부터는 손 씻어야죠.”

“그러니까 히나타 너, 그냥 그 말을 쓰고 싶었던 거야? 요새 토마스랑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너.”

“글쎄요…. 한 번 누군가를 찔러 보니 두 번째는 조금 죄책감이 덜해졌달까…. 오미 상은 아예 시작하지도 마세요, 이런 짓…. 맨 정신에는 할 게 못 됩니다.”

“토마스가 귀가하면 진지하게 이야기 좀 나눠봐야겠다. 애 정서에 안 좋은 영화는 그만 보여주라고.”






사쿠사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 한 번 칼을 쥔 히나타가 도마 앞에 섰다. 그리곤 가차 없이 내리치는 손짓. 철벽 블로킹 사이를 뚫고 상대편 코트 위에 시원하게 내리꽂힌 배구공처럼, 뒤끝 없이 깔끔하게 기절한 물고기가 움직임을 잃었다. 그리곤 뾰옥― 하고 튀어나온 무언가.






“…….”





튀어나온 생선의 한 쪽 눈알이 싱크대 아래로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갔다. 세 남자의 발끝 바로 앞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셋과 또 다른 하나의 시선이 교차했다.






“어… 너무 세게 쳤나 봐요. 어쩌죠?”

“잘 했어. 용감하네.”

“히나타, 대단해! 넌 우리의 용사야!”

“내랑 다른 반응 뭔데.”

“츠무츠무, 눈치 챙겨. 모르겠어? 지금 우리들 중 가장 무서운 보스는 히나타라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 츠무츠무가 할래? 내가 히나타랑 전 부칠게!”

“내는 지금 쇼요 군이 부탁한 거 하느라 바빠서 교체가 어렵다.”

“네? 제가 뭘 부탁드렸었, 으읍…!”

“아이고, 우리 쇼요 군~ 마스크에 뭐가 묻었네~ 내가 닦아줄 테니까 가만히, 가만히 있어라. 알았제?”






히나타의 마스크 위로 급하게 손바닥을 얹은 아츠무가 그를 뒤에서 껴안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쿠토는 “그러면 그거 다 하고 바꿔줘! 나 힘들어!”라며 아츠무의 옆에 보울을 놓고 사쿠사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이어 자신에게 꽂히는 사쿠사와 히나타의 시선을 느낀 아츠무는 결국 알겠다며 보울을 들었다.






“내 세게 돌려가 후딱 끝내버릴 거다, 아주. 월요일에 팔 아파가 연습 경기 못 뛰면 머랭 때문인 걸로 알아라.”

“츠무 상 팔 아프시면 안 되는데…. 속상해요, 그러면.”

“아, 맞나! 내가 팔 아파하면 쇼요 군이 속상하나! 그럼 안 되제. 내 팔 아플 일 없도록 천천히 정성들여가 할게! 걱정 마라!”

“네~ 츠무 상, 파이팅! 중간에 힘드시면 저랑 바꿔요!”

“아이다, 내가 다 할 거다. 이딴 거 뭐가 힘들다고!”






능숙하게 아츠무를 고양시킨 히나타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츠무 상 팔 아프면 저한테 토스 못 올려주시니까요….”

“…….”






유일하게 그 목소리를 들은 사쿠사는 속으로 되뇌었다. 자신은 방금 그 말을 들은 적 없는 거라고.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잠시 후,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아츠무가 완벽히 완성된 머랭을 들고 왔다. 칭찬을 해 달라는 강아지마냥 히나타를 바라보는 그. 비단 아츠무의 표정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스럽다는 듯이 히나타가 눈을 반짝이며 칭찬을 쏟아내었다.






“우와, 대단해요! 요리책에 나오는 것처럼 진짜 잘 됐네요! 츠무 상, 대단하다! 팔 안 아파요?”

“아, 뭘 이거 갖고 그래 대단하나 치켜세우는데! 하~나도, 전혀 하~~나도 안 힘들다! 내는 한 세 번 정도는 더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허세.”

“오미 군, 다 들린다.”

“들으라고 한 건데.”

“머랭을 치기 전에 오미 군부터 쳐 달라는 기가. 응?”

“폭력은 나빠, 츠무츠무. 그리고 이마에 휴지조각 붙었어! 땀 닦던 휴지조각 그대로! 전에 팬 감사제 때 이마에 붙은 휴지 떼기 게임했다가 진 거 떠오르네!”

“…….”






팬 감사제 이야기만 나오면 급격히 얼굴빛이 어두워지는 아츠무가 이번에도 순식간에 말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침울해진 그를 달래기 위해, 히나타는 이런 저런 칭찬을 이어가며 다시 아츠무를 들었다 놨다 했다.






“휴지 떼기 게임 못 하면 뭐 어때요! 츠무 상은 다른 거 잘 하시는 게 훨~씬 많은데요! 그쵸?!”

“금시초문인데.”

“그랬어?! 츠무츠무 뭘 잘 하는데?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어!”

“…쇼요 군, 내 오늘 저항력이 별로인가 보다. 저 두 사람의 말들이 평소보다 더 열 받게 느껴진다. 아침부터 쌓여서 그런가. 어쩌제.”

“에이, 츠무 상~ 츠무 상은 그래도 늘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실제로 주먹을 휘두르시거나 하진 않……”

“…….”

“…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부분 웃으면서 잘 넘기……”

“…….”

“……지 못 하실 때도 많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결국에는 싸우는 일 한 번 없……”

“…….”

“………던 것도 아니긴 한데, 그으래도… 어… 그래도 츠무 상은 잘 참을 수 있는 사람이이이인? 것도? 아니지만? 어…… 츠무 상은, 그러니까, 그게…….”

“…됐다, 쇼요 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 산 것 같으니 반성을 좀 해보께….”

“죄송해요…. 제가 말을 조금 더 잘 했더라면….”

“네 말솜씨 문제는 아닐 걸.”

“잘 생각했어, 츠무츠무! 지금이라도 열심히 반성하고 회개하면 새로 태어난 츠무츠무를 모두 받아줄 거야!”

“내 도대체 뭐 때매 이래 된 기가. 회개라는 말까지 들어야 할 정도였나. 응…?”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네! 오늘 츠무 상이 들었던 모든 말이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해도, 그런 츠무 상의 모습까지 전부 포함해서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로요!”

“쇼요 군….”

“히나타도 오늘 나온 말들에 전부 동의하긴 한다는 뜻인 거지…?”

“만약 츠무 상이 저에게 언젠가 토스를 올릴 거라고 하셨던 그 날로 돌아간다면, 저는 꼭 그 때의 저한테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걸요.”

“뭐라고…? 뭐라고 말해줄 건데, 쇼요 군…?”

“저 인간이랑 최대한 엮이지 마라?”

“노란색 머리가 츠무츠무다?”

“악!! 쫌!! 지금 내랑 쇼요 군만의 감동적인 장면인 거 안 보이나!! 둘 다 낄끼빠빠 모르나, 낄끼빠빠!!”






히나타에게만 집중하려고 애쓰던 아츠무가 발끈 소리를 내질렀다. 두 사람에게는 씨알도 안 먹힐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뒤이어 히나타가 아츠무의 양 볼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 후에 뒷내용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아츠무는 자신의 행동의 의미는 여기 있노라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네 눈앞에서 토스 선언을 해 준 그 사람이, 몇 년 후 너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토스를 올려줄 멋진 선배다. 그러니까 그 사람과 다시 만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더욱 강해지도록 해! …라고요.”

“쇼요 군…!!”






감격한 얼굴의 아츠무가 말릴 새도 없이 와락 히나타를 끌어안았다. 그 품에 으스러질 듯 안긴 히나타는 숨이 막힌다고 하면서도 몸을 비틀거나 억지로 빼내려 하지 않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앗, 그리고 방금 그 노란색 머리는 미야 오사무 상이 아니라 미야 아츠무 상이라는 이야기도.”

“…….”

“그… 저희 얼른 일어나서 마저 만들까요…?”

“엉… 그게 좋겠다…. 참고로 간은 아주 딱 좋다, 딱….”






끌어안고 있던 자세를 풀어 일어선 두 사람이 다시 전 부치기에 열중하였다. 어느새 그 많던 재료들 중 생선만을 제외한 것들이 노랗게 달걀옷을 입고 자리를 잡아 눕게 되었다. 뿌듯한 시선을 교차하던 두 사람은 마주 웃다가, 이번에는 아츠무가 히나타에게 전 하나를 집어 직접 먹여주었다.






“어떠나, 쇼요 군. 쇼요 군이 좋아하는 깻잎전, 내 특별히 신경 써서 더 예쁘게 부쳤는데 맛있나.”

“우음, 네! 엄청요! 간 진짜 딱 좋네요!!”

“맞나. 듣기 좋네. 그나저나 쇼요 군, 이래 서로 먹여 주니까 우리 꼭 그거 같지 않나.”

“그, 우움, 그거요? 그게 뭔데요?”






엄지를 내민 채 우물우물 거리던 히나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쇼요 군도 참~ 그거 있다이가, 그거.”

“그거…? 요리사요?”

“요리사 말고~”

“어… 셰프…?”

“비슷한 말 아이가…? 아무튼, 그런 거 말고.”






전혀 갈피를 잡지 못 하는 히나타를 보던 아츠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리곤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띠고 부끄러운 것마냥 시선을 돌린 아츠무가 쑥스러움이 묻어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혼 부부.”

“주접떠네, 진짜.”

“츠무츠무 진짜 왜 그래…? 왜 자꾸 히나타를 세뇌시키려 하지?”

“그래, 그래~ 마음껏 떠들어라, 선택받지 못 한 이들이여. 쇼요 군에게 선택받고 서로 전 교환식까지 마친 내는 이제 더 이상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아, 두 분도 전 드셔보실래요? 어느 걸로 먹여드릴까요?”

“쇼요 군은 지조는 없나…! 전 먹여주는 건 내한테만 해주는 특별한 행동이 아니었던 기가…!!”

“네? 하지만 두 분도 배고프실 테고 같이 맛보면 좋으니까….”

“나! 나는 육전 맛볼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잽싸게 달려온 보쿠토가 자연스레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안으로 쏘옥 들어가는 육전 한 장. 얇게 부쳐낸 그것을 맛본 보쿠토가 눈을 번쩍 뜨며 맛있다고 감탄했다.






“나 하나 더 먹을래! 진짜 맛있어!!”

“그럼 딱 하나만 더 드시고 나머지는 이따 세 분 오시면 같이 드시는 걸로 해요~ 밥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테니까요!”

“응응! 그럴게!! 아~”






이번에도 넙죽 전을 받아먹은 보쿠토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요리도 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본래의 의도를 망각하고 세 사람애게 언제 돌아 오냐며 연락을 하려던 것을, 그 옆에 있던 사쿠사가 휴대폰을 빼앗는 것으로 겨우 막을 수 있었다.






“오미 상! 오미 상도 드셔보세요! 오미 상은 저처럼 깻잎전 좋아하신댔죠? 자요, 아―.”

“야. 그거 방금 보쿠토 먹였던 젓가락이잖아. 내가 남이 쓰던 젓가락으로 먹을 것 같아?”

“앗, 이거 제 젓가락이기는 한데…. 역시 좀 그렇죠? 잠시만요. 새 젓가락 꺼내올―,”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네. 그냥 먹을게. 이리 줘.”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곤 마스크를 내린 채 상체를 숙인 사쿠사의 모습에, 이번에는 아츠무가 기가 차다는 반응을 내보였다.






“점마 저거 저거, 가만 보면 저게 가장 여우 새끼 아이가. 그 녀석한테 속지 마라, 쇼요 군. 내가 볼 땐 점마가 가장 위험하다.”






그런 말에도 아랑곳 않고 히나타가 내민 젓가락 앞에서 작게 입을 벌린 사쿠사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먹기 좋게 전을 접어 조심스레 입 안으로 넣어주는 히나타. 입 안에 들어찬 전을 맛본 사쿠사가 느릿 눈을 뜨고 히나타와 눈을 마주쳤다.






“와… 오미 상 이렇게 보니까 속눈썹 진짜 기네요. 눈동자도 진짜 크고 또렷하고….”

“…그래? 내가 볼 땐 네 눈동자가 더 큰 것 같은데.”

“앗, 그, 그런가요?”

“응. 네 눈도 만만치 않게 크고 또렷해.”

“아하…….”

“그리고 전, 맛있네. 부치느라 수고했어.”

“네! 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아니, 지금 둘이서만 무슨 다른 장르 소설의 주인공인 줄 아나!? 오미 군은 분위기 좀 그만 잡고 가서 케이크나 처꾸며라!!”

“분위기를 잡긴, 누가. 그런 적 없는데 그렇게 보인 거라면, 우리 둘이 원래부터 그런 기류가 흐르는 사이인 거겠지.”

“니 오늘 진짜 주둥아리 잘 터네. 휴일이라고 배구공 칠 힘까지 입으로 다 모인 기가.”

“네 주먹 맞받아칠 힘은 남겨놨으니 필요하면 말하든가.”

“자아, 자! 두 분 그만하시고요~ 보쿠토 상도 몰래 전 집어 먹는 거 그만하세요~”

“우응? 나 아뮤 것도 우음, 안 지버머겄는데…! 전 안 머겄어…!”

“봇 군, 그럼 지금 입 안에 있는 건 전이 아니고 뭐 신발 가죽이라도 되나.”

“정신 차려 보니 얘네가 내 입 안에 들어와 있었어! 아마…!!”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 어떻게 제가 옥상에 상을 가지러 갔던 5분 사이에 그런 끔찍한 일이….”






사쿠사의 설명 중 본인이 없었던 후반부 5분의 내용을 들으며 낯빛이 시시각각 어두워져갔던 히나타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것마냥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나름대로 차분하게 이야기를 마친 사쿠사 또한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세 사람은 황당함과 경악스러움 등의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중,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움직인 메이안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했다.






“상황은 이해했…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는 안 된다만. 일단 파악은 되었다.”

“What the… 재난 영화보다 더 무섭고 스릴 있었어.”

“일단 확실한 건 당분간 토마스는 범죄 영화 볼 거면 혼자 보는 게 좋겠다. 애들 정서에 너무 안 좋은 것 같네. 특히 막둥이랑은 보지 말고. 막둥이도 손을 더럽혔다느니 그런 말 어디 가서 하지 마. 알았지?”

“네….”

“어쩔 수 없지. 나의 소중한 영화 메이트를 잃었네….”

“나머지 셋 중 지금까지 들은 이 설명 중에서 반박할 내용이 있거나 본인의 기억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고 말해. …어, 보쿠토. 말해.”

“휘핑 머신이 있었어?! 난 못 봤는데! 그러면 우린 왜 직접 휘저은 거야?!”

“…….”

“죄송해요, 두 분 다…. 저도 그걸 나중에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 그리고 저는 오미 상 설명에 반박할 거나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 없어요.”

“내도 딱히 없습니더. 내 억울함을 전하기엔 다소 무미건조한 설명이긴 했지만, 객관적인 팩트는 다 같아예.”

“그래? 그러면 일단 사쿠사의 설명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말할게.”

“네.”

“히나타 쇼요, 석방.”

“앗, 그… 그래도 되나요? 저 혼자…?”

“이의 있는 사람 있나?”

“없어요. 동의합니다.”

“히나타는 잘못이 없지!”

“쇼요 군, 우리가 못난 형들이라 미안타….”

“아, 아니에요. 그…….”

“…….”

“…네. 못난 형들이라고까지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소신발언하자면 세 분 다 잘못이 있고 충분히 반성을 하셔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받아들입니다. 히나타는 가서 씻어도 돼. 어질러진 건 이 셋이 치울 거니까 하나도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둬.”

“자유의 몸이 된 걸 축하해, 히나타.”

“막둥이가 우리 없는 동안 고생했네. 가서 씻어.”

“넵! 그러면 저 간단하게 샤워만이라도 하고 올게요…! …저 먼저 씻고 올게요. 세 분, 너무 무거운 형량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요.”

“쇼요 군, 혹시라도 내가 독방 격리형에 처해지면 가끔씩 면회 와 줘야 한다. 알았제…?”

“면회가 허가될 것 같지 않기는 한데, 만약에 된다고 하시면 종종 간식 들고 찾아뵐게요.”

“어엉. 내 기다릴게. 내 쇼요 군 기다린다….”






아츠무와의 대화를 끝으로, 세 사람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히나타가 몸에 뒤집어 쓴 가루들을 없애기 위해 후다닥 욕실로 향했다. 그 총총총 뛰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들은 머지않아 쏴아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심판의 시간이 밝았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04. 블랙자칼 막내즈, 사쿠사와 히나타의 공동 육아 일기 feat. 아기 고양이






그것은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드넓은 하늘에 쨍하게 떠 있는 태양이 대지의 온도를 덥히던 그 날, 이름에 태양(日)을 품은 누군가는 제 침대의 온도를 덥힌 채 또 다른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아주 작고 여린 한 존재를.






“히나타.”

“느, 느엑?!”

“……뭐야. 왜 그렇게 놀라는데.”

“아, 아뇨! 제가요? 언제? 저 안 놀랐는데?!”

“…….”






작게 노크를 하고 들어선 사쿠사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평소 크고 동그랗고 칠흑같이 새까만 눈동자를 지닌 것으로 유명한 그의 눈이 이렇게 가늘어지는 경우는 대개 다음의 세 가지였다. 첫째,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둘째, 아침 기상 직후 졸음을 떨쳐내지 못 해 침대에 앉아 잠기운을 몰아내려 할 때. 그리고 마지막 셋째, 수상하거나 미심쩍은 것을 보며 그 동태를 살필 때였다.




사쿠사가 히나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할 리는 없었다. 이는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이 아닌 저녁이고, 오늘은 휴일이라 충분한 휴식까지 취했으니 잠기운에 취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남은 가능성은 마지막 세 번째의 이유.






“…야. 너 나한테 뭐 숨기고 있어?”






수상하고 미심쩍은 히나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함이라는 뜻이 되었다.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거의 확신에 찬 그 말을 들으며, 흠칫 어깨를 떨었던 히나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저요? 오미 상한테, 제가? …에, 에이, 설마요~ 제가 뭘 숨긴다고….”






네, 저 오미 상한테 숨기는 거 있어요― 라고 적힌 말풍선이 히나타의 머리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했다. 누가 봐도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그 모습에, 사쿠사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사쿠사야, 원체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필요성이 있다면 모를까, TMI를 남발한다는 행동은 그와 가장 거리가 있는 영역의 행위 중 하나였다. 그러니 누군가가 “뭐 숨기고 있어?”라고 묻는다면 오히려 “뭔가를 숨기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이 어디 있어.”라며 당연한 듯 대답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쿠사도 납득하기 어려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자신에게 눈에 띄게 뭔가를 숨기는 히나타’였다. 히나타도 인간이니 비밀이야 당연히 있겠지. 그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 태도로 비밀을 만든다고? 그것도 당사자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히나타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하였던가. MSBY 블랙자칼 내 공인된 ‘비밀이 많은 남자 1위’인 사쿠사는 지금 저에게 뭔가를 숨긴 채 거짓말까지 하는 히나타의 모습에, 과장 조금 보태어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차라리 비밀이라고 했다면 “흐응, 그래?” 하고 넘어가주려 했건만….






“왜, 왜, 왜 다가오세요, 오미 상…?”

“뭘 숨기는 거야.”

“아,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요!? 별 거 아닌데…!”

아차.

“…방금까진 숨기는 거 없다며. 그런데 이제는 별 게 아니다?”

“아, 아니, 그게….”






방문을 닫고 점점 다가오는 사쿠사를 보며, 이불에 몸을 감싼 채 침대 위에 앉아 있던 히나타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자신과 멀어지려는 그 명백한 몸짓에, 사쿠사는 ‘하아? 얘 봐라?’ 하며 히나타의 침대 위로 올랐다. 원래 같았으면 타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자신 외의 사람의 침구에 오를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러나 룸메이트인 히나타가 평소 자신 못지않게 청결에 신경을 쓰고 침구 관리를 잘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별 거부감이 들지 않는 듯했다.






“기회 줄 때 말하는 게 좋을 텐데.”






한쪽 무릎을 침대에 댄 채 히나타에게로 상체를 숙인 사쿠사가 짐짓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질끈 눈을 감은 히나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도 벗어나려는 생각은 없는 듯, 여전히 이불 속에 몸을 꽁꽁 숨긴 채였다.




그 모습을 본 사쿠사는 ‘설마….’ 하는 생각에 히나타의 얼굴을 살폈다. 정확히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는 히나타의 이마를.





“야. 너….”






열 있는 거 아냐―? 인상을 찌푸린 사쿠사가 말했다. 곧바로 아니라며 거세게 부정을 해 오는 히나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 평소 같으면 미간을 구기며 “무슨 소리야. 강한 부정은 강한 부정이지. 그게 어떻게 강한 긍정인데.” 할 사쿠사도, 이번만큼은 히나타의 태도를 보며 그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평소 더위도 잘 타는 애가 이 더운 여름에 이불을 꽁꽁 뒤집어쓰고 방 안에만 있는 것부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히나타는 스스로의 힘든 점을 내색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대다수의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고 먼저 다가가 상대방을 살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는 별개로, 무엇 때문에 힘들다거나 어디가 아프다거나 지금 기분이 안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지도, 티를 내지도 않는… 그저 혼자 묵묵히 참고 견뎌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 히나타 쇼요였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팀원들 중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지, 사쿠사는 히나타의 성격 중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더 그랬고, 그래서 더욱 마음이 쓰이곤 했다.




더군다나 첫 인사 때부터 히나타를 ‘발열퇴장’이라 인식했던 것이 히나타뿐 아니라 사쿠사 자신에게도 은근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서, 히나타가 아픈 걸 숨기는 이유가 있다면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지금, 히나타가 이불을 싸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는 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사쿠사는 히나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뭐야. 멀쩡한데.”

“그렇다니까요? 저 아픈 거 아니에요, 진짜로요!”

“그러면 왜 이러고 있어. 더위도 많이 타는데 땀 흘리면서 왜 이러고 있냐고.”

“그, 그건…!”

“그건.”

“……사, 사우나 가고 싶은데 나가기 귀찮아서 자체 사우나를 한 번 만들어봤… 아아아!! 알았어요, 알았어요! 거짓말이에요! 죄송해요, 오미 상!!”






이불을 꽉 쥔 히나타의 두 손목을 움켜쥐고 들어 만세 자세를 취하게 한 사쿠사가 그대로 벽에 양 손을 붙였다. 사쿠사의 손에 결박된 히나타가 죄송하다며 몸을 비틀었다.






“야, 나는 네가 궁금하다고 해서 내 유튜브 플리도 공유해줬잖아. 뭔지는 몰라도 숨길 거면 제대로 숨길 것이지, 다 들통난 마당에 끝까지 이러기야? 뭐? 자체 사우나?”

“아아아아, 죄송해요! 진짜로!!”

“말해. 숨기고 있는 게 뭔지 말하라고.”

“아, 오미 상….”

“셋 센다. 하나, 둘―.”

“악!! 알았어요! 얘기할게요! 다 말할 테니까 일단 이불은 밟지 마세요! 잘못 하면 진짜 큰일나요!!”






결국 단념한 것은 사쿠사가 아니라 히나타 쪽이었다. 얘기하겠다는 히나타의 확답을 들어내고 나서야, 사쿠사는 손목을 놓아주었다. 애초에 세게 힘을 준 것도 아니고 그저 겁만 조금 주려던 것이었어서, 풀려난 히나타의 손목에는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온 사쿠사는 팔짱을 끼고 선 채로 히나타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기다려보라는 말을 남긴 히나타는 이불을 홱 뒤집어썼다. 무채색인 사쿠사의 것과는 달리, 빨강 주황 노랑 하양이 뒤섞인 컬러풀한 히나타의 이불. 그 속에서 꼼질꼼질 움직일 때마다 들썩이는 이불의 모양새가 웃기면서도 귀여워서, 뭘 하는 건가 지켜보던 사쿠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잠시 후, 이불 사이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히나타가 사쿠사를 올려다봤다. 비밀을 말하기 전에 부탁드릴 게 있다며 눈치를 보는 그.






“오미 상, 그… 저, 오미 상이 처음이에요.”

“…야. 문장 성분 똑바로 갖춰서 얘기 안 해? 그런 식으로 사람 홀리듯 이야기하면 넘어가 줄 것 같아?”

“아잇,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호, 홀리다니!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랬다. 히나타 쇼요는 잠시 잊고 있었다. 제 앞의 이 남자도 ‘MSBY BJ’의 한 일원이었음을. 다른 이들에 비해 표현 방식이 덜 튈 뿐, 그 또한 블랙자칼 막둥이 히나타 쇼요에 대해 독특한 사고를 지닌 이였다. 누군가의 입을 빌리자면 ‘주접’과 같은.






“그게 아니라! 저 이거 아무한테도 말씀 안 드렸거든요? 오미 상이 처음이에요.”






사쿠사의 발언에 얼굴을 붉히며 이불을 펄럭인 히나타가 소곤소곤 말했다. 마치 초콜릿을 숨겨둔 비밀 아지트를 너에게만 공개한다는 식의 모습에, 사쿠사는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싶으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처음인데 뭐 어쩌라고.”

“그러니까… 제가 말하기 전까지는 다른 분들한테 비밀로 해 주시면 안 되나요? 제가 조만간 직접 말할 테니까요.”

“뭔지 봐서. 네 컨디션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거나, 너랑 내 룸메이트로서의 공동생활 혹은 팀 전체에 지장을 줄 만한 경우라면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

“…왜 대답이 없어? 너 진짜,”

“아, 아니에요! 아픈 거 진짜 아니고! 그… 팀 전체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아마….”






오미 상이랑 저의 생활……에는 조금, 영향…을 줄 수도… 아닐 수도……. 시선을 피한 히나타가 눈치를 살피며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사쿠사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둘의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라니. 직접 꺼낸 예시였지만, 히나타야 원체 남을 배려하고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니 가장 가능성이 낮은 경우라 생각했는데…. 설마 히나타가 자신과 방을 쓰는 게 맞지 않아 룸메이트를 바꾸기로 한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제기한 사쿠사가, 그것만은 아니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대화 맥락 상 그런 비밀일 리는 없단 생각은 밀려오는 불안감에 떠올리지 못 하는 듯했다.






“너랑 내 생활에 지장을 준다니. 그게 뭔데.”

“그… 비밀 지켜주신다고 하면 말씀드릴게요.”

“칼자루가 제가 아닌 그 쪽에 있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아, 오미 상… 저 진짜 타이밍 보다가 제가 먼저 말씀드릴 테니까요, 네? 지금은 저랑 오미 상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으면 안 되나요?”






너랑 나 둘만의 비밀? 야, 너는 그게 지금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내가 조금 좋게 보니까 너한테 무른 사람으로 보이나 본데, 그런 거라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거야.






“알겠어. 알겠으니까, 우선 말해. 사람 애태우지 말고.”

“진짜죠?! 약속하신 거예요?! 오미 상이라면 이해해주실 줄 알았어요! 감사해요, 오미 상!”

“…감사 인사는 됐고. 얼른.”





하아… 내가 어쩌다가 이 녀석한테 홀려서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튀어나간 제 말에, 사쿠사는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삼켰다. 어떻게든 비밀 보장 약속을 받아낸 히나타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이불을 들었다. 그리곤 누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오미 상, 오미 상. 얼른 들어와 보세요.”

“…어디를.”

“어디긴요. 여기, 이불 속이요! 얼른!”

“…….”






이래놓고 사람 홀리는 게 아니라고? 잠시 멈칫한 사쿠사는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나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그의 말대로 침대에 올라 이불 속으로 고개부터 넣기 시작했다.




성인 남성 두 명이, 그것도 한 명은 보통보다 큰 체격을 지닌 남성이 이불 하나를 같이 뒤집어 쓴 채 앉은 꼴이라니. 누가 본다면 이게 무슨 광경이냐고 할 법한 상황. 평소라면 결코 그 상황 속 주인공이 될 리 없던 사쿠사가 이불 속으로 찬찬히 들어오자, 그만큼 꾸물꾸물 뒤로 물러나 공간을 만든 히나타 덕분에 두 사람은 온전히 한 이불을 덮고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야. 너… 이게 무슨….”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나도 요새 느끼긴 했어. 그게 싫다거나 어떻다는 건 아닌데, 히나타랑 사쿠사 둘이서만 공유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

“히나타랑 오미오미 둘이서만 비밀을 만들었다는…?!”

“꼭 비밀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사실 얼마 전에 사쿠사한테 뭐 물어볼 게 있어서 방으로 찾아 갔었거든. 그런데, 그 때…….”

 





“사쿠사, 있어? 잠시 들어갈게.”

“자, 잠시만요!! 기다려주세요, 이누나키 상!!”

 





“오미오미가 히나타처럼 대답했어?!”

“오미 군이 아니라 쇼요 군이었다, 방금 그 회상 속에서 대답한 건.”

“그 때,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히나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 방 안에서 뭔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놀라서 문을 열었는데, 글쎄…….”

 





“왜 그래? 무슨 일 있…… …둘이 지금 뭐…해…?”

“어, 어어, 그, 그게…!”

“……히나타가 야광 팔찌 보여준다고 해서… 구경 중이었습니다….”

“어… 음… 그래…? 재, 재미있게 봐…?”

 





“둘이서 야광 팔찌를 본다고 히나타 침대 위에서 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있더라고.”

“야광 팔찌! 나도 보고 싶다…!!”

“아니, 그게 진짜 야광 팔찌일 리가 없다이가, 봇 군! 둘이 뭔가를 하다가 이누 상이 들어간다카니까 급하게 이불을 뒤집어 쓴 거제!”

“그러고 보니 오늘도 훈련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잘 안 나오긴 했네.”

“씻을 때랑 밥 먹을 때는 둘이 순서라도 맞춘 듯 교대로 나왔다 들어갔어.”

“거 보이소, 우리 빼고 둘이서만 뭔가 비밀을 만든 겁니더! 그게 아니고서야 갑자기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야광 팔찌 같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댈 리가 없다 아입니꺼!”






모두의 지지 아닌 지지에 힘입은 아츠무가 더욱 목소리를 키우며 열변을 토해냈다. 어느새 거실에 둥그렇게 회의 대형으로 앉아 모인 이들은 마주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히나타랑 오미오미, 막내라인 둘이서만 비밀을 만든 건가…!!”






결코 믿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아니… 그치만, 뭐…. 비밀이야 만들 수도 있고, 팀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니 괜찮지 않아? 사쿠사도 막둥이도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본인들끼리 어울려 지낼 사람이 아니잖아, 안 그래?”

“이누 상, 눈물 맺힌 거 닦고 얘기하이소.”

“그래! 난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 전 막내와 현 막둥이 두 명이서만 비밀을 만들었다니…!! ……뭐, 이렇게라도 해야 하냐? 응? 여기도 직장이야. 직장 동료랑 비밀 한두 가지는 만들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래.”

“Oh, 연기력 대단했어. Bravo."

“아니, 어쩌면 연기가 아니라 억누르고 있던 본심일 수도….”

“아무튼. 둘이 비밀을 만든 게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괜찮다고 봐. 이걸로 소외감을 느낄 정도도 아니고. 아츠무는 조금 더 막둥이한테서 독립심을 기르도록. 그러다가 나중에 팀 이적이라도 한다고 하면 아주 펑펑 울겠다?”

“아, 이누 상. 진짜 그런 말 쫌…. 씨가 된다니까예? 지가 말 안 했습니꺼. 옛날에 쇼요 군한테 언젠가는 꼭 토스를 올릴 거라고 말했었다고. 그 때 그 말이 이뤄져서 지금이 있는 거라고예.”

“Oh… 히나타의 노력과 선택을 과거 자신의 발언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저런 발언, 집착이야 사랑이야?”

“존중해주자. 아츠무는 전부터 운명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까.”

“Okay.”






메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토마스의 옆으로, 더 이상 이야기 할 건 없어 보인다며 일어선 이누나키가 걸음을 옮겼다.





그 때였다. 잠시 동안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보쿠토가 모두를 멈칫하게 할 말을 꺼낸 것은.






“그런데! 사실 급하게 이불을 뒤집어쓴 게 아니라면…?!”

“그게 뭔 소리고, 갑자기.”

“아까 츠무츠무가 그랬잖아. 둘이 야광 팔찌를 보고 있던 게 아닐 거라고. 급하게 이불을 뒤집어 쓴 거라고. 그게 급하게 이불을 뒤집어쓴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럼 뭐, 느릿느릿 여유 부리며 뒤집어썼다는 말이가.”

“아니,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둘이 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면…!?






“……그게 무슨 뜻이가, 봇 군. 이불을 왜… 뒤집어쓰고 있는데, 둘이.”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른 이들을 놀라게 할 발언을 던진 당사자는 그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선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모두의 머릿속에 울리기 직전의 사이렌을 켜둔 사람치고는 태평한 모습이었다.




수학여행 날 밤에 모여 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던 것마냥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그 중, 다음 이야기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메이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새벽에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는데, 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고.”

“아, 제발, 주장, 제발. 내 진짜 제발.”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말 끝까지 들어 봐!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이상해서 갔더니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거야.”

“새벽에? 잠도 안 자고요?”

“그래가 어떻게 했는데예.”

“뭘 어떻게 해. 그냥 같이 음악 듣나보다 하고 들어가 잤지. 우리들 방끼리는 방음이 잘 되어 있으니까 어차피 복도로 나오지 않는 한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네! 우리 숙소 방음 잘 되는 편이니까…!”

“…….”






메이안의 말을 따라한 것뿐인 보쿠토였으나, 그런 그의 말에 나머지는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서로에게 공유 못 할 생각을 하던 중, 이누나키가 가장 먼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당사자들한테는 아무런 이야기도 들은 거 없는데 우리끼리 엄한 상상하지 말자. 응? 밤에 잠이 안 와서 ASMR 같은 걸 켜둔 걸 수도 있잖아.”

“그럼 같이 이불 뒤집어쓰고 있던 건예.”

“그건….”

“…….”

“……내가, 잘못 봤을 수도….”

“Oh,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본인의 기억 자체를 부정하는 거야? 그건 좀….”






토마스가 그러지 말라며 이누나키의 손을 꼬옥 쥔 채 말했다. 그리고 그런 토마스의 뒤로, 어느새 방에서 나온 히나타의 모습이 보였다. 거실에 모여 앉은 모두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한 히나타가.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주장? 뭘 하려고예.”

“아까 히나타 봤지? 요가 한다고 거짓말한 거.”

“그게 거짓말이에요? 어째서?”

“히나타는 요가할 때 입는 옷이 따로 있잖아. 왜, 그 어디에서 사 온 건지 모를….”

“큐빅 박힌 네온 오렌지색 반팔?”

“그건 주로 집 앞 편의점 갈 때 입더라. 그거 말고, 하얀색에 고기라고 써 있는 반팔.”

“그거 쇼요 군이 자주 입는 건데. 주장 여태까지 그걸 어디에서 사 온 건지 모를 옷이라 생각했던 겁니꺼.”

“심지어 막둥이가 직접 사 온 옷 중에선 그나마 괜찮은 축에 속하는 옷이잖아. …아니, 이게 아니지. 아무튼 그것 때문에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그냥 오늘만 그 옷을 입은 걸 수도 있잖아요.”






메이안을 따라 두 사람의 방문 앞에 선 이들 중, 이누나키가 물었다. 문을 열거나 귀를 대지는 못 하고 그 앞에만 서서 고민하던 메이안이 말했다.






“여태 둘이 방에서 요가를 했단 것치곤 너무 멀쩡했어. 원래는 요가 매트를 깔고 동작을 해도 무릎이나 팔꿈치가 눌려서 빨갛게 변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변화 없이 평소와 같은 색의 피부였잖아. 심지어 땀도 나지 않았고.”

“…….”

“자, 이제 솔직하게 말해봅시더. 우리들 중 쇼요 군한테서 집착을 줄여야 하는 사람이 진짜 내뿐입니꺼?”

“역시 주장은 다르네.”

“나 진짜 소름 돋았어요.”

“나만 알고 있던 거야? 다들 그래서 히나타가 거짓말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따라온 거 아니냐고.”

“저는 그냥, 막둥이가 같이 게임하자는 말을 그렇게 거절할 리가 없는데 거절하길래 뭔가 숨기는 건가 했죠.”

“나! 참치 먹는데 드실 분 있냐고 안 물어보고 혼자 숨겨서 가는 게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자, 이제 우리는 한 배를 타는 거야. 지금이라도 내릴 사람은 물러서.”






비장하게 말한 메이안이 방문 위로 손을 얹었다. 언제 안으로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그 몸짓에 나머지가 주춤했다.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이 모든 상황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아츠무였다.






“내는 주장 따라갑니더!”

“주장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막둥이의 비밀에 끼고 싶어서 가는 거겠지.”

“그러는 이누 상도 이미 문앞에 다가섰는데예.”

“나는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막내들을 지켜야 하는 선배이며, 주장을 옆에서 서포트해야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다.”

“나도! 나도 주장 서포트…!”

“Captain."

“너희들…!”






마지막으로 토마스까지 본인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 엄지를 내보이며 웃자, 메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가끔씩 이들을 손이 많이 가는 왁자지껄 우당탕퉁탕 집단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을 반성함과 동시에, 역시 동료란 든든하고 좋은 존재라고 되뇌며.






“우리 그래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는데, 말없이 문 열진 말죠.”

“응. 나도 그럴 생각이야. 노크하고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들어가자.”

“ ……래서, 지금 거실에 …… ”

“어? 둘이 뭐라고 대화하는 것 같은데예. 귀 가져다대면 들립니더.”

“아츠무. 우리 방금 프라이버시 얘기하지 않았니.”

“쉿, 쉿! 이누 상 조용히…!”






어느새 방문에 귀를 갖다 붙인 아츠무가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모두가 목소리를 멈추니 들려오는 대화 소리.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다문 이들 모두가 그 이야기에 집중하였다.






“다들 거실에 있다고?”

“네. 밥 가지러 나가는데 보니까 다들 모여 계시더라고요. 수건 돌리기 게임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왜?”

“수건이 없었거든요.”

“…오, 히나타 똑똑해!”

“그 말에 속을 거라 생각한 봇 군이 덜 똑똑한 거 아이가.”

“쉿. 둘 다 조용히 해 봐.”

“privacy는?”

“쉿, 쉿!”

“그러면 다들 모여서 뭘 하고 있던 거지.”

“글쎄요.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 같기는 했는데…. …어쩌죠, 오미 상. 지금이라도 나가서 말씀을 드릴까요? 정신 차려 보니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말씀을 못 드린 게 너무 마음에 걸려요.”

“지금 이야기해도 괜찮으려나. …아니면 내일 이야기하는 건? 내일은 휴일이니까 다들 웬만해선 종일 숙소에 있을 테고.”

“아, 그렇네요. 내일 다들 계속 숙소에 계시겠구나….”

“어. 아마 내일은 지금까지처럼 숨기기도 어려울 거야. 지금도 새벽에 깰 때마다 울어서 음악 소리로 겨우 숨겨두는데.”

“울어? 누가?”

“그쵸…. 낮에는 혼자서도 잘 자서 다행인데, 새벽마다 이렇게 깰 줄은…. 역시 아기들은 새벽잠이 없나 봐요.”

“응. 검색해 보니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고. 새벽에 깨서 우는 아기들이 많대.”

“그렇구나…. 왜 우는 걸까요? 역시 낮에 혼자 두고 나가서 외로웠던 바람에 새벽에 저희가 있을 때는 더 우는 걸까요?”

“…설마. 얘가 우리를 알아보고 울지 말지를 정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그야, 이 아이의 엄마 아빠는 저희니까요.”

“…!?”

“지, 지금 내가… 뭘 들은 거고….”






사쿠사와 히나타의 이야기를 엿듣던 모두의 표정이 제각각 놀라움에 물들었다. 아래에 쭈그려 앉아 듣고 있던 이누나키는 놀라서 주저앉을 정도였다.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전혀 모를 두 사람은 그 이후로도 대화를 이어나갔다.






“엄마 아빠라니…. 그냥 평범하게 얘기하면 안 돼?”

“앗, 그렇죠? 둘 다 남자니까 둘 다 아빠인 걸로!”

“그게 아니라…. …아무튼. 그러면 내일 이야기할 거야?”

“네. 더 이상 모두를 속이는 건 안 될 것 같아요. 마음에 너무 걸려요. 저희가 이 방에서 몰래 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게.”

“그래. 그러면 내일 얘기하기 전에 미리 말해. 나도 같이 얘기하게.”

“앗, 아뇨! 저 혼자 말씀드릴게요. 어쨌든 제가 원해서 맞이한 아이고….”

“같이 얘기해. 너 혼자만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잖아. 어쨌든 나도 너랑 이 애를 여기에서 같이 키우기로 한 입장이고….”

“하지만…!”

“드, 들었어? 들었어요? 어, 엄마 아빠래요. 우리 막내 둘이…!”

“야광 팔찌가 아니라 다른 걸 보고 있던 거였구나!”

"Umm…. 나는 두 사람을 존중해. 아, 그럼 난 uncle인 건가?“

“무, 무슨 소리하는 겁니꺼, 모두! 저 둘이 그, 그럴 리가 없잖아예!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잖아예!?”

“츠무츠무. 그 발언은 좀…. 둘이 서로 좋아한다는데 성별이 무슨 걸림돌이 되겠어?”

“그게 아이라! 상식적으로 둘이 그, 그걸 해도 아기를 낳을 수 있을 리가 없다이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지금 이곳에 아츠무를 제외하고는 상식선을 따라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아츠무는 남은 건 주장밖에 없다는 눈빛으로 메이안을 쳐다보았지만, 그런 메이안은 크게 쇼크를 받은 사람마냥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히나타. 네가 방금 그랬잖아, 이 애의 엄마 아빠… 아니, 아빠들은 우리라고. 너, 내가 본인 자식을 책임지지 않고 나 몰라라 맡겨만 두는 사람으로 보여?”

“아뇨, 그건 아니죠…. ……죄송해요, 오미 상. 저 때문에 괜히….”

“됐어. 시작은 분명히 네가 원해서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나도 이 아이를 제법 아끼고 있으니까. 적어도… 적어도,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기 전까지라도 지켜주고 싶어서 그래.”

“오미 상….”

“그런 반응 말고. 당연한 거야. 히나타 너는 계속 고민하던 거나 마저 해. 밥은 내가 먹일 테니까, 아이 나한테 주고.”

“네! 이대로 안으시면 돼요! 계속 고민해봤는데, 보낼 때는 보내더라도 역시 아이 이름은 지어주는 게 좋겠죠? 계속 아기라고 부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니까….”

“응. 이름은 지어주자. 가서 이름이 바뀐다고 해도 어쨌든 같이 있는 동안은 계속 불러줘야 하니까.”

“아… 안 돼…. 그건 안 된다고….”

“Umm?”

“주장? 왜 그러는… …?!”






이어지는 대화에도 망부석이라도 된 듯 서 있던 메이안은, 마지막으로 들려오는 사쿠사의 말에 중얼거리더니 세차게 방문을 열어젖혔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애기, 잘 있었어? 응, 삼촌 왔어, 삼촌. 밥 먹고 있었구나, 애기.”

“주장. 손부터 씻고 와서 만져주세요. 아기 고양이는 아직 면역력이 약해서 세균이 닿으면 곰팡이성피부염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으응, 알았어…. 씻고 올게.”

“나! 나는 손소독제 뿌리고 왔어! 만져도 되지?!”

“앗, 보쿠토 상! 정말 죄송한데 손소독제 말고 화장실에 비치해 둔 비누로 씻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 손소독제의 향이 고양이한테 안 좋을 수도 있어서… 죄송해요!”

“헉, 진짜?! 몰랐어! 당장 가서 다시 씻고 올게!”

“뭐랄까… 우리도 우리지만, 막둥이랑 사쿠사는 고양이랑 며칠 더 오래 봤다고, 확실히 진짜 부모 같네.”

“Absolutely. 둘이 아기 육아 일기 어플도 깔아서 쓰고 있다던데.”

“뭐, 진짜가. 쇼요 군! 내도 그거 초대해주라!”

“넌 안 돼. 그건 우리 둘만 쓸 수 있어.”

“하? 왜 안 되는데!”

“그 어플이 부모 전용이라 아빠랑 엄마로 등록된 두 사람만 쓰고 볼 수 있는 거거든요. 다른 친척들이나 사람들이 보고 참견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오미 상이 사진 올리는 밴드 만들어 두셨는데 거기 초대해드릴게요! 괜찮죠, 오미 상?”

“뭐… 그 정도야.”

“와, 엄청 비싸게 구네. 퍼뜩 초대 좀 해 봐라. 내도 우리 애기 사진 좀 보게.”

“말은 똑바로 하지. ‘우리 애기’ 아니고 조카라고 해라.”

“하? 진짜 치사하게 구네. 됐다. 쇼요 군한테 초대해달라고 하면 된다. 그치, 쇼요 군?”

“아앗, 그게… 그 밴드 리더가 오미 상이라서 오미 상의 승낙이 없으면 초대가 안 되더라고요.”

“…….”

“이거 어쩌지. 치사한 리더라 초대 승낙 버튼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






사쿠사의 태도에 얄밉다는 표정을 지은 아츠무가, 결국에는 감정을 억누르는 표정으로 초대를 부탁했다. 잠시 고민하던 사쿠사는 단톡방에 밴드 초대 메시지를 올렸고, 이를 본 나머지 이들도 곧바로 밴드에 초대 요청을 보내었다.




초대가 승인되자 화면 위로 뜨는 사진들. 맨 처음 숙소에 왔던 날부터 찍어둔 수많은 사진이 한꺼번에 공개되자, 모두가 저마다의 반응을 내보이며 화면에 들어갈 모양새로 사진을 쭉 구경하기 시작했다.






“와. 지금도 이렇게 작은데 처음 온 날에는 더 작았네? 털도 완전 삐쭉삐쭉.”

“히나타, 히나타. 이 무늬는 뭐야? 왜 지금은 없고 이 때는 있어?”

“아, 그건 크면서 점점 연해지는 무늬인가 봐요. 자라면서 서서히 연해지는 색이 있고 진해지는 색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자세히 보면 아직 남아있긴 할 걸요? 여기에!”

“오! 그렇네! 사진 속보다 훨씬 연해! 신기하다!”

“와, 이 때는 막둥이 팔베개하고 잔 거야? 이거, 사쿠사가 찍었어?”

“네. 씻고 오니까 둘이 이러고 자고 있더라고요. 지금도 저보다는 히나타 품에 안겨야 더 잘 자요.”

“에, 뭐고. 왜 내는 안 보이나, 그 사진. 쇼요 군이랑 애기랑 같이 자는 사진 어딨는데.”

“응? 안 보여? 여기 이 사진첩에 있는데? 폴더명이 태양이랑 고양이 이모지인 사진첩.”

“내는 그런 사진첩 안 보이는데예.”

“넌 못 봐. 히나타랑 고양이가 같이 있는 사진은 멤버 등급 ‘삼촌’만 볼 수 있거든.”






사쿠사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 속 멤버 등급표를 보여주며 말했다. 리더인 사쿠사와 부리더인 히나타 아래로, ‘삼촌’이라는 등급 하나, 그리고 그보다 더 아래에 ‘회원’이라는 기본 등급이 하나 있었다.






“내는 왜 회원이가! 내도 애기 밥 사는 데에 돈 냈다이가! 내도 엄연한 삼촌인데!”

“츠무츠무, 혈연 관계를 돈으로 사려고 하면 안 되지.”

“Mammonist…."

“그래, 그러면 등급명은 바꿔줄게.”






말을 마치곤 즉시 ‘회원’ 등급에서 아츠무를 따로 뺀 사쿠사가 새로운 등급을 만들었다. ‘ATM’이라는 이름의 등급을. 그 모습을 보고 어이없다며 성을 내는 아츠무와, “오! 마침 이름 이니셜도 비슷한 느낌이야! 'ATSUMU'랑 ‘ATM’!” 하는 보쿠토가 있었다.






“이름 하니까 떠오른 건데, 막둥아. 고양이 이름은 지어줬어? 그 때 고민 중이었다며.”

“아, 맞다! 네! 결정했어요! 오늘 아침에 딱 생각났는데 돌아오자마자 말씀드린다는 게 그만 깜빡 했네요!”

“드디어 정했네. 그래서, 뭔데? 우리 애 이름.”

“사쿠사 날이 갈수록 뻔뻔해진다.”

“토마스도 ‘ATM’으로 가고 싶나요?”

“으으응, 내가 잘못 말했어. Fun fun. 재미있다고, haha."






내내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토마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 옆에서 이름이 궁금하다며 재차 물은 이누나키가 히나타의 답을 기다렸다.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히나타는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이누나키 상도 그렇고, 다른 분들께서도 종종 저를 ‘막둥이’라고 불러주시잖아요.”

“응, 그렇지?”

“그런데 이 아이는 저보다 더 막둥이… 그러니까 진짜 막둥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찐둥이라고 지으려다가….”

“Oh my goddess….”

“지으려다가? 지으려다가지? 확정 아닌 거제?”

“찐둥이? 귀여운데!”

“다행이다, 아가야. 작은 아빠가 도중에 생각을 바꿔주셨네.”






히나타의 이야기를 들은 토마스와 아츠무, 보쿠토와 사쿠사가 저마다의 반응을 내보였다. 그 반응을 보며 “역시 찐둥이는 조금 그렇죠?”라고 웃던 히나타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생각해도 찐둥이는 조금 그렇더라고요. 어플에서 일기 쓸 때도 ‘둥’이랑 ‘등’이랑 자꾸 잘못 쓸 것 같고.”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으응, 일단 잘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최종 이름은 뭔데.”

“그래도 진짜 막둥이라는 의미는 가져가고 싶어서, 찐둥이 대신…!”

“응. 대신?”

“찐빵이로 했어요!”

“히나타, 배고팠어? 찐빵이 먹고 싶으면 말을 하지.”

“가져가고 싶다던 원래 의미는 어디로 간 건데.”

“찐빵 먹고 싶다…!!”

“미안하다, 아가야. 작은 아빠한테 네 이름 결정권을 전부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담요랑 방석 디자인을 포기할 걸.”

“참고로 ‘찐빵’이 아니라 ‘찐빵이’예요! 아, 그래도 부를 때는 ‘찐빵아’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찐빵이야’는 조금 이상할 것 같으니까?”






아니,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 차마 겉으로는 내뱉지 못 할 지적을 삼킨 이누나키가 안타까운 히나타의 작명 센스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히나타맘’이라 불리는 이누나키라 해도 이건 조금 심하다 싶은 모양이었다. 그 옆의 아츠무는 “쇼요 군의 센스라는 건 모두 운동 신경으로 간 모양이다. 조물주가 스탯을 잘못 찍어주셨네….”라며 탄식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미 상. 아까 그 말 감사해요. 덕분에 정신을 좀 차린 것 같아요.”

“…사실은 나도 불안했어. 엄청 걱정됐고, 왜 갑자기 토를 하는지도 모르니 당황스럽더라. 그런데 아파하는 찐빵이랑, 찐빵이를 안고 떨고 있는 너를 보니 생각이 났어. 어릴 때의 기억이.”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바쁘셨고 누나와 형과도 나이 차이가 제법 나서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거든. 자주 아픈 편은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감기에 걸려 혼자 누워있을 때면 어린 마음에 서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었어. …뭐, 그 때는 나도 어렸을 때니까 아픈데 혼자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던 거겠지. 그렇게 혼자 앓다가 잠들고 깨어났을 땐, 어두운 방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이 계셨어. 내가 깰까 봐 불도 켜지 않고 나를 살피는 부모님이.






“어머니께선 내 이마를 어루만지며 이름을 불러주셨고, 아버지께선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주셨지. 그 뒤로 열린 방문 틈새에선 고개만 내민 채로 나를 걱정하는 누나와 형이 보였고. …아마 감기에 옮을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고 들었던 모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걱정되어서 고개만 내밀고 있던 것 같아.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상황만으로도 아픈 게 어느 정도는 낫는 느낌이 들었어. 진짜로 몸이 한순간에 나았던 건 아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혼자 아파하며 느꼈던 불안함이 가족의 애정 덕분에 사라져서 그렇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어.”

“…그랬구나.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뭐…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나 싶을 수도 있기는 한데. 결국엔 그거야.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플 때는 가장 의지하는 이의 얼굴이 보고 싶은 법이라고 생각했다는. 찐빵이가 지금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히나타 너일 테니까, 그런 네가 불안하고 초조해하면 찐빵이도 불안해 할 거라 생각해.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도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한 거고. …사실은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의지할 만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으니까. 든든하게 있어줘야지.”






히나타의 품에 안긴 찐빵이를 덮고 있는 담요 위로, 내내 손을 얹고 토닥거림을 멈추지 않던 사쿠사가 말했다. 고요하면서도 차분한 음성이 달리는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히나타는 어느 날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이 갑작스럽게 열이 나 쓰러져 경기에서 퇴장해야만 했던 날의 일을.




그 때, 아파서 먼저 회장을 나온 후 잠들었다가 깨어났던 순간. 어두운 방 안에 가득 찼던 죽의 향기, 살짝 열린 문 틈새로 보이던 선배들과 친구들의 표정. 모든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합 결과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자신을 향한 그 미소들까지도.






‘…아아, 그랬구나. 그 때, 그래서 다들 나에게 웃는 얼굴만을 보여준 거였어. 모두가 슬펐지만, 내가 더 슬퍼하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려던 거야. 그런 표정이었구나….’






깨달음을 얻은 히나타가 엷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말했다.






“다행이에요. 오미 상이, 모두가 함께 계셔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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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블랙자칼vs애들러스 배포전 

[우5/M막둥이 S쇼요랑 B블자랑 Y영원히 B배구하자 J제발] 부스에서 판매 및 통판 예정인 하이큐 2차 창작 소설 블자히나 소장본 < MSBY BJs : 막둥이 쇼요랑 블자랑 영원히 배구하자 즐겁게 사이좋게 > 1권의 SAMPLE 이었습니다! 


※ 선입금 / 통판 폼 링크 : (현장 수령 선입금 - 11/18  I  통판 수령 입금 - 11/18~11/28 )




20 ↑ 글 / @only4u_gintamaD / 은혼 히지긴 타카긴 오키긴 / 하이큐 사쿠히나 아카히나 츠무히나 시라히나 히나른 MSBY 블랙자칼and so on #메이벨썰 #메이벨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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