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강정 가게 총각 송태섭(29) x 늦깎이 배우 정대만(35)

현로, 일상물 입니다. 

커플링은 태섭대만 뿐이며, 태섭모브, 모브대만이 내용 중에 언급 될 수 있습니다.

주의 : OC 잔뜩 등장, 송준섭 생존 기반

본 이야기는 몽땅 허구 입니다.




1

"옆자리 임대 나갔대."

물 말은 밥 한 숟갈 위에 총각 김치 한 종지 얹어 입을 떡 벌렸던 태섭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진짜? 스티커 아직 붙었던데."

"어. 아까 박사장님 봤다."

"에이."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 대신 밥이나 마저 먹었다. 다른 밑반찬은 커녕 그냥 김치 하나로 떼우는 식사에도 무덤덤 해진지 오래다. 뭘 먹어도 그저 그래서 효율만 따지기로 했더니 오히려 간편하고 좋았다.

"태섭아."

형이 부르는 소리에 눈만 슥 올렸다. 입 안에 음식이 있어서 답은 못하고 제대로 들었다는 표시였다.

"형 생각에는, 메뉴 늘리자."

콧김을 내쉬고 고개를 다시 내렸다. 이미 다 끝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형은 저와 협상하려는 의지를 아직 굽히지 않은 듯 했다.

"잠깐 시즌 메뉴처럼 하고."

"그렇다고 어떻게 닭집에서 과일꼬치를 팔아."

"왜 못팔아. 선원이네도 대놓고 가게 앞에 매대 붙였더라. 매상 엄청 올랐다고 자랑하러 왔던데."

짜증나게. 형은 작게 쯧 골이 잔뜩 난 얼굴을 해보였다. 아예 밥상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리를 달달 떨었다. 이미 재료 준비하는 뒷주방이 되어버린거나 다름없는 본인의 자취방 보다도 고집스런 내 태도가 더 골치라는 듯이 푸푸 거리며 일부러 한숨을 쉬었다.

"뭐 얼마나? 하루 십만 원?"

"사십."

"뭐어?"

과일 쪼가리만으로 매일 사십만 원어치를 팔았다고 하면 저라도 기웃거리며 자랑할 것 같았다. 사실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게 쉬울 것 같지만 고정 인구로 그날 그날 먹고 사는 수준이라도 되면 대단한거다. 조금이라도 합리를 따지려고 들면 잇속을 챙기니 정없다 욕먹고, 일일이 맞춰주다보면 밑도 끝도 없이 예외적인 특혜-덤-를 요구 하고, 뜨내기들에겐 잘못 밉보여 인터넷에 글이라도 하나 올라오면 그달은 장사 쉬는게 더 마음이 편하다.

선원은 준섭 형 보다 세 살 많은 사람인데 옛날부터 이웃집에 살았다는 이유로 우리 형제에게 형 노릇을 해드는 사람이었다. 재작년부터 주식이니 코인이니 바람을 넣더니 올해는 무슨 컨설팅 회사에게 상담을 받아 20평 짜리 상가를 턱하니 임대해서 카페를 냈다. 월세 돌아오는 날 마다 죽는 소릴 내더니 요즘 유행이라는 탕후루인가 탕수육인가를 팔기 시작했나 보다.

"태섭아, 자리는 우리가 훨씬 좋잖아. 왜 그걸 못한다고 고집이야."

"형. 이거 되면 이거 한다 저거 되면 저거 한다 하다가는 단골들까지 잃는 수가 있어."

"닭강정 살 때 덤으로 주면?"

"그건 안 되고 세트 메뉴면... 아니? 안 한다니까!"

거의 다 넘어왔다 싶었는지 형은 히쭉 웃더니 몸을 일으켰다. 저와 다르게 한 쪽만 밑둥을 밀고 세팅 하지 않아도 삐쭉 서 있는 닭벼슬 같은 머리가 얄미웁게 움직였다.

"아, 그리고 양념통 거의 비었더라."

"알아...."

"천천히 먹고 나와라."

"어-."

성의 없이 대답하며 더 먹을 생각 없는 대접 속에서 숟가락만 휘저었다. 저만 세상에서 도태 되어있는 것인가 마음이 약해졌다. 그냥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걸까. 문 닫히는 소리가 한참 지난 뒤에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청과물 사장님과의 문자 내역을 찾았다. 양념 소스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재료를 거래하는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섭섭이네 입니다. 요즘 과일 쪽 시세가.... 

"에이씨."

핸드폰을 탁 던져버렸다. 치다 만 문자 위로 입력 취소 창이 떴다.






형 집 청소를 대충 해주고 양념을 재놓고 나오자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가게 오픈을 맡은 형은 오늘도 와서 수다만 떨고 가는 아줌마들 몇명을 상대하며 넉살 좋게 웃고 있었다. 조리 공간 포함해서 5평 정도 되는 작은 가게에 왜 사랑방을 만들지 못해서 난리인가 모르겠다. 

"오셨어요."

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가자 아주머니들이 순서대로 파도타기를 했다.

"동생 나올 시간이네 벌써!"

"어머 나 좀 봐. 여태 가게 내버려놓고!“

”밥은 먹고 하나? 와이리 말랐노.”

어색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갔다. 손을 씼고 있는데 한둘 씩 그만 가보겠다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다들 손에 닭강정 포장백을 하나씩 들고 있어 속이 좀 풀렸다. 

“태섭 총각. 그기 이번엔 주문 안 받아주나?”

물기를 닦아내고 기름 틀 확인을 하고 있는데 통칭 부산 아주머니가 혼자 남아 물었다. 

“아- 요즘에 고춧가루 값이 너무 올라가지고요.”

“맞나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아이가 안 그래도.”

원래 이맘 때즘이면 아는 집에만 수고비 정도만 조금 받고 김장을 해주긴 했었다. 아쉬워 하시는 얼굴이 눈에 밟혔지만 요즘 다른 데 신경쓰기가 싫어서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는데 옆의 인간이 먼저 선수를 쳤다.

“어차피 저희도 김치 먹어야하니까요. 제가 아주머니네 거는 두통 빼둘게요.”

“아 그래 줄래요? 너무 고맙지.“

말문이 막혔다. 형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아직 인사를 나누고 있어서 뒷짐만 쥐고 참았다. 

“나는 청년 김치 없으믄 밥을 몬먹는다. 고마워요. 카톡 주면 바로 입금하께.”

“예. 들어가세요!”

딸랑. 가게 문에 달아둔 작은 종이 찰랑이고, 가뿐해 보이는 발걸음이 시장 안 쪽으로 허위허위 사라졌다. 

“나 올해 김장 안 할거라고 했잖아!”

“그래도 매년 하던거 그렇게 딱 손절하면 네 말대로 단골부터 빠진다?“

사자후 처럼 내질러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풀 곳이 없었다.




5시 50분. 벽에 걸어둔 시계를 보다 푹 고개를 꺼트렸다. 카운터에 기대 서 있던 자세를 바로 세우고 포스기 마감 메뉴를 눌렀다. 중간 시재 맞춰둔 금액에서 10원도 늘지 않은 현금을 의미없이 한번 더 셌다.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조기마감 따위는 해본 적이 없었다. 지정 휴일 외에 쉬어 본 적도 없다. 누군가는 숨 막히는 원리원칙 주의자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신뢰, 약속, 믿음. 태섭은 그런 단어가 주는 단단함이 좋았다. 주방 마감은 한참 전에 끝내두었고 가스 밸브와 수전만 한번 더 확인 하고 전등을 스위치를 껐다. 직접 남대문 시장에서 발품 팔아 골라왔던 블라인드까지 치니 가게는 완벽히 잠들었다.

밖으로 나와 어닝 손잡이를 돌돌 돌리다 말고 휑뎅그레한 옆 점포의 빈 공간을 응시했다.

형 말대로 팔린 건지 부동산 연락처 스티커는 뜯겨나가 하얗게 자국만 남아 있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바닥 아래 지저분하던 일수 전단지나 문 틈에 꽂혀 있던 고지서 뭉치가 사라져있었다. 이번엔 뭐가 되려나. 심드렁하니 시선을 거두었다.


옆자리 점포는 소위 말하는 귀신들린 자리였다. 3개월 가면 평균이었고 진짜 잘 됐을 때가 1년하고 한두달 더 봤던 것 같다. 한 다섯번 쯤 주인이 바뀌었을 때부터는 업종이 뭐였는지 기억하기를 관뒀다.

제일 싫었던 때는 핸드폰 대리점이 들어왔던 시기였는데 하도 음악 소리로 시끄럽게 해서 앞에서 존나 야려봤던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하지만 석달만에 폰팔이 집은 폰케이스 집이 됐고, 몇번 더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다 가장 최근엔 츄러스 집이 되었다가 8개월 동안 계속 비어있더니 용케 새 주인을 만났나 보다.

폰케이스가 장사 접던 날 떠밀듯이 받은 핸드폰 케이스가 아직도 집 베란다에 잔뜩 있었다. 그때 가게 주인놈 새끼가 개기름 질질 흐르는 얼굴로 연락처 꽂아넣길래 가운데 손가락으로 화답 해줬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시장 입구에서 부터 6번째 자리, 분명 나쁜 자리는 아닌데 아무튼 희한했다. 부동산 계약할 때 옆자리가 아니라 지금 점포가 비어있었던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오래된 저층 아파트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 7층짜리 아파트가 마주 본 모양으로 네 동 모여있는 작은 단지는 부녀회의 잦은 민원으로 가로등이 생기기 전까진 너무 어두워서 해가 사라지면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녀왔어.”

집 안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현관에 맞붙은 좁은 주방 전구만 하나 불이 들어와있고 방 두개는 열린 채로 컴컴했고 나머지 방 하나는 굳게 닫혀있었다.

막내 동생은 최근에 아이패드를 사온 뒤로 방에 틀어박혀 있기만 했다. 뭘 그렇게 바쁜지 사람이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있으나 마나 한 작은 거실이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사람 사는 소리가 날 때가 더 나았다. 티브이를 틀어 대충 채널을 맞춰놓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한잔 따라 마셨다. 유리잔을 들고 싱크대를 돌아보았다. 쌓여있는 설겆이 거리에 결국 폭발했다.

“야 송아라!”

퉁, 유리컵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화내지 말자. 고작 이런 일로 욱하지 말자. 속으로 셋까지 셈을 하고 방문 앞에 가서 노크했다.

“나 들어간다.”

문을 열자 역시나 컴컴한 방안에 푸른 빛만 부옇게 흘러나왔다. 눈 나빠진다고 한 소리했어도 들은 척도 안 하는 여동생은 지금도 콧방귀도 뀌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송아라 좀 치워라. 집에 있으면서.”

“…….”

“안 들려? 빨래는 했어?”

“이따 하려고.”

“한밤 중에 누가 세탁기를 돌려.”

“내일 하면 되잖아.”

정작 사춘기 때는 얌전하던 애가 왜 나잇살 처먹고 저러는지 몰라 태섭은 실눈을 뜨고 저를 개무시중인 이불 도롱이만 노려봤다.

“사람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알 바 없냐? 여기 너 혼자 사는 집이야?”

기어코 한마디 더 덧붙였다. 부스럭대며 이불에서 얼굴만 빼꼼히 비춘 동생의 표정도 밝지는 않았다.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히스테리야? 내가 오빠 샌드백까지 해줘야해?”

“기본적인 동거인으로서 부탁 좀 한 걸 가지고, 내가 너한테 못할 말 했어?“

”아 됐어. 나가. 그래 오빠 말이 다 맞고 다 내 탓이니까. 좀 가.“

이런 설전도 지긋지긋 했다. 목소리를 키워봤자 기운만 빠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뒷걸음질로 밖으로 나와 문을 도로 닫아버렸다. 혈육 간에 이겨 먹으려고 드는 순간 못볼 꼴만 날 뿐이었다. 태섭은 이번에도 그냥 제 속을 태우는 것을 택했다.

같은 배 속에서 나온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저와 동생은 너무 달랐다. 저는 컵 설겆이 하나도 보고 넘기지 못하는데 동생은 이틀이고 삼일이고 잔치상만큼 쌓여있어도 방치다. 어차피 손도 씻을 겸 싱크대 앞에 섰다. 혹시 내가 다 해줘 버릇 해서 저 모냥이 되었나. 저거 밖에서 사람 구실은 하고 다니나. 알 길이 없다. 흘러내려가는 흰 거품을 향해 눈썹을 좁히고 푸르륵 입술만 한번 풀었다.


물소리까지 사라지니 집은 한없이 적막했다. 저녁 뉴스 데스크의 아나운서 목소리는 태섭의 귀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성큼성큼 주인 없이 비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빼꼼히 얼굴을 기울였다. 깜깜한 어둠이 싫어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망가진다 들었다. 그럼 누군가의 흔적이 묻은 방은 어떨까. 처음 몇달은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도둑 맞은 기분이었다. 3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그냥 체념 할 뿐이지 익숙해지는 일은 없었다. 

엄마의 방은 더럽지 않아도 쓸고 닦았고, 환기도 주기적으로 해주고, 한번씩 난방도 돌려주어서 골방 같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이 방은 버려진게 아니라 잠시 임무를 쉬고 있을 뿐이다. 태섭은 텁텁해지는 마음을 애써 털어냈다.

창문 옆에 달린 벽걸이 달력에는 동그라미 쳐진 숫자가 있다. 지금보다 4개월 뒤의 날짜를 가리키는 그어진 곡선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2

생각보다 옆 가게의 인테리어 공사는 시끄럽지 않게 지나갔다. 주방 배선과 수전 설비까지 그대로 쓰는 걸 보니 음식을 다루나 싶었다. 분진이 많이 날릴 까봐 곤두서 있었는데, 명함 받아놓고 싶을 정도로 그 어느 때 보다도 일처리가 깔끔한 업체였다. 파란 비닐 덮개 안으로 인부들이 들어왔다 나오기를 반복한 끝내 유령의 집은 2주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계열로 마감되어 있는 외장과 다르게 내부는 라탄 소재를 써서 꽤나 싱그러운 느낌을 주었다. 진짜 식물로 꾸며두면 요즘 인기 몰이하는 카페들 못지 않게 보일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테이블을 놓기엔 저희와 같은 평수의 작은 점포였다. 

“궁금해?”

“어?”

형의 목소리가 불쑥 뒤에서 솟았다. 아무 일도 아닌데 뭔가 들킨 기분이라 뒷머리를 매만졌다. 형은 나 대신 장을 보러 다녀와준 길이었다. 장바구니를 같이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응.. 뭐, 괜히 아쉬워서.”

사실 한달만 더 비어있으면 아예 저가 임대를 해서 가게를 넓혀 보려던 참이었다. 형은 회의적이었지만 어르신들이 어차피 찾아와서 시간 떼우다 가시는 걸 보고 아예 먹고 가는 매장이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미쳤다. 단일 메뉴가 점점 한계를 보이기도 했고. 주방도 넓어지면 어울리는 메뉴도 더 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쉬워 하지 마. 월세 맞추기도 빠듯했을 걸. 지금보다 세 배는 더 팔아야 할 텐데."

"3년이면 리뉴얼 한번 할 때도 됐고."

"진짜 아쉬웠나 본데."

"뭐...."

장바구니에서 식자재 상태를 확인했다. 한가한 틈을 타 새로운 사이드 메뉴와 토핑 종류를 만들어 볼까 싶었던 거라 분류는 금방 끝났다.

"그냥 탕후루."

"거기 양파 껍질만 좀 까주고 먼저 퇴근 해도 돼."

또 그 놈의 과일 사탕 타령이 시작될 것 같아 대놓고 말을 자르는데,

{ 배달의 민족 주문! )

주문서가 들어오는 타이밍이 좋았다. 피식 웃고 마는 형을 뒤로 하고 영수증을 확인하다가 눈이 커졌다.

“태권도장 주문이다.”

“오. 간만이네.“

어쩔 수 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주문서를 읽어주고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기본 양념맛 (5

더 매운맛-치즈 떡 추가 (5

간장맛-떡 추가 (5


순식간에 15인 분을 튀겨내고 각각의 소스 팬에 넣고 굴렸다. 팬에서 자글자글 볶아지는 것을 확인하며 배달 콜 버튼을 눌렀다. 앞치마를 벗어버리고 바이크 장갑을 찾아 꺼내들었다. 후드 앞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며 열쇠를 확인했다. 형은 알아서 서비스 치즈볼을 만들어 튀김 봉지에 담고 있었다.

"형, 미안한데 금방 다녀올거니까."

"뭘 새삼."

냉장고에서 치킨무까지 꺼내 봉지 속에 담아 내용물을 한번 더 눈으로 훑으면서 잰 걸음으로 문을 밀고 나갔다. 딸랑, 머리 위에서 퍼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갔다 온다?"

"괜히 서두르지 말고 조심하고."

형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줬다. 양손에 배달 봉투를 들고 공용 주차장에 세워 둔 오토바이로 달렸다. 꽁무니에 달아둔 배달 랙에 포장 봉투를 집어넣었다. 커스텀 해둔 케이스가 오랜만에 본업 하는 날이다. 

헬멧을 쓰자 시야가 단숨에 좁혀졌다. 시동을 넣고 배기음 상태를 들으며 주먹을 몇번 주물거렸다. 퉁, 왼발에 힘을 싣고 브레이크를 놓자마자 부드럽게 차체가 나아갔다. 학원가에 들어서기 전까지 속력을 내자 풍경들이 빠르게 다가왔다가 뒤로 사라졌다. 


가게를 개업한 19년도 말부터 태섭의 가족들에겐 두번째 암흑기가 찾아왔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만큼. 그래도 자신들은 버텨냈다. 버텼다는 표현이 겸손 할 정도로, 시장에 입주한 원로 가게들이 나가 자빠지는 와중에도 갓 창업한 닭강정 가게는 호황을 누렸다. 때문에 태섭은 지금의 위기에도 태연하게 굴어 볼 셈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단순한 운의 작용만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겨버렸으니까.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형을 집에 보내고 또 한가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옆가게 현장 보러 나온 간판 실장님이랑 눈인사 한번 하고 유튜브에서 요즘 잘 나가는 식당 비결 따위를 찾아보다 정신을 차리니 마감 시간이었다. 


가게 문단속을 하다가 힐긋 옆으로 시선을 보내니 시트지 작업까지 끝난 듯 했다. 내일 집기 들어오면 다음 주에 바로 가오픈 하겠는데? 어림잡아 남의 가게 투두 리스트를 헤아려 보다가 구경이나 좀 할까 싶어서 슬슬 물러나 적당한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기대로 커졌던 눈이 눈썹과 함께 구겨졌다. 

가게 정면을 전부 차지하는 채광 좋아보이던 유리벽에는 웬 남정네 사진만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계속)



캐러멜펀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