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춘향전을 모티브로 작성했습니다! 원전과 다른 부분도 많지만 즐겨주세요~



옛날 옛날 어느 고을에 애수댈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당집 아가씨가 살았는데, 어질고 총명하여 얼굴은 배꽃같았다. 서당에서 부모님 도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사람 마음을 헤아려 가르치니 고을 아이들이 잘 따랐다. 다만 친우를 대하는 것은 서툴러 책을 벗삼아 살아가더라.


참새같은 아이들 글도 가르치고 옛이야기도 들려주며 행복하게 살면 족하다 생각하던 수댈이, 어느날 서당 앞에서 아이들 글공부 소리 듣던 사내 보았도다. 행색은 꾀죄죄하니 행여 아이들 해코지라도 할까 수댈이 놀라 달려가며 소리치기를,


"아이들 겁먹게 다 큰 장정이 이런 곳에서 무얼 엿듣는 겝니까. 썩 나가시오!"


"에고에고 죄송하오 낭자. 그러나 나도 사정이 있으니 내 얘기 한번만 듣고 쫓아내시오."


사내 무릎꿇고 빌기를 저희 집이 원래 작게나마 벼슬을 해 와서 자기도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큰 불 나 초가삼간 홀랑 타 버렸다더라. 그러고 보니 그런 소문이 돌기는 했지. 꼬질꼬질 재투성이 저고리도 흔히 보던 삼베 무명보다 한때는 반질거렸을 것 같으니, 저 사내가 거짓을 고하는 것은 아니렸다. 수댈이 고개 끄덕이며 사내 앞에 앉고는,


"…그럼 수학을 하고 싶어 왔단 말이오?"


"그렇소. 갖고 있던 책이 반은 불타 막막하던 차에 여기 서당이 있다는 게 생각이 났소이다. 나 또한 맨입으로 신세 지는 건 원치 않으니 내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돕는 것이 어떻겠소? 그 외에도 서당이든 집안이든 잡일이라도 곤란한 일이 있다면 내 돕겠소."


"알겠소이다. 다만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니 훈장님과 상의하고 말 전할 테니,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시오."


그렇게 날 밝고 찾아온 사내를 서당에 들여 글시험 경전시험 보니 벼슬 준비한다던 말이 참으로 헛말은 아니렷다. 수댈이 헛기침하다 앞으로 할 일 조목조목 알려주는데, 문득 사내가 묻더라.


"그러고 보니 낭자 이름은 어떻게 되오?"


"서당이 있다는 건 알고 그 집 딸자식 이름은 모른단 말이오? …하하, 미안합니다. 내 농 좀 해 봤소. 그래도 이름을 묻는다면 우선 제 이름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 아니오?"


사내 말하길 제 이름 이몽룡이라. 수댈이도 제 이름 밝히고 서당 구경을 시켜주더라.


그렇게 날 밝고부터 같이 아이들도 가르치고, 글공부도 하고 어느덧 둘이 서로 시도 나누더라. 처음에는 경치가 멋지다며 주고받은 시에 어느덧 연정이 묻어 있거늘, 달 뜬 밤에도 얘기 나누는 시간이 잦아지더라.


"깊은 밤 구름이 달을 가리니,"


"그대의 아름다움 나만 볼 수 있구나."


"…어머나."


"이대로 영원히 수댈 낭자와 달만 봐도 좋을 것 같소."


"…그럴지도 모르겠소이다."


그렇게 날 밝고 아이들 찾아오니, 곧 수업이간이구나. 어제 알려준 것 다시 익히게 하고 글자 열 번 쓰기를 시키니. 아이들은 잠시 몽룡이한테 맡기고 바람 좀 쐬러 나온 수댈 시찰나온 이 고을 사또랑 마주친다.


"아, 나리! 안녕하십니까."


"후후…글 읽는 소리가 듣기 좋구나. 그래, 아이들은 잘 하고 있더냐?"


"물론이지요. 여름 시험에 말숙이랑 덕배가 소과에 합격하여 직접 호도 지어주었습니다. 훗날 조정에 나가 이조판서 김말숙 박덕배라 하면 조금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농도 하며 자랑스러운 듯 수댈이 웃어보이는데 그 때 몽룡이 뛰쳐나와 사또 향해 연신 절을 하더라.


"아이고, 사또나리 아니십니까! 이 벽지에 어쩐 일이십니까!"


"…벽지라 할 게 있더냐. 내 이 곳을 좋아하여 전부터 시찰을 겸해 종종 들렀다. 경치도 좋고, 글 읽는 소리도 좋지 않느냐. 그러고 보니 너는 여기서는 처음 보는데…어쩐 일로 있느냐?"


"몇 주 전에 도움을 청해오길래 저희가 거두었지요. 듣자하니 과거를 준비하는 이인데 집이 다 불타버려 의탁할 곳이 없다 하지 뭡니까. 지금은 저를 도와 아이도 가르치고 잡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느냐. 아, 뒤에 아이가 나와있구나."


그 말대로 어린 아이가 문틈으로 얼굴과 종이를 내밀고 수댈이를 바라보고 있을지라. 수댈이 아이한테 부리나케 달려가니 아이가 종이를 자랑스레 내밀고 웃더라.


"선생님! 열 번 쓰기 다 했습니다!"


"아…! 선생님이 미안하구나. 날이 너무 좋아 오래 나와 있었으니…공부가 끝나면 다같이 나들이라도 가자, 응? 보자…그래, 글씨도 또박또박 잘 썼구나. 아주 훌륭해. 연지야, 이게 무슨 자지?"


"익힐 습 자입니다!"


"그래. 모양을 보니 필순도 잘 맞춰 썼구나. 잘 했다, 연지야."


"후후…네 선생님 말씀이 맞다. 총명하니 장차 크게 될 아이로구나."


"어, 사또님! 안녕하세요!"


"그래, 반갑다. 오늘도 사탕을 가져왔단다. 너희가 모두 스무 명이었지? 수댈 선생님께 우선 드릴 테니 사이좋게 나눠 먹거라. 다 먹으면 이 닦는 것도 잊지 말고."


"와! 감사합니다!"


"나는 다른 곳을 살피러 이만 가 보겠다. 나중에 또 올 것이니 잘 지내고 있거라."


"아이고, 나리, 안녕히 가십시오!"


"네, 나리. 조심히 돌아가시지요."


그렇게 수댈이는 아이들 모아놓고 나들이 갈 준비 하는데, 몽룡이는 동행하지 않는단다. 그것이 의아해 이유를 묻자 공부를 한다 하니, 더 말을 얹을 수도 없어 수댈이 잠깐 고민하다 아이들 데리고 나가더라.


그 뒷모습 바라보며 몽룡이 생각하기를 과거가 중하고 입신양명이 중하지 나들이가 무엇이 중한지고. 선왕 대부터 여인이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는 법도 없어졌다는데 수댈 낭자는 무엇이 그리 좋다고 총명함은 썩히고 저 귀찮은 아이들만 돌보고 있으니 한심하도다. 장원급제 입신양명이면 명예도 부도 다 가질 수 있거늘 저 우둔한 아이들 가르칠 생각만 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차도다.


그러다 가을 되며 서당 앞 담장에 방이 붙기를 올겨울 본성에서 과거가 열린다 하니, 수댈이 기뻐하며 몽룡이 방 앞에 끌고 오네. 이리 총명한데 장원급제도 아이들 장난 아니냐며 좋아하는 수댈이 옆에서 몽룡이 말 한마디 없더라. 이를 기이하게 여긴 수댈이 몽룡이 얼굴 들여다보는데, 그러고도 한참 말도 않던 몽룡이 드디어 입 열며 말하기를,


"수댈 낭자는 내가 정말 입신양명하길 바라오?"


"그걸 질문이라고 하시오! 사람의 꿈이니 목표는 저마다 달라도 모두 소중한 것이니, 어찌 같이 바라지 않을 수가 있겠소. 더군다나 도령의 꿈이잖소."


"내 입신양명하여 이 고을에 발도 안 붙이리라는 생각은 안 해 봤소?"


그 말에 엷게 웃던 수댈이 입꼬리 내려가더라. 그 얼굴 들여다보던 몽룡 말하기를, 


"알아주지도 않는 벼슬 한 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너는 이런 인생을 살면 안 된다 들어왔고, 이름뿐인 벼슬 있어봤자 지금의 내겐 아무 소용 없음을 깨달았소. 이런 정도 안 붙는 고장 하루빨리 떠야지 어쩌겠는가?"


"그럼 정말로 그 생각 하나로 그리 열심히 수학했던 것이오? 그런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은 어찌 가르쳤소?"


"어찌 가르치기는. 경전이 내게 애정이 있어 나를 가르치겠소?"


그 말에 수댈이 기막혀 한숨만 내쉬더라. 본성은 꽤 멀테니 다시 오긴 힘들겠지 생각했건만 저놈 말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차나니. 정도 안 붙는다. 그럼 학동들에게도 저한테도 정이 안 붙은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쳐 수댈이 표정 어둠만 짙어지거늘 몽룡이 잠자코 방만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간 몽룡 도령이 써온 연시요 연서는 또 다 무어란 말이오?"


"그 정도 글이야 낭자도 마음만 먹으면 경전을 필사하듯 아무 감정 없이 술술 쓸 수 있는 것 아니오? 이곳을 벗어나 높은 벼슬 하여 부유하고 좋은 집안 장가가는 것이 어릴 적부터 내 삶의 목표였소. 내 이리 낭자의 마음을 잡아두면 낭자가 나를 도울 것이 명백하니,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 아니오."


그 말 듣고 수댈이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 있다 등 돌리며 말하기를,


"아주 기고만장 코가 솟아 제 잘난 줄만 아니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데, 그러다 낙방이라도 하면 거처 하나 없는 도령 신세가 어찌 될지 참으로 재미지겠소."


그 말 끝으로 먼저 발길 돌려버리더라. 그대로 산 속 샘터에 들어가 한참을 샘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댈이 눈에 갑자기 눈물방울 고이다 툭 떨어지니. 그렇게 달 뜰 때까지 한참을 눈물만 뚝뚝 흘리다 문득 서러워져 수댈이 곡하기 시작한다. 에고에고 설운지고, 낙방이나 해 버려라. 은혜 잊은 놈 잘 되는 꼴 본 적이 없다, 에고에고 설운지고. 오늘 하루만 펑펑 울고 내일은 잊어버리리라.


"흑, 그런 정신머리 가진 놈을 부잣집에서 잘도 사위로 삼겠다! 너는, 너는 사흘만에 색시한테 소박맞고 내쫓길 거다!"


그렇게 꾸깃꾸깃 치맛자락 구겨가며 한참을 곡을 하는데, 문득 인기척 느껴지나니. 수댈 놀라 고개 돌리니 어렴풋이 보이는 인영이 이 고을 사또이더라. 제 무언가 잘못한 적 있나 수댈이 곰곰이 생각할 적에 사또 인자하게 웃으며 가로되,


"왜 이런 샘터에서 혼자 울고 있느냐. 이런 한밤중에 곡을 하면 기가 금방 쇠하여 쓰러지기 쉽다. 더군다나 이제 곧 겨울이거늘…공기도 이리 차갑지 않느냐. 몸을 덥힐 필요가 있겠구나."


수댈이 눈만 깜빡이는데 도포자락 학 날개짓하듯 사뿐히 어깨에 내려앉아 숨 들이키고 그제야 입 열더라.


"나, 나리…! 죄송합니다, 밤중에 소란을…. 아니, 저…나리도 춥지 않으십니까."


"괜찮다. 어차피 민가도 아니지 않느냐. 도포도, 나야 계속 입고 있었으니 지금은 없어도 된다.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면 좋겠구나."


"…네, 아주 따스하옵니다. 감사합니다, 나리."


"…여긴 자주 오는 것 같더구나. 후후, 흥미로운 우연이지. 나 또한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이곳을 찾는데 말이야. 이런 곳에서 곡까지 하고 있으면 무언가 억울한 일이 있다는 뜻일 터이니…괜찮다면 내게 말해주겠느냐."


"들으시면 한심하다 생각하실 겁니다. 저 또한…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날 밝으면 잊혀질 사소한 일이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나는 이 고을의 관리이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말해주거라."


주저하던 수댈 천천히 입 열며 지난 사연 읊으니, 꾹꾹 누른 설움 뚝뚝 떨어지고 꾸깃꾸깃 치맛자락 또다시 주름지네. 갈곳잃은 처지가 가여워 골방 내어주고 일도 시키며 수학 도왔더니, 어느샌가 백년해로 입에 올려 사랑을 속삭이더랍니다. 철썩같이 믿었거늘 그 모든 게 거짓이니, 입신양명 눈이 멀어 은혜를 저버리니. 경전은 알아도 은혜는 모르니 그야말로 배은망덕 아닙니까. 수댈이 서러워 훌쩍거리릴 적에 간간히 눈물만 톡톡 닦아주며 사또 묵묵히 듣고만 있더라. 한참 푸념하던 수댈 한숨 내쉬니, 역시나 읊조리며 사또 고개 끄덕인다.


"…어찌 이 일을 아십니까?"


"아, 아니. 조금 소문을 들어서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방 때문인지 최근 본성으로 떠난다 한 이들이 몇 있던데."


"…그렇겠지요. 아무튼 지금은 다 지난 일입니다. 원망스럽기는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찌 담겠습니까."


그 말 들은 사또 빙긋 웃다 사뿐히 수댈에게 다가가더라.


"잘 생각했다."


"무얼…말입니까?"


"수댈아. 그런 사내는 잊어버리고, 내게 와 주지 않겠느냐.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다."


그리 말하는 사또 뒤에 하얀 달빛 비치나니, 그 광경 가만히 바라보던 수댈 느릿하게 눈꺼풀 닫다 도로 열며 입 열더라.


"하지만 나리께서는…어떤 연유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와 정이라도 통하시겠다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라고 하니 사또 눈 크게 뜨다 소리내어 웃더라.


"하하하…그래, 너라면 그리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네 말대로 이미 엎질러진 물 어찌 주워 담겠느냐. 내 이미 오래 전부터 네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된 것을."


"나리…?"


"내 정식으로 발령받기 전 고을 동향을 보러 시찰 나왔을 적에 곤란한 일이 있었다. 그때 네가 나를 도와주었는데 기억하련지 모르겠구나. 듣자하니 네가 이 고을 서당에 있다 하여 그 후로도 시찰 다니는 길에 너를 종종 멀리서 보아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글공부 소리가 어찌나 경쾌하던지…."


"그러고 보니, 직접 오시기도 꽤 자주 오셨었지요. 아이들 과자니 사탕도 쥐어 주시고…. 이것저것 제게 묻기도 하시고…."


"그래. 하지만 사실, 조금 더 가까이서 너를 보고 싶었다. 더 얘기도 나누고. …이리 말하면 조금 이상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무슨…연유로 말입니까?"


"너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니라. 너라는 이가 평소에는 어찌 지낼까, 무얼 할까 궁금해졌다."


사또 말에 수댈이 놀라 말이 없더라. 괜히 허리춤에 노리개만 만지작거리는데 사또 또한 어색하게 웃다 말 잇기를,


"이런 때일수록 다가오는 이 조심하라는 어르신들 말씀이야 나도 많이 들었지. 너야 소문날 정도로 총명한 아이이고, 지금 제일 심란한 이는 너일 것이니 네가 조심스러운 마음이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천히 나에 대해 알아가주지 않겠느냐. 내가 얼마나 네게 믿음직한 자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나를 받아줘도 늦지 않다. 다만 지금은…그 곁이라도 조금 내어주지 않겠느냐."


"나리…."


"…그 놈도 참. 어찌 이런 고운 눈에 눈물짓게 만드는고. 이제 곧 자시이니 민가까지만이라도 같이 가자꾸나. 발밑이 어두우니 조심하거라."


그렇게 수댈이 사또랑 말없이 걷다 정승 보일 무렵 눈인사만 하고 말없이 헤어지더라. 수댈이 모습 멀어질 제 사또 생각하기를 그 탐욕스러운 뱀 같은 사내가 드디어 우리 토끼같은 수댈이한테서 떨어져 나갔구나. 서당에 갔을 제 다 제쳐두고 그렇게 반길 적부터 그 성미를 짐작이야 했으나…천천히 수를 쓰다 서당 근처 방만 조금 바꾸어 붙였을 뿐인데 그리 출세에 목맨 놈인지라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이 쉽게 속아넘어가니, 마음에 스스로도 품어줄 곳 없는 놈이 잘도 감언이설로 수댈이를 꿰어냈구나. 더군다나 그런 놈이 벼슬길 올라봤자 얼마나 잘 일할 수 있으리오. 관리로서 그릇도 작으니 역시 총명한 수댈이 곁에 어울릴 사내는 절대 아니로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잠시 이 고을 살던 때도 수댈이는 지금과 똑같았는데. 언젠가 얘기 나눌 적에 노리개는 어디서 났나 기억하는데 누구에게서 났는지는 아직 기억 못하는 것이 조금 서운하구나. 하지만 기억을 못한대도, 나게 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조용히 나들길 바라보던 사또 이내 등 돌려 처소로 향하더라.


그렇게 날이 밝고도, 그 후로도 사또 꼬박꼬박 수댈이 찾아오나니. 처음에는 주저하던 수댈이도 춘풍에 눈녹듯 사르르 마음을 열더라. 그렇게 둘이 마을 구경도 하고 시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겨울 지나 눈 녹고 복사꽃 피어날 무렵에는 어느새 둘 손바닥은 맞닿고 수댈이 몽룡이 생각은 꿈에도 없더라.


"나리, 복사꽃이 만개하니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꽃나무 아래 수댈이 미소지으니, 멍하니 그 광경 보던 사또 천천히 수댈이에게 다가가 뺨에 붙은 꽃잎 떼어 준다.


"그렇구나. …꽃비가 그대 얼굴 가리기를 대신 자기를 보라 애쓰는 것이렸다." 


"나, 나리도 참…. 못하는 말씀이 없으시네요!"


"후후…사실을 고한 것 뿐이다. 꽃이 제 아무리 아름다운들 너에 비하겠느냐. …그래. 수댈아, 내 너를 이리로 데려온 이유를 알겠느냐?"


 그 말 들은 수댈이 생각하되, 나리께서 무언가 중요한 말씀 하시려나 보다. 하지만 그 중요한 말씀이 무언지 짐작은 가도 급하게 잘못 짚었다 망신살 뻗칠까 입이 떨어지지 않아 수댈이 가만히 사또 얼굴만 들여다보더라.


"알지만 자신이 없는 것 같구나. 네가 생각한 것이 곧 정답이거늘 어찌하여 망설이는고. …수댈아, 내 너와 혼약을 맺고 싶다."


"나리…! 하지만…."


"네가 왜 그리 말하는지도 짐작하고 있다. 그래, 너는 내가 관리라서 걱정하는 것이렸다. 하지만 고작 출신과 신분이 다르다는 것이 우리 연정을 방해할 이유더냐? 나는 그리 약한 마음으로 네게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리…나리는 그리 생각하셔도, 과연 다른 분들께서도 그리 생각하실까요. 그게 걱정되어 여쭙는 것입니다."


그 말 들은 사또 고개 끄덕이다 말 잇기를,


"맞다, 네가 걱정하던 대로렸다. 그래서 내 미리 손을 써 두었으니…관아 놈들이 네 출신 때문에 해코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는 총명한 아이니, 너를 증명해낼 수 있을 테지. …그래, 세상만사 순탄한 것 하나 없다더니 기어이 너를 시험하겠다는구나. 그 시험을 보아도 괜찮겠느냐."


"…예. 되려 그리 하면 뒷말은 몰라도 면전에 욕할 이는 줄겠지요."


수댈이 눈 보고 사또가 빙긋이 웃으며 시험에 대해 계속 가로되, 그 시험은 학식과 지혜를 보는 시험이라.


"자신있어할 것 같았다. 혼례를 치루고 어느 정도 네 신변이 정리되면…내 최소한…네가 서당 경영을 계속 할 수 있게 힘을 써 보마. 직접 가르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대대로 너희 서당은 이곳 관아에도 인재를 많이 보냈다는 역사가 있다 알고 있다. 그러니 잘 된 일이라며 다른 이들도 반길지도 모르겠구나. …수댈아, 나와 같이 해주지 않겠느냐. 너만 괜찮다면, 다 괜찮다."


"나리…."


"나리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여보라고 불러주지 않겠느냐."


"그…여보…."


그 말 들은 사또 활짝 웃더니 수댈이에게 입맞추더라.


"하하…그래, 이리 고운 이가 내 색시라니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내로구나. 수댈아, 나와 함께 해주어 고맙다."


얼마 지나 사또 수댈이 데리고 관아 사람들과 인사시키는데 모두 깍듯이 대하더라. 그리고 보름 지나 수댈이 사또와 무사히 혼례 올리니, 기뻐하지 않는 이 없더라. 그 후로도 사이좋게 고을 돌보다 원앙처럼 잉꼬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니 그 누가 기뻐하지 않으리오.


그러고 보니, 몽룡이는 어찌 되었을꼬.


"…그런 건 알아서 좋을 게 없을 것 같군."


 …그만 알아보는 게 좋겠구나.

『드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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