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볍게 일단 손풀기로 쓴 글, 추후 수정 및 덧붙일 예정

- 오이모브 묘사가 약간 있습니다



이와이즈미는 생각했다. 오늘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거지? 몸을 기분 나쁘게 늘어지게 만들던 취기는 이미 겨울바람에 달아난지 오래였다. 아니지, 바람 탓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이와이즈미는 다시 생각했다. 어찌됐든 오늘 썩 운이 좋지 않은 걸 알았을 때 일찌감치 집에 들어와서 잠이나 잤어야 했는데. 아침에는 멀쩡하게 서있던 앞사람이 제 옷에 커피를 쏟았다. 다행스럽게도 입고 있던 후드는 검은색이라 흉하게 물든 옷을 하루종일 입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오늘 일어난 일들 중 유일한 행운이었다. 오후에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탓에, 아슬하게 건물에 맞춰 갔다가 수업시간에 늦었다. 오늘따라 영 심통이 나있던 전공교수는 이와이즈미에게만 다음 시간까지 짧은 레포트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몇 주 전부터 잡혀있던 동기들간의 술자리는 평소와 비슷하게 시덥지 않은 이야기투성이었으나, 다들 술기운이 오르자 말들의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사이가 미묘하기로 유명했던 두 놈이 멱살을 잡기까지에는 그닥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 평소에 운동을 하고 키도 큰 것으로 유명한데다 사명감까지 투철한 이와이즈미가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 사이를 막아섰다가 취해서 어설프게 움직이던 놈한테 얼굴을 얻어맞았다. 내일쯤이면 분명 턱이 시퍼렇게 멍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거의 막차에 가까운 지하철을 타고,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내린 이와이즈미에게는 더이상 그 어떤 생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어서 집에 가서 씻고,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는 맹목적인 목적만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다니지 않던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멀쩡한 남자도 칼에 맞고 시신으로 발견되는 세상 속에서 이와이즈미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위험은 염두에 두는 편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들어서지 않을 길이었지만 불행히도 그 지름길은 집까지의 거리를 대략 10분 단축시켜 주었고, 이와이즈미에게는 그 10분 일찍 집에 도착하는 것이 간절했다.

그냥 그랬을 뿐이었다.

좁은 골목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의 폭밖에는 되지 않았다. 겨울의 밤은 길고, 또 달조차 잘 들지 않을 정도로 침침하다. 이와이즈미는 반쯤 골목을 횡단하고 나서야 그 골목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보다 먼저 골목 중간쯤에 멈춰 서있던 사람이, 아니 사람들이 있었다.

"어..."

이와이즈미는 헛숨을 들이켰다. 와 미친. 여기서 끝까지 가려고 한 걸까. 상대를 벽에 거의 가두듯이 벽에 몰아붙이고 입을 맞추던 남자의 손이, 벽에 기대선 사람의 바지에 걸쳐져 있는 것을 보고 이와이즈미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길바닥에 붙어먹는 것보다 더 이와이즈미를 놀라게 것은, 그 둘이 같은 남성이었던 거지만. 이제와서 뒤돌아가는 것도 웃기고.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거다, 나는 아무 것도 못 본 거다. 이와이즈미는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아는 사람이야? 토오루?"

토오루.

흔한 이름이잖아. 괜한 생각하지 말자, 이와이즈미. 그러나 항상 생각보다는 본능이 빠르다. 땅에 박힌 것 같던 시선을 끌어올린 것은 이와이즈미의 한 가닥 본능이었고, 익숙한 눈과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알아본 것은 빌어먹게도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겪어온 경험이었다. 아. 이와이즈미는 저 눈동자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는지 명백하게 의도를 띈 채로 이쪽을 응시해왔다. 뭘까, 쟤 지금 무슨. 분명 오이카와가 저를 잘 아는 것만큼, 이와이즈미 역시 오이카와를 잘 안다고, 그 놈처럼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나름 프라이드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옆 골목에서 비쳐들어온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겨우 이목구비만 보이는 저 사람은 마치 너는 나를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문득 뒷걸음질을 쳤다. 한 발자국을 떼니, 그 다음은 쉬웠다. 마치 이음새가 고장난 것처럼 어딘가 어색한 몸을 움직여 단숨에 골목을 빠져나왔다. 숨이 턱 아래까지 차오르기 직전에야 이와이즈미는 자기가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집이자, 그의 소꿉친구인 오이카와가 같이 살고 있는 집에서는 그 골목 안쪽이 평범한 다른 날들처럼 새까맣게 보였다.

소꿉친구에게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와이즈미는 이불 위에 뉘인 몸을 뒤척였다. 오이카와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우선 나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는 왜 아까 충격을 먹은 거지?

대답은 쉬웠다. 오이카와가 남자와 키스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분명 키스보다 더 한 진도로 나갈 것 같은 텐션을 가지고.

나는 그렇다면 친구로서, 오이카와한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처지인가? 그... 성적지향성이야,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참견은 그냥 밖에서 그러지말라 정도일까.

그런데 애초에 내가 참견을 할 수 있는 문제인가. 이와이즈미는 아까 본 눈빛을 떠올렸다. 그는 여태까지는 한 번도 오이카와한테 완전한 타인으로서 배제당해 본 경험이 없었다. 만약 내가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고, 문득 눈이 마주친 상황이라면 오이카와는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봤을까.

이와이즈미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선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선잠에 들 때까지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로리아네스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