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피는 욕망을 지배한다

Written By Pretty Devil

 

 

 

 

1. 계급사회(5)

 

 

 

 

압도적인 살기가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브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았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붉은 머리 소년은 으르렁대며 이를 드러낸 대형 멍멍이 -물론 이브 혼자만의 표현일 뿐, 실제로는 굉장히 멋지고 위협적인 늑대다. -를 갈기갈기 찢어버릴지 모르므로.

 

안 돼.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어.

 

이브는 양 팔을 벌려 으르렁대는 듀크를 보호하듯 감싸고 섰다. 체이스의 한쪽 눈썹이 꿈틀대며 붉은 눈동자를 지닌 소년을 향해 차가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지금 뭐하는 짓인데?”

“…….”

“이브, 저게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늑대야, 늑대. 우리 뱀파이어에게 있어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존재, 라이칸이라고.”

“…알아.”

“아는 놈이, 지금 내 앞을 가로막겠다고? 저 야만스러운 짐승 새끼가 네 어깨를 무는 걸 봤는데도 너는 지금 저 짐승을 보호한다는 거야? 내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해?”

 

이브는 힐끗 고개를 돌려 으르렁대는 늑대의 노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콧잔등에 주름이 지며 한껏 살기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듀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늑대에게 확신을 주었다. 걱정 마, 절대 너 티끌하나 다치지 못하게 할 거야.

 

붉은 눈동자에 깃든 확신을 읽어낸 검은 늑대는 살기와 이를 감추고 이브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현명한 판단이자 이브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 체이스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는 걸 소년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뭐야. 저 라이칸과 아는 사이야? 와, 시발. 언제부터?”

“…욕하지 마. 그래, 네 말대로 이 라이칸은 안 돼. 절대로 안 된다고.”

 

체이스가 내뱉은 욕설엔 솔직히 놀랐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욕까지 쉽게 쉽게 뱉을 줄은 상상조차 못한 탓이었다. 그럼에도 이브 또한 지지 않았다. 이건 질 수가 없는 문제이었기도 했거니와 유일한 친구를 저로 인해 잃어버릴 수 없었다.

 

“이 라이칸을 왜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지 이유라도 듣자, 라고 말하고 싶은데 안 돼. 이미 너랑 엮였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저 짐승은 죽을 이유가 충분하거든.”

 

푸른 눈에 비친 안광은 분명, 조금 전 이브가 뿜어내던 그것과 똑같았다.

 

광기. 바로 광기였다.

 

흠칫 하며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체이스는 한쪽 입 꼬리만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두 눈동자엔 웃음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채로. 이브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압도적인 광기 앞에 저절로 무릎이 떨린다. 그렇다한들 이렇게 쉽게 굴복할 순 없었다. 체이스가 아다마스라면 이브 또한 모나르카였고, 두 소년은 뱀파이어의 최정상 계급인 솔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브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광기를 뿜어내며 제 앞에 서 있는 뱀파이어는 훨씬 살인에 대한 경험이 많은 놈이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브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터였다. 소중하고 유일한 친구를 제 일족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이브.”

“내 친구야. 비웃어도, 경멸해도 할 수 없지만 듀크는 우리가 뱀파이어와 라이칸이기 이전부터 함께 해 온 내 친구라고. 그런 친구를 내가 다치게 할 것 같아?”

 

그때 듀크가 한 마디 덧붙였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건 너뿐이겠지, 에비.”

 

체이스의 눈썹이 또 한 번 꿈틀거렸다.

 

“에비? 에비라고?”

 

이브는 입술을 깨물었다. ‘경험’의 차이는 무시 못 한다. 지금 상황에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딱 하나 뿐이었다. 소년은 흘끗 시선을 듀크에게 주며 입술로 중얼거렸다. 내가 신경을 돌리게 만들면 너는 무조건 여기서 사라져. 이브의 마음을 눈치 챈 듀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언제부터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 친구놀이는 그만 끝내.”

“지랄하지 마. 내가 만든 관계에 네가 망칠 자격은 없어.”

“아하, 그래? 그러면 내가 저 짐승새끼를 죽여 버리면 되겠다. 그렇지? 이브.”

 

싱긋 웃는 체이스는 더 없이 위압적이었다. 이브는 입술을 한 번 깨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소년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체이스를 향해 살짝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며 비틀거렸다. 순간, 체이스가 뿜어내던 광기가 사라지고 이브에게 쏜살같이 달려와 소년을 부축했다.

 

“뭐야, 왜 그래!”

“…나 허기 져, 체이스. 네… 피를 마시고 싶어.”

 

체이스의 얼굴이 거짓말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은 늑대는 숲을 빠져나갔다. 이브에게 한 마디를 던지고서.

 

‘이브, 나 역시 너를 원해. 너도 알겠지만.’

 

이번엔 이브의 얼굴이 붉어져버렸다. 망할, 저 망할 짐승이!

 

“이브, 괜찮아? 자, 얼른 내 피를 마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하고 능글맞은 체이스로 돌아왔다. 이브는 내심 안도하며 촉각을 곤두세운 채 듀크가 제대로 떠난 게 맞는지 확인했다. 체이스가 툴툴대며 한 마디를 던졌다.

 

“네 멍멍이 간 거 알아. 싸울 마음도 없으니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어차피 연기였잖아. 연기도 진짜 못하는 거 알아?”


이 뱀파이어와의 대화는 이브를 계속해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발끈하게 만들고 이상하게 유치해지고 만다.

소년은 체이스에게서 떨어졌다. 듀크가 사정범위 안에서 사라졌다면 어설픈 연기 따위 더는 할 필요가 없다. 본래대로 돌아온 이브의 모습 앞에 체이스는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저 멍멍이 라이칸 후계자 맞지? 대체 저 후계자랑은 언제부터 친구를 해 먹는 사이였어? 어? 말해 봐.”

 

이브는 곁눈질을 한 번 한 뒤 콧방귀를 꼈다. 그래, 적어도 너보다는 훨씬 오래전부터 친구였고 소중한 관계가 되었긴 하지.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든 이브는 다짜고짜 체이스의 어깨를 확인했다.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핏자국은 물론이요, 박힌 자국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히 회복되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걱정했어?”

“당연하지. 은이 박혔는데 어떻게 걱정 안 할 수가, 흡?!”

 

이브는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허리가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제 말이 묻혔다. 부드러운 입술에 의해서. 지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강렬한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푸른 안광은 번들대는 욕망으로 넘실댔고, 그 욕망은 페로몬이라는 매개가 되어 이브의 코끝으로 들어가 안을 들쑤셨다. 맙소사! 이건 정말로 위험하다! 소년은 있는 힘껏 붉은 머리의 소년을 밀쳐냈다.

 

“미, 미쳤어?!”

“이 정도는 봐 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잖아.”

 

하긴, 겨우 입술이 맞닿은 것뿐이다. 이런 걸로 유난 떠는 모양새도 별로이긴 할 터. 어차피, 어차피 스무 살 결혼식을 하고 나면 이런 짓, 저런 짓도 하게 될 건데….

 

이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이브 모나르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 이렇게 밝히는 놈이었어?’

 

“내 사랑은 대체 무슨 생각에 빠진 걸까? 설마… 나를 덮치고 싶은 건 아니겠지?”

 

경박스럽게 양 손을 엑스자로 교차해서 웃기지도 않는 포즈를 취하는 체이스를 바라보며 이브는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 찼다. 저 새끼를 죽여 버릴 수도 없고!

 

“치료 빨리 받아 다행이다.”

“이브. 나도 애칭하나 만들어야겠다. 너를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

“엘이라고 부를게. 그래도 되지, 허니?”

 

청량한 페로몬을 마구 뿜어내는 저 새끼를 정말 반쯤 죽여 놓고 싶다. 그러다 순간 이브는 붉은 눈을 반짝였다. 소년은 붉은 머리카락의 소년에게 다가가 멱살을 움켜쥐고 속삭였다.

 

“너 인간사냥 참여한 적 있지.”

“알고 싶어? 정말? 후회할 텐데.”

“닥쳐. 나도 말끔하게 해냈어.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긴 했지만 해냈다고!”

“오구오구, 그랬어요? 우리 엘 장해요, 장해.”

“아, 시발. 너 따위 정말 재수없어.”

“우와, 고 예쁜 입에 욕까지 하다니. 매력적이긴 한데 욕은 지양합시다, 달링.”

 

아까의 살기란 어디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천박하고 능글맞은 태도에 이브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녀석이 왜 저러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가 싫었다. 순간적이었으나 체이스가 보여준 힘의 광기에 흠칫, 공포를 느낀 이 감정을.

 

물론 ‘경험’의 차이라는 걸 안다. 아는데도 순간적으로 보였던 그 광기는 이브가 결단코 ‘경험’이 많아진들 낯선 종류라는 것 또한 안다. 육식동물 앞에 놓인 먹잇감. 딱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다양한 의미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무서웠다. 제 모든 걸 쉽게 먹어치워 버릴지도 모를 저 붉은 머리카락 소년이.

 

고작 16살인데도 이 정도 광기인데 성인이 되면 대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이 감정은 너로 인해 비롯된 거야.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


그럼 그렇지, 눈치 백단 능글맞은 놈이 모를 리가 없었을 터였다. 이브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대체 나한테 언제 반한 건데?”

 

불가항력적으로 맞닿았던 입술이 괜히 화끈거렸다.

 


 


 


 


 


 


 


 


 


 


 


 


 


 


 



작가가 꿈인 악마의 서재입니다.

귀여운악마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