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관계 上

 

 소설_아용 / 일러스트 _ 꾸

 

 

세상에는 두 가지 성별이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은 세 가지 경우로도 나눌 수가 있었다. 비율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알파, 베타, 오메가가 바로 그 카테고리였다. 다자이 오사무는 알파였다. 알파는 보통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고 다자이의 인생도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페로몬을 방출하는 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어렵게 무슨 말로 고백을 해야 할지 아니면 어떻게 보여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도 해결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보통 알파가 끌리게 되는 형질은 오메가들이었고 오메가는 알파의 페로몬에 반응 할 수 있었으니까. 여태 다자이가 하고 싶던 연애의 시작은 항상 순조로운 편이었다. 마무리가 모두 좋은 건 아니었지만 끝맺음도 깔끔한 것이 다자이의 연애 방식이었다. 그의 그런 연애가 가능한 것도 다자이가 알파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알파인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중이었다. 나카하라 츄야, 다자이의 룸메이트이자 베타인 그는 페로몬에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베타는 알파나 오메가들과 달리 향처럼 느껴지는 페로몬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향이 없이 어떻게 두 사람 간에 화학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늘 알파나 오메가가 베타에게 있어 가지는 편견과도 같은 의문점이었다. 츄야는 성가신 히트사이클이나 러트라는 발정기도 없었다. 그래서 다자이의 페로몬이 무슨 향기를 갖고 있는 지도 영원히 알 방법이 없었다. 사실 츄야가 베타이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는 관계였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그 이유 때문에 다자이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차라리 츄야가 페로몬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쉬었을 거다.

 

그랬다. 다자이 오사무는 나카하라 츄야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장점이자 매력이 될 수 있는 페로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베타였다. 츄야가 오메가였으면 아니 차라리 알파라도 됐으면 무슨 신호라도 느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골백번 되지도 않을 상상을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될 리도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아니 호감을 느끼는 상대를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페로몬을 개방해 향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통인 알파의 삶에서 갑자기 나타난 츄야는 다자이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츄야." 회사에서 막 야근을 마치고 와 세수를 끝낸 사람을 한 번 불렀다. 이유는 없었다. 피곤에 지친 하지만 이제 집에 와서 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표정이 편한 사람이 다자이와 눈을 마주쳤다. "왜. 너도 뭐 차라도 마시게?" "아니..아무 것도 아닐세." 아무 것도 아니야. 오늘도 다자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다자이는 가끔씩 츄야의 이름을 뜬금없이 부를 때가 있었고 처음 몇 번은 대체 무슨 할 말이 있길래 그러느냐고 물었던 츄야도 다자이의 버릇으로 생각하고 더 묻지 않았다.

 

이름이라도 불러 보는 거지. 아쉬운 마음에.

다자이는 츄야에게 아직 자신의 생각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츄야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다자이와 츄야는 그 '형질' 때문에 룸메이트로 살고 있었다. 꽤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해낸 인기 작가로서의 인생도 살고 있는 다자이는 자신의 집에 무슨 의도인지 뻔한 시도를 하면서 찾아오는 오메가들이나 다른 알파들에게 시달리는 중이었다. 알파까지 찾아온다니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서 다자이는 함부로 자신의 집에 들이닥치지 못할 토템같은 존재가 필요했고 그 생각은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생각까지 번졌다. 오래 계약을 하고 지내 믿을 만한 부동산 업자를 통해서 소개를 받은 사람이 츄야였다. 마침 월세로 괜찮은 집을 알아보는 청년이 있는데 베타라고. 페로몬을 느끼지 못하니까 다자이가 곤란할 경우도 없을뿐더러 서로 모르는 사이가 차라리 더 편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만나보고 결정 하겠다 했지만 그 때는 조금 절박했던 심정이라 성가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어떤 사람이든 괜찮았다. 룸메이트를 하루라도 빨리 구하고 싶었다. 베타라는 정보만 받고 나카하라 츄야라는 사람을 기다릴 때만 하더라도 다자이는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년의 사람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 회사 일 때문에 조금 늦어 죄송하다며 나타난 사람이 츄야였다. 조금 작은 체구에 단단해 보이는 몸, 솔직히 말해 첫 인상이 다정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놀랍게도 다자이는 나카하라 츄야에게 첫 눈에 반했다. 흔히 말하는 웃는 상도 아니었고 상대에게 쉽게 호감을 줄만한 느낌도 아니었다. 비싼 브랜드는 아니지만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룸메이트 조건을 듣는 츄야를 곁눈질로 계속 살폈다. 첫 눈에 반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깨달은 감정이었지 그 때 다자이에게 츄야는 생각 외로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 마음이 놓인다는 정도였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츄야는 파격적인 조건이나 다름없는 룸메이트 생활에 자신에게 굴러 떨어진 행운과도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월세를 조금이라도 줄일 생각으로 부동산을 알아봤다가 인기 작가의 룸메이트가 됐다는 부분에서부터 인생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다자이 오사무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다자이가 악수를 청하려 손을 내밀었고 츄야는 악수가 계약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덥썩 잡아 아래위로 흔들었다. 키가 작은 편인 것 같더니 손도 그만큼 작았다. 다자이는 츄야의 손을 금방 놓자마자 조금 아쉬운 느낌에 괜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룸메이트의 조건이라고 해도 별로 신경 쓸 건 없다며 다자이는 자신이 얼마나 집필할 시기에 예민한지 알파의 발정기가 오는 러트 시기에는 조금 성격이 날카로워 질 때도 있다는 점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상대에게 벌써부터 나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없어서 라는 핑계를 댔지만 어떻게든 츄야를 룸메이트로 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었다. 이끌림. 이건 자연스러운 끌림이었고 어떻게 자력으로 참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다자이는 첫 만남때만 하더라도 짧은 아쉬움을 느꼈다. 만약 츄야가 오메가였다면, 알파였다면 적어도 자신이 향을 방출한 것으로 호감을 표현한다는 걸 알게 됐을 텐데. 부동산에는 다자이의 향이 옅게나마 퍼지고 있었고 부동산 업자는 금방 눈치를 채 두 사람의 계약을 도왔다. 그렇게 시작된 룸메이트 관계였다. 다자이는 룸메이트라는 단어보다 동거라는 단어를 더 좋아했다. 조금 더 은밀하고 가까운 느낌이 드는 그 단어, 동거. 하지만 츄야는 꼬박 다자이를 자신의 '룸메'라고 불렀고 인기 작가라서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다자이가 바랐던 그대로 자신의 생활에 충실했다. 다자이가 집필하거나 바빠 보이면 말조차 걸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라서 다자이를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정말 바라던 사람인데 뜻대로는 되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금 시골과도 같은 동네에서 살다 도쿄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츄야는 상상이상의 월세 비용에 허리가 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온 몸으로 깨달았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금 돈이 모인다 싶으면 무엇이든지 먹어치우는 괴물처럼 집에 드는 비용은 항상 남는 것이 없었다. 교통이 불편하더라도 월세 부담이 조금 줄어들만한 곳은 없을까 싶어 부동산을 전전하다 찾은 황금과도 같은 기회 덕분에 지금은 그래도 허리를 피고 살 수 있는 정도로 발전했다. 츄야는 월급날이 얼마 남지 않아 달력을 넘기면서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요? 콧노래까지 나오는 거보면." "아..조금 있으면 월급날이라서요." "그래요? 그럼 노래가 나올 만도 하지." 옆자리에 앉은 회사 동료가 오늘따라 약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라 가만히 바라보던 츄야가 컨디션을 물었다. "오늘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아, 그 히트사이클이라." 약 먹었거든요. 진짜 약 꼬박 챙겨 먹는 것도 일이에요. 투덜 거리면서 서랍에서 약을 꺼내 두 알 입 안으로 털어 넣는 사람은 오메가였다. 아 그렇지, 오메가하고 알파는 그런 발정기라고 하는 기간이 있어서 약을 먹는다고 했지. 심한 사람은 밖에도 나오지 못한다는 모양인데 그래도 약이 좋아져서 다행이라고 츄야는 대충 얼버무렸다. "츄야 씨랑 같이 사는 사람도 알파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룸메이트가 알파에요." "러트 심해요?" "..약을 잘 챙겨 먹는 것 같던데.." 러트라, 츄야는 러트에 대한 단어를 사전적 의미로만 알고 있었다. 알파들이 맞는 발정기. 보통 열을 내면서 성적인 욕구가 강해진다는 것쯤이야 학창시절 성교육 시간에 배운 내용이었다. 츄야에게는 어차피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라 시큰둥하게 들었던 기억만 선명했다.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닌 거 같아요. 이거 개인차 크지 않아요?" "부럽다. 나는 온 몸이 아파서 진통제도 먹어야 해요." 일반 진통제까지 한 알 먹는 동료에게 츄야가 달달한 간식을 건넸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퇴근이니까요.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대신 앓아줄 수도 없는 일이고 츄야가 해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자이 놈도 러트인지 뭔지 그거 약을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침마다 무슨 약을 챙겨 먹는 것 같기는 한데 사생활이라 생각하고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여태까지 열을 내면서 몸이 뜨겁다는 둥 그런 소리를 안 한 것을 보면 분명 러트가 심하게 오는 체질은 아닌 것 같았다. 같이 생활하면서 여러모로 신경써줄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자이는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럼 괜찮은 거겠지. 츄야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 알파하고 오메가는 베타에게 대체 페로몬이 없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묻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이럴 때면 베타만큼 쾌적한 삶도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생각만 속으로 되뇌었다. 알파하고 오메가는 서로 각인하고 파트너를 찾으면 그래도 좀 안정된다고 하니까 그 안정의 깊이는 감히 다른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하니 그게 대체 어떤 감정인지 순수하게 궁금한 적이 있긴 했어도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베타여도 만날 사람은 알아서 자신의 짝을 제대로 찾았고 츄야 역시 언젠가 그런 사람이 나타날 거라 막연하게 믿는 쪽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성급하지 않았다.

 

처음 인기 작가와 룸메이트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갑자기 집으로 찾아오는 오메가 팬이 있다거나 상상하지 못할 만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여태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가끔 출판사 사람과 회식이 있다는 다자이가 자신에게 일부러 기대오는 오메가 때문에 힘드니 조금 데리러 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정도는 룸메이트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알파 페로몬이 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리고 다자이가 오메가들에게 어떤 매력을 가졌기에 그런 성가신 일이 자꾸 생기는 건지 몰라도 츄야는 솔직히 가끔 딱하다는 생각도 했다. 다자이와 생활 패턴 자체가 달라서 집에서 생활하며 크게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다자이는 주로 밤에 작업을 하는 건지 낮에 잠을 잤고 츄야는 회사 생활에 맞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었다.

주말에도 두 사람은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 츄야는 회사에서 가끔 상사가 부른 등산모임에 나가는 날이면 보통 다자이는 출판사 사람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 때 마다 꼭 다자이는 다른 형질을 가진 사람과 문제가 생겼다면서 츄야를 불렀다. 츄야는 그런 다자이를 마중하러 나가는 게 주말의 일과 중 하나가 됐을 뿐이었다. '너 따라 왔다는 오메가는 어디 가고 혼자 와?' '그래도 나도 성인 남성인데 오메가 하나 떨치지 못할까봐. 츄야.' '그럼 왜 나오라고 한 거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룸메이트가 있다는 걸 알면 집까지 쫓아오지는 않잖아.' 집까지 쫓아오려 하다니. 하긴 인기 작가와 본딩이 되고 각인이 된다면야 여러모로 좋은 일이 많기는 하겠지만 그런 삶도 피곤하겠다 생각하며 츄야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자이는 종종 주말에 츄야를 불렀고 가끔은 아예 술집에 와달라고 했다. 술집에는 항상 다자이 혼자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자이라고 페로몬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다른 사람들이 다자이를 힘들게 하는 걸 테니까. 술을 마시면 더 페로몬 제어를 못한다고 하던데 그럼 더 곤란해지는 거겠지. 예의상 알파가 자리를 피해주는 것 같아 그런 다자이의 고충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츄야는 술집에서 혼자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던 다자이에게 얼른 나오라며 재촉하곤 했다.

한 번은 다자이도 츄야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츄야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내 페로몬 때문에 문제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어?' '다른 사람들이 뭐?'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 페로몬에 반응해서 성가신 일이 생겼다고 할 때. 집에 쫓아오려 한다든가 아니면 나와 같이 있으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 다자이가 무슨 이유로 갑자기 그걸 물은 건지 모르겠지만 츄야는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진지하게 대답을 해줬다. '힘들겠다는 생각..?' '오메가들은 나한테 각인을 하려고 일부러 접근할 때도 있다네. 가끔은 나를 연인처럼 생각하고 일부러 술에 취한 척 그럴 때도 있어.' '...그래?' '그래.' 다자이가 츄야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거 증거 모아서 추행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너무 당하고는 있지 마라. 츄야의 말에 다자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래. 츄야의 조언 고맙네.

다자이는 잘생긴 편이었다. 아니 잘생긴 편이 아니라 잘생겼고 키도 컸다. 목소리도 좋았다. 쓰는 책마다 드라마로 만들자며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형질에 상관없이 탐낼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감히 생각도 해본 적은 없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에 딱히 편한 삶도 아닌 것 같아 보여 츄야는 그 날 다자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다 나중에 좋은 사람도 만나겠지.' 츄야의 말에 다자이는 끝까지 대답이 없었다.

 

 

이 번 달은 러트에 먹을 약을 일부러 꼬박 챙겨 먹지 않았다. 다자이는 처음 알파로 발현됐을 때 자신의 러트가 평균 이상으로 제어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흔히들 우성알파라고 부른다며 '우성'이라는 단어에 일부러 힘을 주던 의사는 아직도 생각이 났다. 알파 중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며 아마 다자이를 파트너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면서 안 그래도 잘생긴 외모인데 모든 것을 갖췄다고 타고난 체질로 칭찬을 받았다. 다자이는 그게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건데 칭찬을 받다니. 오히려 러트 기간이 다가오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해지는 페로몬의 향 때문에 오메가와 원하지 않는 스캔들도 생겨 곤란한 일이 생길까 스트레스가 심해지는 편이었다. 물론 이 전 연인들과 연애를 했을 때 러트 기간 만큼 덕을 보는 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러트고 뭐고 아무 소용도 없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대체 나는 츄야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잘난 점을 굳이 찾아보라고 하면 특출 나게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츄야는 자신에게 특별했다.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특별한 사람이었다. 첫 인상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고 가끔 게임이라도 같이 할 때면 매번 지면서 승부욕을 보이는 점이 오기를 부리는 것 같아 성격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면서 그 마음이 식지 않았다. 원래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예고편도 없는 거였다.

알파와 베타 간의 각인도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던데. 다자이는 쓸데없이 늘어난 알파-오메가 외의 다른 형질과의 성관계에 대한 잡지식을 떠올리다 이마를 쓸어 올렸다. 다자이의 인생에 이런 고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게 러트기간이었다. 다자이는 본능이 이성을 뒤덮는 자신의 러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본능을 잠재워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자신이 바라는 상대는 러트가 가까워져 향이 아무리 강해져도 느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룸메이트를 베타로 바란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때의 바람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일부러 츄야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꼬박 원래 먹던 약보다 더 강한 약을 먹으며 제어해 왔는데 그 간 풀지 못한 러트 기간이 다가올수록 다자이는 약한 긴장을 했다. 츄야도 성교육은 받았을 테니까 내 상태가 이상하면 그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줄은 알겠지. 적어도 우성알파라고 밝힌 이상 상식이 있으면 통하리라 믿었다. 다자이는 페로몬이 강했지만 제어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원하는 상대가 있어야 러트가 강하게 오는 알파였다. 그러니까 나는 온 몸으로 말을 하고 있는 거다. 이 집에 원하는 상대가 있어서 러트가 온 것이며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라고. 옅은 미열을 느끼면서 다자이는 이마를 식혔다. 츄야가 퇴근할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츄야는 다자이가 열을 느낀 지 꼬박 네 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오메가 히트사이클 때문에 약을 먹고 힘들어하던 동료가 일찍 퇴근한다며 놓고 간 일까지 처리해주고 온 탓이었다. 언젠가 도움을 서로 받을 날이 있지 않겠냐며 괜찮다고 했던 츄야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퇴근해서 들어온 집은 평소와 다르게 적막했다. 다자이가 나갔나? 아니 신발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나가진 않았다. 혹시 집필하나 싶어 살금살금 조용히 안으로 들어간 츄야는 자신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저녁을 먹은 흔적도 없고 조용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공기에 츄야가 다자이 방 문을 노크했다. 불이 꺼진 방에는 다자이의 숨소리만 들렸다. 자는 건가? 자는 거라고 하기엔 약간 숨이 거친 것 같은데. "불 켜도 되냐?" "...응.." 목소리가 조금 갈라진 것 같았다. 불을 키자마자 보이는 다자이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츄야." 다자이가 츄야의 이름을 불렀다.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간 츄야는 조금 열이 올라 붉게 오른 다자이의 두 뺨을 내려다 봤다. 다자이가 츄야의 손목을 잡았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감기는 아니야." 갑자기 감기가 아니라고 하는 다자이의 상태를 조심히 살피는 츄야는 뭔가 심상찮은 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다자이는 천천히 제 상태를 보던 츄야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저를 보는 것 같아 다시 눈을 마주쳤다. 의도적인 건 조금 있었지만 숨은 충분히 거칠었고 약만 다시 제대로 먹으면 식혀질 열이었지만 몸은 달아오르고 있었다. 원하는 상대가 눈앞에 있었다. 다자이는 이럴 때면 본능적으로 상상되는 상대의 모습 때문에 눈을 감고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다자이." "..어." "혹시.." 츄야는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방법이 있어. 츄야는 잠시 기다리라면서 방을 나갔다. 무슨 방법. 다자이가 츄야를 따라 나섰지만 츄야가 간 곳은 다자이가 감히 상상도 못한 곳이었다. 츄야는 욕실로 들어갔다. 설마. 츄야, 벌써? 어디까지 생각을 하는 거지. 세면대가 아닌 샤워기의 물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하는 건가? 하긴 이런 상태의 알파를 보면 열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이 하나라고 생각하기는 하겠지만 츄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해 다자이는 다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래도 괜찮은 거겠지. 츄야가 먼저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사실 츄야도 눈치 채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향기를 맡지 못하는 베타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특히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건 재채기처럼 들키기 쉬운 거 였으니까. 의외로 내가 허술한 점을 보인 걸지도 모르겠지. 다자이는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일부러 단 둘이 있을 만한 술집에 츄야를 무수히 불렀던 일을 떠올렸다.

"다자이."

츄야가 조금 급한 목소리로 다시 다자이의 이름을 불렀다. 응 츄야. 다자이가 고개를 들었다. 이런 날이 언젠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오늘인 줄은 몰랐다는 말 정도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츄야는 젖은 수건들을 들고 있었다.

 

"그건 다 뭔가?" "뭐긴. 수건 다섯 개 찬 물에 빨리 적셔왔어. 요즘 독감 유행이라더니 그거 걸린 거냐?" "...감기 아닌데." "감기 걸린 사람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열나잖아. 츄야가 다자이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차가운 츄야의 손이 바로 느껴졌다.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데. 이 기분이 실망이라는 단어를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츄야의 손을 쳐내지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내 인생에 이런 일도 있구나. 러트 때문에 조금 몸이 달아오른 건 사실인데다 허탈한 기분까지 더해져 다자이는 털썩 침대에 누웠다. "쉬어." 츄야는 다자이의 손에 약까지 쥐어주고 수건을 건네준 다음에야 몸을 돌렸다. "옆에 있어줄까?" "전혀 도움이 안 돼. 성가셔." 그래도 도움 준 사람한테 말이 그게 뭐냐. 츄야가 투덜거리면서 다자이의 방 불을 꺼주며 문을 닫았다. 뭐 필요하면 말해라. 츄야의 목소리가 방 문 너머 들렸다. 필요한 게 뭔데, 필요한 건 넌데. 다자이가 이마를 짚으며 감기약 대신 서랍에 있는 러트의 열을 식히는 약을 입에 넣었다. 감기약.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 알약 두 개. 효과가 빠르다며 먹고 푹 자라는 말 때문에 버릴 수도 없어 다자이는 서랍 안에 대충 던져 놓고 몸을 눕혔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보통 베타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호감을 표현할까. 향기가 없으니 말로 하고 솔직해지겠지. 그런 면이 츄야의 꾸밈없는 성격을 만든걸까. 다자이는 조금 몽롱해지는 정신에 눈을 감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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