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근해져오는 뒷목에 한빈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보고 있는 지용과 눈이 마주쳤다. 이크. 바로 다시 고개를 숙인 한빈은 이제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운이 나빴다. 방금 전 일 말이다. 벌을 서게 된 경위도 운이 나쁘긴 했지만 그건 제 잘못이 컸다.


"벌이 가볍지?"

"아닙니다!"


한빈은 데뷔 전에 이런 분위기로 다시 한 번 지용을 마주하게 될 줄은 정말, 진심으로, 꿈에도 몰랐다. 아마 그건 고개 숙이고 서있는 멤버들 다 마찬가지이리라. 잘못은 해놓고 걸리지 않길 바랐으니 염치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건 그냥 보기에는 굉장히 쉬워 보일지 몰라도 직접 하면 장난이 아니다. 피가 얼굴로 몰려 시뻘게지고 뒷목은 뻐근해지고 종국에는 어지럽기까지 하다. 물론 한 잘못에 비해 벌이 가벼운 건 맞지만 그렇다고 벌 자체의 강도가 낮은 건 아니란 얘기다.


"아니긴. 다들 더 혼나야 하는데 인간적으로 세워놓으니까 송구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

"엎드려.”


고개 한번 들 새 없이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한빈은 아까 '운이 없다'고 표현했지만 지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빈 만을 보고 있었으므로 그가 고개를 들다 걸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용은 어이가 없었다. 믿었던 후배들이 이렇게 한 번씩 대형 사고를 쳐주는 건 몇 번 겪어봤지만 적응이 잘 안 됐다. 그 중 단연 으뜸은 김한빈이었다. 평소에는 곧잘 어른인 척 하면서 이런 데서는 애인 게 드러났다. 애는 애지. 김한빈은 고작 스무 살이었다.



아 형 오늘 너무 집중 안 돼요. 저만 그래요?


동혁은 항상 열심이었다. 그건 멤버들 모두가 그랬지만 그중에서도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동혁은 한빈이 보기에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다. 그런 동혁이 녹음실에서 나와서 투정 비슷한 걸 부리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 별 일도 없는데 애들이 전체적으로 다운되어 있어서 안 그래도 예민했는데 동혁까지 이러니까 확 때려 치고 싶었다. 연습생 생활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오늘 녹음을.

그래서 때려 쳤다. 놀러갈까? 반은 농담으로 던진 말에 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금방 그러자고 답을 해왔다. 지원도 지치긴 했는지 수긍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한건 진환이었다.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모자를 눌러썼지만 제일 많이 걱정한 것도 그였다.

아마 지금 제일 많이 후회하는 것도 진환일 테다. 정작 대표로 혼날 한빈은 별 미련이 없었다. 혼날 짓 했으니 혼나야지. 들키면 혼날 각오까지 하고 놀러간 거다. 사실 이렇게 금방, 그것도 허무하게 들킬 줄은 몰랐지만.

분명 믹스 앤 매치 때까지만 해도 이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허술하게 가리고 나갔다. 아침저녁으로 춥다고는 해도 아직 낮엔 더웠다. 마스크는 답답해서 모자만 눌러쓰고 나간 게 화근이었다.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 비아이 아니에요? 아이콘이다! 유명 기획사, 그룹이름이 생긴 연습생의 파급력은 한빈의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했다. 사진을 찍어 달래서 팬서비스 차원으로 몇 장 찍어준 게 SNS를 통해 십분도 안돼서 지용의 손에 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

치밀하지 못한 일탈은 금방 끝이 났다. 한빈은 지용의 호출을 받았고, 울상이 된 멤버들과 함께 합정으로 돌아갔다. 두 시간여의 허무한 일탈이었다. 일탈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조차 민망한 귀여운 외출.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용도 연습생 생활이 길었다. 이들의 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시기가 안 좋았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겹쳤지만 그 중 아이콘의 데뷔도 크게 한 몫 했다. 홍보팀, 안무 팀, 기획팀 등 모두가 긴장한 상태에서 애들이 싹 없어진 거다. 상황이 이러니 귀엽다고 엉덩이 토닥여주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사장님 욕 먹인 거지?"

"……."

"나한테는 엿 먹인 거고."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5,578 공백 제외
5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