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악! 난 몰라!”

“난 몰라, 몰라!”

“어떡해!”

 

잔뜩 놀라 온 사방 뛰어다니는 어린 공주들을 보면서 그레이스는 우아하게 말했다.

 

“진정해요, 프린세스 파인, 프린세스 레인.”

 

자신의 이름을 듣고 두 사람은 더욱 공포에 질려 날뛰었다.

 

“꺄악, 우리 이름을 알고 있어!”

“난 몰라!”

“어떡해!”

 

두 공주의 경악은 결국 두 사람이 넘어져 빛 속에 파묻히면서 겨우 멈췄다.

 

“우선 좀 진정하세요.”

 

그레이스가 치맛자락을 잡고 인사했다.

 

“난 프린세스 그레이스란다.”

“네?”

“프린세스 그레이스 님이요?”

 

파인과 레인이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그레이스는 옛날, 해님 나라에 빛이 사라지려고 했을 때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낸 전설의 공주였다. 아름답고 또한 멋있어서 두 사람도 존경하는 공주였다.

 

“하지만 그레이스 공주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레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파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귀…… 귀신……?”

 

다시 겁에 질린 파인과 달리 레인은 치맛자락을 놓는 그레이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귀신이라고 해도…… 초상화에서 본 것처럼 다정한 느낌이고, 하나도 무섭지 않은걸.”

 

파인이 초상화를 떠올렸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우아하게 서 있는 그레이스 공주의 초상화는 레인의 말처럼 따스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레이스는 겨우 진정한 두 사람을 보며 가만히 손을 모았다.

 

“레인, 파인. 너희 둘을 이렇게 해님의 축복 중심까지 부른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단다. 사실은, 너희들이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그레이스의 조용하지만 진지한 말에 레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레인이 되물었다.

 

“해줬으면 하는 일이요?”

“지금, 우리 해님 나라의 빛이 또다시 꺼지려고 하고 있단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두 사람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섰다.

 

“어떡해!”

“빛이 사라지면!”

“어떻게 돼?”

“글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빛이 사라지면 왜 안 되는지를 알지는 못했다. 그레이스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해님의 빛이 사라지게 되면 신비한 별 전체가 암흑에 둘러싸일 거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

 

밝고 따뜻한 빛이 사라지면 암흑과 추위가 찾아온다. 그것은 아주 혹독한 겨울이 될 것이고, 광합성이 불가능해 식물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하게 식물을 먹는 동물들이 사라지고, 초식 동물이 사라지면 육식 동물도 사라지고, 그렇게…….

어느새 쌍둥이 공주의 얼굴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네?”

“설마…….”

 

그레이스가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뻗었다. 곧게 뻗은 두 손 사이로 가슴에 달린 루체가 보였다. 물론 파인과 레인은 프로미넌스도, 루체도 무엇인지 아직 몰랐기에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이란다.”

 

그레이스의 손바닥 위에서 빛이 나와 두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해님 나라의 공주라면 우리의 별을 구할 수가 있단다. 그러나 지금의 너희로서는 무리야.”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동자에 따스한 빛이 비쳤다.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시련을 부여해야만 한단다.”

“시련이요?”

“프로미넌스의 힘을 써서, 신비한 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을 돕는 일이야.”

 

빛이 점점 형태를 갖추며 두 개의 루체가 탄생했고, 그것이 파인과 레인에게 각각 날아갔다.

 

“그것이 시련.”

 

그레이스는 측은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옛날, 자신이 홀로 벅찬 노력을 하던 때가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두 사람은, 두 사람이기에 조금은 낫겠지. 혼자가 아닐 테니까.

 

“아마도, 괴로운 여정이 될 거다. 하지만 반드시 극복해서 신비한 별을 구해내거라.”

 

두 사람은 빛에 둘러싸인 채 자신들에게로 날아오는 무언가를 보며 자그맣게 감탄했다. 손을 내밀자 꼭 손거울처럼 생긴 그것이 톡 떨어졌다.

위에는 해님 나라 문양이 조각되어 있고, 빙 둘러 레이스로 장식되어 체인으로 작은 장식이 달려 있었다.

 

“써니 루체를 받거라.”

“우와…….”

“예쁘다…….”

“앞으로는 푸모가 너희들 곁에서 많은 힘이 되어줄 것이다. 너희들을 믿고 있으마.”

 

그 말을 끝으로 그레이스는 사라지고 두 공주는 또다시 지상으로 튕겨져 나왔다. 파인이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지?”

“어? 다시 나왔잖아!”

“정말…… 꿈은…….”

 

둘은 손에 들린 써니 루체를 바라보았다. 빛에 싸여 손에 떨어졌던 물체.

 

“꿈은 아닌데.”

 

레인이 그레이스의 말을 되짚었다.

 

“프로미넌스의 힘이라는 게 뭐지?”

“이건 뭐 하는 데 쓰는 걸까?”

 

두 사람은 주저앉은 채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그 뒤로 손잡이가 달린 작은 케이스 하나가 놓여있었다.

 

“푸모는…….”

 

프로미넌스, 루체, 푸모, 모두 알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누군가의 설명을 들어야 했다. 지금 바로.

 

“부르셨어요, 푸모?”

 

기척도 없이 갑자기 들린 말에 흠칫 놀란 두 사람은 그제야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 앞으로 다가가 누구냐고 묻자 곧 하늘색 케이스가 열리며 작은 생명체가 등장했다.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푸모.”

 

해님 장식이 달린 물방울 모양 모자를 쓰고, 보라색 리본을 맨 하얀 요정이었다. 그는 공주들이 놀랐던 아니던 목을 가다듬으며 정중히 인사했다.

 

“으흠, 처음 뵙겠습니다. 전 푸모라고 합니다, 푸모. 이렇게 아름답고 또 총명하신 두 분 공주님들을 모시게 되다니, 무한히 영광입니다, 푸모.”

 

말끝마다 ‘푸모’를 붙이는 것이 퍽 특이했다. 푸모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두 공주가 다가갔다.

 

“네가 푸모니?”

“네가 이것저것 가르쳐 줄 거야?”

“네! 프로미넌스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시련에 관계된 일까지 모두…….”

 

푸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음 급한 파인과 레인이 푸모를 낚아챘다. ‘가르쳐줘!’ 하고 마구 흔드는 바람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르쳐 드릴게요, 가르쳐 드린다고요!”

“빨리 알고 싶단 말이야!”

 

푸모는 두 손아귀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응!”

 

두 공주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했다.

 


**********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성의 입구에 여섯 대의 비행선이 나란히 정차했고, 많은 사람들이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프린세스 파티에서 일곱 나라의 공주님 중에 최고의 공주님을 뽑는다고 하던데?”

“우와, 그거 진짜 기대되는걸?”

“파인 공주님이나 레인 공주님이 되시면 좋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모여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사람들은 ‘환영합니다!’, ‘Princess Party’, ‘해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와 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다.

파티가 열리는 홀 안에서는 두 줄로 늘어선 성악대가 중앙을 향해 나팔을 힘껏 불고 있었다. 해님기가 달린 나팔이었다. 흥겨운 환영의 음악이 울리고, 높은 단상에 국왕과 왕후가 서 있었다.

국왕이 팔을 시원스레 뻗으며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제1회 프린세스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천장에서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빛났다. 그런 와중 한쪽 구석에 선 카멜롯은 중앙을 바라보며 긴장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드디어 시작되고 말았어. 레인 공주님, 파인 공주님! 빨리 돌아오세요!”

 

카멜롯이 닿기를 바라며 중얼거렸다.

중앙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색색의 포인트가 있는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다이아 모양의 티아라를 쓴 공주. 그리고 부드러운 금발 위에 빛나는 왕관을 쓴 채 빨간 망토를 두른 왕자.

하얀 연미복을 단정히 갖춰 입은 신하, 레민토가 그들을 소개했다.

 

“보석 나라의 아르테사 공주님과 브라이트 왕자님이십니다!”

 

파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브라이트 왕자님…….”

“역시 멋져!”

“아름다워!”

“공주님 예쁘다!”

 

보석 나라에서 온 공주님과 왕자님이라 그런 것일까? 반짝거리며 빛이 나는 것 같은…….

 

“우와, 브라이트 왕자님!”

“와, 브라이트 왕자님 멋지다…….”

 

씨앗 나라 11명의 공주들이 한목소리로 감탄하고, 리오네도 탄성을 내뱉었다. 아르테사는 부러움의 시선을 만족스럽게 느끼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난 아르테사처럼 멋지게 춤추지 못 하는걸…….”

 

춤에 자신이 없는 리오네는 주눅 들었다. 아르테사는 누군가 주눅이 들든 말든 시선을 즐겼고, 브라이트가 동생을 부드럽게 리드해 주었다. 아르테사는 웃으며 생각했다.

제1회 베스트 프린세스는 바로 나, 아르테사로 결판난 거지! 아르테사는 그만큼 춤에 자신이 있었다. 더욱이 이렇게나 멋진 오라버니가 함께해 준다면…….

아르테사가 오라버니를 향해 미소 짓는데, 별안간 브라이트가 춤을 멈추었다. 아르테사가 당황했다.

 

“오라버니?”

 

브라이트가 아르테사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하고만 춤을 추면 너무 불공평하잖아.”

 

브라이트는 참석한 모든 공주들과 파트너가 되어, 그녀들을 반짝거리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 공주님 여러분? 저와 함께 춤추시죠!”

 

등 돌려 걸어가는 모습을 아르테사가 의기소침하게 바라봤다. 뾰로통했지만 그녀의 연두색 눈동자만은 예뻤다.

 

“아, 오라버니는 정말!”

 

아르테사는 삐진 채 돌아섰고, 동시에 브라이트는 미를로에게 춤을 신청했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승낙했다. 레민토가 그녀를 소개했다.

 

“물방울 나라의 미를로 공주님!”

 

그녀는 연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자르고 물방울 모양의 티아라를 썼다. 하늘색 드레스가 잘 어울렸다.

그녀와의 춤이 끝난 뒤 브라이트는 소피에게 춤을 신청했다. 긴 모자 형태의 티아라를 쓰고 있었다. 민트색 머리와 그녀의 청량한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풍차 나라의 소피 공주님!”

 

다음은 밀키 차례였다. 이제 막 뛰어다니기 시작했을 것만 같은 공주는 별을 타고 있었다. 분홍색의 짧은 머리카락, 주황색 드레스, 작은 왕관, 무엇보다 초롱초롱한 파란 눈동자.

정말이지 깜찍한 공주님은 브라이트의 손가락 하나씩을 꼭 잡고 함께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달나라의 밀키 공주님!”

 

다음으로 그는 씨앗 나라의 작은 공주들을 자신의 팔에 한꺼번에 올리고 춤을 췄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공주님들이었다.

 

“씨앗 나라 열한 분의 공주님이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한 명의 공주가 남았을 때. 홀 밖의 복도에는 푸모가 든 케이스를 손에 든 파인, 그리고 레인이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허리에 달린 루체가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장식처럼 잘 어울렸다.

 

“으아! 무슨 설명이 그렇게 길어!”

“완전 지각이잖아!”

 

문을 지키고 있던 두 하인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환한 파티장의 빛이 눈앞에 쏟아지고, 제때 멈추지 못한 파인은 케이스를 놓치며 넘어졌다.

 

“파인!”

 

레인이 파인의 이름을 불렀다. 요란한 등장에 모든 참석자가 두 공주를 보았다. 이상한 적막 속에 멈춰진 파티의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레민토가 재빨리 소개했다.

 

“오! 우리 해님 나라의 파인 공주님과 레인 공주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멜롯은 새하얗게 질린 채 눈물을 흘렸다. 이제 베스트 프린세스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파인 옆에 쪼그려 앉은 레인이 괜찮은지 묻고 있을 때였다. 붉은 눈동자로 그들을 쳐다보던 브라이트가 천천히 다가왔다.

 

“파인 공주님?”

 

갑작스레 다가온 신발이 보여 파인이 당황했다. 그 옆에서 레인은 브라이트를 올려다봤다. 그가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맙소사.

 

“브라이트 왕자님?”

 

레인은 얼굴이 붉어져, 두 손을 모으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브라이트는 여전히 넘어져 있는 파인만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파인 공주님, 저하고 춤춰주시겠어요?”

“아…… 나요?”

 

파인이 떨떠름하게 자신을 가리켰다. 그녀는 재빠르게 레인을 앞으로 밀었다. 레인의 눈에서는 하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 말고, 레인하고 춤추세요!”

“와아……. 그렇지만 난 지금 드레스도 안 입었는데 어떡해…….”

 

레인은 브라이트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수줍음에 몸을 살짝 꼬았다. 브라이트가 자세를 똑바로 하며 웃어 보였다.

 

“몰라, 몰라…….”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레인 공주님.”

 

친절하고 자상한 ‘아름답다’는 말에 우뚝 멈춰 선 레인이 정신을 차렸다. 브라이트가 팔을 내밀었다. 파인이 뒤에 서서 레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랑에 빠진 레인이라니!

 

“네.”

 

레인이 홍조 띤 얼굴로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이 중앙에서 춤을 췄다.

신비한 별이 사랑하는 슈퍼스타, 브라이트 왕자님과 춤을 추다니. 레인은 꿈만 같은 이 순간, 브라이트의 얼굴을 보며 황홀해했다. 거의 무의식중에 움직이던 레인이 스텝을 옮기다 브라이트의 발을 꾹 밟아버렸다.

 

“어어? 헉! 으아!”

 

레인이 황급히 몸을 떼자 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아, 죄, 죄, 죄, 죄송해요! 어떡해!”

 

레인이 심히 말을 더듬었으나, 브라이트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정말 가볍군요, 레인 공주님.”

 

눈이 가늘어지며 웃는 브라이트를 바로 앞에서 보는 레인의 심장은 그야말로 터질 듯했다. 그녀의 청록색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 친절한 왕자와 수줍음 타는 공주를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파인은 홀로 어딘가에 도달했다.

 

“이 틈에 먼저, 잘 먹겠습니다!”

 

순식간에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들고 케이크를 먹으려던 파인은 뒤로 한발 물러나는 리오네를 발견했다.

 

“어? 리오네……?”

“난 틀렸어.”

 

브라이트가 다가오고 있었다. 파인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리오네가 걱정스러웠다.

 

“왜 그래?”

 

리오네는 파인을 보지 않았다. 긴장감에 떨리는 눈으로 다가오는 왕자만 쳐다보고 있었다.

 

“춤을 못 추겠어…….”

“응?”

 

리오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히 레인보다 더 큰 실수를 해서 브라이트 왕자님도 날 싫어하실 거야!”

“아니야, 잘 할 거야.”

 

파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울먹거리는 리오네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주었다.

그러나 리오네의 긴장은 그대로 극에 달했고, 순간 갑자기 조명이 깜빡거리며 정전이 찾아왔다. 홀을 가득 채우던 화려한 빛이 모두 사라졌다.

빛이 하나씩 꺼지는 주변을 바라보며 왕후가 중얼거렸다.

 

“역시, 해님의 축복의 힘이…….”

 

국왕이 왕후의 말을 막았다.

 

“……그 얘기는 나중에.”

“네.”

 

국왕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해님의 축복을 주입하는 시스템에 고장이 좀 생긴 모양입니다. 복구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으, 불이 나가버리다니, 이것도 춤을 추지 말라는 계시야!”

 

리오네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파인이 리오네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레인은 파인에게 달려갔다. 아직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바로 이럴 때.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할까?”

“어떡할까?”

 

서로를 진지하게 바라보던 그들은 곧 활기차게 소리쳤다. 어차피 답은 하나였다.

 

“해보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두 사람에게서 빛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어느새 케이스를 열고 나온 푸모가 말했다.

 

“프로미넌스의 힘을 사용하는 법은 아까 가르쳐드린 대로입니다, 푸모.”

“응!”

 

두 공주는 푸모를 돌아보며 힘차게 웃어 보였다.

파인과 레인은 동시에 써니 루체를 열었다. 열자 하얀 바탕에 붙은 해님 모양 금속 장식이 드러났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해님 장식의 가운데 원을 검지로 돌리며 주문을 외웠다.

 

“팡, 팡, 파인!”

“랑, 랑, 레인!”

 

그러자 거울이 있는 가운데 부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둘의 머리가 예쁘게 말렸다. 동시에 로열 써니 로드가 나왔다. 뒤이어 써니 루체의 해님 장식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티아라가 생기고.

 

“프로미넌스, 드레스 업!”

 

동시에 외치자 옷도 화려한 드레스로 바뀌었다. 디자인이 같고 레인의 것은 파랑, 파인의 것은 분홍으로 색만 다르다. 맨 아래는 레이스가 달린 풍성한 치마, 그 위는 좀 더 짙은 파랑과 분홍으로 테두리가 그려진 치마, 그리고 맨 겉단은 그보다는 연한 파랑과 분홍색이다. 하트 장식이 그려져 있으며, 가슴에 달린 리본에는 루체가 달려 있다.

아까의 그레이스처럼.

둘의 모습을 모두가 놀라 바라보고 있다.

 

“굉장해!”

 

브라이트가 감탄했다.

단상에 올라 있던 왕과 왕비의 눈도 커졌다. 트루스 국왕과 꼭 같은 레인의 청아한 파란 머리카락이, 아젤 왕후와 꼭 같은 또렷한 분홍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빛났다.

두 공주가 등을 맞대고 로열 써니 로드를 딸깍 돌리자, 맨 위에 있던 튤립 모양의 모티브가 마치 개화하듯 펴지며 안에 있던 해님 문양이 드러났다.

 

“트윈 트윙클 블루밍!”

 

로열 써니 로드가 빛났다.

 

“리오네에게!”

“빛을!”

 

뿜어져 나온 빛이 리오네의 머리 위로 향하고, 곧 빛 가루가 쏟아져 내리며 그녀의 주변만 환하게 밝혀졌다. 끊임없이 빛이 떨어지는 위를 쳐다보고 있는 리오네에게로 파인과 레인이 다가갔다.

 

“리오네, 춤춰!”

“자, 기운 내고!”

 

두 사람의 격려에도 리오네는 망설여졌다. 실수할까 봐, 그래서 미움을 사게 될까 봐 두려웠다. 더욱이 자신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과연 춤을 출 수 있을까? 몸이 움직여줄까?

 

“실수한다고 해도, 우린 절대 널 비웃지 않아.”

“그래, 우린 친구잖아?”

 

비웃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레인의 ‘친구’라는 말이 귀를 파고들었다. 용기가 난 리오네가 결심했다.

 

“응. 고마워, 레인, 파인.”

 

리오네가 브라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녀를 비추는 빛이 그녀를 따라갔다. 브라이트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리오네를 향해 갔고, 곧 그도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브라이트는 오늘의 모든 순간을 통틀어 가장 정중한 춤 신청을 했다.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몸을 살짝 기울여 내민 굽힌 팔에 리오네가 살짝 손을 얹었다.

 

“기꺼이.”

 

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리오네의 드레스가 경쾌하게 흔들렸다. 결연한 표정이 어느새 풀어지고 리오네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쌍둥이 공주는 아름다운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힘내, 리오네.”

“푸모!”

 

파인이 작게 응원을 전했다. 두 사람만을 비추는 조명 때문이 아니었다. 리오네가 짓는 미소는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두 사람의 스텝은 경쾌했고 몸짓은 가벼웠다.

완벽한 댄스였다.

두 사람을 위한 음악이 끝나고, 조명이 다시 켜졌다. 해님의 축복에 생겼던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제1회 프린세스 파티의 베스트 프린세스는!”

 

트루스 국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장내를 정리한 뒤, 베스트 프린세스를 발표했다.

 

“리오네 공주입니다!”

“네? 제가요?”

 

리오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몹시 놀랐다. 모든 참석자가 열렬하게 손뼉 쳤다.

 

“해냈구나, 리오네!”

 

축하해 주는 파인과 레인을 보며 리오네가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정말 멋있었어.”

“응응!”

“다 너희 덕이야!”

 

국왕과 왕후가 있는 곳으로 올라선 리오네의 목에 해님 모양의 분홍색 펜던트가 걸렸다. 리오네의 귀가 쫑긋거렸다.

 

“우와…….”

“춤도, 미소도, 아름답게 빛났어요. 정말 근사한 스마일 프린세스였어요.”

“고맙습니다.”

 

리오네는 칭찬해 주는 왕후에게 무릎 굽혀 인사하고, 뒤이어 왕에게도 똑같이 인사했다.

아르테사는 심통 난 표정으로 드레스를 꼭 잡은 채 리오네를 보고 있었다.

 

“뭐가 스마일 프린세스야. 춤이라면 누가 뭐래도 내가 1등인데 정말!”

 

이렇듯 한 사람 빼고 모두가 리오네를 축하하는 와중, 파인은 다시금 케이크가 있던 곳으로 슬쩍 다가갔다.

 

“난 이 틈에 아까 못 먹은 케이크나!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그 커다랗던 케이크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말도 안 돼, 케이크가! 케이크를 먹는 사람은 몇 보지 못했는데!

케이크가 없다는 사실에 경악하던 파인이, 마지막 남은 조그만 조각을 양손에 들고 새맑게 웃는 밀키를 발견했다. 파인이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너 혹시... 그거 네가 다 먹었어……?”

 

밀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마지막 조각들을 순식간에 입에 넣어버렸다. 밀키는 파인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달콤한 케이크를 삼켰다.

실망해 고개를 푹 숙인 파인.

 

“하아…… 케이크…….”

 

그 모습을 파란 눈동자가 지켜봤다. 대리석 기둥 뒤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활동적인 외투를 입은 누군가. 문득 시선을 느낀 파인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어, 아무도 없네?”

 

그저 텅 빈 긴 복도.

 

“착각한 건가?”

 

별거 아니겠거니, 파인은 그 이상한 느낌을 금세 잊어버렸다.

파티가 끝나고 간단한 만찬 후, 여섯 대의 비행선이 모두 돌아갔다. 쌍둥이 공주는 침실에서 쉬고 있었다.

 

“다들 돌아갔네.”

 

침대에 얼굴을 묻은 파인은 다리를 휘저으며 중얼댔다. 케이크…….

 

“하, 브라이트 왕자님과 춤을 추다니…….”

 

설렘을 상기하는 레인 앞에서 파인은 중얼댔다. 케이크…….

 

“또 언제 춤출 수 있을까?”

“흐윽…….”

 

서로 말을 주고받고는 있으나 각자 얘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푸모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푸모는 아직 이 공주님들이 파악되지 않았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시무룩한 파인 대신 레인이 대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책을 잔뜩 든 카멜롯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카멜롯!”

 

카멜롯으로 인해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온 가련한 두 공주는 깜짝 놀랐다. 카멜롯은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한 걸음씩 다가왔다.

 

“오늘부터 더욱더 엄하게 공주님들을 교육해야겠습니다. 신비한 별 역사상 가장 공주답지 않은 공주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 라도요.”

“푸모……?”

 

카멜롯을 바라보던 푸모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괜찮으시죠?”

 

어느새 카멜롯이 침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레인의 표정이 뚱해졌다.

 

“어떡하지?”

 

레인이 곁눈질로 파인을 보았다. 파인 역시 눈동자만 굴려 레인을 봤다.

 

“그야, 물론!”

 

어차피 답은 하나였다.

 

“도망치자!”

 

침대를 폴짝 뛰어나오는 두 공주 때문에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은 카멜롯이 용케 책을 떨어뜨리지 않고 버텨냈다.

 

“아유! 거기 서세요!”

 

카멜롯이 끝까지 책을 든 채 공주들을 쫓아갔다.

 

“레인 공주님! 파인 공주님! 거기 서세요!”

 

다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칙칙해진 낯빛으로 보는 푸모. 그는 카멜롯의 외침만이 들려오는 텅 빈 방에서 중얼댔다.

 

“신비한 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공주답지 않은 공주라니……. 정말 이 별을 구할 수 있는 거야? 푸모…….”



영롱한 색채로 찬연하게 빛나는 글을 쓰고 싶은 임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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