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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 피는 뭐야...?”

“어?”

 


 내 말에 피가 묻어나온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변백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 아, 입술이 터졌나?”

“...”

“어쩐지 조금 따갑더라...”

 


 하하 하며 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변백현에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뭐? 입술이 터져서?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변백현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변백현.”

“...응?”

“넌...”

“...”

“넌 나를 왜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

“...”

“나를... 나를 왜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이새야.”

 


 두 귀를 막았다. 변백현의 말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저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도, 말도 안 되는 변명들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를 너무도 한심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이새야 내 말 들어 봐. 응?”

“...”

“크게 아픈 거 아니야. 그냥... 그냥,”

“이거 놔.”

 


 변백현이 귀를 막은 내 두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내리며 말한다. 크게 아픈 게 아니래. 여기서 궁금한 건 너에게 대체 아픈 건 뭐가 있는 거지. 너에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게 있긴 한 걸까? 변백현의 손을 뿌리쳤다. 쉽게 떨어져 나간 변백현의 손이 허공에 나부낀다.

 


“더 이상 네 말 못 믿어.”

“...”

“이제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거야.”

“...”

“그러니까 더 이상 날 바보로 만들지 마.”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는 나를 보며 변백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변백현을 두고 난 숙소를 나왔다. 혼자 남은 변백현이 걱정 됐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기어로 변백현의 수치를 확인하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치도 이렇게 멀쩡한데... 왜... 얼마 전 변백현이 사용했던 수건에도 묻어있던 옅은 피가 생각났다. 대체 언제부터 그런 거야... 머리가 너무 아프다.

 


“저... 여기 도경수 팀장님 계세요?”

“네. 팀장실 안에 계시니까 노크 하면 대답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도팀장님 팀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팀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물어봤다. 친절히 대답해준 팀원이 제 갈 길을 가고 난 팀장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도팀장님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오늘은 왜 이렇게 겁이 나는 지.

 


똑똑- 

 

“도팀장님 저 윤이새입니다.” 

- 들어와.

 


 팀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업무를 보고 있는 듯한 도팀장님의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났다. 갑자기 두 달 전 팀을 나가게 된 팀장님. 혹시 알 수 없었던 팀장님의 징계의 이유에 나도 포함이 되어있던 건 아닐까.

 


“네가 웬일이야. 여기까지 다 찾아오고.”

“물어볼 게 있어서요.”

 


 내가 꽤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옅은 미소를 담고 있던 도팀장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도팀장님은 모두 알고 있겠지. 나보다 나를 더...

 


“두 달 전, 임무에서 제가 크게 다쳤던 날.”

“...”

“제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셨죠.”

“그래.”

“그 기억 찾고 싶어요.”

“어째서?”

 


 꽤 덤덤하게 나의 말을 받아치는 도팀장님에 침을 삼켰다.

 


“의료 내역서... 봤어요. 제 거.”

“...”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전 임무를 나갔던 당일의 기억만 잃었다고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의료 내역서에는 그 후로 2주 넘어서까지 제 기억 속에 없는 내역들이 기록되어있었어요.” 

“...”

“팀장님은 아시죠. 제가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윤이새.”

 


 눈가가 점점 젖어왔다. 무섭다. 대체 난 무슨 기억을 잃은 거지? 그 잃어버린 기억 속에 난 왜 하루도 빠짐없이 진료 기록이 남겨져 있는 거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나의 표정에 도팀장님이 눈을 지그시 감으시곤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에 다가오더니 내 눈가를 부드럽게 꾹꾹 누르신다.

 


“난 더 이상 네 팀장이 아니야.”

“...”

“내가 그때 일을 네게 말해줄 자격이 없어.”

“...”

“설령 자격이 있다고 해도 말해주지 않을 거야.”

“...”

“네가 그 기억을 잃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네 스스로가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거야.”

 


 도팀장님이 내 눈가를 닦아주던 손길을 거두었다. 그때의 난 대체 왜 그 기억을 모두 저버릴 만큼 힘들었던 거지? 도팀장님은 내가 그 기억을 되찾는 게 두려워서... 그래서 내게 알려주지 않으려는 건가...

 


“다른 사람한테 가서 물어 봐도 모두 나랑 같은 대답일 거다.”

“...”

“네가 기억을 되찾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소리야.”

“...”

“그러니까 알려고 하지 마. 때로는 모르는 게 더 좋은 거야.”

 


 이미 나를 꿰뚫어 본 도팀장님이 경고했다. 내가 기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그러니까 기억할 생각 하지 말라고. 도팀장님의 말대로 라면 나를 제외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때의 나를 알고 있다는 건가? 재현이도, 인하도... 그때 함께 임무에 나갔을 테니까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건데. 아, 숨이 턱턱 막혀온다.

 


“윤이새.”

“...”

“대답해.”

“...네.”

“아프지 마.”

“..."

“네 스스로를 아프게 만들지 마.”

“...”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럼 그 과거가 현재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있다면요...?

 








약해빠진

 








“윤이새.”

“...”

“윤이새!”

“어, 어...?”

 


 재현이 내 볼을 두 손으로 잡고는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재현이 나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자주 이런다. 생각이 많아져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가이딩 해줘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 어어.”

 


 재현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가이딩을 해주기 위해 재현의 손을 잡으려는데 손을 뒤로 뺀다. 내가 왜 그러냐는 듯 보자 재현 또한 뭐하냐는 듯이 나를 보고 있다. 뭐야, 뭔데.

 


“뭐하냐. 난 방금 해줬잖아. 쟤를 해줘야지.”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 재현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자리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변백현이 보였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변백현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때 이후로 변백현과 나의 사이는 벽이 있는 것처럼 일정 거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변백현이 먼저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지금처럼 임무가 끝난 후, 아니면 밤에 몰래 변백현의 방에 들어가 도둑 가이딩을 해주는 것 말고는 정면으로 변백현을 마주하는 일이 없었다. 그 덕에 한 시간에 몇 번이고 변백현의 가이딩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이딩 받아.”

“응.”

 


 그날 보았던 변백현의 피에 대해선 아직까지 아무 것도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언제부터 그런거냐고, 괜찮은 거냐고, 의료국에는 다녀왔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나도, 변백현도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했으니까. 나는 변백현에게 다시 상처를 줄까봐, 혹은 상처를 받을까 봐. 다가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변백현 또한 나의 과거를 알고 있을까 봐... 그게 두려웠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변백현이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내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을 내 과거를 변백현이 안다면 그런 변백현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말이다.

 


“이제 됐어.”

“아직이야.”

“그만 해도 돼.”

“앉아.”

 


 아직 수치가 제대로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정상 수치를 넘어서자마자 됐다며 가이딩을 거부하는 변백현에 맞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다시 잡아당겼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며 계속 가이딩을 이어나갔다. 곧 변백현이 다시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얌전히 가이딩을 받는다.

 

 오늘도 임무를 마치고 센터로 돌아가자마자 도팀장님께 가볼 생각이다. 요즘은 매일 도팀장님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도팀장님의 팀장실에 들렸다. 가서 하는 것이라고는 도팀장님에게 내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는 것밖에 없지만. 그렇게 질리도록 찾아가서 조르는 데도 도팀장님은 단 한 번의 눈길을 주지 않으셨다. 점점 나도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윤이새. 지치지도 않아?”

“지치는데 저 포기 못 해요.”

“하아...”

 


 나를 애써 무시하며 업무를 보고 있던 도팀장님이 머리를 쓸어 넘기셨다. 팀장님 저도 안 이러고 싶은데 어쩔 수 없어요.

 


“네 심정도 충분히 이해해.”

“...그럼 알려주면 되잖아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너도 어느 정도 알 거 아니야. 네가 네 기억을 되찾으면 힘들어할 거란 걸.”

“...”

“너도 너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겠지. 네 기억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기억이면 이렇게까지 기억을 찾는 것을 반대하고 막는 건지.”

 


 그래, 한참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내 기억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는 걸. 의료 내역서를 본 순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네가 기억을 되찾는다고 가정해보자.”

“...”

“그 기억 감당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만.”

“...”

“만약 감당하지 못 한다면?”

“...”

“그래서 네가 위험해진다면? 네가 기억을 잃기 전과 똑같아 진다면?”

“...”

“그걸 보는 우리는.”

 


 도팀장님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난 그런 도팀장님을 그저 바라보았다. 아,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의료 내역서의 절반을 차지하던 ‘자살기도’ 라는 내역이... 내가 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때와 같은 행동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냥, 그냥 기억을 되찾아 내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었던 마음에 급급했다.

 


“윤이새.”

“...”

“넌 그 기억 감당 못 해.”

“...”

“그러니까 이기적인 짓은 이제 그만해.”

“...”

“지금 너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내 기억을 찾는다는 게 다른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발걸음 닿는 대로 왔을 뿐이다.

 


“누구... 이새 양?”

 


 평소라면 노크부터 하고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리면 팀장실에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팀장님을 부를 힘이 없었다. 그냥 얼른... 얼른...

 


“...이새 양 왜 그래요.”

“...”

“울었어요?”

“...아니요.”

“그런데 표정이,”

“지금 울 거예요.”

 


 나를 끌어안아줄 수 있는, 위로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자 팀장님은 좋지 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올렸다가 나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힘없이 처진 내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은 팀장님이 내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하신다.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이건 누군가로 인해 흐르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저 답답한 내 가슴이 이렇게나마 반응하는 거다.

 


“왜 울어요.”

“흐으...”

“아...”

“...”

“이새 양이 이러면 어떡해요.”

“...”

“안아주고 싶잖아요, 내가.”

 


 팀장님이 내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신다. 그런 팀장님의 위로에도 내 눈에서는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내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보듬어주지 못한 내 잘못이다. 나 스스로가 나를 너무 아끼지 못한 탓이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걸까.

 


“안아줘요.”

“...”

“팀장님.”

“...”

“안아주세요.”

 


 내가 먼저 팀장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곧 허공에서 방황하던 팀장님의 손이 나를 감싸 안는다. 팀장님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난 더욱 그의 품에 파고들어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도록 나를 안아줄 누군가 필요했다. 그 순간에 팀장님이 생각났던 이유는,

 


“팀장님...”

“네.”

“흐으... 팀장님.”

“...”

“제가 이기적인 걸까요?”

“...”

“제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모두가 괴로워지면...”

“...이새 양.”

“그럼 어떡하죠...?”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걸 몰라요.”

“...”

“설령 이기적이라도 해도 그 대상이 이새 양이라면 난... 안아줄 수 있어요.”

 


 이렇게 내 모든 걸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내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일까.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않고 위로 받고 싶다.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이 다시 붙여질 때까지 이 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약해빠진

 









 아으, 머리야. 어지러운 머리에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일어났다. ...여긴. 저번에도 한 번 들어와 본 적이 있는 팀장님의 방이었다. 나 어제 어떻게 됐더라. 팀장님한테 안겨서 펑펑 울었던 거 같은데...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안 갈래요.’

‘이새 양.’

‘저 여기 소파에서라도 잘게요.’

 


 아 맞아. 팀장님은 결국 내 고집에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하라고 하셨지. 남은 업무를 처리하던 팀장님을 보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던 거 같은데... 중간에 팀장님이 나를 안아 침대에 눕혔던 것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어... 팀장니임...?’

‘이새 양은 언제까지 나를 시험에 들게 할 거예요.’

‘으응...’

‘이게 진짜 마지막이에요.’

‘...’


‘내가 참는 건.’

 


 아... 괜한 걸 떠올린 거 같은데... 괜히 팀장님께 죄송해졌다. 어제 갑자기 와서 그렇게 울어댔으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그러고는 숙소로 돌아가기 싫다고 억지까지 부렸으니... 팀장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드려야겠다. 일은 다 저질러 놓고 사과하기 민망하지만 그래도 나 때문에 팀장님 업무도 제대로 못 보셨는데.


 그냥 방을 나가려다가 옆에 보이는 작은 거울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아, 미친. 나 지금 이 상태로 나가려고 했던 거야? 거울에 비친 모습은 가히 붕어. 눈은 팅팅 부어서는 반만 해졌고 머리는 제대로 정리도 되지 않아 산발이었다. 급하게 방에 있는 욕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찬물로 씻어도 도저히 붓기가 가라앉지 않는 눈은 포기하고 머리를 대충 손으로 빗은 후에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깼어요?”

“아... 네에...”

“왜 그래요?”

“저 팀장님... 죄송합니다.” 

“또 그러네.”

“...”

“이새 양이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래도... 어제 제가 갑자기 찾아와선... 많이 놀라셨죠...”

 


 내가 팀장님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웅얼거리며 말 하자 곧 팀장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아 난 저 웃음소리 들릴 때가 제일 두근거리더라. 그게 설렘의 두근거림이든 창피함의 두근거림이든.

 


“놀랐죠 엄청.”

“으이... 죄송해요.”

“그래도 한 편으로는 엄청 기뻤어요.”

“네?”

“이새 양이 힘들 때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거 같아서.”

“아...”

“앞으로도 많이 힘들면 찾아와요.”



 팀장님이 해사하게 웃으신다. 이런 사람이 나를 좋아해준다니. 그런데 나는 대체...

 


덜컥-

 


“...”

“...윤이새.”

“노크도 없이 뭐하는 거죠.”

“...”

“변백현 센티넬.”

 


 갑작스럽게 팀장실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변백현이었다. 변백현은 심각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그리고 팀장님께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팀장님 방 앞에 서있는 나를 보고는 말을 하려던 걸 멈추고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변백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내 이름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너...”

“변백현 센티넬. 들어오라는 말 없었습니다. 다시 나가세요.”

“...”

 


 변백현은 나를 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화가 난 듯한 팀장님의 말에 변백현은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팀장실을 나갔다. ...왜 저렇게 화가 난 거지. 내가 어제 숙소에 들어가지 않아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숙소에 들어오지 않은 날 엄청 걱정 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팀장실까지 찾아온 거고...

 


“팀장님 저 이만 가볼,”

“변백현 센티넬한테 가려는 거면 가지 마요.”

“...네?”

“가지 마요.”

 


 갑작스런 팀장님의 말에 당황한 내가 흔들리는 눈으로 팀장님과 변백현이 나간 문을 번갈아 봤다. 그러다 기어를 확인했다. 변백현 수치 48%. 이미 반 토막이 날아간 수치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변백현 수치가... 저 가야해요.”

“...”

“어제 너무 죄송했고 감사했습니다.”

“...”

“저 가볼게요.”

 


 그렇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 드리고 다급하게 팀장실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가진 않았을 텐데... 팀장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숙소가 있는 방향의 반대로 변백현을 찾아 나섰다. 가이딩도 가이딩이지만 그저 뭔가 오해를 하는 듯한 변백현에게 변명을 하고 싶었다.

 


“...변백현.”

“...”

 


 별관과 본관을 이어주는 통로에서 변백현을 찾았다. 내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변백현이 나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순간 그 눈빛에 숨이 턱 막혀왔다. 이렇게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변백현은 처음이었다.

 


“너.”

“...”

“대체 뭐하는 애야.”

“...”

“넌 내가...! 하... 됐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

“오해야.”

“오해?”

“...”

“내가 무슨 오해를 하는데.”

 


 삐딱하게 내 말을 받아치는 변백현에 아랫입술을 말아 넣었다. 숙소에 돌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 나를 계속 찾아다녔을 변백현이 지금 화가 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그렇게 찾던 내가 버젓이 팀장실에 있는 걸 봤으니. 아마 내가 변백현이어도 화가 났을 거다. 하지만... 하지만 백현아.

 


“네가 팀장이랑 각인한 걸까.”

“...!”

“뭐, 이런 오해?”

 


 네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난...

 


“그래서.”

“...”

“각인 했어?”

 


난 어떡해.

 
















‘그래서.’

‘각인 했어?’

 


 변백현은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지만 난 그 자리에서 한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변백현의 말이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 난 그저 힘든 나를 누군가 감싸주기를 원했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눈물이 흘러내린다. 난 왜 아무 말도 못 했지. 그냥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 말 한마디를 못 했을까.


 나를 원망하는 변백현의 눈빛, 내게 상처를 받은 변백현의 눈빛. 잊으려고 해도 자꾸만 떠오른다.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그 눈빛이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이대로 둘 순 없었다. 이유 없이 아파하는 나도,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변백현도.

 


“...저 여기 변,백현 센티,넬 봤어요?”

“아니요. 못 봤는,”

“감사합니다.”

 


 변백현을 다시 찾아야한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달렸다. 무작정 달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번에는 반드시 말할 거야. 그런 게 아니었다고,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잠깐 팀장님의 도움을 받은 거뿐이라고... 각인... 안 했다고.

 


“어? 누나!”

“어... 종인아.”

“어제 대체 어디 있었던 거예요! 팀원들 모두 걱정 했잖아요.”

“아... 미안해. 어제 일이 있어서 숙소에 못 들어갔어. 연락 못 해서 미안해.”

“일단 무사하니까 됐어요. 그런데 어제 백현이 형이 엄청 찾아다닌 거 알아요?”

“...”

“얼른 백현이 형한테 가 봐요. 어제 형 누나 기다린다고 한 숨도 못 잤어요. 아침에 누나 없어졌다고 팀장한테 간다고 했는데... 아직 백현이 형 못 봤어요?”

“...봤어.”

“아, 그래요? 다행이다. 백현이 형 화 많이 났죠.”

“...응.”

“그러게 연락 좀 하지...”

“미안.”

 


 종인이의 말에 더욱 더 죄인이 되는 느낌이었다. 정말 나를 밤새 기다렸구나... 나 때문에 한 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변백현을 생각하니 빨리 변백현의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인이는 얼른 숙소로 가자고 했지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변백현 데리고 갈게.”

“아 백현이 형 아까 도팀장님 팀장실에 들어가는 거 봤어요. 나는 누나 못 찾아서 도팀장님한테도 말하러 간 줄 알았는데.”

“...금방 갈게. 먼저 숙소에 가 있어. 팀원들한테는 미안하다고 좀 전해주고.”

“네, 백현이 형이랑 화해하고 와요.”

“그래...”

 


 종인이의 말에 옅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고 싶다. 종인이의 얼른 가보라는 말에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쉴 틈 없이 달려왔다. 혹시 내가 늦어서 변백현이 다시 어디론가 가버릴까 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올리는데.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 그럼 어떡해! 저러다가... 저러다가 다 알아버리면... 다 알아버리면 그땐 어떡해!

- 아... 제발 백현아.

 


 화가 난 듯한 도팀장님의 목소리가 팀장실 문을 타고 들려왔다. 뒤이어 들리는 변백현의 목소리도... 그에 난 팀장실 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렸다.

 


-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 형, 난 차라리 내가 다... 내가 이새 기억 다 떠안고 죽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해서 이새가 그날을 다시 기억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 진짜,

- 변백현!!

- 오늘도... 오늘도 그래. 난 오늘도 이새한테 상처 줬어. 형이 나한테 말 안 해줬으면 나 계속 이새한테 상처 줬을 지도 몰라. 아니, 상처 줬을 거야.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잘못 들은 걸 거야. 하지만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내 기억을 다 떠안고 죽고 싶다는 변백현의 그 말이... 내 기억을 다 떠안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기억을 잃은 것에 변백현도 관련이 되어있다는 거야?

 


삐빅- 삐빅- 

 

‘변백현, 수치 20%이하, 폭주 위험.’

 


 기어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그 사이에 또 수치가 내려간 것이다. 기어를 확인하자마자 팀장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 변백현!!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들려오는 도팀장님의 목소리에 거칠게 문을 열어 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저앉은 변백현과 그 아래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도팀장님까지 어느 것 하나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변백현!!”

“이새 네가 어떻게...”

 


 갑작스럽게 등장한 나로 더욱 놀란 도팀장님을 뒤로 하고 고통스러운 듯 벅찬 숨을 내쉬는 변백현을 끌어안았다. 입을 틀어막은 손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흐르는 피에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아... 아... 제발.

 


“팀장님... 빨리 의료국에... 빨리...”

 


 떨리는 내 목소리에 도팀장님이 다급하게 의료국에 연락을 취하는 듯 했다. 난 내 품에 안긴 채 멈추지 않는 피를 쏟아내는 변백현의 제 입을 틀어막은 손을 끌어내렸다. 내 손길에 변백현이 고개를 들고는 나를 바라본다. 변백현의 눈가가 젖어 들어간다.

 


“괜찮아, 백현아. 괜찮아.”

 


 변백현의 덜덜 떨리는 손을 내가 꽉 잡았다. 계속 되는 가이딩에도 변백현의 몸은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는 모양이다. 내 옷을 흠뻑 적시고도 남는 피에 변백현의 정신도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듯 했다.

 


“이새야... 이새야.”

“...왜.”

“미안, 미안해. 내가,”

 


 말을 하다 말고 변백현이 다시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침에 피가 사방으로 튄다. 나를 자꾸만 밀어내는 변백현의 팔을 잡아당겨 다시 내 품에 안았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쏟아져 내렸지만 닦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변백현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고통스럽게 감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피로 얼룩진 소매로 닦아주었다.

 


“말하지 마.”

“...”

“내가 더 미안해...”

“...흐으...”

“이번에도 내가 너 살릴게.”

 


 피로 젖은 변백현의 입술에 내 입을 맞추었다. 변백현은 나를 밀어내려했지만 난 결코 밀려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곧 의료국 센터넬들이 오고 변백현은 텔레포트 센티넬으로 인해 순식간에 의료국으로 가버렸다.

 


“하아... 하아...”

“이새야.”

“흐으... 팀장님...”

 


 긴장이 풀리자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앉아있는 것조차 힘이 부쳐 두 팔로 땅을 짚었다. 바닥에 흥건한 변백현의 피가 내 손을 다시금 적신다. 금방이라도 토할 거 같았다. 속에서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만 올라오려한다. 나를 나지막이 불러오는 팀장님의 목소리에 후두둑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내 앞에 다가온 팀장님이 내 입가에 묻은 변백현의 피를 손으로 닦아낸다.

 


“백현이, 백현이 저 때문에 저렇게 된 거예요?”

“...”

“네? 맞아요?”

“아니라고 하면.”

“하으...”

“믿을래?”

 


 너무 어렵다. 내 인생인데 뭐가 이렇게 어려워. 너무 어려워서 놔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저 맞은편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아서.

 


“말해주세요.”

“...”

“변백현이 저렇게 아파하는 이유.”

“...”

“그 이유 안에 왜 윤이새가 있는 지도.”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판도라의 상자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약해빠진

 







 도팀장님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에 나는 곧장 숙소로 와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이곳을 나가면 누군가를 또 아프게 할 거 같아서, 누군가에게 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거 같아서.

 


‘아까 밖에서 들었지, 변백현이랑 나랑 이야기 하는 거.’

‘...네.’

‘네가 들은 그대로야. 변백현이 네 기억 떠안고 있는 거, 맞아. 네가 그렇게 알고 싶어 하는 기억, 그거 변백현이 능력으로 막고 있는 거야. 네가 기억하지 못하도록.’

‘어째서...’

‘아마 이해 안 가겠지. 네 기억 속에 변백현을 처음 만난 건 두 달 전이었을 테니까.’

‘그럼 변백현이랑 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였다는 거예요?’

‘그래, 변백현은 너보다 훨씬 더 먼저 A팀이었어. A팀에 네가 들어왔던 것도 변백현 때문이었고.’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변백현의 능력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 메모리얼. 왜 이때까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지속적인 능력 사용, 과도한 능력 사용. 그건 모두 내가 그때를 기억하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변백현이 메모리얼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던 거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찾아봐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난 또 이렇게...

 


‘얼마 전 임무에서 능력을 썼다고 했지. 지금 변백현이 저러는 건 다 그때 능력을 썼기 때문일 거야. 네 기억을 가진 채로 능력을 유지하는 것도 벅찬데 거기다가 또 다른 능력까지 사용했으니까 몸이 버티지 못 하는 게 당연해.’

‘...’

‘이러면 네가 항상 궁금해 하던 변백현의 불안정한 수치, 임무에서도 백업만 하던 이유,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것까지 모두 설명이 되겠지.’



 퍼즐이 끼워 맞춰지듯 이때까지 내가 변백현에게 품었던 모든 궁금증들과 의심이 풀려버렸다. 이 상황까지 와서야 알았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지금 후회 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변백현의 몸이 저렇게 망가지기 전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그럼 변백현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려면...“

‘능력을 풀어야겠지.’

‘능력을 풀면 어떻게... 되는데요?’

‘네 기억이 다시 되돌아가겠지. 너에게로.’

 


 도팀장님은 그렇기 때문에 변백현은 절대 능력을 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이미 여러 번 설득을 시키기 위해 노력 했었다고...

 


‘일러미네이션 센티넬의 도움을 받으면 네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어.’

‘...’

‘이 세상에서 네 기억을 없애버리는 거야. 지금처럼 어딘가에 남아있는 게 아니라.’

‘그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네 기억을 다시 너에게 줘야 해. 변백현은 그걸 반대하는 거고.’

‘...’

‘네가 다시 그 기억으로 아플까 봐. 다시는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아플까 봐 변백현은 내 아픈 기억을 자신이 떠안고 있다고 했다. 그럼 변백현은? 내 아픈 기억을 모두 떠안고 있는 변백현은? 아프지 않은 걸까. 자기 자신까지 모두 잊어버린 나를 보며 변백현은 아프지 않았을까? 왜... 왜 변백현은 자신의 존재까지 내 기억 속에서 지운 거지...

 

 내 잃어버린 기억을 제외하고 모든 걸 도팀장님께 들었지만 하나도 모르겠다. 하나하나 끼워 맞춰지고 있지만 역시 모르겠다. 변백현이 자신의 몸을 무너뜨려가면서 내 아픔을 가져간 이유가 아직 명백하게 정의 내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난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이것 또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당장 의료국으로 달려가서 변백현을 본다? 아니, 참 어리석게도 아직까지 변백현의 얼굴을 보기가 두렵다. 물어보고 싶은 말도,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아마 변백현의 눈을 마주하게 되면 다 잊어버릴 거 같다. 또 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 어떡하지, 그 눈이 눈물에 젖어버리면 어떡하지.

 

 아직 해야 할 생각들이 많은데 내 몸은 자꾸만 쉬라고 재촉한다. 더 이상 그 재촉을 무시할 수 없어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 게 평소 피곤해서 꾸게 된 악몽 같은 거였으면.

 







 






오랜만에 또 꿈을 꿨다. 오늘도 변백현이 나왔는데 울고 있지 않았다. 저번처럼 나를 보며 울고 있지도 않았고, 내게서 멀어지지도 않았다. 나와 변백현이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물론 내가 기억을 잃고 난 후에 처음 만난 변백현을 말하는 거다. 입원해있는 나를 찾아 온 변백현, 그 옆에는 종인이도 있다. 맞아, 그때 같이 왔었지. 

 


‘안녕.’

‘...’

‘난 오늘부터 A팀에 새로 들어온 변백현이야.’

‘...아.’

‘센티넬이야. 아, 그런데 나는 백업이고! 진짜 지원군은 이쪽’

 


 자신의 옆에 선 종인이를 가리키며 웃는다. 그에 종인이도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김종인입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었던 거 같은데. 내 웃는 모습에 변백현은 본인이 더 해맑게 웃는다.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 앞으로 잘 부탁할게.’

 


 내가 내민 손에 종인이는 제가 더 잘 부탁한다며 맞잡아 왔는데 변백현은 제 앞에 내밀어진 내 손을 한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난 그때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라 자신을 처음 본다고 한 내 말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그때 네 행동이 이해가 간다.

 


‘그래, 우리 동갑이야. 친구.’ 

 


 뒤늦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오던 변백현의 손에 그제서야 마음이 놓여 웃었던 걸로 기억난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 변백현한테 진짜 몹쓸 짓 한 거구나.

 

 꿈에서 깨고 나서도 난 한동안 멍했다.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그 날로부터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렇게 한참을 멍하게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문 앞에 섰지만 막상 이 문을 열고 나가기가 다시금 두려워졌다. 문 손잡이를 잡은 손을 미세하게 떨려왔다.

 


-윤이새, 안에 있어?

 


 그때 재현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흠칫 놀란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 했다. 재현도 모든 걸 알고 있다 생각하니 괜히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직 자나?

“나 일어났어.”

-깜짝이야. 아 맞다, 오늘은 우리 모두 개인 임무 있어서 팀 임무는 없어. 아까 팀장한테 연락 왔어.

“...아, 응.”

-어제 변백현 때문에 많이 놀랐냐?

 


 조심스럽게 건네는 물음에 나는 잠깐 멈칫했다. 재현도 나 때문에 변백현이 아프다는 걸 알고 있겠지?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걱정하지 마, 의식만 되찾으면 된대.

“...”

-많이 놀랐을 테니까 쉬어. 가이딩은 우리들이 알아서 가이딩 센터 가서 받고 올게.

“...미안...해.”

-미안할 거까지야. 팀 가이드 힘든데 거기에다 대고 가이딩 해달라고 할 수는 없잖냐.

“...”

-그럼 간다. 나 나가면 숙소에 아무도 없으니까 나와서 밥이나 먹어.

 


 그렇게 재현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이내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백현을 아프게 해서, 그래서 나를 원망하면 어떡하나 걱정 했는데... 오히려 그런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정적이 찾아오고도 한참 후에야 방을 나올 수 있었다.

 

 텅 빈 거실은 온기가 없이 싸늘했다. 부엌으로 들어가자 식탁에 올려 진 김치볶음밥과 계란후라이가 보였다. 엉성하게 차려진 아침을 보자 웃음부터 먼저 튀어나왔다. 누가 만들었을까. 파괴의 손들이 잘도 꼬물꼬물 만들어 놨네. 컵에 물 한잔을 따르고는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아... 짜...”

 


 계란후라이를 한 입 집어넣자마자 씹이는 소금덩어리에 인상을 찡그렸다. 소금을 이렇게 무식하게 뿌리면 어떡하냐, 정말. 내가 장담하는데 이 계란후라이는 무조건 박재현이 만들었을 거야. 그 커다란 손으로 소금이 얼마나 잡히는 지도 모르고 뿌렸겠지. 그래도 뭐... 나름 맛은 있네. 이번에는 김치볶음밥을 한 입 먹었다. 정말 김치랑 밥만 넣고 볶았구나. 간은 하나도 되지 않았고 제대로 볶아지지 않은 김치는 여전히 아삭아삭 씹혔다. 이건 인하가 만들었겠지. 종인이는 아마 수저를 챙겨서 식탁에 올려놓고는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요리를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게 이런 건가.

 

 속으로 불평하던 것과는 다르게 나름 맛있게 먹은 아침이었다. 뭐, 볶음밥이랑 계란이랑 같이 먹으니까 간은 딱 맞더라. 설거지를 하는 내내 웃음이 실실 나왔다. 이 부엌에서 아침부터 난리를 쳤을 팀원들이 상상이 가서. 그러다 문득 스쳐가는 변백현의 얼굴에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변백현은 아직까지 고통 속에 허우적대고 있을 텐데... 내가 이렇게 웃고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나만큼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지이잉- 지이잉- 

 


 설거지를 마치고 팀원들이 돌아왔을 때 먹을 반찬을 미리 준비해두기 위해 냉장고 앞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도팀장님. 통화 버튼 앞에서 한참을 방황하던 손가락이 결국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변백현 깨어났어.

“...”

-너 찾아.

“...”

-지금 너한테 가려고 하는 거 겨우 붙잡아놨어. 적어도 하루는 더 입원해야 할 거 같아서.

“잘 하셨어요...”

-안 보러 올 거야?

 


 도팀장님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내가 지금 변백현을 볼 수 있을까. 아니, 못 본다. 지금 이런 마음으로 변백현을 봤다가는 변백현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아무 것도 아닌 내 말 한마디가 변백현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변백현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못 가요.”

-그렇게 하면 피해져?

“...”

-난 너희 팀장이 아니라서 변백현의 퇴원을 막을 권한이 없어. 방금까지는 그냥 변백현을 아끼는 형으로서의 충고였을 뿐. 내가 가고 나면 변백현은 언제든지 너 찾으려고 할 거야. 그리고 퇴원하면 당연하게도 너랑 변백현은 마주하게 돼있고.

“...”

-선택은 이새 너한테 맡길게. 이제 난 아무 관여도 안 할 테니까 알아서 해.

“흐으... 도팀장님...”

-...

 


 갑자기 눈물이 울컥 흘러나온다. 내게 닥친 현실은 생각보다 더 무겁고 무서운 거였다. 도팀장님이 말했던 것처럼 난 내 과거를 감당하지 못할 거야.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아픈데...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는 지도 몰라 이렇게 허우적대는데...

 


“저... 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새야. 그냥 하던대로 하면 돼.

“으으...”

-네가 변백현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 변백현이 지금 저렇게 된 이유가 너라고 해도 넌 죄책감 가지지 않아도 돼. 누구도 너를 질책하지 않아. 이건 모두 백현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야. 네 의지가 하나도 포함 되어있지 않았다고.

“...”

-그만 울어. 너 울면 못 생겨지는 거 센터 안에 돌아다니는 멍멍이도 알아.

“...됐어요. 사람이 왜 그렇게 못 됐어요.”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말에 도팀장님은 그제서야 소리 내어 웃으신다. 나도 그 웃음에 눈물을 닦으며 옅게 웃었다. 왠지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도팀장님은 여전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누구보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모습이. 항상 도팀장님께는 죄송한 일 뿐이었는데 이번 일에도 죄송한 일만 가득 안겨드린 거 같다.

 


“죄송해요, 업무 많은데 변백현 때문에 더 밀렸겠다.”

-알면 좀 도와주지? 나 저 징징대는 꼴 제일 싫어하는 거 알잖아.

“씻고 금방 갈게요.”

-한 시간 준다.

 


 전화가 끊기고 욕실로 향했다. 도팀장님 말대로 여기까지 온 이상 당장 내일이라도 마주해야할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을 피한다고 해서 끝인 게 아닌 거란 걸 깨달았다. 지금은 내 용기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보다 준비를 빨리 마쳤다. 아까 울었던 탓에 붉어진 눈도 다 가라앉아있었다. 쌀쌀해진 날씨 탓에 가디건을 챙겨 입고는 숙소를 나섰다. 나를 찾고 있다던 변백현이 내 걸음을 재촉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왜 나와 계세요.”

“내 얼굴 보기 싫다고 쫓아내던데... 내가 왜 이런 취급 당해야하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

 


 병실 앞에 도착하자 병실 안에 있을 거 같던 팀장님이 병실 밖 간이의자에 앉아계신다. 왜 나와있냐는 말에 미간을 꾹꾹 누르시며 말하는 도팀장님이 화를 억누르는듯한 목소리로 하소연을 하신다. 아, 그래도 어쩌겠어요. 도팀장님이 변백현 너무 오냐오냐 해줘서 그런 건데.

 


“너 왔으니까 가볼게. 그래도 되지?”

“...네. 걱정 마세요.”

“네가 걱정 말라고 하는 소리가 제일 못 미더워.”

 


 내 이마를 콩하고 쥐어박는 도팀장님에 바보 같이 히히 웃어보였다. 내 바보 같은 웃음에 손바닥으로 자신이 때린 내 이마를 꾹꾹 눌러주고는 내 어깨를 툭툭 쳐주신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떠나시는 도팀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병실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변백현. 병실 문 옆에 부착된 명패에 걸려 진 이름이 이 안에 누가 있는 지를 명백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 이 문 너머에는 변백현이 있다. 내 기억을 모두 떠안고 있는, 그래서 아픈 변백현이.

 


-윤이새지.

 


 그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변백현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내가 온 걸 어떻게 알았지. 손잡이에 올렸던 손이 그대로 멈췄다.

 


-형이 내 욕하는 것도 들었어.

“...”

-많이 놀랐지.

“...”

-나 얼굴 보기 힘들면 우리 이렇게라도 애기하자.

 


 곧 병실 안에서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린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 소리는 문 바로 앞에서 멈춘다. 문 너머로 변백현의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문만 없다면 엄청 가까웠을 거리가 문으로 인해 닿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미안해. 놀라게 해서.

“...”

-그리고 너한테 심한 말 한 것도... 진심 아니었어. 그냥, 그냥 그때는 내가 너무,

“알고 있어. 네가 욱해서 한 말이란 거.”

-...

“그렇다고 내 대답도 안 듣고 가는 게 어디 있어. 치사하게.”

 


 내 말에 변백현의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네가 내게 느끼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지웠으면 하는 마음에 장난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너는 조금 긴장이 풀린 듯 했다.

 


“나 안 했어.”

-...

“팀장님이랑 각인 안 했다고.”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그만해. 둘 다 서로한테 미안하니까 퉁쳐.”

-응.

“백현아.”

 


 도팀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계속 생각해왔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보기로 했다. 내가 이대로 이 모든 걸 모르는 척 하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려서 그럴 수 없다.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은 가지만 그래도 난 말해본다.

 


“내 기억 말이야.”

-...

“그거 다시 돌려줘.”

-이새야.

“그리고 다시 지우면 되잖아. 응? 지울 수 있대. 도팀장님이 그랬어.”

-안 돼.

“그렇게 하면 너 안 아플 수 있대. 나도 그렇고.”

-...

“우리 그러자.”

-싫어. 형이 너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못 해. 아니, 안 해.

“...”

-넌 그 기억이 무슨 기억인지는 알고 그래? 네가 다시 그때를 기억하면,

“그 순간뿐인 거야. 나 내가 잊은 기억이 얼마나 아픈 기억인지 알아. 정확히는 몰라도 내가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거 알아. 그런데 백현아 그 순간만 견디면 되는 거잖아. 네가, 팀원들이 나 안 무너지게 도와주면 되잖아.”

-난... 난 그 한 순간도 싫어. 네가 한순간이라도 그때를 기억하는 게 싫어.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떨려오는 변백현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저려왔다. 이해할 수 있다. 변백현이 저토록 고집을 부리는 이유. 나라도 저랬을 거다. 누군가 아파하는 걸 한순간도 보기 싫은 건 당연한 거다. 당장에 나도 우리 팀원들이나 내 주변사람들이 아프다고 하면 내가 더 아파할 테니까,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이 들 테니까.

 


“네 마음 이해해. 하지만 백현아 우린 지금 현실을 살고 있어. 우리 좀 더 현실적으로,”

-그래서 다시 기억을 지우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어떡할 건데.

“다 같이 행복하면 되잖아. 그때가 되면 아무도 안 아플 수 있는 거잖아.”

-아니, 아니야... 어떻게 다시... 널 어떻게...

“나 더 이상 네가 아픈 거 보고 싶지 않아. 이거 모두 나 때문인 거잖아. 네가 내 기억 때문에 계속 능력을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 거잖아.”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있어.

“자꾸 억지 부릴래? 네가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니란 거 너도 잘 알잖아.”

 


 언제까지 이렇게 변백현과 벽을 두고 언쟁을 버려야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끝도 없을 거 같다. 변백현도, 나도 서로 의견을 굽히려고 하질 않으니.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해도 기억 못 돌려줘.

“...뭐?”

-내가 돌려주고 싶어도 마음대로 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얼굴 보고 얘기하자.” 

-아니, 문 열지 마.

 


 예상치도 못한 말에 이건 더 이상 문을 두고 할 말이 아니다 싶어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문을 열려던 손이 변백현의 말로 인해 그 자리에 멈춰졌다.

 


“...알았어. 그럼 이 상태로 계속 말해 봐. 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네 기억 내가 잠가뒀어. 단순히 내가 네 기억을 가져온 게 아니란 말이야.

“...”

-잠겨진 기억을 찾으려면 열쇠가 필요해.

“...그 열쇠가 뭔데.”

-너도, 나도 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한동안 나와 변백현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이 한 없이 무겁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 열쇠라는 게 대체 뭔데 변백현이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걸까. 나도 변백현도 할 수 없는 거... 그게 뭐지.

 


-네가... 

“...”

-네가 날 사랑해야 돼.

“...”

-그리고 나도 널 사랑해야 돼.

“...”

-그래야 할 수 있는 거야.

 


 변백현의 말에 또 다시 눈이 커졌다. 여전히 내가 바라보는 건 문이지만 불투명한 창으로 보이는 변백현의 실루엣이 나를 더 애타게 만들었다. 여전히 떨려오는 목소리로 말을 마친 변백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변백현의 헐떡이는 숨소리만 들려온다.

 


“변백현.”

 


 기어코 난 문을 열어젖혔다.

 


“그럴 수 있어...?”

“...”

“너, 나 사랑할 수 있어?”

 


 네가 문을 열지 말라고 했던 건 그때부터 네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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