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부(4)







 



 

나는 고요한 사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작고 낡은 신당이었다. 처음부터 신을 모시기 위해 정성 들여 지었다기보단 얽히고설킨 기둥들이 모습만 갖춰지게 급하게 지은 듯했다.

한 평 남짓 보이는 신당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위패가 하나 놓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위패에 쓰인 글자도 세월에 삭아버려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구에 어설프게 둘러쳐진 동아줄을 바라보다 이내 신당 바로 옆에 지어진 초가집으로 눈길을 돌렸다.

보이는 그대로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지붕 위에 쌓인 눈들이 금세 폭삭 주저앉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다. 나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외쳤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점 좀 보러 왔소만?”


역시 대답이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방문 가까이 좀 더 다가갔다. 안채로 여겨지는 문은 다른 곳과 비교해 창창히 종이가 발라져 있었다. 전에 듣기로 주민들이 돌아가며 돌봐준다 하더니 춥지 말라고 창호지를 발라준 듯했다. 그런다고 얼마나 칼바람을 막아줄까 싶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진흙 속에 새하얀 진주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가지런히 놓인 낡은 짚신을 보며 다시 물었다.


“나는 박성철이라 하오. 이 마을에 온 지는 5년이 다 되었는데 이곳에 신당과 무당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소이다. 괜찮으면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소만.”


분명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오만, 내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어 그렇소. 수령에게 들었더니 아이의 시신을 그대가 찾아주었다면서, 그래서 내 그것이 궁금해서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싶어 찾아왔소. 실례가 될 줄은 알지만, 부탁 좀 드리오.”


나는 최대한 예를 차려 상대에게 부탁했다. 따지고 보면 저 노파가 굳이 나를 만나줄 이유는 없었다. 안쪽에서 약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으나 그뿐이었다. 나는 안에 있는 노파가 망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나갔다지만, 그건 직접 들어보면 알 터였다. 게다가 흐릿한 오후의 하늘 그림자가 방 안에 있는 인물이 문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묘한 기시감에 젖은 채 말을 뱉었다.


“사실은. 그쪽이 찾아 준 아이의 시신을 살펴보았소. 거기서 찰나였으나 묘한 냄새와 하얀 실 같은 흔적을 보았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분명 문 앞에 사람 그림자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열린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짐짓 멈칫거리며 어두운 방 안을 둘러보고 있자 어디선가 선득한 느낌의 젊은 여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대감.”


노파가 산다 들었는데. 나는 의아해하며 조심히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들어가자 방문이 조용히 스스로 닫혔다. 하얀 종이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빛만이 작은 방안을 비추었다.


“내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둡소.”


그러자 앞에 낡은 방석 하나가 스윽 들어온다. 나는 방석 위에 앉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잘 보이진 않으나 사람 하나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희끗희끗하게 바랜 머리칼이나 푸석한 피부가 노파와 같았으나 목소리만은 낭랑하고 맑은 것이 신기한 일이었다.


“궁금한 것이 무엇입니까.”


노파라고 해야 할지, 여인이라 해야 할지. 그러나 왜 수령이 ‘나이 든 여인’이라 칭했는지 알 듯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냈다. 살면서 별 희귀한 일들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이 정도는 매우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아이를 찾아주었다 들었소. 그게 사실이오?”

“예. 맞습니다.”


그녀는 예상보다 담담히 대답했다.


“어찌 찾은 것이오?”

“.....우연입니다.”

“우연이라니. 답지 않은 소리를 하는 것 같군. 아무리 무당이라도 인과를 알려주며 풀어주는 것이 당사자의 일일 터인데 우연이라니. 우연히 알게 된 것을 그리 열을 내며 찾으러 가라 했단 말인가? 믿을 수 없군.”

“대감께서 믿지 않으시는데 제가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무당이 아닙니다.”


나는 놀랐다. 당연히 신당을 모신다기에 무당일 줄 알았고 마을 주민들이나 수령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었나.


“그렇다면, 아이를 어떻게 찾은 것이오? 내 믿지 못한다는 건 우연이란 의미를 말하는 거지, 그쪽이 아니오.”


그래도 그녀는 쉽게 입을 열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참 까다롭구먼. 그러다 나는 상대가 문을 열어 준 계기를 떠올렸다.


“좋소이다. 적어도 나는 우연이 아니겠지. 우연히 냄새와 자국을 알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일세. 벌써 십수 년도 더 지난 일이지. 내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죽고 말았소. 아이는 궁에서 발길이 끊어진 수백 년 된 별궁 안에서 발견되었고 당시 다섯 살 아이가 혼자 갈 수 없는 곳이었지. 나는 내 아이를 신기가 있던 친우의 딸 아이 덕분에 찾을 수 있었고, 시신에서 아까 말한 냄새와 자국을 똑같이 보았으며 그 또한 찰나의 순간이었오. 그것을 본 사람도 나와 친우의 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지.”

“대감께서는 신수를 가질 만한 능력은 없으시나 약하게 타고난 기(氣) 덕분에 보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알고 있소. 그러니 궁금하단 말이지. 당시 내 아이가 그렇게 된 이유는 결국 밝혀내지 못했소. 그런데 수년이 흘러 죽을 때나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이 내게, 왜 또 이런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끝내 마음에 묻어 두었던 울분을 토해냈다. 받아들이고 잊으려 하고 담아두었던 얼굴을 왜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인가. 하늘이 참 모질다고 생각했다.


“허나,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조금 일으킨 여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이 보니 자신과 같이 주름이 자글자글하나 눈빛만은 이채를 띠고 있었다.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업이지요. 그 업이 마을을 집어삼키다 못해 이제 더는 손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게 그 때문이오? 업? 그 업이 도대체 무엇이오? 다른 아이들은 어찌 된 게요?”

“다른 아이들은 모릅니다. 제가 발견한 아이는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대감께서는 우연을 믿지 않으시겠으나 이 또한 우연임이 맞습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도 하지요. 어떤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나, 그 아이만은 숨이 붙은 채 ‘집’을 빠져나왔으나 안타깝게도 다른 ‘무언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아리송한 대답투성이다.


“집? 어느 집을 말하는 건가? 다른 ‘무언가’는 또 뭐고?”

“집이란 건, 마을 북쪽 끝자락에 있는 산꼭대기 검은 집을 말합니다.”

검은 집. 나는 내 느려터진 뇌를 굴려 보았다. 그러자 수령에게 들었던 옛이야기들이 떠올랐다. 그 산은 가본 적도, 그렇다고 산 아래에서 그 집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럼 그곳에 아이들이 있단 말이오? 왜 진작 그 얘길 하지 않았소? 그렇다면 찾아봤으면 될 것을!”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여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이 만약 그 집안을 호기심에 둘러보다 갇혀 있는 거라면?


“찾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고조 없이 내 생각을 단칼에 잘라냈다.


“찾을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집입니다. 오롯이 그 집이 허락한 자만 들어갈 수 있지요. 그게 어린아이들입니다. 그 누가 간들 그 집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니?”

“아이만 받고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 집을 만든 게 이 마을이지요. 신당을 보셨지요? 이미 이백 년 전에 지어진 신당의 허술함을 보셨을 겁니다. 저는 저 신당이 지어지던 상황을 똑똑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백 년 동안 이 업이 되풀고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대감.”


나는 잔뜩 쌓여만 가는 의문과 충격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백 년? 아이들이 사라지는 일들이 이백 년이나 계속 이어진 일이라고?


“그것을 어떻게 나라에서 모를 수 있단 말인가?”


내 안일한 의문에 여인은 자조하며 피식 웃음을 내비쳤다.


“이곳은 외부와 교류가 없던 곳입니다. 지금이야 수령이 있고 나라에서 관리를 붙여주었지만,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이 마을은 오직 이장과 남아있던 아전들만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일손을 주던 곳이었지요. 이백 년이라 하여 매년 아이들이 사라졌던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자기들 나름의 규칙이 있었지요. 그것을 뼛속 깊이 새겨 지키는 것만이 살아가는 이유인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도 그런 거에 의심을 품지 않았지요. 그럴 수 없지요, 왜냐면 이 낡은 미신이야말로 이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또한 매우 안전한 방법이었으니까요.”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전혀 정신이 나가 보이지 않았다. 소리는 똑똑했으며 앉아 있는 자세는 곧았고, 눈빛은 맑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정신이 나간 척했던 것일까.


“아이들은 저 집에 어떻게 가는 게요? 정말 찾을 수 없는 건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긍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말한 ‘무언가’라는 건 무엇인가? 발견된 아이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고?”

“그것은 저도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저 기운을 느낄 뿐입니다. 전에 없던 것이긴 하나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검은 집의 기운과는 다르다는 것뿐. 대감이 보신 자국과 냄새는 아마도 그 기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나는 풀지 못한 타래들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일단 검은 집에 대해서 만큼은 알아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네는 멀쩡해 보이네만.”

“이게 저의 업보입니다. 저는 멀쩡히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본인은 무당이 아니라 했는데, 어찌 다른 사람들은 무당이라 하며, 신당은 왜 모시게 된 게요?”


나의 질문에 방금까지 정상적으로 보이던 여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목소리는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나는, 그러려던 게 아닙니다! 그저 제 언니를 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이 저 신당을 세우고 검은 집을 지었어요!!”


여인은 곧이어 성대를 긁어대는 쇳소리를 내며 큰 목소리로 짖어댔다. 순식간에 노쇠한 노파의 것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을 짓고 신당을 세우고! 나를 여기 묶어두고! 우리 어머니를 죽이고! 나보고 다 업보라며 가져가라 했어요! 그놈이!!! 내가 가져가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다 받았어! 나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으니까,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내가 다 받았어!”


울부짖는 여인, 아니 노파를 진정시킬 새도 없이 다시 벽에 달라붙어 날 노려보는 서슬 퍼런 눈에 생전 처음 오금이 저렸다. 신수를 부리는 이경과 성규로 인해 괴괴한 귀신의 모습도 몇 번 보았지만, 이 여인의 얼굴은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한(恨)이 많았고 또 살아있었다. 그렇다. ‘살아있다’ 그녀는 어째서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이백 년도 더 된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자신이 검은 집과 연관이 있다고 울부짖으면서- 살아있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대감, 그냥 잊으십시오. 이 일도 곧 조용해질 터이니. 쓸데없이 나선다면 대감께 좋지 못한 일이 생길 것입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내 뒤로 다시 차분해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내 타고난 성정이 그렇게 놔두질 못하리라는 것을. 거기에 혹시 내 아들의 죽음을 밝힐 수 있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감, 그냥 기다리십시오. 곧 대감께 이로운 분들이 오실 겁니다.”


여인의 마지막 목소리가 흩어지며 방안으로 사라졌다.

하늘은 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몇 시각 지난 것 같지 않은데... 시선을 내려 아래를 보니 낡은 짚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헛것은 아닌 건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며 뒷산을 바라보았다.

 

[기다리십시오.]

 

그러나 구름에 가려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평상시에도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일단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장 수령을 만나야 했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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