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유리상자 - 신부에게 (Inst.)




*후방 포함
*전편인 <물과 달> 외전이지만 연동해서 읽지 않아도 상관 X





감긴 눈꺼풀 아래 느껴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탄지로는 눈을 떴다. 수면으로 잠시 마비되어있던 몸의 신경이 조금씩 감각을 되찾을 때 허리 통증이 격하게 밀려왔다. 기유의 허리에 의해 미친 듯 쑤셔졌던 다리 사이가 아팠다. 그와의 동침이 찰나의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소녀는 부끄러움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 엎드리고는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분명 그 날 밤 탄지로는 기유에게 반했다. 보름달 아래 호수에서 물놀이를 함께 하다 물의 신을 보는 듯한 그의 자태에 홀려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정신 차렸을 때 입술은 이미 기유의 입술과 겹쳐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남자에게 안긴 채 자리를 옮겼으며,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이부자리에 뛰어들듯 누워 서로의 젖은 옷 벗어던지고 육체를 탐했다. 늑대가 갓 잡은 사냥감을 게걸스레 파헤쳐 먹듯, 기유는 엷은 입술과 붉은 혀를 이용해 사매의 가슴을 빨고 배와 골반에 자욱을 남기고 두 다리 틈의 은밀한 곳을 핥았다. 탄지로가 난생 처음 겪는 쾌락에 몸부림치며 정신을 잃어갈 즈음 길고 단단한 존재가 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육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만큼 커다란 분신을 넣었다 빼었다 하며 기유는 탄지로의 몸을 탐닉하였다. 욕정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낯설다가도 아름다워 탄지로는 두 손으로 기유의 두 뺨을 감싸안았다. 이를 신호 삼아 기유는 또 한 번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감질맛 나는 입맞춤과는 달리 허릿짓은 거칠었다. 그가 파정하여 자궁 내부와 다리 밑 여린 꽃을 적신 뒤에도 운우지정의 여운은 지속되었었다...

안 그럴 것처럼 보이더니 짐승이었어. 정말 못됐어, 기유 씨는....잠깐 기유 씨 어디있지? 탄지로가 옆을 더듬거렸을 때 기유의 팔뚝 아닌 이부자리의 자락이 잡혔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기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단정히 다려입은 대원복 위로 하오리를 걸쳐 입은 뒤 사매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일어났나?"
"조...좋은 아침입니다..."
"네가 잠들었을 때 감기걸릴까 싶어 옷을 입혔다. 몸은 어떤가?"
"아...괜찮습니다. 감사합니- 에?"


내가 잠든 사이 기유 씨가 옷을? 옷 벗고 배 맞댄 사이가 되었는데도 탄지로는 알몸을 기유에게 보여줬다는 수치감에 급히 유카타 깃을 여몄다. 때마침 기유의 전담 까마귀인 칸자부로가 날아와 그의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깃털을 쓰다듬으며 기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에 주합회의가 있어 나가야 한다. 어제 무리했을 테니 푹 쉬고 있어라."
"네."


말을 마친 기유는 외출하는 대신 한참 동안 탄지로를 바라보았다. 무언가에 미혹되어 혼이 나간 사람인 양 멍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보는 기유가 낯설고 이상해서 탄지로가 갸웃거렸다.


"기유 씨?"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새하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천진난만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녀였다. 색채 하나도 없이 흰 유카타 차림은 새신부의 백무구(白無垢)가, 머리 위 이불자락은 와타보우시(綿帽子)가 되어있다. 장지문 너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더해지니 신부 차림의 곱디고운 그녀를 직접 대면한 듯했다. 덤으로 자신의 하오리 소매는 살짝 들어올렸을 때 검은 신랑 예복의 넓은 소매가 되어있었고.

구름이 하늘을 지나치며 그림자가 살짝 드리우고 환상은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듯 부서졌다. 기유는 정신을 차리고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 수주 토미오카 기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달달한 냄새를 흩뿌린 사형이 오늘따라 이상했다. 젠이츠가 네즈코 볼 때마다 나던 냄새가 기유 씨에게서도 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리 밑 통증이 되돌아왔다. 자신을 새벽까지 몰아세운 기유를 원망하며 털썩 누웠다. 시노부 씨와의 다과상 약속에 늦으면 안 되는데 하고 걱정하면서.







그저 생각날 때마다 썰을 끄적일 뿐인 지나가던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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