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월요일 아침이었다. 패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 차가 부드럽게 지면을 박차고 나아갔다. 출근 시간대여서인지 집 앞의 도로는 사람들이 타고 나온 차들로 가득했다. 패치는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차들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답답함에 핸들을 손가락으로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그는 문득 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횡단보도 쪽에서 행인 두 명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단순한 몸싸움이라 치부하기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정말 먹기 위해서 행동하는 마냥 그 움직임에서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얼마나 그 상황을 지켜봤는지 패치는 기억할 수 없었다. 시선을 느낀 괴인이 핏발 선 눈으로 패치를 쳐다보았다. 마주친 눈에 패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다. 공포에 몸이 굳은 패치의 귀에 짜증이 담긴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패치는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운전대를 제대로 붙잡았다. 패치는 괴인의 눈빛이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했으나 곧이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아침부터 별 재수 없는 일이 생겼다며, 패치는 애써 그 일을 잊으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선배님, 커피 드시고 하시죠?“

치트가 패치의 책상 위에 테이크아웃 한 아이스커피를 내려놓고는 패치를 불렀다. 아, 치트. 아침의 일로 인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패치는 곧이어 제 앞에 놓여 진 차가운 커피를 보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참 고심하던 패치는 잠시 컵을 매만지다 입을 열었다.

“자네, 이상한 사람을 보진 못했나? 동물처럼 행동한다거나...”

“이상한 사람이라뇨?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검까?”

치트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신입사원이 아, 하고 무언가 떠오른 듯 끼어들었다.

“어...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저 아침에 출근하다 본 것 같아요.”

“어디서, 어디서 봤나?”

“그게... 지각 할 것 같아서 빨리 오느라 잘은 못 봤지만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을 덮치려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역에서? 어느 역에서 그랬나?”

추궁하듯 묻는 패치에 직원은 뒷머리를 매만지며 기억하려고 애쓰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로 한참을 생각했다.

“어... 그러니까... 아마 ○○역인가? 맞다, ○○역. ○○역이에요..”

“○○역이면... 아까 내가 그 사람을 봤던 곳이랑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군.”

“대리님도 보셨어요?”

“...그래.”


심각해진 둘의 분위기에, 치트 또한 덩달아 심각해졌다. 패치는 직원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 하나?”

직원은 이번에도 한참을 고민하더니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손뼉을 한번 치고는 기억이 났다는 듯이 행동했다.

“목 부분이 피? 물감? 하여튼 빨간 액체로 범벅이 되어 있었어요.”

무슨 일 있는 걸까요? 걱정스러운 투로 덧붙이는 직원의 말에 치트는 혹시 영화 촬영이 아니냐며 물었지만 영화 촬영이라면 시민들을 내보낸 다음 하지 않겠느냐는 패치의 말에 다시 분위기가 심각해졌지만 몇분 뒤 이런 걱정 하지 말고 일이나 하자는 패치의 말에 직원과 치트는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고, 패치 또한 다시 업무를 시작하려고 모니터를 응시했지만 아침에 마주쳤던 그 눈빛이 자꾸 떠올라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패치는 결국 한숨을 쉬며 치트가 가져다준, 얼음이 다 녹아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세수라도 할 생각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패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조용한 사무실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평소 건강하던 남자 직원 한명이 쓰러진 것이었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남직원은 바닥에 쓰러져 몸을 경련하듯 떨어댔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사무실 안에 있던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남직원의 옆으로 다가갔지만 남자직원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계속해서 몸을 움찔댔다. 그때, 남직원 근처에 있던 직원이 외쳤다.


“소, 손에서 피가...”

오른손에 선명하게 난 잇자국에서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엔 불쾌하고 검은, 끈적끈적한 피가 스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안위를 살피던 다른 직원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뒷걸음질 치며 급히 핸드폰을 들어 119에 신고하려고 하였으나 바지춤을 붙잡는 어떤 손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축축한 느낌에 고개를 떨궈 밑을 본 직원은 그만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흉측한 얼굴을 한 남직원이 선지 같은 피가 줄줄 흐르는 손으로 직원의 다리를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흰자가 보이도록 눈을 까뒤집고 사람의 목소리라기엔 불한 음색으로 으르렁댔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은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고, 바지춤이 붙잡힌 직원은 말하기를 잊은 사람처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닥을 기던 남직원은 몸을 일으켜 남직원을 덮쳤고, 사무실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치트는 중요한 짐만 챙겨 달리는 와중에도 자리를 비운 자신의 선배가 생각나 쉽사리 회사 밖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결국 치트는 입구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복도에 울리는 구둣발 소리에 혹시라도 아까전의 그것이 달려오진 않을까 조심하며 뒤꿈치를 들어 남자 화장실을 지날 때였다.

“자네, 여기서 뭘 하는거지?”

“...!”

뒤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치트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패치가 물 묻은 손을 털어내며 치트를 의문이 한가득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선, 선배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치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빨리 도망쳐야 함다!”‘

다급한 치트의 목소리에 패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지만, 치트는 그런 패치의 물음에도 답하지 않은 채 패치의 손목을 잡고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연타했다. 패치는 그런 치트의 행동에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며 손을 뿌리쳐냈다. 패치의 완력에 한참 못 미치는 치트의 손이 쉽게 떨어져나갔다.

“대체 무슨 일 인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지?”

화난 패치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려 퍼졌다. 잠시만요, 선배... 좀 조용...! 치트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복도 저편에서 터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제정신이 아닌 아까전의 남직원이었다. 패치는 출근 때에 봤던 사람과 비슷한 상태로 보이는 직원의 모습에 금방 상황 파악을 마치고는 치트를 돌아보았다. 아까 도망 이라는 건... 설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직원이 치트와 패치를 향해 더욱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쳐다보니 완전히 다른 층에 멈춰있는 듯 그 층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패치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남직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쩔 수 없군. 계단으로 가는 수밖에.”

패치는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비상구의 문을 열어젖혔다. 치트가 먼저 들어가고, 패치 또한 뒤따라 들어갔다. 바짝 뒤따라오는 남직원에 패치는 바로 문을 닫고 항상 가지고 다니던 열쇠 꾸러미로 문을 걸어 잠갔다. 얼마 안 있어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숨을 죽이던 둘은 계단을 타고 황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층에도 들려 위험을 알리고자 하였으나 위에서 들려오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에 패치는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층을 내려갈 때마다 비상벨 버튼을 눌렀다. 급한 와중에도 선배님은 남을 참 잘도 생각한다며 치트가 비꼬았지만 패치는 묵묵히 버튼을 누를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 내려와 치트와 패치는 패치의 차에 탔다. 치트는 대중교통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비상구 쪽에서 남직원이 비척거리지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패치는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었고, 차에 근접한 남직원을 피해 대로변으로 나갔다.

밖은 지옥도를 옮겨다 놓은 듯 엉망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듯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피범벅인 사람들, 상황을 눈치 채고서 도망가는 시민들과 차들, 꽉 막힌 도로... 패치는 심각한 상황에 입술을 깨물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패치는 일단 차창과 차 문을 모두 잠그고 치트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치트, 라디오 좀 틀어주겠나?”

치트는 패치의 말에 라디오를 틀어 주파수를 맞추기 시작했다. 치직거리는 잡음이 서서히 줄어들고 낭랑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치트는 주파수를 맞추고는 핸드폰을 켰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좀비사태라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글자가 적혀있어 치트는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선배. 이게 좀비사태 랍니다. 참...”

“아나운서 목소리가 안 들리니 조용히 하게.”

패치의 말에 치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다시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는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로부터 시작되어...’

‘국가적 비상사태 선포...’

‘다른 나라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며...“

아나운서가 읊는 내용에 잡음이 섞여들었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무언가 현실에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알 것 같았다. 패치는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차들에 이를 갈았다. 창문에 묵직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사람이...!”

치트가 다급하게 외치자 패치는 조수석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라고 하기 엔 너무나도 징그러운 행색을 하고 있는 무언가가 창문을 부술 듯이 달려들며 손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패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차들도 패치 쪽과 다를 점은 없어보였다.

다른 시민이 차 밖으로 탈출하려다 먹혀들어가는 꼴을 본 패치는 아무 말 없이 엑셀을 밟고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치트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그건 역주행...!”

“꽉 잡게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도로 교통법이 무슨 상관이 있지?”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치트는 황급히 차창 위에 있는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 과속 방지턱에 걸린 듯 크게 덜컹거렸으나 회사 근처에는 과속 방지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던 치트는 방금 밟고 지나간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차창에 거머리처럼 진득하게 붙어있던 사람이 튕겨져 나갔다. 패치는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었다.

패치의 운전 덕분에 금방 도착한 패치의 아파트 단지 주변 또한 아수라장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파트 입구 쪽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해, 둘은 무사히 패치의 집이 위치한 2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패치는 익숙하게 도어락을 열고서는 집 안에 들어섰다. 작지만 깔끔한 집에 치트는 역시 선배님 입니다~ 라며 잡소리를 했다. 패치는 치트가 집을 구경하는 사이 커다란 캐리어 두개를 챙겨오고는 입을 열었다.

“구경만 하지 말고 짐 싸는 것 좀 도와주게”

“저도 챙겨주시는 겁니까?”

치트가 적잖게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가리켰다.

“이렇게 된 이상 자네를 놓고 갈 순 없지 않나.”

패치의 말에 치트는 고개를 끄덕이곤 패치가 가져오는 것들을 차곡차곡 캐리어에 최대한 부피를 줄여 담기 시작했다. 옷가지, 생필품, 그릇 몇 개와 식기 몇 개, 심지어는 속옷까지 한 캐리어에 욱여넣고는 다른 한 캐리어에는 식료품과 물을 그득하게 넣었다. 대부분 통조림이나 과자, 에너지바 같은 종류였다. 치트는 패치의 회색 드로즈를 들어 보이며 얼굴을 붉혔다.

“저희 속옷도 공유하는 검까? 부끄러워라~ 저는 아직 준비도 안 됐는...”‘

“새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단호하게 말하는 패치의 말에 치트는 입을 삐죽거렸다.

“너무 하시네요~ 저는 기대했지 말입니다..”

“...자네는 누가 입던 속옷을 입는 취미가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선배님 속옷만 해당 되는걸요~”

“...”

패치는 그런 치트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시간 낭비라는 표정이었다. 소소하게 잡담을 나누던 둘은 캐리어를 각각 하나씩 가지고 현관 앞에 섰다. 패치는 다른 한 손에 고등학교 때 썼던 철 야구배트를 들고, 치트는 그 뒤에 차에 넣을 휘발유가 들어있는 통을 들고서는 패치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둘은 현관문을 열고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까 와 같이 조용하고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고 나와 계단을 숨죽이며 내려갔다.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나 직장에 갔다고 해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패치는 그것을 느꼈으나 구태여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무사히 차가 주차 된 곳까지 오게 된 둘은 차에 짐을 싣고 각각 운전석에 앉았다. 패치는 익숙하게 시동을 걸었다. 곧이어 차에 시동이 걸리자 패치는 운전대를 잡고 엑셀을 밟았다. 차가 느릿하게 출발했고, 치트는 안전벨트를 맨 뒤 창 밖을 응시했다. 차 소리가 들리자 주변에서 인간의 형상을 닮은 무언가가 천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가 고개를 들자 다른 것들도 천천히 이쪽을 보기 시작했다. 치트는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들을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선배님, 빨리 가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네. 패치는 도로에 진입 한 뒤, 엑셀을 더 강하게 밟았다.

도로로 나와 조금 달리다 보니 도시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지 오래였다. 도로 위에 짓밟힌 듯 보이는 붉은색의 살점들과 황급히 대피하는 사람들, 도로 위를 정처 없이 걸어 다니는 무언가... 혼잡한 도로 위의 상황에 패치는 운전대를 꺾어 능숙하게 손을 놀렸다. 스칠 듯 말듯 한 아슬아슬한 운전에 치트는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가라앉히며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그렇게 얼마동안 울렁거리던 차가 금방 안정을 되찾고는 곧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것이다. 아까전의 도시보다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치트와 패치와 마찬가지로 다른 곳으로 대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차 몇 대가 급하게 달리고 있었다. 치트는 멍하니 앞을 보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보다 저희 어디 가는 검까?”

“..일단 시골에 있는 집이라고만 하겠네."

“시골에 집이요?"

치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패치는 잠시간 운전대를 두드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정정하지. 조부모님의 집이였다."

“...그러면 지금은..."

“돌아가셨다."

차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치트는 운전에 집중한 패치의 눈치를 보다가 연신 손으로 만지작대던 핸드폰을 켜고는 데이터를 켰다.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여전히 좀비사태 라는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단어였다. 각종 SNS, 기사의 댓글에는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글을 올렸고, -치트는 이럴 시간에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허위사실들이 난무했다. 치트는 영양가가 없어 보이는 글들에 다시 한숨을 쉬곤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치트, 라디오 좀 다시 켜줄 수 있나?"

“그럼요~"

치트가 다시 라디오를 만졌다. 지금의 상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잡음이 꽤나 심했다.

‘현재 질병 관리 대책본부는 이 바이러스가 체액에 의해 집적 감염되며 아데노바이러스의 변형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치직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는지 패치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치트는 그런 패치의 눈치를 보고는 다이얼을 돌렸다.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감염자들은 경련, 구토, 호흡 이상 증세를 보이며 비감염자의 몸을 무는 비이성적인 이상 행동으로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외출을 삼가 하시고 만약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멀어지거나 즉시 도망치시길 바랍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터뷰...'

잘 가던 차가 덜컹거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치트는 좌석에 머리를 부딪힌 듯 아픈 뒷머리를 만졌다. 무, 무슨 일 임까? 별거 아니네. 패치는 애써 태연한 듯 말했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는 패치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본 치트는 허리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바퀴 자국대로 혈흔이 남아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그 혈흔을 따라가 보니 차에 깔려 으깨진 듯 한 무언가가 도로에 있었다. 그 무언가의 형태가 잡혔고, 치트는 구역질을 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었기 때문이였다.

“...앞을 보게나.”

패치가 툭 던진 한마디에 치트의 시선이 다시 앞을 향했다. 그 한마디 이후로 패치는 말없이 운전을 계속했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점점 어두워지는 주위에 패치는 차를 한적한 갓길에 멈춰 세웠다. 함부로 라이트를 켰다가는 감염자들이 몰려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패치는 차의 시동을 꺼놓고는 입을 열었다.

“좌석을 낮춰 자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여기서 자는검까?”

“그럼 어디서 잘 거지?”

치트는 그런 그의 말에 군말 없이 좌석의 밑쪽에 위치한 스위치를 조작해 좌석을 눕혔다. 초가을이여서 그런지 쌀쌀한 기분이 들어 어깨를 매만졌다. 패치는 그런 치트를 곁눈질 하고는 말했다.

“춥나?”

“아, 아님다. 괜찮습니다!”

패치는 그런 치트의 말에도 불구하고 뒷좌석을 뒤적거리다 성인 남성 두 명 정도가 덮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담요를 꺼냈다. 곱게 접혀진 담요는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것 같아 보였지만 탈취제 냄새만 날 뿐, 퀴퀴하거나 하는 기분 나쁜 냄새는 딱히 나지 않았다. 패치는 접힌 담요를 펼쳐 치트의 몸 위에 덮어준 뒤, 넉넉히 남은 부분을 끌어와 덮었다. 따끈한 온기에 하루 종일 긴장해있던 몸이 저절로 풀렸다. 그러나 편한 몸과 달리 정신만은 또렷했다.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치트는 눈을 돌려 패치 쪽을 바라보았다.

“선배님도 잠이 안 오십니까?”

치트가 느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패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자네도 잠이 오질 않는 건가?”

“영 불안해서 잠이 올 생각을 안 하네요~”

“...그렇군.”

패치는 짧은 대답을 하고는 담요 속에서 손을 꼼지락 거렸다. 침묵을 유지하던 패치는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정 불안하면 손이라도 잡아주지.”

치트는 내밀어진 패치의 손을 보고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작은 미소를 머금고는 크고 따뜻한 손을 꽉 잡았다. 네. 치트의 손이 패치의 온기로 덥혀졌다. 불안해서 술렁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게나. 짧은 인사와 함께 천천히 몰려오는 졸음에 둘은 눈을 감았다. 금세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고, 맞잡은 손엔 여전히 온기가 돌았다.

들짐승의 소리처럼 그르렁 거리는 어떠한 소리에 패치는 간신히 눈을 떴다.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리며 겨우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두리번댔다. 패치는 얼마 안 가서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감염자가 한쪽 발을 절뚝이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슬렁대고 있었다. 창문 근처에서도 보였기 때문에 패치는 숨을 죽이고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르렁대는 소리가 멀어지자, 패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어딘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고, 다른 인기척 또한 들려왔다. 다시 눈을 돌리니 감염자로 보이는 ‘그것’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한 마리만이 아니었다. 넷에서 다섯으로 보이는 것들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패치는 조용히 치트를 깨웠다.

“치트, 치트, 일어나게나.”

“오 분만... 더 주십쇼...”

“이럴 때가 아니네. 근처에 놈들이 있어.”

패치의 말에 치트는 눈을 번쩍 떴다. 근처에요? 작게 속닥거리는 목소리에 패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네. 치트는 아까 전 패치가 한 것처럼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치트는 자신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였다. 패치는 마른세수를 한번 하더니 좌석을 바로 세우고는 차키를 꺼냈다. 밖의 것들은 아직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각자 제 할 일을 할 뿐이었다. 패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용한 고속도로에 상대적으로 커다란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렸고, 감염자들의 고개가 일제히 이쪽으로 돌려졌다. 패치는 다급한 표정이 되어 핸들을 잡고 엑셀을 밟았으나 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슨 문제 있슴까?”

“차 시동이 안 걸리네! 기름이 없는 모양이야.”

다급한 목소리에 치트는 초조한 듯 손가락을 매만졌다. 패치는 몇 번이나 시동을 걸기 위해 시도했으나 쉽사리 걸리지 않았다. 감염자들이 이쪽을 눈치 채고 차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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