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어디가는거에요?" 

"아 원래는 한 명씩 다 태워서 같이 가려했는데, 우리가 늦어서 다들 알아서 출발 했다고 하더라고요."  

"응?"

"응?" 


갑자기 생각나서 물었는데 박지민은 내가 지금 가는 곳이 어딘지 아는줄 알았나보다. 못 알아 듣고 되묻자 "저 자식이 말 안해줬어요? 어디가는지?" 백미러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귀신 잡으러만 간다 했지 별말 안해줬다 그러니 한숨을 내쉰다. 


"지 맘대로지." 

"맞아요." 

"건방지고." 

"그런거 같아요."

"지가 잘난줄 알고." 

"그것도 맞는듯." 

"근데 진짜 잘나서 할 말이 없어." 

"그래요?"

 

안대를 쓰고 드르렁 코를 고는 김태형을 보며 혀를 차더니 씩 웃는다. 


"그래도 나쁜놈은 아니라."


껌통에 손을 옮기는걸 보고 내가 먼저 집어서 껌을 꺼내 손에 올려줬다. "고마워요." 입에 넣고 우물 거리는걸 보다 순간 아차, 했다. 


"바꿀래요?" 

"응?" 

"산길만 못 내려온거지 저도 운전 할 줄 알아요. 저 때문에 산까지 올라 오셨는데 잊고 있었어요. 다음 휴게소에서,,"

"아니요 괜찮아요." 


아까 다음 휴게소 곧 나온다고 했으니까 바꾸자 하려 하는데 박지민이 말을 자르고 "그래도 잠깐 쉬었다 가는게 좋겠죠?" 차선을 맨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잘 됐다,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가방에서 간단하게 지갑만 꺼내드니 슬쩍 보고 웃다가 어, 하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몇살인지도 안 물었네, 몇살이에요?" 

"아 저 스물셋,," 

"아~ 더 어릴줄 알았는데." 

"지민씨는요?" 

"그냥 지민아, 라고 불러요." 


인삼랜드, 어두운 고속도로를 비추는 휴게소 간판이 보였고 박지민은 부드럽게 차를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동갑인거야 어린거야. 나는 "몇살인데요?" 라고 물었고 그는 "동갑~ 김태형 일어나라!!" 주차를 하려다 뒤돌아 소리치고 네비에 뜨는 후방카메라가 찍어 보낸 화면을 바라보며 후진을 시도했다. 

 

"아 저건 또 뭐야." 


김태형은 안대를 벗고 부스스하게 일어나 우리 둘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밖을 보다 네비 화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안 꺼지냐." 화면을 향해 혼자 중얼거리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입을 삐죽거린다.  


"뭐,,하세요?" 

"초딩이네 쟤. 뒤졌어." 


아직 주차가 다 되지도 않았는데 김태형은 뒷문을 열려고 했다. "새끼야 좀 기다려봐." 박지민은 그런 그에게 성질을 냈고 "아 도망갔잖아, 쥐어 팰라 했는데." 김태형은 뒷자석 문에 있는 창문에 푸우- 얼굴을 대고 밖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뭐가 또 보였나보네. 사실 아까 후방 카메라가 켜질때 어린 남자애 웃음소리를 듣기는 했다. 그냥 휴게소에서 들리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자주 들리지, 생각하니까 소름이 돋아 귀를 살짝 만지작거리자 "뭐가 들려요?" 박지민이 약간 걱정스러운듯 물어왔다. 


"아뇨, 아니에요." 

"이거 받어." 


김태형이 뒤에서 훅- 손을 내밀어왔다. 나는 응? 두손을 모아 그가 주는 물건을 받았다. 내 손 위에 올라온건 사각형 모양의 메모리 펜던트 목걸이였다. 펜던트 외곽면에는 고급스런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안을 열어 뭐가 있나 보니 흰 종이에 붉은 지문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게 뭐지? 


"차고 다녀, 덜 들릴거야." 


그가 문을 열으며 말했다. 박지민은 자기 목에도 걸린 내꺼와 비슷한 목걸이를 보여주며 "덜 하긴 하더라고요." 웃어 보였다. 아 부적같은거? 할머니가 말한 더 좋은 게 이거구나. 나는 얼른 그 목걸이를 차고 옷 안으로 넣었다. 한결 편해지는 마음에 웃으며 문을 열고 내리니 "왜 내려?" 김태형이 한손은 주머니에 한손은 귀를 신경질적이게 후비며 물었다. 


"화장실 가려고요." 

"지갑은 왜." 

"그냥." 

"화장실만 다녀와." 

"지민씨 피곤해 하는거 같아서 커피라도 사서,," 

"그냥 오라고." 


정색을 하는 그에 뭔가 기분이 나빴다. 아무리 내가 니 직원이 됐다지만 초면부터 반말 찍찍 내뱉고 어? 화장실도 맘대로 못가? 완전 갑질 아니야? 불만스럽게 쳐다보니 뒤에서 박지민이 "같이 가요." 내 팔을 끌어왔다. 그러니 김태형이 '"니가 같이가면 완전 우리 잡아가소 이거거든?" 하품에 입을 쩍- 벌리며 뒤따라왔다. 아니 잘생긴 얼굴을 왜 저렇게 써.  





-






"아,,," 


미치겠다, 뭐지? 귀에 대고 계속 후후 바람을 불어온다. 아는척을 했다가는 더 심한 짓을 할까 최대한 모른척 옷을 정리하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끝까지 계속 귀에 입김을 불어온다. 어깨도 아까보다 무거워지고, 손 끝에서도 낯선 느낌이 계속 스쳐지나갔다. 세면대로 다가가 물을 틀어 손을 씻으니 그나마 손에서 느껴지던 느낌이 느껴지지 않아 시원했다. 눈을 감고 한숨을 쉬는 순간


 "시원해?"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 


동요해버렸다. 순간 놀라 몸을 움찔했고, 귓가엔 바람 섞인 웃음이 느껴지며 그 결을 따라 머리가 살랑 흔들렸다. 시발, 욕이 나오는 순간이다. 순간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비추는 천장의 조명이 한번 깜빡였고 내 어깨 위에 느껴지던 무거움은 두배로 더 올라간듯 엄청난 짓누름으로 변해버렸다. 똑-똑- 남은 물방울이 떨어지던 수도꼭지가 스르륵 돌아가고,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이 화장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내가 움직이자마자 화장실 내에 모든 조명이 꺼지고 입구의 유리문이 스스로 움직이며 닫히려 했다.  


"시발, 뭐하는거지." 


그리고 문이 닫히기 직전, 김태형의 발이 문틈 사이로 들어와 문이 닫히는걸 막았고 잔뜩 찌푸린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순차적으로 화장실에 모든 불이 돌아왔다. 나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어깨의 무게와 귀를 간지럽히던 숨결이 사라짐에 안도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빨리 나와." 


그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내 손목을 낚아채 끌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빠르게 끌려가는 바람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피를 사서 들고오던 박지민이 그런 나를 보고 놀라 뛰어왔고 김태형은 어깨를 잡아 나를 일으켰다.  


"무슨 일이야?"

"완전 빨렸어." 

"뭐? 목걸이 했잖아." 

"너꺼보다 약해. 전에 급할 때 만든거라 한 번 밖에 안 찍었어." 


김태형이 나를 잡아 눈을 마주하고 처음 본 이래 가장 진지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엄살 피우지마."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엄살을 피운다였다. 나는 순간 울컥해 오늘 고생했던 것과 평소보다 더 들려오는 이것들에 열이 받아 부적이라 준게 이딴거냐? 목에서 목걸이를 뜯어 던졌고 


"꺄하하하하!!!!" 

"야!!!얘네 존나 부자다!!!" 

"끄히힛!!!!" 

"끼이이이이이잉" 


귀가 찢어질 정도로 들려오는 소리들에 놀라 귀를 막고 그자리에서 주저 앉아 버렸다. 그런 내 귀 위로 김태형이 차분히 손을 올려 막았고, 이내 소리는 사라졌다. 따뜻하면서도 무거운 손이었다. 


"왜. 자살하게?" 

",,,," 

"일어나." 


그가 귀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 박지민이 다시 내 목에 목걸이를 채워줬다. 그는 목걸이가 완전히 걸린걸 확인하고 나서야 손을 떼어냈다. 머리가 어질거려오고 붕 뜬 느낌이 들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까 느낀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채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이 소리를 그냥 다 들으면서 있었던거야? 그래서 나오지 말라 한거고,,? 나라면 못할짓이다. 


"벌써부터 이 정도로 많으면 가서는 엄청 나겠다." 

"돌려 보내야 하지 않을,,어 00씨?" 

"야, 너,," 


둘은 심각하게 애기를 나누다 나를 보고 더 심각한 표정을 지어왔고, 나는 귀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손을 뻗어 귀를 만져보았다.  


"야 태형아." 

",,,," 


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어지러워지는 머리에 뒤로 넘어가며 정신을 잃었다. 쓰러지기 전 또다시 귓가에 숨결이 느껴졌다. 






-





"7월선녀?" 

"어, 그 할망구 있잖아." 

"그 사람 손녀라고?" 

"몇번 말해." 


아 머리,,, 띵하게 울리는 머리에 목소리들이 섞여 들어오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살며시 눈을 뜨니 환한 빛이 그대로 눈에 들어와 얼굴이 찌푸려졌고, 그러자 눈 위로 누군가의 손이 올라와 빛을 가려주었다. 곧 들려 온 목소리에 그 손의 주인이 누군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냥 있어." 

",,어디에요,,?" 

"지리산." 


지리산? 나는 살며시 손을 치워내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여기가 어디지. 숙소야? 거실인가. 나는 쇼파에 누워 있었던 거고 김태형은 그 옆 팔걸이에 앉아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데 처음 보는 남자들이 있었다. 딱 눈이 마주친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어,,," 

"아 저는 김석진이라고 합니다." 


물수건을 들고 오던 그는 내가 당황한듯 하자 살며시 웃으며 자기소개를 해왔다. 내가 일어나 생긴 옆 공간에 앉더니 이마에 손을 올려 열을 재고 "다 내렸네. 필요없겠다 이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검은 셔츠, 목 부분에 두른 흰 띄. 익숙한 복장이었다.  


"이쪽은 김석진, 그리고 저 애는 전정국." 


김태형이 팔걸이에서 일어나며 저 구석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애 이름도 알려줬다. "귀가 터진거야?" 창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묻는 전정국이다. 나는 눈만 껌뻑 거렸고 "터진게 뭐야 터진게." 박지민이 짐을 들고오며 혀를 끌끌 찼다.  


"뭐라 해 그러면." 


전정국은 들어줄까? 손을 흔들었고 박지민은 됐다 고개를 저었다.


"뭐,, 충격을 받았다거나,, 그런?" 

"지도 할 말 없으면서." 


전정국은 픽 웃고 "나방 겁나 많네요." 자기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쇼파에 앉아 왔다. 어질거리는 머리에 잠깐 눈을 감았다 떠서 다시 이 곳을 살펴보았다. 산장? 펜션? 아무튼 작은 집은 아니었다. 여기가 이들만의 장소라는걸 아는데는 별로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치하게 저런건 찍자 해서." 


시선을 따라 본 전정국이 작게 중얼거렸다. 거실에 제일 잘 보이는 벽면에 여러 남자가 한 사진에 찍혀 큰 액자에 걸려있었 다. 7명의 젊은 남자들과 수염이 길게 난 남자. 여기 이 4명이 다 있는걸로 보아 나머지 사람들도 곧 여기에 오는구나 생각했다. 전정국은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박지민을 보다가 "형 어깨." 말했고 박지민은 흠칫 하다 "어,,어깨 뭐!!"  아무렇지 않은척 말했다. 


"완전 큰 손자국." 

"하지마." 

"디따 크네, 한 2미터는 되겠다 키." 

"하지 말라고!!!" 


얘는 영안인가. 나는 박지민을 상대로 놀리듯 장난을 치는 전정국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내 생각이 맞는듯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살짝 푸른 빛이 일렁였다. 무당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 보니 이 사람이 영안이 있나, 영기가 있나 아니면 나처럼 소리를 듣는다던지 뭐 특이한 증상이 있나 관찰하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 전정국이 휙, 돌아 보고는 얼굴을 근처에 밀어 왔다.


"예쁘지." 

"네?" 

"내 눈. 근데 이따 오는 형이 더 이뻐." 


나는 "그,,그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이 쇼파 뒤쪽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런 전정국의 이마를 쳐서 뒤로 넘어트렸다. "누나다." 한마디를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베란다문을 열어 테라스로 걸어 나갔다. 


"누나라고?" 


박지민이 "응~" 그의 뒷통수를 통, 쳤다.


"나랑 태형이랑 동갑." 

"와, 또 막내네. 아니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까 선배라고 해요." 

"이 분은 그런 분 아니야." 

"왜? 뭐가 있으니까 태형이 형이 뽑은거 아니야?" "

"그냥 조수 역할 하시는 정도야." 


전정국은 입이 대빨 나와서 자기보다 어린애를 데리고 와라 중얼거렸다. "나이가,," 몇 살이길래 저러나 박지민에게 살며시 물으니 "저희보다 2살 어려요." 웃으며 대답 하고 전정국의 또 머리를 툭 쳤다. 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2살이나 어린게 초반부터 반말에 선배질하려 하네? 비웃었다. 이 어린놈이. 


-타탁 


"어?" 


그리고 순간 들려 온 소리에 고개를 돌려 김태형이 나가있는 테라스를 바라보았고, 전정국은 "뭐야 저게 다."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멍하게 일어섰다. 박지민과 김석진 역시 테라스 창문에 다닥 다닥 붙어오는 나방을 보고 놀라 그대로 멍하게 바라봤다.


"야 시발 뭘 몰고 오는거야 너네는!!!" 


김태형이 멀지 않은 도로에서 엄청난 나방떼에 둘러 쌓여 오는 차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뛰어 들어와 베란다 문을 걸어 잠궜다. 그러더니 나에게 황급히 다가와 목걸이 줄을 당겨 펜던트를 옷속에서 빼내었고 


"뭐하시는 꺅!!!!!" 

"가만히 있어봐." 


펜던트를 열자마자 그는 자신의 오른손의 엄지 손가락을 콱 깨물어 피가 나게 했다. 그 뒤, 펜던트 안 종이에 그 엄지 손가락을 원래 찍혀있던 모양에 맞춰 다시 누르고 내 양 귓볼에도 꾹 눌러 자신의 피를 묻혔다.  


"웬만하면 안 이러는데, 아까도 쓰러져서 안돼." 

"소,,손가락,," 

"잘 들어, 밖에 나오지마." 


그의 말을 끝으로 나방떼인지 차인지 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그것들에 둘러 쌓인 차가 숙소 앞 주차장으로 들어오는게 베란다 밖으로 보였다. 이들은 그런 그들에게 가려는지 현관으로 움직였다. 


"눈 감고 우리가 와서 직접 너한테 눈 뜨라 하기전엔 눈 뜨지마." 

",,,," 

"누가 말 걸어도 대답도 하지말고." 


김태형이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해왔다. 나는 그런 그에 고개를 돌려 베란다를 바라보려 했는데 "보지 말라고." 내 고개를 잡아 다시 자기를 보게했다. 


"말 안들으면 해고야." 

",,," 

"알겠지?" 


나는 그런 그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고 그는 그대로 내 얼굴 위로 손을 올려 눈을 감게했다. 


"신고식 제대로 하네." 


그의 온기가 내게서 떨어졌고, 난 그렇게 이 거실에 혼자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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